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7)
유난히 밝은 날 -1
“집까지 혼자 갈 수 있겠어? 누나가 데려다줄까?”
“뭔 소리야. 들어가, 얼른.”
“치, 많이 컸네, 우리 지안이. 집에 혼자 갈 줄도 알고.”
“뭐래.”
“암튼, 조심해서 가. 일요일 날 보자!”
“어. 갈게.”
어느새 어두컴컴한 저녁.
김지우는 손을 휘휘 저으며 돌아서는 이지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한참이나 이지안을 바라보던 김지우는, 이지안이 사라졌을 때가 돼서야 몸을 돌렸다.
“많이 컸네, 진짜.”
김지우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세상에.
그 꼬맹이 같던 이지안을 올려다보는 날이 올 줄이야.
이제는 제법 어른인 척도 다하고.
언제나 챙겨주고 싶은 동생 같은 게 이지안이었는데 말이다.
뭐랄까.
이상하게 자꾸 신경이 쓰이는?
워낙 말도 별로 없고 성격도 소심해 보였거든.
자기가 챙겨주지 않으면 어디 가서 밥도 잘 못 먹고 다닐 것 같았다고나 할까.
그래서 항상 붙어 다녔었다.
초등학교 입학 첫날 혼자 교실 구석에 있길래 먼저 말을 걸었던 게 시작이었고, 항상 밥도 같이 먹어 주고, 짓궂은 애들이 건드리면 대신 싸워주기도 하고.
그렇게 7살부터 13살까지.
6년을 붙어 다니면서 업어 키웠었다.
와, 진짜 친동생이었어도 그렇게는 안 챙겨줬을걸?
그런데, 오늘.
3년 만에 만난 이지안은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쑥스러움이 많은 건 여전했지만, 뭐랄까···
‘키도 훨씬 더 커졌고, 얼굴도···’
김지우가 피힛 웃는다.
그래.
많이 남자다워져 있었다.
키도, 얼굴도, 그리고 행동들도.
예전엔 지켜주고 싶은 귀여운 동생 같았다면, 지금은 뭐랄까···
음··· 으음!
암튼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근데 그런 변화가 싫은가 하면, 그렇진 않았다.
“잘 컸네. 잘 컸어.”
왠지 모를 뿌듯한 미소를 지은 김지우는, 한껏 기지개를 켜며 피렌체의 거리를 바라보았다.
근처의 가로등이 김지우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거리 진짜 예쁘다.”
솔직히 오는데 정말 힘들었다.
이것저것 신경 쓸 것도 많았고, 비행기도 거의 20시간을 타고 왔다.
온몸이 힘들었다.
근데, 기분은 좋았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이곳에서 좋은 추억들이 많이 생길 것 같았다.
첫날부터 느낌이 좋은 피렌체였다.
ㆍㆍㆍ
지우와 헤어진 뒤.
나는 꽤 선선해진 밤공기가 기분 좋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을 향해 걸었다.
그러다가···
“···.”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주먹을 쥐며 작게 환호했다.
“예쓰···!”
들어갔다, 들어갔어···!
소집 명단에 들어가다니.
일단 급한 불은 껐다···!
“휴우우우···”
순간 온 몸의 힘이 쭉 빠지며 절로 긴 한숨이 나왔다.
정말 안도의 한숨이다.
경기 명단에도 못 들어갔으면 모든 게 탄로 날 뻔했는데, 일단은 들어갔으니.
정말 다행이다. 다행이야.
뭐, 물론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소집 명단에 들었다뿐이지, 경기에 나설 수 있을지 없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니까.
정확히 따지면 오히려 경기에 못 나설 확률이 훨씬 높을 것이었다.
그래도 소집 명단에 못 든 것보다는 훨씬 다행인 게 사실이었다.
경기 보러 가는 거 기대된다고 벌써부터 저렇게 설레하고 있는데.
내가 경기장에 없는 것보단 벤치에라도 앉아 있는 게 훨씬 낫잖아.
설사 경기 내내 벤치를 지키더라도, 어떻게든 핑계는 댈 수 있겠지.
그래.
일단은 정말로 다행이다.
다행은 다행인데···
“···대체 뭔 생각으로 또 허세를 부린 거야?”
나는 길바닥을 굴러다니는 돌을 차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명단에 든 건 다행인데, 어쩌다 보니 부리게 된 허세가 또 문제였다.
나 참.
골을 넣겠다고 약속을 하다니.
심지어 골 넣는 거, 그거 어려운 것도 아니라고 되도 않는 허세까지 부렸다.
대체 뭔 생각이었을까.
사실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괜히 자신 없는 모습 보여주기 싫어서.
···아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기보단, 자신 없어 하면 괜히 거짓말한 걸 들킬까 봐 그런 거지.
아무튼 간에.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벤치에만 앉아 있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나갔다가 골 못 넣으면 이상해지니까.
아아, 모르겠다.
진짜 거짓말이라는 건 눈덩이 같기도 하고, 부메랑 같기도 한 것 같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다 보면 어느 순간 감당이 안 되는데, 이게 또 나한테 꼭 돌아오니까.
걱정이 태산인 채 집으로 향한다.
“···.”
근데, 뭐랄까.
기분이 좀 이상하다.
원래 지금처럼 경기를 앞두고 있는 날이면, 난 항상 초조함과 불안에 떨었었다.
혹시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부담감에 전날부터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근데 지금은 좀 다르다.
물론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고, 못하면 어떡하나, 아니 경기에 나가지도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인데.
뭐랄까.
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보단, 반드시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든달까.
이 둘이 뭔 차이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랬다.
왜일까.
순간 지우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른다.
3년 만에 만난 지우는··· 여전히 지가 내 누나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예전 같은 느낌이 들진 않았다.
“···.”
문득, 골을 못 넣더라도 경기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ㆍㆍㆍ
번쩍-!
눈을 뜨니 푸르스름한 새벽이었다.
머리맡에 둔 핸드폰을 눌러 시간을 확인한다.
일요일 오전 6시.
경기 시작 9시간 전이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는다.
그리곤 푸르게 어두운 허공을 멍하니 바라본다.
“···.”
그렇게 10분 정도를 멍하니 있었다.
눈을 뜨는 순간 이미 잠은 달아난 터라 잠을 깨려는 건 아니었고.
그냥 새벽 특유의 정적인 고요함을 가만히 느꼈다.
사실 나는 이 느낌을 싫어했다.
해가 뜨기 직전의 이 묘한 느낌을 말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이 어둠이 걷히면 해가 뜨고, 결국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반복되리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하루가 또 시작되는 그 느낌이 싫었다.
특히 시합이 있는 날이면 더욱 그랬다.
그저 어둠이 좀 더 오래가길 바랐다.
내 방에서 나가야 하는 그 시간이 오는 게 싫었다.
근데··· 오늘은 조금 다르다.
무지 긴장되는 거 여전하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심지어 내 거짓말이 들키는 날이 될지도 모르는데··· 빨리 하루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씻자.”
좀 더 누워있어도 됐지만, 후딱 씻고 나왔다.
나와서 양말을 신고 옷을 입은 뒤 거실로 나갔다.
거실 옆 부엌엔 아빠가 간단히 준비해놓은 아침이 있었다.
다행히 샌드위치다.
이곳 사람들이 많이 먹는 치즈를 넣은 샌드위치는 누가 만들어도 맛없기가 힘든데, 그래서 아빠표 요리 TOP 3에 들어가는 게 이 샌드위치다.
냉장고에서 오렌지 주스를 꺼내 컵에 따른 뒤, 식탁에 앉아 샌드위치와 함께 먹었다.
아빠는 주말마다 항상 바쁘다.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고 계셔서 특히 아침 일찍부터 출근을 하신다.
그걸 알고는 있었는데, 그동안은 주말에 늦게 일어났으니 아빠가 이렇게 빨리 출근을 하시는지는 몰랐다.
나중에 내가 돈을 더 많이 벌면 아빠도 늦잠이란 걸 잘 수 있게 될까.
샌드위치 4개 중 2개를 먹고 남은 건 도시락통에 담아 가방에 넣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도 많이 이르긴 했는데··· 그냥 좀 일찍 가지, 뭐.
느긋하게 걸어가면 좋으니까.
사실 긴장돼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그런 거긴 하지만.
“다 챙겼고.”
오랜만의 경기라, 빠뜨린 게 없는지 몇 번이나 체크 한 뒤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었다.
문을 열자 선선한 아침 공기가 날 반긴다.
어두울 때 일어나서 그런가.
오늘따라 유난히 해가 밝게 느껴졌다.
*
내가 마지막으로 경기를 뛰었던 게 언제였나 되짚어보니, 놀랍게도 작년이었다.
올해도 벌써 8월이 지나가고 있는데 말이다.
정말 오래되긴 했구나.
그도 그럴 게··· 피오렌티나로 오고 난 뒤에는 한 경기도 뛴 적이 없으니, 뭐.
“···후.”
덕분에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라커룸에 앉아 있던 나의 가슴은 과하게 쿵쾅대고 있었다.
사실 꼭 오랜만이어서 떨리는 것만은 아니었다. 한창 경기를 많이 뛰던 시절에도 난 긴장을 꽤 하는 편이었다.
긴장? 정확히 말하면 초조함에 더 가까운 느낌이랄까.
난 항상 경기 날만 되면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렸다.
그게 내 루틴일 정도.
속이 불편할 정도로 긴장을 하는 탓이었다.
해내야 된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었다.
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줘선 안 된다는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엄격했거든.
그게 언제부터였나 생각해 보니, 내가 재능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였다.
그때부터 다들 날 엄격하게 바라봤다.
난 항상 그 엄격한 기준에 맞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고, 그래서 언제나 경기가 부담스러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슴이 두근두근 대는 건 경기가 오랜만이어서도 있지만,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크기 때문인 게 더 크다.
지우: 나 도착!
지우: 약속 지켜야 된다?
지우: 골 넣으면 나부터 찾아!
메시지를 확인하곤 피식 웃으며 한숨을 내쉰다.
그러고 보니 경기 자체도 오랜만인데, 이렇게 누군가가 날 응원하러 와준 건 더 오랜만이다.
뭐 스카우터나 그런 사람들 말고.
내가 잘했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을 가지고 오는 사람 말이다.
이렇게 나를 보러 온 누군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체감이 정말 다르다.
부담감이 한 백 배는 커지는 느낌.
예전엔 이 느낌이 그렇게 싫었는데.
지우: 누나가 보고 있다!
지금은 뭐랄까···
부담감이 드는 건 똑같은데,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고 할까.
그래.
그냥 잘하고 싶다.
···일단 경기에 나가야 잘하든 말든 할 테지만.
“자, 슬슬 나가자.”
“가자, 가자.”
코치님의 신호에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라커룸을 빠져나간다.
나도 핸드폰을 라커에 넣고, 크게 숨을 한 번 뱉은 뒤 라커룸을 나선다.
줄지어 가는 아이들의 뒤를 졸졸 따라간다.
그렇게 복도를 지나 모퉁이 몇 개를 돌면, 차양막이 설치된 터널이 나온다.
그 터널을 지나면···
“가자, 가자!”
“이기자!”
“포르자forza-!”
덜 여문 사내들의 함성과 함께 사방이 확 트이고, 강렬한 햇살과 푸르른 그라운드가 우리를 반긴다.
선발 출전인 아이들은 그 그라운드를 향해 뛰어가고, 나는 그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벤치로 향한다.
관중석 어디선가 지우가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짐짓 어깨를 펴고 여유롭게 걸었다.
이왕이면, 오늘.
저 푸른 그라운드를 밟을 수 있는 기회가 내게도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