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79)
페널티 킥은 키커가 유리한 싸움이다.
그것도 그냥 유리한 게 아니라,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오죽하면 페널티 킥을 놓치는 걸 ‘실축’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넣는 게 당연한 거니까.
그래서, 오히려 키커가 더 부담을 많이 느끼는 게 페널티 킥이기도 하다.
골키퍼야 먹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막으면 대박인 건데.
키커는 넣어야 본전이고 못 넣으면 죄인이 되니까.
내가 페널티 킥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런 이유에서였다.
못 넣으면 개망.
부담 덩어리 그 자체인 걸 내가 좋아할 리가 없다.
물론 연습은 많이 했었다.
훈련 때, 빈 골대에 혼자 킥을 하든 골키퍼를 세워두고 킥을 하든.
따로 시간을 내서 연습을 했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말이다.
하지만 훈련이 잘 되진 않았다.
훈련 땐 아무리 상황을 세팅하고, 이게 훈련이 아니라 실전이다 실전이다 아무리 마인드 컨트롤을 해도···
결국 훈련은 훈련일 뿐이라 잘 되지가 않았다.
내 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훈련 땐 페널티 킥보다 쉬운 게 없는데···
막상 실전에서 페널티 마크에 공을 올려두고, 키퍼와 일 대 일로 마주하고 있으면···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런 생각도 들 지가 않았다.
필드 위에선 항상 생각을 멈추지 않는 나인데도 그랬다.
그 앞에만 서면, 모두가 나만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머리가 하얘질 뿐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축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러니까 순전히 재미로 축구를 할 땐 페널티 킥도 곧잘 찼었다.
물론 그때가 정확히 다 기억나는 건 아니라 왜곡된 걸 수도 있는데, 적어도 무섭다는 느낌이 아니었다는 건 확실하다.
그랬던 내가 처음 무섭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던 건···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엄청 중요한 대회의 준결승전이었다.
그 경기에서 내가 페널티 킥을 찼었다.
후반 끝나기 직전이었고, 내가 넣으면 무승부를 만들어 연장전에 갈 수 있던 스코어였다.
근데 거기서 실축을 했다.
슈우웅. 내가 찬 공이 골대 위를 날아갔었다.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찬 공이 골대 위로 날아가자 상대 팀 아이들이 환호하고, 우리 팀 아이들이 실망스러운 얼굴로 날 바라보던 모습.
가슴이 엄청 두근거렸다.
뭔가 사방에서 날 조여오는 듯한 느낌이 든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꾹 참았었지.
근데 그 참았던 눈물이, 경기 끝나고 나서 엄마의 얼굴을 보니 터졌었다.
그래서 또 엄청 혼났다.
대충 뭐 그런 것 가지고 우냐고 혼났던 것 같다. 나 때문에 경기에서 진 거니까 더 책임감을 가지라고 했던 것도 같고.
그때를 생각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 그때, 누군가 나에게 한마디 위로를 건네줬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나는 그토록 페널티 킥을 무서워하게 되진 않았을 것 같은데.
아마도···
···뭐, 아무튼 그랬다.
그 이후로 페널티 킥을 찰 기회가 있으면 나는 무조건 뒤로 빠졌다.
또 그런 일이 생길까 무서웠으니까.
하지만 신기하게도 지금은 괜찮다.
왜일까.
글쎄.
내가 페널티 킥을 두려워한 가장 큰 이유는, 이걸 못 넣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두렵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넣을 거라 기대하며 날 바라보던 이들의 표정이 실망으로 바뀔 때.
그게 가장 무서웠다.
상대의 반응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날 실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게 가장 무서웠다.
그러니까, 지금.
이게 별로 무섭지 않은 건··· 아마도 내 편인 사람들에 대한 믿음 덕분이 아닐까 싶다.
지우든, 아빠든, 동료들이든.
그들은 내가 이걸 못 넣더라도 내게 위로를 먼저 건네줄 사람들이다.
실망하는 얼굴로 날 바라볼 사람들이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안 무서운 게 아닐까 싶다.
타타탓-!
참 신기한 일이다.
심판의 휘슬이 울리고, 공을 향해 뛰어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는 게.
페널티 킥을 찰 때면 머리가 하얘지던 나였는데 말이다.
뻐어어어어엉-!
왼쪽 구석을 노리고 가볍게 오른발을 휘두른다.
굳이 키퍼를 보면서 때리진 않았다.
그냥 공만 보고 찼다.
페널티 킥이 키커가 유리한 싸움인 이유는, 정확하고 빠르게 차기만 하면 절대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 정확하게만 차면 될 뿐이었다.
슈우우우우웅-
철썩-!!
골망이 흔들리고, 야유로 가득하던 경기장이 조용해진다.
동시에 동료들이 내게 달려든다.
그렇게 무섭던 페널티 킥이었는데···
막상 해보니 별거 아니었다.
*
“우어어어어!”
“하아아아아앗!”
응원하는 팀이 골을 넣는 순간 제정신인 사람은 없다. 특히 이렇게 직접 원정까지 따라올 정도의 팬이거나, 선수와 가까운 사이라면 득점 순간은 사실상 무의식 상태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안아아아아!”
“잘했다! 잘했어! 한 방 더 멕여버려!”
김지우와 이원훈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정 관중석 끄트머리에 앉아 있던 김지우와 이원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공에 주먹을 내지른다.
이지안의 페널티 킥이 볼로냐의 골망을 흔드는 순간이었다.
“멋있는 건 혼자 다 하지이! 그래! 우리 지안이 다해!!!”
김지우가 소리친다.
이성의 끈이 반쯤 나가면서 속마음이 필터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튀어나왔다.
지안이의 경기를 볼 때마다 항상 그랬다.
이럴 때마다 뒤늦게 입을 틀어막은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어차피 주변 사람들 모두 제정신이 아닌 터라 괜찮았다.
지금 이원훈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어디서 이 막돼먹은 놈들이 야유질을 해! 확 그냥 다 그냥, 어!?”
그나마 남아 있는 최소한의 이성이, 옆에 어린 친구가 있으니 욕은 하면 안 된다고 붙잡은 덕에 간신히 필터링이 되긴 했지만.
계단 하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아 있는 볼로냐 팬들에게 소리를 질러대는 이원훈도 제정신이 아닌 건 마찬가지였다.
이 자식들이 어디 남의 집 귀한 아들한테 야유를 해. 우우우는 무슨. 확 다 입을 꿰매버리고 싶었는데, 지금은 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모습을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후우우···”
그나마 좀 진정이 되고, 다시 자리에 앉자 이원훈은 자신의 온몸이 덜덜 떨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말 그대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사실 무서워서 보지 못했다.
지안이가 페널티 킥을 차는 순간을 말이다.
그걸 어떻게 봐. 아무리 강심장인 사람도 아들이 페널티 킥 차는 걸 두 눈 똑바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하물며 자신은 강심장도 아니니, 곁눈질로도 못 보고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기도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주변 관중들의 환호로 성공했다는 걸 알았을 땐 안도의 한숨이 먼저 나왔다.
기쁨의 환호는 그다음이었다.
“진짜··· 대단하지 않니. 내 아들이지만···”
“맞아요. 내 친구지만 진짜···”
이원훈과 김지우가 저 멀리 이지안을 바라본다. 평소엔 그저 챙겨주고 싶은 아들이고, 친구이지만.
지금 이지안을 바라보는 둘의 눈엔 존경심이 섞여 있었다.
보는 사람도 이 정도인데, 당사자인 녀석은 얼마나 부담이 심했을까.
이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기만을 바라며 지켜보는데 얼마나 떨렸겠냐는 말이다.
부담스러운 게 당연하고, 떨리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나약해서 그런 게 아니다. 사람이라면 그렇게 느끼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이원훈은 아들이 그걸 알길 바랄 뿐이었다.
부담을 느끼는 거? 네가 나약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사람이라면 다 그런 거라고.
오히려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우는, 그리고 이겨내는 네가 대단한 거라고.
“멋지다. 지안아.”
“멋있긴 해. 지안이.”
관중석과 필드 사이의 거리는 멀었고, 덕분에 선수들은 작게 보였다.
하지만 이원훈과 김지우에 눈엔 이지안이 아주 커다랗게 보였다.
*
“1대1이다!”
“어째서.”
“페널티 킥은 무효니까! 그걸 내가 찼으면 내가 앞선 거잖아!”
“네가 찼으면 못 넣었을 수도 있지.”
“내가 못 넣을 리가 없잖아!”
경기가 끝났음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로메로 때문에 한숨을 내쉰다.
경기는 3대0으로 승리를 거뒀고, 우리는 8강으로 진출하게 됐다.
내가 2골을 넣었고 로메로가 1골을 넣었다.
근데 내 2골 중 한 골이 PK였으니 1대1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거다. 이 녀석은.
어림도 없는 소리지.
PK가 얼마나 힘든 건데.
“아무튼! 오늘은 라이벌답게 무승부였던 걸로 하자!”
“하자?”
“···해, 해줘! 무승부!”
에휴.
저쪽에서 주장이 애잔한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길래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러자 로메로의 얼굴이 환해져서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왔다.
“와, 또 혼나고 왔어. 감독님 진짜 징하네.”
원정석으로 다 같이 인사를 하러 가는데, 이번엔 뒤늦게 합류한 보나벤투라 선배가 투덜거린다.
아까 하프 타임 때도 엄청 혼났던 선배였다. 경기 끝나자마자 또 불려가서 혼났나 보다.
벤치의 지시도 없었는데 마음대로 내게 PK를 양보한 것 때문이었다.
그것 때문에 감독님이 무서울 정도로 막 화를 내셨다. 이기고 있을 때도 아니고 0대0인데 애한테 그 부담을 떠넘기면 어쩌냐고.
“참나. 좋은 마음으로 양보했더만 욕만 얻어먹고. 너무 하지 않냐?”
“선배가 참으세요.”
“내가 뭐 나쁜 마음으로 그랬겠냐고. 저 대머리를 확··· 아, 아니. 너 말고.”
보나벤투라 선배의 말에 앞서가던 사포나라 선배가 불렀냐는 듯 고개를 돌리길래, 나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이런 걸론 웃는 거 아니다.
웃기지 않다. 웃기지 않다.
“아무튼, 나만큼 우리 막내 챙기는 선배가 어딨냐. 그치? 내가 제일 좋지?”
“그럼요.”
“하하하! 그거면 됐다!”
그러고 보면 나도 많이 뻔뻔해지긴 했다.
막내로 지내다 보니 축구 실력보다 많이 는 게 사회생활인 것 같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
“나는! 나는! 왜 나한테는 양보 안 해줘요!”
“너? 못 넣을 것 같은 애한텐 양보해줄 수가 없지.”
“내가 왜! 나도 천재야! 임대생이라고 차별하지 마! 나 서러워!”
···쟤도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할 텐데.
어린애처럼 천재임을 호소하는 로메로를 보며 혀를 쯧쯧 찬다.
16살이면 철들 때 되지 않았나?
심지어 나보다 생일도 빠르면서.
괜히 내가 부끄럽다.
“Forza-!!”
“Grazie!”
어쨌거나, 원정석 앞에 도달한 우리는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나 역시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저기 어디에 아빠와 지우도 있겠지. 그 둘이 아니었다면 페널티 킥의 부담을 이겨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절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겨낸 게 아니었다.
나한테 믿음이라는 걸 가르쳐준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겨내지 못했을 거다.
내가 잘나서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진심을 다해 감사하다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만요.”
한창 팬들에게 인사를 하다, 허리를 숙이며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던 선배들의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로메로의 옆에 가서 선다.
“잠깐 이리와 봐.”
“뭐, 뭐냐!”
나는 녀석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저기 어디에서 지우가 보고 있을 텐데, 커다란 선배들 사이에 파묻혀 있는 모습만 보여주긴 좀 그래서 그랬다.
가만히 있어 봐. 나도 좀 커 보이게.
“키, 키가 작아지는 기분이다! 누르지 마!”
“가만히 있어 보라니까.”
나는 로메로를 폭 감싸 안은 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로메로가 이럴 땐 또 쓸모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