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468
◈ 절세 대제전 (3)
왼팔을 봉합시키는 의술.
신의와 정연신은 밤을 새웠다.
팔에서 어깨를 지나 전신으로 이어지는 경맥인 ‘수부 삼양경(手部 三陽經)’은 물론, 모든 혈관과 신경, 근육을 온전히 접합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짧고도 길었다.
봉합이 진행될수록 신의의 낯빛도 덩달아 나빠졌다.
술법무공이 동반된 의술이 끝나갈 때쯤에는, 마치 당장이라도 피를 토할 것마냥 얼굴이 허옇게 질려 있었다.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끝내 무거운 내상이라도 입은 듯했던 안색. 앞서 칼잡이들의 살업을 느낀다는 투로 얘기하더니, 실제로 어떤 말도 과장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신랄하면서도 호불호가 칼같았고, 또한 몹시 솔직한 인물이었다.
―이만 가게… 사흘은 드러누워야겠으니.
―반드시 보은하겠습니다.
―감히 천하를 입에 담았으면서 보은은 무슨? 그나마 차기 신검단주이기에 대충이라도 납득했던 걸세. 이제 자네의 시간은 자네 것이 아니야.
그렇다면 누구의 것인가. 달리 생각할 바가 없었다. 천하 민생, 양민들을 뜻했다. 고검진인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정연신의 팔을 이어붙인 신의는 당분간 두문불출하리란 말을 남겼다.
그렇게 완전히 녹초가 된 와중에도 청량한 느낌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여느 명족들과 다른 기질로 신비로웠다.
‘사람이라기보단…….’
신묘한 영성을 띠고 살아 움직이는 나뭇가지쯤 될까.
정연신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신의는 큰 은인이다. 굳이 무례하게 출신이나 씨족 따위를 파고들 이유가 없다. 감사함을 품는 것으로 족했다.
그때였다.
“핏줄이란 것이 참으로 신통하구나.”
목가장 내원의 마당에서 햇볕을 쬐던 정연신에게 늙은 거지가 다가왔다. 짚신이 바닥에 쓸리는 소리가 나지막했다.
전반적으로 추레한 행색인데도 세월에서 비롯된 위엄이 흘러나왔다.
달리 용두방(龍頭幇)이라 일컬어지는 개방의 주인.
천하에 깔린 거지들의 머릿수가, 그들이 주인 없는 개를 때려잡아 온 역사가 용의 머리에 비견되기 때문에 용두방이다.
천하 용 머리의 수장이라면 당연히 절세고수일 수밖에 없다.
정연신은 문득 신황의 이야기를 곱씹었다.
―당대 용두방주의 별호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주광신개(住光神丐)가 평상시의 개방주인데, 햇살이 퍼지는 속도에 비견되는 보신경을 지녔다 하여 주광(住光)입니다. 몹시 고절한 추종술을 익힌 인물인 만큼, 그자가 뻗은 손이 몸에 닿도록 두고 보시면 안 됩니다. 본성 총관부는 당대 개방주가 만리추종향(萬里追從香)을 얻은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신검단 멸섬대주는 과묵한 사람이지만, 공적인 일에 있어서는 완벽을 추구하는 인물이었다.
정연신에게 모종의 부탁을 받고 목가장을 떠나는 순간에도 혹시 모를 일을 조언했다.
―문사처럼 점잖은 성품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한 번이라도 비위를 거스른 자들의 사사로운 일상생활을 전부 꿰뚫고 다니는 탓에 망신살을 뻗친 이가 많습니다. 여러 고수들의 잠버릇까지 아는 자라 했습니다.
‘무서운 인물.’
정연신은 그간 망가뜨린 침상들을 생각했다.
“정가 연신입니다.”
공손히 양손을 모아 올린다. 당대 개방주는 전대 신검단주와 동년배로, 정연신에겐 까마득한 웃어른. 지극한 정성으로 예법을 취해도 어색하지 않았다.
애초에 구파 장문인들의 전장에 난입하려면 개방주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희미하게나마 느껴지던 정파 절대자들의 기파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항주는 엄청나게 넓고, 그 물길이나 암반 아래에는 무지막지한 지하가 뚫려 있다. 태모산성주가 진법으로 인근을 차단해 뒀을 가능성도 컸다.
반면에 개방주는 아직까지 복부의 검상을 치료받지 못했다.
신의가 몸져누웠으니 회복이 요원해졌다고 봐도 된다. 정연신은 이런 일마저 예상치는 못했다. 애석할 수밖에 없었다.
스윽.
그런 정연신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주광신개가 발 앞코를 살짝 돌렸다.
못 볼 것을 본 듯한 태도였다. 무언가 이래선 안 된다는 기색이 묻어났다.
“자넨 신검단의 실질적인 수장이 아닌가? 초면에 격식이 과하군.”
“대선배를 어찌 가볍게 대하겠습니까. 방주 어른의 위명을 익히 듣고 있었습니다.”
정연신이 포권을 내리며 말했다.
늙은 거지의 입매가 희미하게 꿈틀거렸다.
“…자네의 이름도 사해를 진동시키더군. 내 일찍부터 두 눈으로 보고 싶었네.”
주광신개.
본래 강호인의 별호는 심심찮게 과장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고수의 이름 앞에 별칭이 붙는 데는 이유가 존재한다.
정연신은 신황의 조언과 별개로, 언젠가 화산에서 고검진인이 소일거리로 풀어 준 말을 떠올렸다. 패협 마연적을 몹시 꺼리는 절세고수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야신개(大野神丐)는 술을 마신 개방주일세. 취권의 달인이지. 한번 취하면 눈에 뵈는 게 없어서 하늘을 이불로, 땅을 침상으로 삼는 개망나니란 뜻인데, 여러 후배들은 강호사에 통달한 인물이란 뜻으로 불러대더군. 자네의 외조부가 특히 그 별칭을 좋아했네. 작지만 큰 곰이라면서.
정연신이 곰을 떠올리지 않고자 애쓸 때였다.
“천하.”
개방주가 입을 열었다.
“인상적인 말이었네. 신검단주의 좌(座)를 넘보는 인물이라면 그리 단언할 만하지. 영촉신의의 반응을 보니, 자네의 그 말은 과장이 아니라 진심인 듯싶더군.”
울림이 깊은 목소리다.
작달막한 체구와 다르게 기척이 묵직했다.
“과찬이십니다.”
정연신이 시선을 옆으로 틀었다. 쑥스러운 한편으로 주광신개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대개 전대의 노고수들이 자신을 볼 때면 대뜸 외조부를 입에 담기 일쑤였는데, 당대 개방주는 패협이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얘기했다.
‘묵직한 분이시다.’
전대 신검단주의 손주답다는 둥의 말이 나왔다면 상종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니면 화산지약에 임했던 구파 장문인들이 주광신개에게 별다른 언질을 주지 않은 걸까. 어찌 됐건 정연신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나 노파심에 걸리는 게 있네만….”
주광신개가 언성을 낮춘다. 늙수레한 목소리에서 어딘지 메마른 느낌이 묻어났다. 서늘한 겨울바람 같기도 했다.
“경청하겠습니다.”
“자네와 같은 언행을 가진 이를 본 사람들은 대개 유아독존이란 말을 떠올리곤 한다네. 합공에는 장사가 없는 천하일세. 친우가 없이 고립된 패도(覇道)의 고수는, 그 무공이 아무리 고강하다 해도…….”
“단주 대리! 어디로 가셨소? 단주 대리!”
웬 청년의 외침이 주광신개의 말을 끊었다. 멀찍이서 울린 음성이다. 저기예요, 하고 크게 울리는 소녀의 목소리도 있었다.
입황대협 헌원창과 혈라광후(血羅光後) 신소빈.
앞서 성대하게 벌어진 화산지약에서 이름을 높인 청년 기재들이다. 푸른 장포를 궁장처럼 빼입은 신소빈의 경우, 점창 소검후와의 혈전으로 동격의 무위를 뽐낸 덕에 명성이 솟은 바 있었다.
별호에 붙은 후(後)는 섬예 무공으로 점철된 후계자를 뜻했다.
“지금 일어나도 되는 거 맞소?”
“뭐, 제대로 붙기만 했으면 정가동공으로……. 대주님, 괜찮으시죠…?”
정연신을 향해 모이는 이들.
두 사람뿐만이 아니다. 율하낭랑 이후 화산이 심혈을 기울일 만하다는 잠룡 유현과 당가주 당운황도 몇 개의 지붕을 재빠르게 밟고 다가섰다.
그들은 주광신개에게 짧은 묵례를 건넨 뒤 정연신을 살폈다.
“야,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어떻게 그 지경이 되도록 싸웠냐? 어차피 빈손으로 돌아갈 건데 양민도 양민이지만 너도 도망쳐도 된다고. 이거 붙은 거 맞아?”
“어깨 쪽 삼양경(三陽經)의 기파가 아직 어지럽소. 섣불리 출타해서 될 일이 아닌 것 같소만…….”
당운황의 말끝이 흐려진다. 항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미 짐작한 눈치. 그는 한때 사천의 절대자였다.
지금 정연신의 곁에 붙어있는 후기지수들보다는, 어느새 뒤쪽으로 일보 물러선 채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개방주 쪽에 가까운 것이다.
정연신의 입매가 희미한 호선을 그렸다.
“감사 인사가 늦었습니다. 먼 길을 걸음하셨는데.”
“본가의 식솔들도 함께 오려고 했소.”
당운황은 정연신의 공치사를 크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정연신이 절세고수들로 이뤄진 전장에 걸음하는 것을 꺼리는 눈치였다.
주광신개도 정연신을 나지막이 만류했다.
“무리하지 말게. 교룡이 나온다면 어차피 모든 일이 무용해지겠지만, 호룡술식을 막는 데 필요한 힘만큼은 이미 충분하네. 곡절이 있었으나 결국 구파의 장문인들이 모이지 않았나? 남은 건 명운에 몸을 맡기는 것뿐일세.”
“후배는 태모산성주와 명교주에게 용무가 있습니다.”
팔꿈치를 살짝 든 정연신이 어깨를 크게 한 바퀴 돌렸다. 순간 쩌저정―! 하고 반투명한 파동이 터져 나왔다.
정가동공으로 인해 모든 공력의 흐름이 기관진식마냥 맞물린 까닭이었다.
곧바로 만전이다.
“손은 많을수록 좋지요.”
“…….”
장내가 조용해진 가운데 유현의 외마디 뇌까림이 울렸다. 그건 또 뭐냐.
그가 적막을 깬 뒤에야 정연신이 입을 뗐다.
“출발하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제 얘기를 나눈 대로 항주를 봉쇄해 주시면 됩니다. 입황대협에게 신검단주 대리의 전언을 남겼으니, 관아에서도 움직여 줄 겁니다.”
예전과는 차이가 존재하는 언행이다. 조금 더 유연했고, 보다 명료해졌다. 곧이어 그는 주광신개와 시선을 맞췄다.
“선배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후배는 구파 장문인들께서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닥을 잡으셨는지 모릅니다.”
“난 자네와 달리 신의에게 간택을 받지 못했네만.”
뒷짐을 진 주광신개가 대꾸했다. 어쩐지 탐탁지 않은 기색. 정연신에겐 초탈이 무엇인지 깨달은 노인으로 비쳤다.
몹시 고마운 노선배이기도 했다. 끝내 침상과 마연적을 언급하지 않았기에.
“눈을 빌려주신다면, 후배가 손발이 되겠습니다.”
쉽사리 대답하지 않는 주광신개를 일별하고, 정연신은 멀리 있는 지붕을 향해 입술을 달싹였다.
―너.
―…….
―따라와.
순간 기와지붕이 검붉은 안개로 일렁였다.
* * *
입황성 총관부는 신임 자색에게 호의적이었다.
내부적으로도 그랬다. 청색 장포에 황금빛 황(荒) 자를 새긴 소년이, 본성 문사들을 일컬어 입황성의 기둥이라며 예를 취했을 때부터다.
그간 총관부는 대총관의 지시와 별개로 알게 모르게 정연신의 편의를 봐줬다.
여러 고관대작들이 입황검과 북명검, 여뢰에 목이 달아날 때마다 사건의 책임을 환관들에게 전가시킨 것도 그들이었다.
“관아의 일은 엄연히 동창의 관할 아닙니까?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두루 살폈어야지, 본성의 임무가 좌초되면 누가 책임집니까! 황상께 어떤 연유로 공납이 비는지 당신들이 고할 겁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절강의 순무(巡撫:최고 지방관)께선 사전에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귀하는 제정신으로 이 서신을 가져온 겁니까? 변방에 계신 순무께서 본성 자색의 행보를 미리 알아둬야겠다, 이런 얘기 아닙니까?”
“살아계신다고! 생환하셨다고 몇 번을 말합니까!”
묵향이 자욱한데도 향긋하지 않다. 명족이 길러낸 영물 새들의 배변 냄새 탓이다.
은회색 석조 책상들이 늘어선 대청이었다. 수십 명의 문사들이 붓으로 글귀를 써 내려가면서 입을 놀렸다.
어찌나 바쁘고 번잡스러운지 따로 객당을 잡지도 않은 채였다. 제각각 마주한 관리들과 눈을 마주하는 일도 없이, 저잣거리의 장사꾼들마냥 객을 응대했다.
“이보시게, 이게 예법에 맞는 겐가?”
“듣자 하니 북경에선 그런 걸 파는 것 같더구려. 소생은 인사 명부에 있는 본성 무인들의 이름을 읽을 줄만 알지, 과거에 응한 적은 없어서…….”
“…….”
총관부 문사들은 외부의 고관대작을 접대하는 일이 많다.
신검단 산하의 무력대와 임무를 연결하고, 여러 비선과 지부들을 통해 그들의 동향을 파악하며, 바깥 민생과 관아의 사정을 두루 헤아려서 온갖 정보를 일차로 걸러낸다.
그 와중에 온 천하에 가득한 관청들과 입장을 조율한다.
북경의 황실은 물론 지방 관아도 마찬가지다.
그 가운데 총관부 문사들의 태도는 강성 일변도였다. 아쉬울 게 없기 때문이다.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입황성에 발을 들인 자들. 이 순간 정연신과 천극문주의 결판으로 인해 격동하고 있는 강호의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소식이 빠르긴 정말 빨라. 언제 벌어진 일이라고 벌써 왔대?”
“사안이 사안이지 않았습니까? 총관부에서 섬시조(閃矢鳥)를 동원할 정도니까요. 그건 원래 북방 전선이 터졌을 때, 투신이 남하할 때나 날리도록 둔 맹금 아닙니까.”
“이제 긴장 좀 풀어도 되죠? 지금 온 강호가 난리 통이에요. 소문이 안 퍼진 곳도 곧 그렇게 될걸요? 글쎄 외도제일검이……!”
“풀긴 뭘. 북경에선 없는 황군을 끌어모아 항주로 보내야 하는지 연일 논의 중이라는데… 거기다 황상께서 끝내 북방으로 가신 지 오래라고 하잖아.”
북새통이란 말이 옳았다.
그러한 총관부 전각의 꼭대기 층에 세 사람이 둘러앉아 있었다. 대총관과 원로원주, 그리고 궁명왕이었다.
사락.
짙푸른 사조룡의(四爪龍衣)를 걸친 미청년의 소맷자락이 흔들렸다. 그의 손아귀에서 종이 한 장이 구겨졌기 때문이다.
입황성 총관부에 올라온 서찰을 함부로 다룰 수 있는 자, 지금의 본성에는 궁명왕뿐이었다.
“다시 종적을 감췄다?”
그의 긴 귀가 살짝 떨렸다.
정연신에 대한 보고서였다. 신의에게 인정받고 외상을 고치자마자 홀연히 사라졌다는 내용. 입황성 항주지부의 무인들은 끝내 신검단주 대리를 따라붙지 못했다.
“…또 잃을 수는 없습니다.”
대총관 임진명의 무성한 턱수염이 움직였다.
“궁명왕께 감히 아룁니다. 정 공의 귀천이 잘못 알려졌을 때, 뭇 관아에 크나큰 파급력이 미쳤습니다. 사마외도는 물론이고 당시에 준동한 무림 호족들, 소위 팔대세가란 곳이 어떤 움직임을 보였습니까? 자칫했으면…….”
“안다. 그래서?”
“본성 신검단 산하의 선목령주, 창천대주, 율령대주, 무극전주가 대기 중입니다.”
“…많이도 모였군. 용희명은?”
“그와 본성의 암검은 소식이 닿지 않는 문 너머에 있습니다.”
“그랬었지.”
그렇게 대답한 궁명왕은 잠시 침묵했다. 이어 대총관 집무실의 둥근 석탁을 타고 군왕의 한숨이 흘렀다.
“천하가 요동치고 있군. 그래, 내가 신임 자색… 광야일멸을 낮잡아봤다. 이제는…….”
그때였다.
불현듯 청아한 종소리가 울렸다. 산들바람 위에서 옥구슬이 구르는 듯한 음향. 창 바깥으로 비치는 새하얀 내성의 서까래에서 비롯된 소리다.
순간 대총관은 물론 궁명왕마저 입을 다물었다.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원로원주 신벽의 새하얀 턱수염이 흔들렸다. 그의 입에서 늙수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성주께서 왕림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