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the fact that a new actor i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58)
158막, 이르게 피는 꽃 (6)
158막, 이르게 피는 꽃 (6)
솔직히.
꼭 그렇게 이신우와 같은 작품을 찍고 싶었던 건 아니다.
“정말로?”
“···아 진짜, 오빠!”
최면이라도 걸 듯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하던 한소연.
이제는 서먹했던 새 매니저와의 관계도 적응해버린 그녀는 눈을 치켜뜨며 매니저를 노려보았다.
당장 불호령이 떨어지기라도 할 것 같은 모습.
덕분에 그녀의 매니저도 허겁지겁 둘러댔다.
“아, 아니. 그런 것치곤 너무 저기압 같길래.”
“그야 나도 배우니까 당연한 거지.”
그리 말하며 손에 든 대본을 흘겨본 한소연이 다시 시선을 치켜올렸다.
단지 배우로서.
좋은 작품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까.
“그리고 솔직히 오빠가 생각해도 억울해할 만하지 않아?”
“으, 으응?”
“내 연기, 오빠가 보기에도 밋밋했어?”
“설마, 너 그날 아침부터 완전 날아다녔는데.”
오디션 날.
완벽한 컨디션의 한소연이 펼친 연기는 과연 수준급이라 자부할 수 있었다.
애당초 네임밸류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권예은이 눈에 띄게 발전해온 연기력을 보여주는 게 아닌 한 가장 독보적인 지원자.
근데 아예 2차 오디션이라니?
심지어 웬 신인까지 끼어서 셋이?
“하아··· 내가 진짜 꼭 그렇게 신우씨랑 같이 뭘 찍고 싶은 게 아니라.”
“소연아.”
“응?”
이어지는 넋두리에 결국 고개를 가로저은 매니저는 어떻게든 참고 있던 말을 꺼냈다.
“그렇게 자꾸 말할수록 더 수상한 거 알아?”
“···.”
자기 앞이니 망정이지.
어디 가서 저렇게 티내고 다니면 상당히 골치 아파질 테니까.
“그런가?”
“그렇지.”
“···.”
이윽고 그제야 입을 꾹 다문 한소연이 보고 있던 대본으로 시선을 옮겼다.
‘드디어 조용해졌네, 휴우······.’
스케줄 소화를 위해 방송국으로 이동 중인 차 안.
한시름 놓게 된 매니저는 내면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 평화는 오래갈 수 없었다.
지이이잉.
갑작스레 뒤편에서 느껴지는 진동.
“응? 선배님이 왜···.”
그리 중얼거린 한소연은 얼마 안 가 인사하며 누군가의 전화를 받았다.
그 대상은 박씨 성을 지닌 어느 대선배인 것 같았고.
“네, 네네. 어? 어떻게 아셨어요?”
무언가 이쪽의 상황을 어디서 주워들은 그녀가 안부차 전화를 걸어온 모양이었다.
대충 그렇게만 생각했던 매니저는 백미러로 지켜보았다.
“에? 잠깐만, 지금 뭐라고···.”
서서히.
검게 변질되어가는 한소연의 얼굴을.
“아. 그걸···.”
일순간 핸들을 쥔 손아귀로 쫙 퍼지는 전율과 함께 매니저는 직감할 수 있었다.
“이신우씨가 제안했다구요. 직접.”
오늘.
아무래도 공친 것 같다고.
벌써부터 컨디션. 아니, 기분이 망가진 제 배우를 슬쩍 흘겨보면서.
* * *
이미 1층 로비부터 세련된 인테리어로 도배된 고층 건물.
그 광경에 옴짝달싹 못하고 굳어버린 홍예린은 멍하니 섰다.
수차례 확인해보고 또 확인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감이 들질 않아서.
아니, 오히려 실물을 보니 더더욱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와 별개로 저편에서 걸어나오는 인물은 진짜로 그날 오디션장에서 마주쳤던 그였다.
“어서오세요! 오시느라 고생하셨네요.”
이신우.
그날과 전혀 다른 인상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그는 다소 이질적이었다.
덕분에 홍예린의 태도는 더더욱 쭈뼛쭈뼛해졌지만.
“아, 응 네.”
“이렇게 흔쾌히 찾아와주셔서 다행이네요.”
정말 그 자리에 무표정하게 있었던 그 사람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다른 모습.
“그럼 일단 올라가실까요?”
“네, 넷.”
괜히 천적을 만난 고슴도치처럼 경계심을 바짝 세운 홍예린은 천천히 그 뒤를 뒤따랐다.
일단 그가 자신을 이렇게 불러준 이유는 호의에서였으니까.
대체 그 호의가 왜 생긴 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이런 데에 있는 연습실을 빌려주겠다고?’
그것도 아무런 조건도 없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마자 홍예린의 흐릿하던 정신이 불쑥 돌아왔다.
‘정신차려 홍예린.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이만한 곳을 그냥 빌려줄 리가 없잖아?’
정확히는 빌려주기보다는 쓰게 해준다는 의미였지만 이미 그런 건 예린에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정적은 그녀의 머릿속을 쉼없이 뛰게 만들었다.
그 결론은 마지막에 가서야 이신우의 의도를 파악해보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나한테 뭘 바라는 거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이신우.
그런 이신우가 이제 막 신인 딱지를 붙인 자신에게 바라는 거라면······.
“긴장하셨나봐요?”
“으에, 네?”
순간 옹알이처럼 중얼거린 홍예린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다행히 이신우 입가에 웃음기는 진해지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어쩌면 속으로 웃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걱정마세요.”
순간 그 생각을 들킨 줄 안 홍예린이 다시 한 번 움찔거리길 이신우는 덧붙였다.
“특별히 뭘 요구하거나 부탁하려는 건 아닙니다.”
정말 조그마한 악의도 없는 호의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단지 홍예린씨가 원한다면 도움을 좀 드리고 싶어서요.”
이신우가 제안한 사항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자신의 소속사인 의 연습실을 사용하게 해주겠다.
그리고 원한다면 연기 트레이닝을 도와줄 선생님을 붙여주겠다는 두 번째 제안까지.
둘 중 어느 것 하나도 그녀에겐 달콤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비록 일주일이라곤 해도 소속사도 없이 홀로 활동해온 그녀로선 가져볼 기회가 없던 일이니까.
단순히 연기 학원에서 가르쳐주는 레벨도 아니겠지.
JN이라는 업계 내에서도 거대한 웅덩이에서 오래도록 헤엄쳐온 유성태가 직접 구인해온 트레이너라면.
“···.”
침이 꿀꺽 넘어감에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세상에 정말로 이유없는 선행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대충 그런 이유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던 홍예린이었지만······.
“여기에요.”
“여기가, 컵.”
숨이 턱 막힌 홍예린은 바라보았다.
대본은 커녕 율동을 연습해도 넉넉할 만한 넓은 공간을.
한쪽 벽면에 마련된 거대한 거울과 저 한켠에 있는 소품들.
간단한 컨셉 의상들에 이어 저 멀리 뒤편에는 무슨 탕비실처럼 구분해놓은 공간마저 있었다.
간식류는 물론 밑쪽에 놓인 미니냉장고에는 마실 것이 잔뜩 들어있을 것 같은 모양.
학원에서 제공해주던 조악한 연습실만 이용해본 그녀로서는 신세계에 가까운 환경이었다.
“이, 이신우 배우님!”
“네?”
덕분에 웅크리고 있던 고슴도치는 감격이라도 하는 얼굴로 가시를 눕혔다.
“정말 진짜로 감사합니다!”
“···아, 결심하신 건가요?”
“네!”
결국 좋은 게 좋은 것일 테니 나중에 생각해보자고.
뭐든 자신에게 득이 되면 득이 됐지. 일단 손해가 될 것 같지는 않으니까.
이신우.
매정해보이기만 했던 눈앞에 이 스타배우의 호의가.
* * *
국민 첫사랑.
훗날 그러한 타이틀까지 수여받았던 홍예린은 장단이 뚜렷한 여배우였다.
기본적으로 특유의 러블리한 색채가 눈에 띄는 여배우이자 그 때문인지 연기의 폭이 넓지 않았던 여배우.
허나 그런 홍예린이 ‘국민 첫사랑’ 같이 거창한 영역에 발을 담글 수 있었던 건 그만큼 파괴적인 장점을 지닌 탓이었다.
‘아마 웹드라마까지만 해도 본인도 몰랐지.’
이후로도 두 개의 작품동안 미스캐스팅을 면치 못한 그녀는 뒤늦게 자신의 진가를 깨닫게 된다.
아니, 정확히는 진가를 알아줄 만한 작품을 만나게 된다.
선녀는 날개를 원치 않는다.
다소 판타지적인 작품은 그 별로 빛을 보지 못했던 어느 여배우를 뽑은 파격 캐스팅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건 신의 한 수처럼 흥행의 결정적인 열쇠가 되었고.
『‘로맨틱 여신 그 자체’ 청순가련의 대명사를 보여준 홍예린···』
대충 비슷한 헤드라인을 읽어봤던 것 같은데.
그런 그녀의 프로필을 처음 본 순간부터 뇌리로는 한 가지 고민이 맴돌았다.
과연 여기서 그녀를 뽑는 게 정말 맞을지.
오디션 전부터 맴돌던 고민은 그녀의 무대를 보며 더 깊어졌다.
‘···생각한 것보다도 더 무난한 연기.’
원래라면 그저 덜 자란 꽃봉오리에 지나지 않았을 그녀를.
아직 무르익지 않은 열매를 강제로 일찍이 따버려도 되는 걸까?
혹여나 계산과 정반대로 일이 돌아간다면 그땐 돌이킬 수 없어질 테니까.
‘물론 차작가님의 이번 작품도 로맨스코미디를 메인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길고 긴 고민이었다.
그러나 역시 미련을 버릴 순 없었다.
“저기. 이 분 연기도 궁금한데요 저는.“
로맨스코미디 작품에 국민첫사랑 타이틀을 지녔던 여배우를 버리자니.
‘차라리 걸어보는 게 낫겠지.’
그녀의 가능성에.
일말의 기대에 기댄 채로 계획한 일은 다행히 착실히도 진행되었다.
비록 설명해주기 난감한 여러 의문들이 부작용처럼 뒤따랐지만.
지금도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김강현처럼.
“근데 신우야. 진짜 무슨 생각인 거야?”
“네?”
“나 참, 홍예린씨말이야.”
소속사 복도를 내딛으며 진지하게 묻는 김강현.
평소라면 팥으로 메주 쑨다고 해도 내 말에 동조할 그이지만 이번만큼은 그도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뭐 우리한테 손해일 건 없지만, 다른 지원자들도 많았는데 굳이 홍예린씨만 콕 집어 데려왔잖아.”
조정훈을 위해 따로 모셔왔던 연기 트레이너와 그 외 보조자까지.
잘 마련된 연습실에서 아낌없이 듬뿍 투자를 받고있는 홍예린은 누가 봐도 복에 겨워보일 터였다.
그것도 자기 분수에 맞지 않게 상당히.
“이제 오디션까지 한 나흘 남았죠 형?”
“응? 으응.”
때문에 나도 처음엔 확신이 들지 않아 최대한 말을 아꼈다.
딱 어제까지만 해도 말이지.
“기다려봐요.”
“···.”
하지만 어제 직접 나서서 반나절 동안 상대역을 맞춰준 지금은 달랐다.
“제가 은근 안목이 있거든요. 형도 못 믿겠어요?”
“···하아.”
피식 웃으면서 농담처럼 건네자 김강현도 따라서 억지미소를 지었다.
“나야 신우 너라면 언제나 믿지만.”
아마 그건 내 연기력을 믿는 거지.
내가 택한 배우의 연기력을 믿는 게 아닐 테니까.
“슬슬 다 왔네. 이따 봐요 형.”
“후우, 그래.”
마침내 도착한 연습실 안쪽에서는 요 근래 매일같이 출근중인 홍예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 오셨어요?”
“어때요 좀 나아진 거 같아요?”
“네! 확실히 어제 직접 맞춰주시니까······!”
겨우 하루.
「제가 상대역으로 대본 좀 같이 맞춰드릴까요?」
「······정말 그래주실 수 있어요?」
며칠 간 연기 트레이닝을 받았던 홍예린은 나와 맞춘 딱 하루의 합으로 놀랍도록 발전했다.
물론 아직은 한소연이나 권예은에게 미치지 못할 수준이겠지만.
‘다음 주까지.’
이대로만 되어도 볼 수 있을 터다.
“그럼 오늘도 한 번 가볼까요?”
“좋아요!”
싱글벙글 해맑게 웃고 있는 눈앞에 이 꽃이 이르게 피어나는 것을.
원래의 색채처럼 아름답게.
독보적인 색채를 자랑하며 피어나는 것을.
“···, ······!”
“······.”
밤이 꼬박 다가올 만큼 긴 시간 동안 연습실은 쉴 틈 없었다.
나로서도 아직 상대역을 맞춰볼 일이 없었으니 즐거운 경험이었다.
약간 리딩을 맞춰보는 것 같기도 했고.
그 덕에 더 애를 쓰는 내 연기를 엉거주춤 따라오는 홍예린까지.
“···헉, 후우.”
“고, 고생하셨어요! 선배, 아니 배우님!”
열정적으로 흘러내리는 땀방울.
수증기가 자욱한 연습실.
그 마지막이 다가오기 전 나는 잠깐이나마 볼 수 있었다.
의 여주인공인 그녀.
신혜린을.
아니.
서서히 피어나고 있는 어느 꽃잎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