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in the back of the head and hit in the back of the head, life is a big hit RAW novel - Chapter 2
2화 할아버진 누구세요?
* * *
무간계(無間界).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차원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적인 차원이었다.
그곳에서 한 노인이 가만히 서서 갑자기 나타난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흐음.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곳에 올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이렇게 신기한 것은 처음 본다는 표정의 노인.
노인의 길고 긴 삶을 생각하면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노인의 외모는 누가 봐도 신선이겠구나 싶은 모습이었다.
다만 그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청바지에 쫄티를 입은 것이 옥에 티라면 티일까?
옷을 그렇게 입어서인지 더욱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오호라! 이거 보게! 크크크.”
한참을 청년을 노려보던 노인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청년이 정신을 차리는 듯했다.
“으음…….”
어이없이 양아치와 동창생 여자에게 퍽치기를 당했던 동방수였다.
“오오! 정신이 드는 모양이구나.”
노인답지 않게 생기 있는 목소리로 동방수를 불렀다.
“으으.”
무슨 일이지?
슬며시 눈을 뜬 동방수는 지금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 이제 정신이 좀 드느냐?”
“네? 정신이 들긴 하는데…….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흐린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주변은 온통 죽은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앞에 서 있는 이상한 복장의 근육질 할아버지와 동방수만이 정상적인 색상이었다.
누워 있던 곳에서 몸을 일으켜 머리를 털고 눈을 비볐다.
가만히 기억을 떠올리려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져 왔다.
“으윽!”
“허허. 가만히 있거라. 아직은 정상이 아닌 것 같으니. 아니 앞으로도 정상이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노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래도 너와는 많은 대화가 필요할 듯하구나.”
불안했지만 노인의 목소리를 들으니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그래 여긴 어떻게 오게 되었느냐?”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자애로운 표정으로 던진 질문에 동방수는 진심을 가득 담아 대답했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노인의 말과 함께 뿌연 안개가 낀 듯했던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아! 저, 죽었어요. 아니 근데 진짜 죽긴 한 건가? 죽은 게 맞을 텐데.”
“죽었다고?”
“그러니까……. 배에 칼이 꽂히고, 머리를 벽돌에 찍혔거든요. 아마 죽지 않았을까요?”
동방수의 대답을 들은 노인의 표정이 불쾌한 듯 살짝 구겨졌다.
“어허. 어찌 됐든 죽을 상황이었다?”
“그렇겠죠?”
“그런데 여길 오게 됐다?”
“아마도요? 저도 조금 혼란스러워서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잘은 모르겠어요.”
“죽었다면서.”
“확실히 모른다니까요. 아마 죽었겠죠. 아! 엄마!”
죽는 것도 죽는 거지만 혼자 남아 걱정하실 어머니가 생각났다.
자신을 키우기 위해 지금껏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평생을 일해 오신 어머니.
그는 효도다운 효도도 한 번 못 하고 죽은 건가 싶어 진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 엄마가 엄청나게 걱정하실 텐데. 어떻게 하지? 할아버지, 여기 어디예요? 혹시 여기 전화 사용할 수 있나요? 저 보는 낙으로 사는 분인데…….”
정신없이 횡설수설하고 있었지만, 노인은 전혀 말리지 않았다.
얼마나 정신없이 떠들었을까?
그런 행동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깨달은 동방수가 노인을 불렀다.
“할아버지.”
정신이 없을 땐 노인이란 것만 눈에 들어왔는데, 살펴보니 보통 노인이 아니었다.
마치 보디빌더를 연상케 하는 큼직하면서도 근질이 제대로 드러나는 몸.
흰 머리와 긴 수염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새.
얼굴을 제외한 다른 부분만 본다면 엘리트 운동선수라고 해도 믿을 체격이었다.
“그래, 이제 정신을 차린 것 같구나. 차근차근 대화해 보자꾸나.”
“네?”
“우선 네 이름부터 알아야 하지 않겠니? 노부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네 이야기가 끝나면 하도록 하마.”
동방수는 잠시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차근차근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은 이야기.
대대로 단명하는 저주받은 가문의 이야기.
홀어머니 슬하에서 아등바등 살아온 삶까지.
노인은 끝까지 들을 요량이었는지 적당히 추임새만 넣어 가며 동방수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힘들었겠구나.”
동방수의 얘기가 끝난 후 노인이 뱉은 것은 단지 한마디뿐이었다.
그 말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노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동방수의 어머니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아들이 우선이었지만, 홀로 세상의 풍파를 겪어 내던 그녀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 탓에 그를 억눌려 살게 한 것도 사실이었다.
언제나 아들에게 참으라는 말을 끝도 없이 하셨다.
“누가 괴롭혀도 참아라.”
“힘들어도 참아라.”
“사고 싶어도 참고, 먹고 싶어도 참아라.”
아들을 어려움에서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없는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괜한 분쟁으로 인해 아들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리라.
만약 어머니의 사랑을 익히 알고 있지 않았다면 비뚤어져도 수십 번은 비뚤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무언가를 참고 자신을 내어 주며 살아온 세월 동안 그 누구도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았다.
떨어진 자존감 때문에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았고, 딱 생계에 필요한 활동만을 해 왔다.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이름 모를 노인이 진심으로 동방수의 마음을 알아주었다.
이런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에게 들은 한마디가 그렇게 큰 위로가 될 줄이야.
자연스럽게 노인은 그에게 호감으로 다가왔고, 어느새 마음이 스르르 열렸다.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마음이 열림과 함께 더욱 굵은 줄기가 되었다.
얼마나 오래 울었을까.
가슴 속에 쌓아 두었던 울분이 깨끗이 씻겨 나간 것을 느꼈다.
“흠흠. 초면에 흉한 꼴을 보였네요.”
퉁퉁 부은 눈으로 태연함을 가장하며 말을 건넸다.
“그런 것쯤은 문제없느니라.”
노인은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동방수의 마음이 진정되도록 도왔다.
“나는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
그것은 그도 원하던 바였다.
물론 퍽치기를 당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제 우울했던 인생사를 위로받은 것으로 마무리될 생이다.
동방수는 비록 사는 동안 행복을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격려를 받았다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 삶이란 생각을 했다.
‘그래도 나름 효자긴 했었나?’
딱히 속 썩이는 일은 없었으니 그럴 듯도 했다.
그때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이제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이냐?”
“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노인의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너의 계획 말이다. 계속 그렇게 되는 대로 살고 싶은 것이냐?”
“아니, 그게 아니라…….”
끝난 인생에 난데없이 계획이라니.
동방수가 당황해서 대답을 못 하고 있을 때,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나 아직 안 죽은 건가?’
생각이 그쪽으로 흐르자 그는 얼른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노인의 질문에 답을 해 보기로 했다.
밑져야 본전 아니던가.
“이… 일단 집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집으로라. 그래.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전제하에 물어보마. 그 후엔 뭘 하고 싶으냐?”
“그… 저……. 아무래도 아까 말씀하셨듯이, 행복하게 살아야겠죠?”
진심이었다.
어머니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다 지난날이었다.
자신을 홀로 키우며 그 고생을 하신 어머니와 아픔은 다 잊고 정말로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방법은?”
말문이 다시 한번 막혔다.
“그것까지는 생각을 못 해 봤는데요. 알바하고, 빚 갚고…….”
어쩌면 자신의 인생이 더 이어질 수도 있겠다고 희망을 품었건만, 다시 ‘방법’이라는 단어 앞에 주저앉아 버렸다.
다시 살아간들 행복할 수 있을까.
하지만 주눅이 든 동방수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인은 계속 말을 이어 갔다.
“뭐 좋다. 행복이라. 그래. 네 소원이 그것이라면 들어주는 것도 좋겠지.”
“네?”
중얼거리는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해 되물었지만, 노인은 말해 줄 생각이 없는 듯 다시 물었다.
“좋다. 네가 정말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노부가 돕도록 하마.”
동방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신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해 보겠느냐?”
노인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렸다.
질문과 함께 노인에게 느껴지던 자애로운 분위기는 어느샌가 사라지고 알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
노인이 입고 있는 옷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였다.
참 신뢰하기 힘든 비주얼이었지만 어쩐지 이것이 놓칠 수 없는 기회가 아닌가 하는 확신이 들었다.
“무… 물론입니다. 더 이상 예전처럼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 바엔 차라리 이대로 죽는 게 낫죠. 어쩌면 그러는 편이 어머니한테도 더 나을지도…….”
무슨 말인지도 모를 말을 지껄이고 있으려니 노인이 안광을 빛내며 노려봤다.
“네, 이놈!”
“네. 네?”
“다시는 그런 말은 하지 말거라!”
“어. 어떤 말이요?”
“죽는단 얘기! 어떤 일이든 살아야 해낼 수 있느니라!”
“네… 넵! 꼭 살겠습니다.”
노인의 우레와 같은 목소리에 정신이 든 동방수는 바짝 군기가 들어 대답했다.
“좋다. 좋아. 그런 마음이면 되느니라.”
반사적으로 뱉은 대답이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는지 즐거운 듯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이었다.
“이제 너의 얘기는 다 들었느니 나의 얘기를 해 주도록 하마.”
동방수는 노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노부의 이름은 알 것 없느니라. 그저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족할 것 같으니라.”
노인, 아니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근육질의 할아버지가 다가오자 조금 놀라긴 했지만, 뒤로 물러나진 않았다.
“노부는 아주 아주 긴 세월을 살아왔느니라. 네가 어떤 생각을 하든 그 이상을 살아왔지. 100년, 200년. 아마 백 년 단위는 확실히 아닐 것이야.”
‘혹시… 정신병자인가?’
무언가 흐름이 이상했지만, 노인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 긴 세월을 살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재주를 다 익혀 왔느니라.”
“재주요? 왜요?”
“아주 오래 살고 싶었단다. 그런 재주를 가지고 죽긴 싫었고, 그냥 죽는 게 싫기도 싫었지. 그걸 위해 더욱 많은 재주를 익혔고, 그 덕분에 더욱 긴 삶을 살게 되었단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 재주가 늘고, 그 재주로 더욱 많은 수명을 얻었으니 참 반가운 일이었지. 물론 운도 따라 주긴 했지만.”
노인은 과거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대단하시네요. 그래서 어떤 재주를 익히셨는데요?”
불쑥 솟아오르는 궁금증에 저도 모르게 질문을 던졌다.
사람의 말을 끌어내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공감과 칭찬이라던가?
가벼운 칭찬과 질문에 노인의 입이 폭주 기관차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허허허. 그렇게 궁금하다면 알려 주는 게 인지상정이겠지. 적어도 배우게 될 재주가 뭔지 아는 것은 중요할 테니 말이야. 노부의 재주의 근본은 무공이었단다. 아주 오랜 기간 무에 매달렸지. 무를 익히면 익힐수록 수명이 길어졌으니 멈출 수가 없더군. 그렇지만 곧 한계가 찾아왔단다. 그때 노부가 두 번째로 익힌 것이 흔히 말하는 술법이라는 것이야. 그 근원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익혔지.”
“무공과 술법이요? 그게 뭔가요?”
노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동방수 쪽으로 이동했다.
“허허. 무공과 술법을 모른다라. 하긴 그렇기도 하겠군. 네가 살던 곳은 그런 곳일 테니.”
무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노인이 다시 입을 뗐다.
“그것들이 뭔지는 차차 알도록 하고, 우선 노부가 익힌 재주부터 풀어놓지.”
* * *
그때부터 노인은 아주 긴긴 시간 동안 자신이 익힌 재주들에 대해 늘어놓았다.
소리에 대한 것, 음식에 대한 것, 사람에 대한 것.
마치 백과사전, 아니 세상의 모든 지식을 풀어놓기라도 하려는 듯 방대하기 이를 데 없는 재주들이었다.
“…그렇게 큰 줄기로 37가지, 작은 가지로 치면 98,231개의 재주를 익혔지. 물론 아직도 배우지 못한 많은 것이 있긴 하지만, 만류귀종이라고 하지 않던가. 더 이상의 재주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익히는 것을 멈춘 상태지. 어떤가? 이제 나에게 배울 만하겠는가?”
무려 98,231개의 재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것 중 들어 본 것이 반의반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재주였다.
“정.말. 믿.음.이. 가.네.요.”
이야기를 듣다가 지칠 대로 지친 동방수의 입에서는 기계적인 긍정이 터져 나왔다.
솔직히 감히 가늠도 할 수 없는 이야기라 신뢰하기가 어려웠다.
“허허허.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군.”
“네? 그게 무슨.”
썩은 동태 눈깔을 하고 있던 동방수가 노인의 발언에 화들짝 놀랐다.
마음을 다 안다는 듯한 저 눈빛.
“노부가 아는 재주 중 사람의 허와 실을 파악하는 재주 또한 있다네. 물론 이것도 네가 배울 것 중 하나지.”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네. 그저 시간이 많이 필요할 뿐.”
태연하게 내뱉는 노인의 말에 내 미간이 절로 구겨졌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곤란하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야 집에 가라는 말씀이신가요?”
동방수가 살아가는 이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어머니였다.
그분을 위해 돌아가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니, 안 될 말이었다.
수만 가지 재주를 다 익히려면 하루에 하나씩만 익혀도 수백 년은 걸리지 않겠는가.
그 정도 시간이라면 뼈도 흙으로 변할 세월이었다.
“허허허. 진정 효자로구나. 참으로 다행이 아닌가?”
“뭐가요?”
퉁명스러운 동방수의 말에도 노인의 밝은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말일세.”
“네?”
지금까지 들은 말들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 말은 더욱 와닿지 않았다.
세상에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는 곳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노인은 태연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것도 수많은 재주 중 하나일세.”
“그… 그것도 배워야 하나요?”
개념조차 서지 않는 재주를 익힌다니. 도무지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가르치는 것도 내가 가진 많은 재주 중 하나이니. 허허.”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데요?”
“뭐 별것 있겠나? 무언가를 배우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반.복. 학.습.뿐이라네.”
묘하게 강조하는 그 말과 함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