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Disaster-Class Necromancer Retires RAW novel - Chapter (33)
33화
내 말에 잠시 침묵하던 진인기가 말했다.
“굳이 그렇게 복잡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
“있죠. 저는 지분 관계가 복잡한 걸 싫어해서요.”
“혹시 지분 비율 때문에 그러십니까?”
합작 공장의 세론 지분을 높이기 위해서 자신을 떠보는 게 아니냐는 진인기의 말.
“오해 마세요. 저 거짓말은 안 합니다. 세론만 해도 대출 받는 것 빼면 전부 자기자본으로만 움직이고 있잖아요. 그런 것의 연장선상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자 진인기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분 관계는 회사가 커지면 커질수록 복잡해지는 게 당연합니다. 세론도 언젠가는 상장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세론은 상장 안 할 건데요?”
“예?”
미쳤어?
대표가 돈 빼돌린다고 주주들이 지랄발광 할 게 뻔한데?
“허어······.”
“아무튼 유림이 OEM 생각 없듯 저도 합작 공장은 싫습니다. 그러니 그냥 이렇게 하시죠? 막말로 고객들이 공장에 쳐들어와서 세론과 유림의 계약서까지 확인해 가며 물건을 사는 건 아니잖아요.”
같은 물고기도 한국에서 잡으면 한국산, 중국에서 잡으면 중국산인 법.
그러니 중간에 과정이 어떠하든 유림 자체 생산인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될 것 아니야.
그러자 잠시 침묵하던 진인기가 말했다.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위해선 확실한 보증이 필요합니다.”
“보증이요?”
“이건 말 그대로 세론이 유림과 계약을 맺고 일정 기간 고용되는 형태 아닙니까. 만약 중간에 세론이 계약 연장을 거부하면? 우리 유림 전자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아아.
그래서 더 합작 공장을 밀어붙인 거구나.
하긴.
기껏 돈을 투자해 한국에다가 공장을 만들었는데 세론이 빠지면 유림의 공장은 그대로 허공에 붕 뜨는 꼴이니까.
“계약서에 명시해 드리죠. 유림이 세론에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는 이상 세론은 계약을 자동으로 연장한다.”
“···으음.”
보증이라 부르기엔 부족하다 이거지?
하지만 이 이상의 양보가 불가한 만큼 더 설명을 해 봐야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이것 하나만 더 말씀드리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세론 신발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고객사와의 계약을 먼저 취소한 전례가 없습니다. 당연히 고객사도 어떻게든 세론 신발과 거래를 늘리면 늘렸지 줄인 적이 없고요. 이걸로 이야기 끝.”
만약 이것도 거절하면 어쩔 수 없지.
내 말에 진인기가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이게 세론이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양보라 이거군요.”
머리 좋은 사람이랑은 대화가 빨라서 좋단 말이지.
“정확합니다.”
그러자 한참을 고민하던 진인기가 말했다.
“좋습니다. 그 정도라면 진지하게 이야기해 볼 만할 것 같군요.”
오케이.
아주 좋아.
‘거래 성사되면 짭짤하겠지?’
매출과 판매량이 보증된 회사와의 협업 공장.
말 그대로 공장이 완공되는 즉시 수익이 생겨난다는 말이다.
‘협력사 팍팍 늘릴까?’
유림 전자가 가장 처음 접촉해 왔을 뿐, 스켈레톤의 노동력을 탐내는 회사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 회사들의 해외 공장을 한국에 유치하면 순식간에 세론의 덩치를 키울 수 있다는 말.
‘그래. 쉬운 길 두고 굳이 어려운 길로 돌아갈 필요 없잖아.’
목표는 정해졌다.
그럼, 첫 단추를 잘 끼워야 그다음 단추도 순조롭게 끼우는 법이지.
미리 바닥부터 확실하게 다지고 가는 거다.
“이걸 가지고 일자리 빼앗긴다며 사람들이 난리 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설마요, 애초에 한국엔 없던 공장인데.”
“그래도 누군가 바람만 살살 불면 일반인들은 그냥 넘어갈 것 아니에요. 당장 한국에 있는 유림 전자 직원들만 해도 불안해하지 않겠습니까? 이러다 자기들 공장 일거리까지 전부 세론과 계약한 신규 공장에 넘어가는 게 아닌가 하면서.”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인이 꺼려 하는 일자리를 메꿔 주고 있는데 그것조차도 일자리 빼앗긴다며 난리를 치는 게 사람들이다.
일자리는 생계와 직결된 민감한 문제니까.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럴 수도가 아니라 무조건 그럴 겁니다.”
신발 협회 때처럼 사람들이 난리 치기 전에 미리 못을 박아야 한다.
세론은 상생을 추구하며, 절대 기존 사람들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 해외로 유출된 공장들이 되돌아오게 만드는 것뿐이라는 걸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말.
미국도 법인세까지 깎아 주며 해외로 나간 공장들을 되돌아오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나.
그걸 세론이 해냈다고 강조하는 거다.
“대표님, 그럼 이렇게 합시다. 일단 유림 전자 한국 공장 노동조합이랑 만나서······.”
*
나와 진인기가 악수를 하고, 그 모습을 초대한 기자들이 사진기로 찍는다.
그런 나와 진인기 머리 위에 걸려 있는 현수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세론, 유림 전자 협약식.
그렇게 적당히 사진이 찍히자 이번엔 유림 전자 한국 공장 노동조합장이 나에게 다가온다.
조합장이 나와 악수를 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계약서는 확인하셨죠?”
내 말에 조합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국 공장의 배정 물량과 모델을 보장한다는 계약 내용 확인했습니다. 한 대표님이 적극적으로 나서 주신 덕분입니다.”
진인기와의 이야기를 마무리한 나는 진인기의 소개로 조합장과 만나 세론과 유림의 협업 계약을 이야기해 주었다.
역시나 예상처럼 당황해하며 한국 공장의 물량 유출이나 실직 사태를 걱정한 조합장.
나는 한국 공장에 그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이며, 오히려 신규 공장이 커지면 스켈레톤을 보조하는 인력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고 안심시켰다.
거기에 더해 진인기를 설득해 아예 한국 공장의 배정 물량과 모델까지 보장하는 내용을 계약서에 포함시킨 나.
덕분에 노조와 회사 그리고 협력사가 모두 환하게 웃는 지금과 같은 그림을 그리는 데 성공했다.
“저는 늘 상생을 추구하니까요.”
나는 기자들을 보며 말했다.
“모두가 오해하시지만, 스켈레톤도 만능은 아니기에 사람의 보조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즉, 자동화 설비와 노동자의 중간 역할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무튼 이렇게 해외 공장이 한국으로 들어오면 한국 경제도 더욱 활성화되고, 거기에 스켈레톤 관리와 사무직 일자리도 늘어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동시에 철저한 계약으로 한국 노동자의 기존 일자리도 보장하고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스켈레톤이 이렇게 무해하다고.
투자 효과도 있고 일자리 효과도 있고.
아무튼 이 정도면 그림도 제법 예쁘게 나온 것 같고··· 슬슬 영업을 해 볼까?
“그렇기에 저는 이것이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큰 한 걸음이 될 거라 자신합니다. 해외! 로 유출된 자본을 한국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겁니다!”
해외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며 설명을 이어 가는 나.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앞으로도 세론은 해외! 공장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 해외 공장 가진 회사들아?
빨리 연락 좀 해 줘라.
같이 돈 좀 벌자고.
*
유림 전자 중국 공장의 한국 복귀로 생기는 투자 효과와 일자리 창출, 거기에 생산비 절감으로 인한 경쟁력 확보 등등, 부정적인 내용은 싹 빼고 오직 긍정적인 점만 집중 조명 하여 기사화한 기자들.
당연하게도 이 기자들은 모두 유림 전자 쪽에서 진작부터 약을 쳐 온 기자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유림 전자와의 협약식을 성공리에 마치고 기사화까지 되자 눈치를 보던 회사들로부터 하나둘 연락이 온다.
그 회사들의 공통점은 모두 유림 전자처럼 중국에 생산 공장을 두었지만 늘어나는 중국의 인건비 부담에 동남아 이전을 준비하던 회사들이라는 것.
당연하게도 이 회사들 모두 유림 전자처럼 아무 탈 없이 먹을 수 있는 회사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거나 다 먹을 수는 없지.
나는 김덕배가 건네준 리스트를 보며 말했다.
“연 매출 46억. 이건 패스.”
46억은 너무 적잖아.
저런 중소기업까지 전부 다 받아 주면 사방 천지에 스켈레톤을 다 깔아 두고 쉴 새 없이 오가며 관리해야 한다는 소린데, 아무리 프로그래머가 있더라도 그건 너무 비효율적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 검증된 기업만 골라서 받는 게 효율로 보나 비용으로 보나 훨씬 안정적이고 편한 선택.
“그다음, 보자. 커피 머신?”
커피 머신만을 주력으로 만드는 회사인데 규모도 제법 크고 한국에서도 나름 인지도가 있는 회사.
나쁘지 않네.
커피 같은 기호 식품은 사람들이 기계 하나를 골라도 브랜드를 제법 따진단 말이지.
SR이 커피 머신 라이선스를 사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킬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솔직히 말해서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SR 전자의 빈틈을 메우는 데 딱 안성맞춤인 회사.
“이건 오케이.”
그렇게 후보군을 대충 정리한 나는 김덕배에게 리스트를 건네주며 말했다.
“여기 체크한 회사들하고 미팅 잡고 이야기해 보세요. 아. 그리고 노조랑 협의 안 된 회사는 무조건 패스입니다. 기억하시죠? 영진 테크.”
유림 전자와의 협약식 이후 연락 온 회사 중 하나로, 자동화 기계를 만드는 회사였다.
매출액은 유림 전자와 비슷한 규모인 데다 공장도 한국과 중국으로 나뉘어 있다는 점까지 똑같아 마음에 들었었지.
그래서 그쪽 대표와 좋게 좋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계약 성사 직전까지 갔지만, 거기서 노조 문제가 터져 버렸다.
유림 전자 노조는 그래도 비교적 협조적이어서 계약서에 명시하는 정도로 넘어갔지만, 영진 테크 노조는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았던 거다.
스켈레톤 공장이 세워지면 야금야금 중국 공장뿐만 아니라 한국 공장의 일감까지 빼앗아 갈 거라며 결사반대를 외치던 노조.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모든 계획을 백지화해 버렸다.
“잘못하면 우리까지 엮여서 귀찮아질 게 뻔하잖아요? 그러니 그런 상황이 벌어질 건덕지 자체를 남기면 안 됩니다.”
김덕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좋아요.”
“그런데 대표님, 또 다른 회사로부터 제안이 왔는데······.”
“오늘은 일단 이걸로 마무리하고, 내일 보고 때 한 번에 몰아서 주세요.”
“그게 아니라, 이게 한국 회사가 아니라서 말입니다. 이런 회사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한국 회사가 아니라고요?”
“미국 회사입니다. 주력은 모니터 제조고요.”
이야.
이제는 하다 하다 해외 기업까지?
“매출은 어떻습니까?”
“매출 같은 나머지 조건은 전부 부합합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콜. 해외 기업도 조건 부합하면 만나 보죠.”
내 목표는 해외에 있는 공장들을 한국으로 들여와 일자리 문제 없이 돈을 버는 것.
그러니 그 대상을 꼭 한국에 국한할 필요는 없단 말이지.
오히려 해외 기업을 한국으로 들여오면 더욱더 깔끔한 거래가 가능하다.
영진 테크처럼 한국 노조와의 갈등 자체가 없을 것이며, 무엇보다 타이틀로 걸기에도 좋지 않나.
SR 전자 해외 기업 투자 유치.
캬.
얼마나 듣기 좋아.
해외투자라는 단어만 들어도 뭔가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은 기분이잖아?
“알겠습니다.”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자. 계속 가자고요.”
*
유림 전자를 시작으로, 제안이 온 해외 공장들 중 계약까지 성사되어 협약식을 연 회사만 모두 10여 개.
하나하나가 모두 한국에서나 아니면 해외에서나 나름 인지도와 규모가 있는 회사이기에, 계약한 공장의 매출 규모만 해도 한 해에 8천억이 넘는 수준이었다.
물론 세론은 시설물 관리 업체로 들어가는 거기 때문에 그 8천억 매출 중 세론의 몫이 그리 크지 않지만, 그 매출 비중 대부분이 순수익이란 말이지.
말이 좋아 시설 관리지, 사실상 협력사들에게 월급 받고 스켈레톤을 빌려주는 꼴이나 다름없으니까.
덕분에 이 10개 회사만으로도 1년에 수백억에 가까운 인건비를 가장한 관리비를 벌 수 있을 거라 예상되는 상황.
이것만 해도 상당한 이익인데, 거기에 더해 한국 기업의 유턴과 해외투자 유치로 인해 한국 내 분위기까지 좋다.
나는 신문에 적혀 있는 SR 전자와 전자 회사의 협약식에 대한 내용을 읽어 보았다.
“단기간에 10개의 중견 회사와 협약식을 맺으며 한국 유치를 확정 지었고, 그로 인한 직간접적인 경제적 효과는 최소 수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며······.”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거 우리가 부탁한 것 아니죠?”
“아닙니다.”
우리 입김 없이 기자가 알아서 적은 기사라는 말.
“하긴. 이런 해외투자 유치 소식이 어디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공장 부지 매입과 설비투자, 거기에 관리인에 대한 일자리 효과에 법인세로 생기는 세수 증가를 생각하면 수조 원의 경제적 효과는 과장한 감이 없지 않아 있으나, 분명 큰 성과인 것은 사실.
거기에 한국에 대한 외국 기업의 직접투자나 해외 공장의 한국 복귀는 한국이 경제 성숙기에 들어서며 고임금 시대를 맞이한 이후로 거의 가뭄에 콩 나듯 있는 수준이었으니 기자가 이런 기사를 작성할 만도 하다.
“그런데 대표님, 슬슬 전자 제품 업계에서 불만 어린 목소리가 조금 나오는 것 같습니다.”
“불만이요?”
“그러니까, 한국에만 공장을 둔 회사는 역차별을 받는 게 아니냐는 말이······.”
한국의 전자 제품 산업이 완전히 박살 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산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업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캠핑용 전자 제품을 만드는 회사나, 유림 전자처럼 창문형 에어컨을 만드는 등 각자의 특기를 잘 살려 여전히 살아남은, 이른바 브랜드를 지닌 회사들.
그런 회사들 중엔 정말로 한국에만 공장을 가지고 있는 회사들도 있기는 있지.
그래서 더욱 어이가 없다.
“아니, 이 정도 배려 해 줬으면 됐지, 얼마나 더 해 달라는 겁니까?”
그 회사들의 공통점은 브랜드 가치를 높여 중국산 대비 매우 높은 가격으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업체들이라는 거다.
유림 전자만 해도 중국산보다 두 배나 비싼 창문형 에어컨을 국산이라는 이유로 잘만 팔아 치우고 있지 않나.
즉, 내가 지금 유치하고 있는 공장들과는 영업 포지션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는 뜻.
“어이가 없네. 그냥 무시하세요.”
사양산업을 골라 진출하고 아무 탈없는 해외 공장들을 국내로 들여오며 유치하는 등 정말 욕 안 먹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별걸 다 가지고 난리야.
“아예 그냥 한국 공장과의 협업은 국내 노동자의 일자리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공표해요.”
이번 기회에 우리는 한국인의 일자리 피해를 절대 좌시하지 않는다 못 박아야지.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협력사들이 공장 부지를 알아보고 있는데, 어디가 좋을지 저희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합니다.”
“우리 의견을?”
하긴.
최대한 세론과 가까워야 더욱 수월하게 공장을 돌릴 수 있을 테니까.
“대충 이 근방에 알아서··· 어? 잠깐만.”
기사가 실릴 만큼 10개 협력사의 투자 규모는 상당한 수준이다.
투자 지역 선정 공고만 내도 신규 투자 유치에 혈안이 된 지자체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 정도로.
내가 해외투자 유치란 타이틀을 적극 사용 하는 것처럼 지자체와 지자체의 장들도 이번 투자를 자신들의 치적으로 삼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지금 이걸 사실상 내가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소리잖아.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것 봐라.”
그럼 이걸 빌미로 지자체들과 협상을 벌여 양보를 얻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더 나아가 한 지역에 협력사를 모조리 몰빵 해서 그 지역 경제를 세론에 의지하도록 만드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포항이나 울산처럼 되지 말란 법 없지.”
포항 하면 한국 제1의 제철소가 떠오르고 울산 하면 중공업이 떠오르는 것처럼, 지역의 대표 기업이 되면 얻게 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당장 저 두 도시의 정치인은 저 기업에서 찍는 인물로 나온다는 소문이 돌 정도니까.
세론이라고 해서 못 할 게 뭐 있나.
앞으로 협력사는 무궁무진하게 늘어날 텐데.
“그래. 기왕 할 거면 확실하게 해야지.”
내가 아무리 사람들 눈치를 보며 착한 기업인 척 세론을 키워도, 결국 덩치가 커지면 적은 생기기 마련.
그때 세론에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지역이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세론이 가질 수 있는 크나큰 무기다.
여차하면 방 뺄까, 협박 한 번에 지역 주민들이 전부 들고 일어날 거니까.
“좋아. 몰빵 간다.”
세론이 빠지면 지역 경제에 마비가 올 정도로 의지하게 만드는 거다.
결정은 났으니 이제는 어디에 몰빵을 할 건지 결정할 차례.
“어디가 좋을까······.”
나는 머릿속으로 한국에 있는 적당한 규모의 도시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규모가 있는 도시. 동시에 지역 대표 기업이 없는 도시.”
내세울 만한 대표 기업이 없는 도시에 협력사들을 이끌고 개선장군처럼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들어가는 거다.
“거기에 이왕이면 항구와 가까워야 좋은데.”
수출은 물론 해외 기업을 유치하는 데 있어서 항구의 역할은 절대적이니까.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내 머릿속에 떠오른 한 도시.
“오!”
그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모든 조건이 딱 들어맞는 최고의 도시다.
입주해 있던 대형 회사들이 줄줄이 나자빠지자 대량으로 실직자가 발생하여 고용 위기 지역으로 선정되었고, 그로 인해 상권까지 무너져 가는 무주공산의 도시이자, 동시에 바로 옆에 항구까지 끼고 있는 도시.
나는 환하게 웃으며 김덕배에게 말했다.
“김 사장님, 차 준비해 주세요. 군산으로 갑시다.”
그 도시는 바로 군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