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 인간 폭탄(1)
나는 벨의 환영 마법을 빌려 모습을 바꿨다.
검은빛으로 물든 머리카락과 살짝 형태가 바뀐 얼굴.
그것만으로도 전체적인 인상이 변해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팔레아스 령에서의 데이브 클락이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도 오랜만이네.’
자존심 때문에라도 벨의 솜씨를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정말 감쪽같은 솜씨이긴 했다.
아마 데이브 클락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마법을 꿰뚫어 보지는 못하겠지.
쓸만한 기회가 드물어서 그렇지, 범용성이 높은 마법이긴 했다.
마족에게도 이 마법이 통한다면 아마 다른 곳에서도 이 마법을 썼겠지.
‘그래도 여기엔 마족이 없겠지.’
하지만 이곳은 연금술사들에게 있어 중요한 거점이다.
드미트리 영지에서 연금술사들을 보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마족을 찾아보긴 힘들 거다.
실제로 데이브 클락의 기억에도 별다른 특이점을 찾지는 못했으니까.
‘다만 걱정인 게 있다면..’
나와 마찬가지로 모습을 바꾼 일행들을 돌아본다.
흑발 흑안의 남자가 된 니콜라스와 인간 행세하는 엘리아.
그리고 이번에도 내 딸의 역할을 맡은 라나.
하나같이 이전의 모습을 연상하기 힘든 모습이었으나 문제는 역시 사람들의 시선이다.
“음.. 문제가 많군.”
“엉? 뭐가? 제대로 변장도 했잖아.”
“글쎄.. 솔직히 변장이 의미가 있나 싶은데..”
조금 새삼스러운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용사라는 족속들은 왜 이렇게 잘생긴 것들이 많은 걸까.
데이브 클락 역시 못생긴 편은 아니었지만 저들 앞에서는 빛이 바래는 느낌이 강하다.
평소 또래 남자애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라나는 물론이고 니콜라스 역시 뭇 여인네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기엔 충분했으니까.
개중에서도 하프 엘프인 엘리아는 단연 압도적이었고.
‘..은밀하게 행동하는 게 가능하긴 한 건가?’
물론 나도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다.
기왕 모습을 바꾸는 거 최대한 평범한 모습을 하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은 진작부터 있었으니까.
‘이놈들의 미적 감각이 지나치게 괴랄하지만 않았어도..’
그러나 많은 부분을 바꿀수록 점점 더 인간의 형상에서 멀어진다고 해야 할까.
분명 사람의 형태를 하고는 있는데 불쾌함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이러다간 다른 의미로 눈에 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사실, 이 경우는 환영 마법 자체의 문제는 아니긴 했다.
아마도 이놈들에게 사람의 얼굴을 그려보라고 하면 그와 비슷한 것들이 나오겠지.
“제발 부탁이니까 눈에 띌만한 행동은 하지 말자.”
나는 그냥 모습을 바꿨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물론, 만약을 위해 경고해 두는 건 잊지 않았지만.
“..너한테 들을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이 심상치가 않다.
기가 찬다는 듯한 눈빛.
니콜라스는 물론이고 엘리아와 라나까지 짜게 식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왜 그렇게 보는 건데?”
“그야 지금까지 일어난 사고는 다 네가 친 거잖아. 솔직히 네가 그런 말 처지냐?”
“..그러고 보니 그러네?”
새삼 나는 내가 남에게 뭐라 할 처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번 조심한다 어쩐다 했지만 결국 다 들통나고 사고를 낸 건 언제나 나였으니까.
“..역할을 다시 한번 확인하자.”
“지금 그거 혹시 얼버무리려는 거야?”
니콜라스의 빈정거림을 모른 척 넘긴다. 솔직히 조금 분했다.
“나와 라나는 부녀 관계. 이름은 에티엔과 잔. 너희는?”
“에휴. 그래. 나는 네 남동생인 거고 우리는 부부인 걸로 하랬지? 이름은 그대로 사용해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을 대비해 두 사람의 이름도 바꾸는 걸 생각해 봤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았다.
솔직히 이 나라에서 니콜라스라는 이름은 흔했으니까.
실제로 몇 번이나 같은 이름을 보기도 했고.
‘사실 우리도 가명을 쓸 생각은 없었지만 나와 라나의 이름은 너무 많이 알려졌으니까.’
원래는 라나를 니콜라스와 엘리아의 자식인 걸로 해두려고 했었다.
두 사람이 부부인 설정이니 그렇게 하는 게 더 개연성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다.
그러나 이 의견은 평소답지 않게 단호하게 나선 라나로 인해 기각되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싫어할 줄은 몰랐는데.. 아직도 엘리아랑 어색한 건가?’
그러고 보니 엘리아의 도발에 넘어간 라나가 엘리아의 머리를 죄다 쥐어 뜯어놓았던가?
어쩌면 사이가 나쁜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도착했군요.”
그렇게 우리는 버들꽃 마을에 도착했다.
묘한 친밀감이 느껴지는 장소. 친숙한 공기가 폐부를 물들인다.
아마 내 안에 깃든 데이브의 기억이 이런 감정을 주는 거겠지.
그러나 여기서 익숙한 듯 행동했다간 괜한 의심을 살 거다.
나는 최대한 외지인을 연기하려 노력하며 뻣뻣해진 걸음을 옮겼다.
‘이제부터가 진짜겠군.’
기념비적인 첫걸음. 나는 혹시라도 내 정체를 들키지 않도록 주의했다.
“..데이브?”
그런데 왜 곧바로 내 이름이 들려오는 걸까.
설마 일행들이 그새를 못 참고 실수한 건가?
아니,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애초에 이건 일행들의 목소리가 아니었으니까.
“너.. 데이브 맞지?”
예상치 못한 사건에 뻣뻣하게 굳어버린 몸.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다.
피어나는 건 기억이다. 아련한 감정에 젖어 있는 누군가의 이름이다.
나는 거칠게 뛰는 심장의 고동을 느꼈다.
‘젠장, 뭐 하자는 거야. 데이브.’
당연하게도 이건 내 의지와는 다른 반응이었다.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억눌렀다.
벅차오르는 가슴. 쉽사리 입을 열기가 힘들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실수할 수는 없다.
나는 표정을 굳히며 단언했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거짓말!”
들려오는 외침에 어쩔 수 없이 돌아선다.
뒤돌아선 시야에 들어오는 사랑스러운 모습. 클로드 슈나이더. 데이브 클락의 약혼녀.
못 본 사이 한결 성숙해진 모습이다.
아버지인 아레스와 마찬가지로 금빛의 머리칼을 가진 그녀.
클로드는 연녹색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젠장.’
감정의 격동을 견뎌내기가 힘들다.
나는 최대한 시선을 내리깔려고 노력했다.
자칫 눈을 마주치기라도 했다간 감정을 들킬 것 같아서다.
“왜 거짓말을 하는 거야? 데이브 맞잖아. 너!”
그러나 저항하는 것도 잠시. 나는 결국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 말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시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나는 그 시선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쿵쿵거리는 심장.
‘알겠으니까 그만해라 데이브.’
힘껏 볼을 씹으며 오러로 심장을 움켜쥔다.
이대로 가다간 나 스스로 있는 사실 없는 사실들을 모조리 다 털어놓을 것만 같아서다.
“클로드. 그 남자는 데이브가 아니란다. 에티엔이라는 용병이지.”
다행히 아레스가 나를 도왔다.
내 앞을 막아서는 아레스. 분명 그로서도 복잡한 기분이겠지.
“아빠..?”
“날 구해준 분들이란다. 괜히 귀찮게 하지 말고 보내드리렴.”
“하, 하지만 저건..”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아레스의 기분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나는 클로드의 걸음이 묶이기가 무섭게 곧바로 라나와 함께 안쪽으로 들어섰다.
데이브 클락에게는 익숙한 장소였기에 길을 찾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침착하자.’
그러나 구태여 낯섦을 연기한다.
용병 에티엔에게 있어 이곳은 더없이 낯설고 어색한 장소여야만 하니까.
“잔. 피곤할 텐데 들어가자꾸나.”
“네, 아버지.”
그런데 어째 라나의 반응이 좀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생각해 보면 라나가 이런 표정을 짓게 된 건 아레스와의 대화에서부터였던 것 같다.
지금까지는 나도 여유가 없어 깨닫지 못했지만, 확실히 평소 같은 반응은 아니었다.
“잔, 무슨 일 있니?”
“..아뇨. 괜찮아요.”
라나는 짧게 대답하고는 그대로 위로 올라갔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듯한 거짓말이었다.
“에휴.”
요즘 들어 부쩍 말수가 줄어든 것도 그렇고 저 나이대의 아이는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내가 이해해야지.
“어쩔 수 없지.”
복잡한 마음을 뒤로한 채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 일단 마약 문제부터 해결하자.
* * *
나는 일행들이 짐을 푸는 틈을 타 밖으로 나섰다.
물론 시스템이 가리키는 곳으로 곧장 쳐들어가려는 건 아니었다.
그냥 마을의 분위기를 살펴볼 작정이었을 뿐이니까.
“에휴.”
그런데 아무래도 실수를 한 것 같다.
아까부터 나를 쫓아오는 기척이 성가시다.
나는 뒤를 바라보며 물었다.
“언제까지 따라오려는 건데?”
“따라간 적 없어요. 그냥 당신이 제 앞에 있는 것뿐이죠.”
클로드 슈나이더.
아레스의 단언에도 불구하고 의심을 버리지 못한 그녀가 기어이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벌써 한 시간째 나를 쫓는 걸음.
대체 이걸 언제까지 두고 봐야만 하는 걸까.
데이브의 약혼녀만 아니었어도 진작 떼놓고 오는 건데.
“난 데이브라는 사람이 아니야.”
“그건 두고 볼 일이죠.”
“두고 보기는.. 애초에 왜 날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데? 내가 그 데이브라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나?”
내 질문에 클로드가 나와 눈을 마주한다.
그 순간 쿵 하고 내려앉는 무언가.
‘이 빌어먹을 놈의 심장.’
나는 오러를 이용해 제멋대로 쿵쾅대는 심장을 제어했다.
엘리아를 비롯한 다른 여자들 앞에서는 이런 적이 없었기에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데이브 너. 순애파였구나?’
그래도 나는 최대한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벽에 등을 기대고 클로드를 향해 말한다.
“먼저 가라. 나는 좀 천천히 갈 테니까.”
“걸었더니 다리가 아파요. 저도 천천히 가려고요.”
“…”
그런데 아무래도 그냥 따돌리는 게 나을 것 같다.
뒤돌아서 속도를 높인다. 그런데 그 순간 시야에 들어온 무언가.
나는 얼마 가지 못하고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헉헉.. 무슨 걸음이 그렇게 빨라요?”
“쉿.”
나를 쫓아오던 클로드의 어깨를 누르며 기척을 죽인다. 수풀 뒤에 몸을 숨긴다.
클로드가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별 방법이 없었다.
부디 이 여자가 입을 다물고 있어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따돌리는 건데. 빌어먹을 데이브. 마음만 약해서는..’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정보를 캐봐야겠다.
나는 마을 외곽에서 서성이는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뭐냐.”
“사람보고 저거라니..”
“설마 누군지 모르는 건가?”
“..마리 아주머니예요. 그런데 저 아주머니가 왜요?”
왜냐고?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사람 겉모습만으로는 모른다더니.. 저렇게 선한 표정으로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나저나 모르는 얼굴이군. 데이브의 기억에 없는 걸 보면 이 마을 사람이 아닌 건가?
“아니면 이 마을에 온 지 얼마 안 된 건가?”
“..그걸 어떻게 아시죠?”
여기서 솔직히 대답하면 또 의심이 깊어지겠지.
나는 적당한 변명거리를 떠올렸다.
“사람들과 그리 친해 보이진 않아서.”
어째 탐정 같은 변명이긴 했지만.
“..그래요? 그런데 진짜 무슨 일인데요?”
“글쎄.. 말해 봤자 못 믿을걸?”
저 여자의 몸에 무수한 사령이 붙어 있다고 말하면 믿으려나?
심지어 하나나 둘이 아니다.
수십, 어쩌면 수백에 이르는 사령들.
‘어지간한 원한으로는 사령이 들러붙지는 않지.’
그 말은 즉, 저 여자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죽인 게 아니라는 뜻이 된다.
모르긴 몰라도 아주 처참하고 고통스럽게 죽인 거겠지.
“어..? 눈이 빨개졌어요.”
“잠을 못 자서 그래.”
클로드의 말을 대충 얼버무리며 여자를 바라본다.
그 순간 심장 부근에서 보이는 익숙한 형체.
그것은 분명 이자벨의 시녀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기계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폭탄이군.. 크기로 보아 반경 수 미터 정도는 가볍게 날아갈 것 같은데.’
암담한 현실에 혀를 찬다.
산책에 나서기가 무섭게 걸어 다니는 폭탄과 만나다니.
설마 진짜로 만악의 근원은 나였던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니콜라스를 내보내는 건데.
‘생각해 보면 저 여자가 유일한 폭탄일 거라는 보장도 없잖아? 아니, 연금술사 놈들이 했던 짓을 생각해 보면 수십 명 정도는 더 있다고 봐야 하는 건가?’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거리가 순식간에 죽음의 땅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저기요 마리 아주머니!”
그러던 중 클로드가 그 폭탄을 향해 뛰쳐나갔다.
차마 말릴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멍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허.”
폭탄의 옆에 딱 달라붙어 버린 클로드.
만약에 폭탄이 터지기라도 했다간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릴 위치다.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대체..”
어째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일이 많아지는 것 같은 건 착각일까?
이제는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을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