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279
◈ 무위 (7)
“이미 성주께 배웠습니다.”
정연신은 담담히 대답했다.
무맥을 이어라. 사승 관계를 맺자는 말은 아닐 터였다. 입황성의 율법은 본성 무인 간의 사제지연을 허용하지 않는다.
사사로이 임무에 영향을 줄까 저어한 까닭이다. 입황성주만이 율법에서 자유로웠고, 정연신은 그녀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본성의 율법에는 맹점이 있지.”
신검단주가 입꼬리를 올렸다.
“무엇을 배우든 누구의 제자도 아니니, 아무에게나 무엇이든 배워도 된다. 사문이 겹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정연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크게 뜬 눈으로 직속상관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자색 절세고수가 율법의 허점을 논하는 광경이었다.
“음? 왜 그러지?”
신검단주가 다소 꺼림칙하다는 표정으로 얇은 턱선을 쓰다듬었다.
달빛이 스민 문사풍의 자색 옷자락에서 풍류가 보인다. 멋스러웠다.
무릎이 아파 오기 전에 봤을 때는 이런 감흥이 없었는데, 지금은 또 달랐다.
‘저렇게 살면 후회는 없겠다.’
입황성을 대표하는 신검의 품행은 역시나 자유분방했다. 얽매임이 없다. 무애(無礙)라는 말이다.
법력을 연성하고자 불가 무공을 공부하며 알게 됐다. 저런 몸가짐을 지녀야 절세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걸까.
조카 정혜와 본성의 선배들이 큰 가르침을 줬다. 겸손과 무애. 정연신은 양손으로 포권을 취했다.
담담한 생각과 함께였다. 성주님의 술을 받아 마신 혜아의 숙부로서 어른스럽게 행세해야지.
“단주님의 제안이 감사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이미 완성된 무학을 제 몸에 맞게 고치는 일에는 큰 효용이 없습니다. 성주님의 월령조화결도 그러했지요.”
“허?”
“태생이 제 손에서 비롯되어야 하니, 이 후배는 무맥을 계승하는 데 걸맞지 않습니다. 단주님의 무공을 배운다 한들 다른 모습으로 이어질 겁니다.”
신검단주. 신검단 십칠대의 대주들.
몹시 밀접한 관계였다.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계속 봐야 한다는 의미로, 구태여 당대 자색과 척을 질 이유가 없다.
무맥은 곧 수행자들의 전통이자 정체성이다. 누구도 자신의 무공이 완전히 바뀌어 계승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정연신은 이미 자신만의 무맥을 세웠다. 용환문의 자리는 없었다.
“흠.”
신검단주의 고개가 옆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입황성 최강의 신검답지 않게 익살스러운 태도를 보이는데, 그 모습이 마냥 가볍게 다가오지 않았다.
“전제부터 다르구나. 넙죽 받아먹을 놈들이 지천에 널렸건만.”
“송구합니다.”
“달리 눈에 차는 놈이 없던데, 본 단주가 정말로 궁해지면 너를 다시 찾으마.”
양팔로 베개를 만들어 누워 버린 신검단주가 혀를 찼다.
“조금쯤 아쉽구나. 이 몸이 후학을 남기지 못하고 어디 광야에서 객사할지도 모르는 탓에… 뭐, 네 경공에 본 단주의 지분이 일 푼쯤 있으니 됐다. 네놈이라면 근시일 내에 완성할 테지.”
“객사라니. 자색고수도 객사를 합니까?”
“본성의 원로원주 어른이 그리되실 뻔했지 않나? 절세고수가 절세고수 둘을 만나면 허망하게 죽을 수도 있지. 천하는 누구 한 명의 독주를 허락하지 않아. 빌어먹게 넓거든. 나 십삼천주요, 난 구파 장문인이요 하는 도심과 야산의 괴물들이 한둘인가 말이야.”
땅바닥에 몸을 누인 채 다리를 꼰 그가 발을 까딱까딱거렸다.
“대방파의 수장 격까지 갈 것도 없지. 사람의 근본은 저항이다. 어떤 수단으로든 자신의 이로움을 꾀해. 상대가 절세고수라 하여 쉽사리 압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진법, 합격진, 살수 무공, 흑색급 여럿의 합공, 초장거리 궁술 발경…… 마광익주야, 천하는 아주 넓고, 너는 아직 그 절반도 채 겪어 보지 못했다.”
“활시위를 튕기는 것도 발경이 됩니까?”
정연신은 조용히 물었다.
곧장 대답이 돌아왔다. 대수롭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당연하지. 궁술 무공은 결코 얕볼 게 못 된다. 활이란 예로부터 최강의 무기였지. 공력으로 활대와 시위를 다루는 기법이 엄청난 세월과 함께했다. 심지어, 그게 귀쟁이 궁술 고수들의 진법 중앙에 자리하게 되면…….”
그가 과장스럽게 어깨를 떤다.
“본 단주가 자색 장포를 입기까지 어찌 살아남았는지 모르겠다. 한 번 겪었거든. 용환검(龍環劍)이 즉각 튀어나오지 않았다면 골로 갔을 거다. 흑색 시절의 얘기인데, 반격할 거리가 되지 않아서 열받아 죽을 뻔했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두 번째 일격이었던 듯싶다.”
용환검.
내공으로 이루어진 무지갯빛 칼을 말하는 듯했다. 극상의 신비로움을 지녔는데, 남궁세가주와의 생사결 때 내보인 바 있었다.
정연신은 조용히 입술을 뗐다.
“십리일살에 본대 선배의 아우가 죽었다고 했습니다.”
“청안마검의 동생? 뭐, 제법 유명한 이야기였지. 초고수들이나 노리던 필살의 무공이 애송이를 꿰뚫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인근이 한바탕 떠들썩했던 걸로 안다. 너도 조심해라. 변초가 깃들어 있긴 한데, 워낙 빠르고 강맹한 탓에 어디로 튈지 모른다.”
“명심하지요.”
당대 마광익주가 담담히 대답했다.
* * *
“무룡회에 남궁제일검이 있지. 백기린의 백부야.”
고즈넉한 무덤가였다. 흐드러지게 누운 풀잎들 위로 청명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마광익주와 마광익 제일검이 나란히 섰다. 보름달마저 모습을 감출 만큼 깊은 밤하늘 아래였다.
별 무리만 널리 펼쳐진 채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는 게, 밤에 맺힌 이슬 같았다.
“나한테 말하더라. 아우를 잊어야 검법을 대성할 거라고. 스스로 자유롭고자 하는 기질에 얽매여 있다면서. 그러고는 가슴팍에 일검을 먹이지 뭐야.”
“뜬구름 잡는 소리군요. 칼잡이는 손만 잘 쓰면 되는데.”
정연신은 일부러 멀뚱히 대답했다.
그가 아는 청명은 백미려처럼 신비로운 과거를 지닌 인물로, 마광익에서 가장 의중을 알기 힘들었다.
초면부터 유쾌한 듯 의뭉스럽게 정연신을 믿어 주고 도움을 준 선배다. 애상과 어울리지 않았다.
청명이 피식 웃자, 그의 두건 뒷자락이 푸르게 살짝 솟았다.
“몸도 잘 써야 하더라고. 검객은 무인이니까.”
정연신은 침묵했다. 십리일살을 피하지 못한 아우의 일을 말하는 걸까.
돌연 청명이 목 뒤편에 깍지를 꼈다. 태염룡이나 종종 취하던 자세로 허공을 올려다본다.
“별에도 기운이 있다는 거 알지? 간혹 기파가 내려오잖아.”
“그렇지요.”
“간혹 기파가 사그라져서 흐릿하게 변하는 게 있지. 우리 씨족에서는 사성(死星)이라고 해. 죽은 별이야. 우리는 달이 얼굴을 비치지 않을 때, 기운 없는 별에다 잠든 씨족의 이름을 붙여. 청수는 저기쯤에 있지.”
청명이 검지를 뻗어 먼 곳을 가리켰다.
정확히 무엇인지 헤아리기 힘든 방향이었다.
정연신은 깊고 세세하게 볼 뿐, 빛나지 않는 별을 응시할 만한 안력은 지니지 못했다.
그건 명족 고수들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뭐, 난세니까 자연스러운 최후였다고 생각해. 무인에게 호상을 바랄 수 있나. 어디서 객사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청수의 시체는 온전히 수습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거든.”
“똑같이 만들어 줄 요량입니다.”
“글쎄. 일격에 당해서 고통도 없이 갔을 거야. 정말로 아픈 건 나였지. 대주야말로 조심해. 요절하기라도 하면 내가 마광익을 이끌어야 하는데, 지금은 이 든든한 사고뭉치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청명의 신비로운 벽안에 별빛이 아롱졌다.
정연신은 선배이자 수하 된 검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요절 안 합니다.”
그걸로 끝이었다.
당대 마광익주는 그 길로 천주지문의 수뇌부에게 기별했다.
모종의 목적을 전했고, 격한 반대에 부딪혔다.
“아니 될 일이오.”
“놈들은 본문의 위치를 특정하기 직전이외다. 끊임없이 지맥을 짚어 봤겠지. 들어올 때 그랬듯이, 마광익주의 출입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소.”
“반대하는 장로들이 많구려. 말이라도 들어 보는 게 어떻소?”
“자격 이전의 문제지요. 마을의 존폐가 걸린 일 아닙니까? 지금껏 죽어 나간 아이들이 몇인데.”
천하목의 호수에 방문한 암살자의 손에서 터진 분진이 문제라 했다.
만장일치로 십리일살의 추종향일 거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진법 바깥으로 나서는 순간 필살의 일격이 날아올지도 모른다고.
마을이 발각되는 것쯤이야 여반장이리라는 말과 함께였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데.”
정연신은 혼자 중얼거리며 길을 나섰다. 한 손에 멸마청강수의 법력을 두른 채였다.
뒤에서 큰 난리가 일었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어른이었다.
* * *
[나왔군.]웃음기 어린 음성이 팔방을 포위한 것마냥 웅웅 울려댄다. 서늘한 겨울바람을 고스란히 살갗으로 밀어내는 목소리였다.
육합전성(六合傳聲). 말하는 자의 위치를 짐작하기 힘들다. 초고수들의 전유물이라 했다.
[본좌는 암야전의 봉공으로, 고휘일(高諱日)이라 한다.]“고휘일. 청수를 죽인 자로군.”
마을의 술법진을 가르고 나온 정연신이 중얼거렸다.
봉공(奉公).
불교의 헌신봉공(獻身奉公), 멸사봉공(滅私奉公), 호법봉공(護法奉公) 등과 맥을 같이 하는 말이다.
강호에서는 주로 문파의 직책을 이른다.
사사로운 이익보다 문하를 위하는 자라 하여, 장문인 아래에서 만인지상의 실권을 지닌다 했다.
입황성주를 함부로 입에 담는다.
명족 간에도 깊은 은원이 있는 듯한데, 정연신이 마음에 담아야 할 바는 따로 있었다. 저놈이 성주님을 모욕했다.
[현 황실과 입황성이 난세를 만들었다.주변의 십 리조차 어지러울 지경이니, 우리 씨족을 상징하는 달조차 혼탁해졌느니라.]
“겁쟁이가 말이 많군.”
[난향십리(亂響十里) 일시세월(一矢洗月). 본문의 비기다. 화살 한 대로 네놈들을 절멸한다는 데에 요체가 있으니, 너는 마땅히 알고 가거라.]오연한 목소리가 육합전성으로 울렸다.
정연신은 눈을 감았다.
살갗에서 비롯된 기감으로 팔방의 울림을 파헤치면서, 보이지 않는 파장의 근원지를 끊임없이 역산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거슬러 올라가는 격이었다. 마광익주의 상단전 기감이 질주한다.
온갖 기파의 벽에 부딪혀 굴절된 한 줄기 음성의 길을 감각으로 훑어냈다.
스아아아―!
들리지 않는 파공성이다. 공력 파동의 영역에서 울려댔다.
능선과 나무숲, 돌벽과 나뭇가지들을 지나치고 갖가지 방향으로 꺾어지른 기감이 빛살처럼 나아갔다.
그리고, 끝내.
‘찾았다.’
웬 돌 봉우리에서 감각이 확 트였다.
열 명의 방진 속에서 활시위를 놓아버리고 있는 인물.
굉장히 탄탄한 느낌의 상체를 지녔다. 놈의 몸에서 무지막지한 기파가 폭발했다. 십리일살이 쏘아진 것이다.
기다란 손가락에서 휘몰아쳐 부서지는 경력이 폭풍 같았다.
땅 밑에서부터 주변의 돌벽까지 온갖 방향으로 실금이 내달리는데, 줄기줄기 회오리치는 경파가 천주산의 바윗덩이들을 갈가리 찢어발기고 있었다.
여파만으로도 주변이 크게 터져 나갔다. 화탄의 포격이 무색할 정도였다.
‘온다.’
화살대까지 철붙이로 이루어진 걸까. 짧은 시간, 서늘한 질감이 충격파를 꼬리로 물며 쇄도해 왔다.
상단전이 하얗게 불타오르고 있는데도 엄청난 쾌속으로 느껴졌다. 저건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직격당하는 순간 즉사에 이르고 만다. 검법을 내치면 칼과 함께 육신이 산산조각 날 것이다.
엄청나게 기다란 빛살로 이루어진 경로가 뇌리에 새겨졌다.
상단전이 새하얗게 발광한 지 오래였다. 당대 마광익주는 섬예란 별호처럼 사고의 속도를 다룬다. 몸을 감싼 시간이 느려졌다.
십리일살은 어검의 묘리를 지녔다고 했다. 이기어시(以氣馭矢)다. 변초를 가하기 힘든 시점에서 발을 떼야 한다.
정연신은 찰나에 가까운 시간을 수십 가지 지점으로 분절시켰다. 극히 짧은 시간을 헤아렸다.
‘지금.’
그는 상체를 살짝 숙였다. 이미 심장의 광륜을 회전시키고 있었다.
다시금 강건해진 십이경맥과 전신 혈도 속에서 능법광륜기가 끊임없이 내달린다.
그것은 경추를 단단하게 고정시켰고, 대퇴근에서 무릎 양옆 비복근에 이르는 승부혈(承扶穴), 은문혈(殷門穴), 위중혈(委中穴), 그리고 발바닥 용천혈에 별빛 같은 느낌으로 맺혔다.
진기 운용의 경로는 이미 완벽히 짰다. 어떤 의념을 담아야 하는지도 안다.
결정적인 오의. 상승 무공을 이루는 심상.
‘죽은 별. 어떤 밤공기에도 닿아 있는.’
사박.
다리를 움직였다. 신공으로 호흡하면서다.
다음 순간, 발밑에서 지진이 일었다. 순식간에 시야가 바뀐다.
아래에서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은은한 빛줄기와 함께 이지러졌다. 두 발이 별 그림자를 밟았다.
화아아아악―!
진법 안쪽에서 그의 등을, 까마득히 위를 바라보는 천주지문과 마광익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산세를 따라 치솟은 것이다. 정연신의 발끝에서 희미한 빛무리가 묻어나왔다. 능법광륜기가 깃든 경공이었다.
얇은 옷단처럼 풀린 광채의 끝단이 산등성이와 고목나무, 큼지막한 바위를 창백하게 물들였다.
밤중의 산자락이 희미한 경파의 빛에 젖어든다.
정연신의 발이 다음 흙바닥을 밟을 때도 그랬다. 그는 삽시간에 또 다른 빛을 풀었다.
흐릿한 광채와 함께 일직선으로 치솟는 모습이 산세를 둘러 가는 별자리 같았다.
콰아아앙!
아래 지점의 먼발치에서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미처 궤적을 틀지 못한 십리일살이었다.
정연신은 개의치 않았다. 눈이 이부자리처럼 쌓인 밤을 질주했다. 치솟는 고양감과 함께였다.
시야가 태풍의 줄기들로 이루어진 것마냥 흐릿하게 좁혀졌다. 숲의 풍경이 끝도 없이 바뀐다.
얼굴을 끼치는 바람이 차라리 몽실하게 느껴질 만큼 빨랐다.
그렇게, 다섯 걸음째를 밟은 직후였다.
사박.
어느새 큼지막한 돌 봉우리 위다.
서늘한 기파의 군집 사이로 발을 디뎠다. 열 명으로 이루어진 방진의 한가운데에 화살 한 대를 장전하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암야전의 봉공. 달빛이 스민 것마냥 창백한 피부에 미려한 턱선을 지녔다. 길게 걸친 장포의 옷자락은 잿빛이었다.
눈이 마주쳤다.
“……!”
주변의 잡것들이 무어라 소리치는데, 들리지 않았다.
반격의 때였다. 적들은 언제든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다. 호흡을 줘선 안 된다.
정연신은 재차 일보를 밟았다. 어느새 손아귀에 쥐인 북명검에서 메마른 바람이 흘러나왔다.
경공 자체가 검법이었다. 후욱― 전신에 흐릿한 바람을 휘감고 수장을 지나쳤다.
봉공 고휘일의 몸이 움찔했다. 그의 등 뒤로 사선으로 새겨진 궤적이 새하얗게 명멸했다.
스릉.
마광익주는 뒤돌아보지 않고 검을 집어넣었다. 화려하게 솟아올랐던 새까만 장포 자락이 너울지며 내려왔다.
“그 경공… 어찌…….”
육합전성으로 들려 왔던 음성이다. 비틀거리다 주저앉은 암야전의 봉공이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곧 죽음에 이를 치명상을 입었다. 정연신은 허리춤의 검파에 손을 올린 채 그를 힐끗했다.
“난향십리 일시세월이라 했지. 난리가 십 리를 울리니 화살로 뭘 어찌하겠다고.”
“마광익주……! 본문의 비기를 비웃지 마라. 이 일은 그저 이 몸의….”
“본 대주의 경공을 묻기에 얘기했다.”
암야전의 봉공으로서 최후를 맞이하는 와중이었다. 고휘일이 입을 다물었다.
당대 마광익주가 입술을 달싹였다.
아주 작은 목소리가 울렸다. 속삭임에 가까웠으나 봉공의 긴 귀가 움찔 떨렸다.
이내.
“흐, 그래… 너는, 입황성의 열일곱 보검이 맞구나…….”
잠시 헛웃음을 짓던 봉공 고휘일이 두 눈의 초점을 잃는다. 서서히 끼친 죽음을 맞이했다.
끝내 자신을 통렬하게 비꼰 적수의 말을 되뇌면서였다.
십리쟁란(十里爭亂). 사성광요(死星光窈).
십 리가 어지러워도
별빛은 그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