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the fact that a new actor i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95)
95막, 첫 해외여행 (2)
95막, 첫 해외여행 (2)
오랜만에 연락해온 극단 식구.
그 중에서도 후배 송진혁은 유독 시끄럽게 말을 보챘다.
– 와··· 하와이요? 저 진짜 제일 가보고 싶은 데가 하와인데···
진세연의 문자메세지와 유하준의 연락도 있긴 했지만 참 두드러지는 반응을 보이는 송진혁.
– 형 갔다오면 오랜만에 술 한 잔 해요 꼭! 제가 살 테니까!
“너가?”
– 와, 지금 저 무시해요?
요즈음 극단도 잘나가고 자기도 꽤 잘나간다고.
여태 신세진 게 얼만데 이번엔 자기가 사겠다며 수화기 너머로 어깨를 으쓱거리는 송진혁이었다.
당장 통장에 안 쓰고 모아둔 돈만 해도 얼만데 저런 귀여운 소리를 다 하나 싶었지만······.
대충 알았다며 전화를 끊자, 슬슬 현실감이 들었다.
어쩐지 숨 가쁘게 보낸 지난주가 스치면서.
‘어째··· 여행 다녀와서 할 일이 점점 늘어나는데.’
따로 여행 이야기도 듣고 놀자던 남유민과 극단 세 멤버에.
거기다 경쟁하듯이 갑작스레 연락해온 차지윤과 박하은 두 작가까지.
“···풋, 오히려 좋은 건가.”
축하받을 일이 반이고 좋은 기회가 반이니 이런 황금비율이 따로 없긴 하지.
더불어 JN 엔터테인먼트의 유성태 팀장도 얼마 안 가 보아야했다.
그쪽도 새로운 계약 조건을 준비했다면서 성화였으니까.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추가 옵션을 줄줄이 달아둔 계약서를 가져오겠다며.
“······슬슬 소속사도 구해야겠지.”
이미 신인치고 몸값은 오를 대로 올라있었다.
한해를 완전히 사이좋게 집어삼킨 두 드라마에 연달아 출연하기도 했고.
마케팅이나 여러 효과를 기대하기 위해서 유성태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보는 것도 좋을 터.
“여행만 다녀오면···.”
조금은 설레이기도 하는 마음을 다스리며 남은 며칠을 기다렸다.
나의 첫 해외여행이자 더 커다란 무대를 앞두고 맞이하는 전조를.
* * *
보람차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들뜬 전 스태프들.
원래 드라마의 성공은 작가와 배우들의 성공으로 귀결되기 마련.
아무리 잘 쳐봤자 편성을 짜고 담당한 소수의 관계자들의 기쁨일 뿐이었다.
허나 홍문석 국장은 보란 듯이 그 격차를 뒤집어주었다.
평소라면 쉽사리 꿈도 못 꿀 장기 휴가.
5박 7일이라는 일주일 가량의 공짜 휴양을 얻은 스태프들은 못 온 사람을 바보 취급하고 놀릴 만큼 하나같이 신나있었다.
마침내 리조트에 도착하였을 즈음에는 달아오른 몸이 근질거릴 정도로.
“국장님 너무 무리하신 거 아냐?”
“그러게, 우리 인원이 몇 명인데···.”
물론 지극한 상사의 지갑 사정을 걱정하는 이도 있긴 했으나 소수에 불과했다.
일단 그 비싼 값을 지불하고 왔으면 최대한 뽕을 뽑아야 예의가 아니겠나?
지금 보충한 열정은 다음 기획 때 실컷 불태우면 될 터.
그렇게 어수선한 인원이 마침내 리조트 로비에 막 다다랐을 즈음.
“우리 막내는 이번이 첫 해외여행이랬지?”
문득 한 신인배우의 뒤로 인기척이 다가왔다. 익숙한 대선배의 인기척이.
“아··· 네.”
대답과 함께 갸우뚱 기울어졌다.
“근데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보이지 난?”
“···.”
“단순히 피곤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실제로 항공기를 타고온 탓에 피로감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허나 그로인해 멍하니 있던 건 아니었다.
“아뇨, 그냥··· 한국에 두고 온 일들이 좀 여러 개 생각나서.”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당장 다음 작품에 대한 고민과 소속사에 대한 고민.
중첩된 여러 생각들이 정처없이 뇌리를 떠다녔다.
해외여행까지 나와서 이런다는 게 웃기기도 하지만······.
사실 휴식이란 내게 참 거리가 먼 단어였다.
굳이 해외여행으로 좁히지 않더라도.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목숨을 바쳐도 모자랐던 게 나의 원래 일상이었으니까.
가족도.
친구도.
그 흔한 취미 하나조차도 없이.
가진 거라곤 열정밖에 없던 과거의 나는 한가하게 휴식을 즐기는 법도 낯설게만 느껴졌다.
당장 설레는 마음으로 찾은 이곳에서도 돌아간 뒤 맞을 일이 자꾸만 밟힐 정도로.
“신우야.”
“예 선배님.”
그런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린 대선배가 별안간 뜻 모를 질문을 건넸다.
“지금까지 네가 얼마나 걸렸지?”
“네? 뭐가 얼마나 걸렸다는···.”
“독립영화부터 해서 독종에 이번 연속극까지 말야.”
그제야 생각이 정지되었다.
세 작품을 연달아 소화해온 기간이 머릿속에 스치면서.
그 가운데엔 독립영화 시상식에 다녀오기도, 암울한 미래를 그리던 걸그룹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도와주기도 했던 기억도 있었다.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일 텐데.
막힌 말문을 뒤로 하고 피식 웃은 대선배는 나직이 선글라스를 벗었다.
“신우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딱 느꼈거든? 재능도 재능이지만··· 얘는 눈빛이 다르다고.”
그리고 짐짓 대견스러운 눈길로 제 후배를 쳐다봤다.
“무조건 대중들 앞에 올라설 거다. 그럴 운명이다라고.”
얼핏 들으면 낯간지러울 칭찬에는 조금의 가식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근데···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선다고 한들. 아무리 먼 길 끝에 도착한다고 한들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나?”
이미 정상에 올라있는 이로서 건네는 진심어린 충고였지.
“네 고민엔 우리 조카 몫도 있을 테니 내가 말하기엔 민망하지만··· 숨 쉴 틈도 없이 달려왔잖아?”
고이 접어 주머니에 걸어둔 선글라스가 흔들거리길 대선배는 호텔 로비를 두리번거렸다.
“오면서 해외 관광객 많이 봤지? 지금 저기도 있고.”
얼추 먼저 방을 확인 중인 스태프들말고도 로비를 채운 외국인 관광객도 적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축에 속했다.
흔히 휴양지로 손꼽히는 하와이는 자국민도 얼마든지 휴식을 위해 택하는 장소였으니까.
“저 중에는 해외 디렉터도 있고 유명인사들도 있어. 아니면 저 밖에 해변에 누워있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찰나, 박시향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걸렸다.
“······그 사람들 중에 여기까지 와서 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거의 없지. 다들 숨 좀 돌리면서 쉬려고나 오니까.”
지극히 당연한 얘기였다.
다만 그걸 깨닫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걸려버렸지만.
“그러니까 후배님도 여유있게 쉬다 가.”
“···여유요.”
“그래, 급할 거 없잖니?”
뒤늦게 당연한 사실을 상기시킨 대선배는 어느새 품에서 선글라스 하나를 더 꺼냈다.
“가끔씩은 아무 걱정없이 다 내려놓고 쉬어가도 돼.”
그리고 나의 눈앞을 검은 렌즈로 가렸다.
“너무 앞만 보고 달리면, 누구든 다 지치기 마련이니까.”
“···.”
등을 툭 밀고 자신의 스위트룸을 확인하러 먼저 움직이는 대선배가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이럴 때 머리 식히고 가야지. 언제 식히겠니?”
검게 칠해진 세상은 더없이 고요했다.
어두운 그늘이 진 게 아니라 마치 세상에 모든 불이 꺼져버린 밤처럼.
한적하게.
그리고 여유롭게.
그 밤을 걸어봐야 할 것 같았다.
이번 여행에선.
* * *
한소연.
그녀에게 하와이는 처음 와보는 여행지였다.
끽해야 촬영차 떠났던 유럽과 가까운 일본이나 가봤지.
아직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젊은 여배우가 되지 못한 그녀로선.
하와이의 해변가는 낯설고 생소한 장소에 불과했다.
“뭐야, 소연이 너도 혼자 다녀보려고?”
“네? 누가 또 있어요?”
한편 주태훈과의 연을 청산시켜준 대선배의 말에 고개가 갸웃 돌아갔다.
대체로 여행온 배우들은 주연과 비중있는 조연을 맡은 배우들이었다.
그 와중에도 여러 여건상 빠진 인원이 좀 됐으니 남은 거라곤 함께 다니기 딱 좋은 정도.
허나 이럴 땐 홀로 나다니는 걸 즐기는 한소연으로서는 적당히 빠지려고 했는데.
누가 또 있다고?
의문을 풀어줄 새도 없이 빙그레 웃은 대선배는 특별한 일 있으면 연락하라며 떠날 뿐이었다.
‘···휴우.’
리조트에 혼자 남은 한소연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맑게 갠 하늘에는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어지럽던 그녀의 속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잘 된 거지, 그 자식한테 그 이상으로 약점으로 잡힐 것도 없으니까···.’
처음에만 해도 이신우에게 훼방을 놓을 생각으로 드라마에 합류했던 그녀였다.
주태훈의 협박과 성화에 못 이겨.
물론 변명해봤자 불순한 의도를 지녔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박시향은 오히려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보였다.
이 기회에 질 나쁜 관계는 청산해버리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굳이 꼭 마음을 밀어내면서까지 해야겠느냐고.
‘···오히려 후련한 것 같기도.’
얼떨결에 합류했던 촬영이지만 그 신인배우와 상대역으로 합을 맞추는 건 솔직히 즐거웠다.
불편할 텐데도 구태여 먼저 다가왔던 이신우였고 열정과 재능은 그녀가 보기에도 매력적이었으니까.
남녀를 떠나서 같은 배우 대 배우로서도.
“어?”
그때였다.
리조트 앞에 해변가 방향으로 향하던 그녀의 눈에 딱 뜨인 건.
방금 전 떠올리던 얼굴이.
“···여기서 뭐해요?”
하필 벤치에 앉아있던 이신우와 딱 마주친 그녀가 일시에 멈춰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몸을 기댔다.
어쩐지 앉아있는 반대편이 참 경치 좋아보여서.
“그냥 첫 날부터 특별히 어디 가기도 좀 그렇고··· 주변부터 구경 중이었어요. 조금만 걸어가면 해변가니까.”
리조트 바로 앞에 해변가에 피서객이 이미 한참 머무르고 있었다.
“그쪽은요?”
자신에게 그리 묻는 이신우를 보며 한소연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저도 똑같아요.”
“하긴, 같은 방향이니까.”
사실 박시향과는 오히려 편해졌지만 이신우와는 여전히 서먹한 그녀였다.
아무래도 처음 합류했던 의도가 의도다보니.
물론 반대편에선 붙임성 있게 말을 건넸지만.
“생각보다 선선하지 않아요? 막 더울 줄 알았는데.”
“···더위 잘 안 타나봐요?”
“더워요?”
한소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뒷머리를 긁적이는 이신우.
한동안 주변 여행객의 잡담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가운데 덜컥 이신우는 폭탄발언과 같은 말을 던졌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박시향 선배님한테 들었어요.”
“···네?”
순간 심장이 덜컹거렸다.
설마했으나 그 설마는 진짜였다.
“···뭐를.”
“주태훈 이야기요.”
피식 미소짓는 이신우의 얼굴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가졌던 불순한 의도를.
“그걸 마, 말해주셨다구요?”
“제가 당사자니까요.”
문득 내리쬐던 태양이 더 뜨겁게 느껴졌다.
숨이 턱 하고 막히면서 당장 이 벤치를 달아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걸 어떻게 당사자한테 말할 수 있는 건지.
대놓고 불편해지라고 비수를 던진 건지.
자업자득이긴 하나 선배배우 박시향의 의도가 궁금해지려던 참이었다.
“고마워요.”
“···뭐라구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오히려 그녀를 더 당황스럽게 만드는 말을 이신우가 건넨 건.
“무슨 말이에요 그게···?”
귀를 의심해보았다.
주태훈에 대한 이야기가 혹시 와전된 건가 싶어서.
허나 아니었다.
“왜요?
“들었··· 다면서요.”
“네, 주태훈이 한소연씨더러 시켰다고.”
어쩐지.
“근데 왜··· 고맙다는 말을···.”
뚝뚝 끊기는 마디마디를 억지로 이어붙였다.
그녀의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가지 않는 대화였으니까.
그 순간 이신우는 명쾌하게 웃어보였다. 한가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나는 이신우씨 망치려고 했···.”
“안 했잖아요?”
턱.
말문이 막혔다.
한편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가는 이신우.
“제가 기억하는 한소연씨는 연기 잘 맞춰준 좋은 파트너였는데.”
“···사람이 어떻게.”
그 말 한 마디에 정신이 온통 멍해진 한소연이 빤히 바라봤다.
문득 이신우는 첫 만남 때.
아니, 두 번째 만남 때 건넸던 말을 상기시켜주었지만.
“말했잖아요. 껄끄러운 감정 전혀 없다고.”
“···그게.”
멍한 눈길에 어쩐지 습기가 조금 찼다.
딱히 감동받았다고 느끼는 건 아니었으나 모르겠다.
그냥 눈시울이 아주 조금.
옅은 물기를 머금었을 뿐이었다.
티나지 않도록 약하게.
“···고작 그게 다에요, 할말이?”
“네 다에요.”
“하···.”
반대로 싱그럽게 웃어보인 이신우는 해변가 쪽을 응시하면서 일어섰다.
주머니에는 접힌 선글라스가 보였다.
“슬슬 햇빛은 다 쐰 거 같은데, 먼저 가볼게요?”
할 얘기는 이만큼이면 다 했다는 양.
더 이상 마음에 짐처럼 쌓아둘 것 없다는 것처럼.
“잠깐만요.”
덥석.
그녀가 이신우의 팔목을 잡은 건 그때였다.
“···네?”
“영어 잘해요?”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 이신우가 답하지 못하고 있을 즈음, 한소연의 입에서 유려한 영어솜씨가 튀어나왔다.
짧은 영어 실력만 가진 이신우로선 얼이 빠질 만큼 유려한 솜씨가.
“······유학파에요?”
“유학은 아니고, 따로 틈틈이 공부했거든요.”
그리 말하며 입꼬리를 살랑거리는 한소연.
방금 전 어이없다는 듯 이신우를 바라보던 시선에는 이제 조금 다른 감정이 매달려있었다.
“같이 구경 가요. 어차피 말 통하는 사람도 없을 거고 혼자 다니면 심심하잖아요.”
“···.”
살짝 붉어졌던 눈시울을 대신해 이번엔 볼이 불그스름하게 물들길.
“뭐해요.”
“아.”
탓.
주머니에 선글라스를 빼든 한소연이 뺨을 가리며 앞장섰다.
“그거···.”
“왜요?”
제거가 아니라 박시향 선배님건데.
“···아녜요.”
“얼른 와요. 빨리 파도 보게.”
뒷말을 삼킨 이신우가 그 뒤를 천천히 따라나섰다.
나름대로 한적한 기분을 느끼면서.
서로.
여유로이 햇볕 아래를 걷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