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in the back of the head and hit in the back of the head, life is a big hit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떨어진 금덩어리 좀 주우러 가볼까?
청담동의 은밀한 한식당.
그곳에는 오성 증권의 이광섭과 경찰청장 한동민이 마주 앉아 있었다.
한동민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광섭을 쳐다봤다.
“참 오랜만입니다, 형님. 오늘은 또 무슨 일입니까?”
“우리 사이가 꼭 일이 있어야 만나는 사인가?”
“이야. 형님 입에서 그런 말이 다 나오네요. 7년 만에 연락해서는.”
한동민은 서운한 마음을 가득 담아 투덜거렸다.
경찰 대학에 입학해 승승장구하며 승진을 거듭하던 한동민.
그런 그가 끈 떨어진 연이 되어 연이어 좌천했던 것이 7년 전이었다.
그전까지 한동민을 살뜰히 챙기던 이광섭의 관심이 멀어진 것도 그즈음이었으니 한동민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밥은 잘 먹었으니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어허. 가긴 어딜 가나. 일단 좀 앉아 봐.”
이광섭이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흔들었다.
한동민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봉투를 보자 자연스럽게 눈을 굴렸다.
“그건 또 뭡니까?”
“무기명 채권.”
무기명 채권이라면 현금과 다를 바 없는 안전 자산이었다.
한동민은 움찔 놀라 자리에 앉았다.
“형님이 웬일이십니까?”
“그동안 신경을 너무 못 써 줬지? 서운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대화 좀 나누자.”
다른 인맥도 있겠지만, 사건 사고를 처리할 때 가장 빠른 것은 경찰 쪽이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어떻게 다시 청장의 자리에 올랐는진 몰라도, 최고의 카드였다.
‘쩝. 이렇게 나오면 거절하기도 힘든데.’
그동안 거리를 두긴 했지만, 어찌 됐든 큰 힘이 되었던 동향 선배였다.
“길게 앉아 있기 좀 그러니 용건이나 말씀하세요. 어지간하면 들어줄 테니까.”
“자식. 진즉 그럴 것이지.”
피식 웃은 이광섭은 본인의 아들 이상규를 떠올리며, 곧 표정을 굳혔다.
그러고는 아들이 겪은 일을 소상히 풀어 설명했다.
쾅!
“아니, 지금도 그런 놈이 있단 말입니까?”
“그러니까 내가 자네를 찾아왔지 않은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나?”
“하아. 형님! 내가 경찰청장이우. 그런 거 하나 해결 못 할까 봐? 근처에 CCTV 싹 확인하고, 조금만 조사하면 다 털어 낼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우.”
어찌 됐든 나름 친하게 지냈던 사이가 아니던가.
7년간의 세월이 야속하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챙겨 주니 성의를 다할 따름이었다.
“그럼 잘 부탁하네.”
이광섭은 눈을 빛내며, 결과를 기다렸다.
* * *
누워서 스마트폰 게임을 즐기던 동방수에게 황예원이 말을 걸었다.
“오빠. 조금 귀찮아질 수도 있겠는데요?”
“뭐가?”
대답하면서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다.
“이광섭이 지금 여기저기에 말을 퍼뜨리고 있어서요.”
“여기저기?”
별 상관없다는 듯 무심코 물어보면서 말이다.
“경찰, 정치인, 언론까지요.”
황예원은 물어보는 바에 충실히 대답했고,
“그래?”
그제야 동방수가 게임을 끄고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목적이 뭐라는데?”
“아들의 복수라는데요.”
“허참. 이래서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니까.”
증권사의 일개 직원으로 시작해 이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비리를 저질러 왔는지 모른다.
단순히 돈 문제라면 이렇게 짜증이 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광섭은 상사를 끌어내리기 위해 조폭을 동원하거나 문제없이 잘 지내는 부부를 증거 조작으로 불륜으로 몰기도 했다.
그 외에도 온갖 협잡을 부려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그의 자식이 아니랄까 봐 이상규 또한 같은 짓을 하다가 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가해자를 찾겠다고 저 난리를 피우는 꼴을 보니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어떻게 털면 좋을까?”
“직접 처리하시려고요?”
“그건 좀 귀찮은데…….”
잠깐 움직일 수도 있겠지만, 고작 이광섭을 처리하려고 움직이고 싶진 않았다.
“그럼 평소처럼 처리하죠, 뭐.”
그렇게 이광섭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 * *
이광섭은 자신의 막강한 인맥을 동원해 범인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며칠이 흘렀음에도 어떤 진척 상황도 없었다.
“도대체 왜 연락이 없는 거지?”
오랜만에 만난 한동민에게는 두둑이 챙겨 주었다.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이라면 없던 범인도 만들어야 하건만 도무지 연락이 없었다.
다른 인맥들도 마찬가지였다.
한동민이 움직일 때 날개를 달아 준 것이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자주 청탁을 넣는 것도 아니었다.
아주 가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나 청탁이 들어갔고, 그렇게 처리한 일들은 언제나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그랬기에 감감무소식에 이광섭이 이렇게 초조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똑똑똑!
사무실에 앉아 있긴 했으나 딱히 찾아올 사람 따위는 없었다.
혹여라도 있다면 한동민 정도일까?
하지만 그도 연락이 없이는 찾아오지 않을 터였다.
“누구세요?”
팍!
상대는 미처 정체를 밝히지도 않고 문을 벌컥 열었다.
“지금 뭐 하는…….”
사무실에 들이닥친 조상철이 신분증을 들이밀며 떠들어 댔다.
“검찰입니다. 이광섭 씨 맞으시죠?”
“제가 이광섭이 맞긴 하는데, 검찰이라니요.”
“제보 및 증거가 접수되었습니다. 수사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조상철의 뒤를 따르던 사람들이 사무실에 들어와 서류들을 쓸어 가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그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이광섭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보다시피 수사 중입니다. 협조를 잘하시면 금방 끝납니다.”
“내가 누군 줄 알고!”
“알죠, 알죠. 이광섭. 오성 증권의 사내 이사이자…….”
잠시 숨을 고르더니 조상철이 인상을 구겼다.
“인간쓰레기.”
그를 따라온 사람 중 한 명이 수첩 하나를 찾아 그에게 건넸다.
“이 수첩은 당신 겁니까?”
이광섭의 동공이 격렬하게 떨려 왔다.
‘이게 무슨 일이지? 왜 검찰 쪽에서는 연락이 없었냐고!’
검찰 쪽에도 선이 닿아 있었기에 방심한 것이 실수였다.
“이야. 많이도 갖다 바쳤네요. 돈도 많아. 이 돈은 다 어디서 났을까?”
비아냥대는 말투로 이광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 그건 제 수첩이 아닙니다.”
“허허. 최근엔 한동민을 만나셨고, 아이쿠. 정찬호 의원까지. 인맥이 어마어마하시네.”
조상철은 차분히 수첩을 읽어 내려갔다.
읽을수록 대단한 인맥이었다.
“지금까지 본 것만으로도 제보가 확실하네요. 인정하십니까?”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변호사를 불러 주세요!”
“묵비권 같은 소리 하고 있습니다. 일단 체포하도록 하죠.”
조상철의 뒤에 있는 경찰들이 수갑을 꺼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이광섭은 별다른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끌려 나갔다.
이광섭이 떠올린 것은 얽힌 매듭을 풀어 줄 로비 대상들뿐이었다.
* * *
[오성 증권, 사내 이사 이 모 씨가 뇌물을 포함해 14종의 범죄로…….] [오성 증권, 조직적인 탈세 혐의로…….] [오성 증권, 고객의 돈으로 증권사의 손실을 막은…….] [오성 증권, 회계 장부 조작…….]며칠 동안 오성 증권에 관한 부정적인 기사가 포탈에 도배가 되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오성 증권의 사장인 임성우는 지금의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업계의 관행대로 처리한 일들이 어떻게 이렇게 번진단 말인가.
그의 앞에는 오성 증권의 부장급 이상의 인사들이 고개를 숙인 채 반성 중이었다.
“아무도 대답 안 해!”
“죄송합니다.”
유구무언이었다.
하지만 이들 또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고, 가장 꼭대기에 있는 것이 임성우 아니던가.
무려 20년 이상 오성 증권의 사장을 맡고 있는 임성우.
만약 잘못이 있다면 대부분이 임성우를 통해 나온 명령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본인의 잘못은 전혀 뉘우치지 못하고 큰소리만 치고 있었다.
임성우는 오성 그룹의 회장인 임현우의 사촌 동생이었다.
능력에 비해 좋은 자리를 맡은 것은 전적으로 혈연 때문이었다.
“이런 것들이 뭐가 예쁘다고 월급을 퍼 주고 앉아 있어!”
임성우는 온갖 성질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에 앉아 있는 임원들은 같은 마음이 아닌 듯싶었다.
‘지가 명령한 건 생각도 안 하고.’
‘아오. 오늘은 기네, 길어.’
‘빨리 집에 가고 싶다.’
답답한 생각만 들었지만, 그걸 대놓고 표현할 정도로 멍청한 인물들은 없었다.
한참을 화풀이해 대던 임성우가 한 사람을 지적했다.
“야, 장창수!”
“네. 사장님.”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하대하는 것은 지금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임성우는 과거의 방식을 바꿀 생각 따위는 없었다.
“너 책임지고, 지금 사태 해결해.”
“네?”
“네는 무슨 네야! 해결하라면 해결하지!”
결국 그는 자기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행패를 부리고야 말았다.
휙!
임성우의 손에서 떠난 명패가 장창수의 바로 옆 벽을 때렸다.
쾅!
조금만 가까웠으면, 머리가 깨질 뻔했다.
‘저……. 미친 늙은이가!’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뭘 그리 잘 주워 처먹었는지 건강하기도 했다.
21세기에 벌어졌다고는 두 눈을 뜨고도 믿지 못할 광경이었지만, 그 누구도 입 하나 뻥끗하지 못했다.
“아… 알겠습니다.”
장창수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 * *
[요즘 오성 왜 이렇게 난리지?] [이러다 그룹이 망하는 거 아니야?] [공포에 사라고 했다. 난 지금 사서 존버한다.] [그것도 정도껏 해야지, 이건 펀더멘털이 무너지는 상황이잖냐.] [오성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노노. 이것도 옛말임. 지금 한국 먹여 살리는 건 GK고, 더 정확히 말하면 동방수다.
[근데 썩기는 썩었다.]└썩긴 뭘 썩어. 다른데도 털면 다 똑같을 텐데.
[하여간 동방수 건드리면 주옥되는 것임.]└이건 쌉인정이지. 크크크크.
동방수는 한참을 기사의 반응을 살펴보다 기분 좋게 스마트폰을 껐다.
“흐흐흐. 이 정도면 영향이 있겠지?”
“물론이에요. 오늘만 해도 주가가 10퍼센트 이상 빠졌거든요.”
“좋네, 좋아.”
워낙 쌓아 둔 돈이 많아 부도가 나진 않겠지만, 이미지의 손상으로 인해 증권사 1위 자리는 순식간에 빼앗길 것이다.
게다가 아직도 풀지 않은 장작 거리는 차고 넘쳤다.
“이제 슬슬 다른 것도 진행하셔야죠?”
“당연하지. 떨어진 금덩어리 좀 주우러 가 볼까?”
동방수의 미소는 더욱 짙어져만 갔다.
* * *
오성 증권에서 부장 자리를 맡고 있는 장창수는 가치 투자의 신봉자였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어 주는 기업의 주가가 기대보다 낮을 때 주식을 사서 그 기대에 부응할 때 파는 전략.
특별할 것도 없고, 재미있을 것도 없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결과마저 재미없는 것은 아니었다.
바다 건너 저 미국에는 이 가치 투자로 세계 부자 순위 상위권에 20년째 이름을 올리는 할아버지도 한 분 계시지 않던가.
물론 주식 시장에서 이 투자 전략을 지키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먼 미래보다 당장의 큰돈을 좇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장창수는 우직하게 복리로 재산을 불려 왔기에 최근까지만 해도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수익률을 자랑했다.
그런 그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었다.
한국 주식에만 투자하는 그에게, 한국에서 가장 안전하고 큰 기업인 오성 그룹 주식은 주요 투자 대상이었다.
대마불사.
투자에서 대가들조차 금언으로 생각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대마 중 대마인 오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재무제표로 보나 한국에서의 영향력으로 보나 문제 될 게 없었다.
내부의 자세한 사정까지 파악할 순 없었지만, 오성이라면 이겨 낼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고객들의 돈은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았으나, 본인의 돈은 거의 오성이라는 한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그 결과 백억이 넘어가던 자산은 이제 반의 반토막도 남아 있지 않았다.
‘후우. 답답하군, 답답해. 하필이면 전부 다 GK에서 출시를 해서는. 게다가 사장은 왜 미쳐서 나한테 난리야?’
자산은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어서 안 그래도 심기가 불편했다.
그런데 사장이란 작자마저 뭐가 그리 화가 나는지 이런 사태까지 해결하라고 떠민다.
제정신이 아닌 듯 난리를 치는 임성우를 떠올리니 답답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그래도 직장인에게 무슨 답이 있겠는가.
하라면 어떻게든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장창수 씨?”
그때 뒤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