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not a hero, he'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 – 멸망에 맞서 싸운다는 것(2)
헬리오스의 손이 쓰러진 이카로스의 등을 쓸어내렸다.
이어지는 것은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다.
“이카로스..”
뜯겨나간 날갯죽지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행히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다시는 하늘을 날 수 없겠지.
당연하게도 경비 대장으로써의 직책을 유지하지도 못할 것이다.
사실상 이카로스의 미래는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셈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일까. 헬리오스의 눈빛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일렁이고 있었다.
“누구냐..누가 너를 이렇게 만든 거냐 이카로스!”
“나다.”
물론 이놈이 슬프건 말건 내 알 바는 아니었다.
나는 곧바로 놈을 향해 다가가 검을 뽑아 들었다.
놈의 날개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느 호루스족과 별다름이 없어 보이는 불꽃의 날개.
그러나 본디 사제의 날개는 번개나 빛의 속성을 품고 있어야만 할 터다.
‘솔리아의 날개도 화염 속성이긴 하지만..그건 아직 성녀로서 각성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이놈과는 상황이 다르지.’
나는 헬리오스에게 사제가 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놈은 그저 남들을 속여가며 왕좌를 차지한 사기꾼에 불과했다.
원래대로였다면, 이 녀석은 사제가 되기는커녕 일말의 권력조차 누리지 못했겠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호루스족의 일에 개입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애초에 이 마을 사람도 아니었고, 뼛속까지 호루스족인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태양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겠지.’
주위를 둘러보면, 현실과 별다름이 없어 보이는 세상이 보였다.
그러나 착각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현실처럼 보여도, 이건 꿈이라는 거다.
아리벨이 고작 7년의 세월을 되돌리기 위해 지불한 대가를 생각해 본다면, 이곳이 현실일 가능성은 지극히 낮았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목적을 달성하고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방법은 명확했다. 저 하늘 위에 떠 있는 검은 구멍.
저 안에는 분명 태양신이나 이 모든 일의 원흉이 있을 테니까.
‘이런 놈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
나는 곧바로 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터엉!
물론, 모든 일이 마음 먹은 것처럼 쉽게 풀린다면 내가 이 고생을 하지 않을 거다.
“감히 경비대 앞에서 사제님께 손을 대려 하다니!”
“공격해라! 폭도가 무기를 들고 있다!”
순식간에 무기를 뽑아 든 경비대가 나를 에워쌌다.
나를 향해 겨눠진 창끝에는 호루스족 특유의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하나같이 익스퍼트에서 시작해 마스터 수준에 오른 강자들.
일개 병사들의 힘이라고 하기엔 과할 정도로 훌륭한 실력이었다.
‘저 이카로스라는 놈의 실력만 보고 우습게 여길 게 아니었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안 그러면..!”
“안 그러면?”
“..널 죽여야 하겠지.”
살벌하게 말한 것치고는 병사들의 눈빛에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말로만 하지 않았을 뿐, 헬리오스 부자에게 불만이 있었던 건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항복하면 결과가 다르다는 것처럼 말하는군.”
“그건 재판의 결과를 보고 정해질 일이다.”
“글쎄..저 작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나는 어느새 나를 노려보기 시작한 헬리오스를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재판이라고?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당장 죽여버려!”
“사제님?”
“지금 내 말이 안 들리나? 그놈을 죽이라니까!”
그래,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건가?
하기야 제깟 놈이 사제는 무슨..
“하, 하지만 사제님. 사형은 재판을 통해서만 결정되는 게..”
“재판 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지금 내 아들이 이 꼴이 되었는데!”
“아, 아무리 그래도..”
“시끄럽다! 어서 명령을 따라!”
그런데 어째 내뱉는 말 하나하나가 전부 주옥같은 건 어째서일까.
나도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느꼈다.
“..명령을 따릅니다.”
가관인 점은 병사들이 저런 터무니없는 명령을 따르려 한다는 점에 있었다.
사제가 신의 권위를 빌리고 있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으면 아직 무언가 숨겨져 있는 것이 있는 걸까.
어쩌면 이 마을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비밀이 여기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너에게는 미안하게 되었군.”
물론, 당장의 문제는 이것이다.
나를 향해 검을 들이미는 경비대원들.
나는 굳은 안색의 남자를 향해 실없이 웃어 보였다.
“신경 쓰지 마. 그리고 하나 충고하는데, 저런 명령을 일일이 따를 필요는 없어.”
“우리도 그러고 싶지만 신의 이름은 절대적이다. 사제의 명령을 어길 수는..”
“그 사제가 가짜라 해도?”
“..증거가 없지 않나. 혼란스러운 시대다. 저런 사제라도 우리의 지도자라는 건 변하지 않아. 사제님이 돌아가시게 된다면, 우리 마을 사람들은 단숨에 노예가 되어버릴 거다.”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이들이라고 해서 사정을 완전히 모르는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진실을 알면서도 가짜 사제를 따라야 할 상황이라니, 도대체 어떤 사정이 숨겨져 있는 걸까.
“뭘 떠들고 있는 거냐!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거냐!”
안타깝게도 마음 편히 대화를 나눌 시간은 없는 모양이다.
이어지는 채근에 가장 선두에 선 남자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래도 저 남자가 지금의 경비대를 이끄는 실질적인 우두머리인 것 같았다.
“..미안하다.”
“그럴 필요 없어.”
나는 새벽의 걸음을 펼쳐 그런 병사들을 단숨에 지나쳤다.
공격을 막을 틈은 조금도 주지 않았다. 여기서 괜한 피를 더 흘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커헉!”
나는 단숨에 달려가 사제의 목을 틀어쥐었다.
“사, 사제님!”
줄곧 경계하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맥이 빠질 정도로 손쉬운 성공이었다.
그런데 사제씩이나 되는 놈이 이렇게 약해도 되는 건가?
“나, 나를 놔라. 태양신께서 너를 가만두실 것 같으냐..!”
“글쎄..적어도 가짜 사제보다는 낫지 않을까?”
“가, 가짜라니 그게 무슨..”
“가짜가 아니라면 증명해 봐.”
나는 놈의 날개 위로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공포에 질려가는 놈의 눈동자.
나는 그런 헬리오스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빛과 번개. 둘 중 무얼 할 수 있지?”
“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버지의 위세를 빌어 축적한 재산. 물려받은 직위. 그것의 어디에 사제의 증거가 있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군. 그러니 증명해 봐라. 남의 이름이 아니라, 너 자신의 힘으로 말이야.”
“너, 넌 대체 누구냐..설마!”
“그걸 이제야 묻는 거야?”
아무래도 이 문답에 의미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조소를 감추지 못한 채 놈의 날개를 움켜쥐었다.
놈의 발버둥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럴 리..그럴 리 없어..다음 사제는 분명 네가 아니라..”
혼란으로 가득한 눈빛이 솔리아를 바라보는 것이 보인다.
아무래도 이카로스가 솔리아를 납치하려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던 모양이다.
적어도 이들 부자만큼은 진짜 성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는 거겠지.
뻔하다 못해 질릴 것 같은 이야기였다.
“크아아악!”
나는 그대로 헬리오스의 날개를 찢어 허공에 흩뿌렸다.
그와 동시에 놈의 몸이 바닥을 나뒹군다. 경비대는 아연한 얼굴로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이제 너희에게 묻고 싶은데.”
나는 그런 병사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신의 천벌이라는 건 대체 언제쯤 내려오는 거지?”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 *
내가 벌인 일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하기야 일반적인 호루스족에게 그런 짓을 했어도 난리가 날 판국에 사제와 그 아들에게 이런 짓을 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경비대원들은 곧바로 나를 포박했다.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여기서 싸운다고 해서 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런 건 의미가 없었다.
애초에 내가 노리는 건 애꿎은 경비대원의 목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본디 사냥에는 인내심이 필요한 법이다.
“감히 부랑자 따위가 이런 짓을 벌이다니..!”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얼마쯤 기다리고 있으려니 내가 처리하고 싶었던 놈들이 알아서 모습을 드러내 주었다.
내가 순순히 붙잡히지 않았다면 계속 몸을 숨긴 채 기회를 엿봤을 놈들이었다.
“사형이다! 재판을 할 것도 없어! 사형을 내려라!”
이른바 원로회라 불리는 마을의 권력 기구.
듣자 하니 이 마을에서는 사제 다음가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는 것 같다.
물론, 그 실체는 사제에게 빌붙어 꼬리를 흔드는 애완견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너희가 전부인가?”
“뭐라고?”
그래봤자 겨우 200명 정도가 모여 있는 마을에서 얼마나 큰 권력을 누리겠냐 싶겠냐마는.
늘 그렇듯 지성체라는 족속들은 세 명만 모여도 정치질이나 하기에 바쁜 것 같다.
아까부터 화를 내기에 바쁜 원로들 역시, 내심은 사제의 실각에 누구보다 기쁨을 느끼고 있을 테지.
“여기 모인 원로가 전부냐고 물었다.”
저렇게 길길이 화를 내는 것도 남보다 많은 권력을 움켜쥐기 위한 수작질에 불과하겠지.
재판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자신들의 권위를 드러내려 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상대가 아니었다면 그런 수작질이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을 거다.
“가, 감히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군.”
그러나 저들이 그토록 탐하는 권력 역시도 결국엔 일종의 힘에 불과했다.
보다 큰 힘 앞에서는 처참히 무너져 버릴 모래성 같은 존재라는 거다.
나는 그런 원로들의 반응을 보며 머릿속으로 저울을 움직였다.
여기서는 과연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걸까.
이들을 데리고 가야 할까? 그렇지 않으면 버려야 할까?
“구, 구속이 풀렸어?”
나는 날 묶고 있던 구속을 풀어헤쳤다.
“적당한 사람이 있으면 쓰려고 했는데..아무리 생각해도 너희는 아닌 것 같아.”
“겨, 경비병! 경비병은 지금 뭘 하는 거냐!”
곧바로 펼쳐지는 것은 새벽의 걸음이다.
경비병들이 황급히 나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그보다는 내 공격이 더 빨랐다.
“잘 가라.”
나는 그대로 원로들의 날개를 찢어버렸다.
“도, 도대체 이게..”
뒤돌아서면, 경비대원들이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뭣들 하는 거냐! 당장 저 남자를 붙잡아!”
이어지는 것은 새롭게 경비대장이 된 남자, 단테의 명령이었다.
잠시 멈춰 있던 경비대원들이 이내 이를 악물며 나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제법 매서운 기세가 느껴진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 모든 행동은 내 앞에서 의미를 잃고 있었다.
고작 저 정도 수준의 적에게 쓰러지기엔 내가 겪어온 시간은 너무도 길었던 것이다.
“대체 어떻게 부랑자가 이런 힘을..”
전투는 싱거울 정도로 빠르게 끝났다.
사람들은 도망쳤고, 경비대 전원은 나의 손에 제압된 채 바닥을 뒹굴었다.
단테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적대감으로 가득한 시선이 느껴진다.
당장에라도 나를 죽이고 싶은 것만 같은 눈빛.
나는 그런 단테를 향해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너희에게 선택지를 주마. 나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계속 싸울 것인지.”
줄곧 내 앞을 막아섰던 남자지만 사실, 나는 그가 밉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얼굴이 내가 아는 사람을 닮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당신은 우리의 법을 무시했습니다.”
그래, 저런 고지식함까지도 말이다.
“틀렸어. 먼저 법을 어긴 건 내가 아니라 저들이야.”
“..설령 그렇다고 해도, 당신이 사제가 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겠지. 그런데 내가 언제 사제가 되겠다고 했나?”
“..네?”
단테의 얼굴에 의혹이 서렸다.
“나와 함께 온 소녀. 사제가 될 아이는 바로 그 아이다. 정확히는 성녀라고 해야겠지만.”
“..진심으로 하는 소리입니까? 솔리아는 아직 어립니다.”
“그래, 그러니 클 때까지 보호해야겠지.”
“애초에 왜 솔리아인 겁니까? 그냥 솔직하게 말씀하시죠. 이 마을을 손에 넣고 싶다고!”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솔리아를 고른 건 내가 아니야.”
“마치 당신이 신의 의지를 안다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신의 의지 같은 건 몰라. 그냥 미래를 조금 알고 있을 뿐이지.”
“..미래..라고요?”
내 대답을 들은 단테의 얼굴에 묘한 빛이 스쳤다.
그러고 보니 태양신의 사도에게는 예언의 능력이 깃들던가?
어쩌면 이상한 부분에서 오해를 산 건지도 모르겠다.
“당신, 이름이 뭡니까?”
그런데 이름이라..? 여기서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걸까.
지금의 나는 데이브 클락도, 하물며 벨제뷔트도 아닌데.
“..아르카나. 아르카나라고 불러.”
갑자기 왜 그런 이름이 떠오른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방법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아르카나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