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534
◈ 남화광태극 (5)
‘둘 모두 미쳐 있다.’
그 생각과 동시에 옥암의 주먹이 까득 소리를 냈다. 순간 진법의 경계를 따라 펑펑거리는 굉음이 연이어 울렸다.
짧은 시간에 거듭 일으킨 기파의 폭발. 장내의 포위망을 구성한 무당 제자들에게 명한 것이다. 검진의 개진(開陣)을.
“장문인, 이젠 못 가십니다. 파문제자를 내어 주십시오.”
우우웅!
[칠좌은천(七座隱天)!]무당 제자 백여 명의 목소리가 하나 되어 울렸다. 몹시 침통한 느낌으로.
“너희가 기어이?”
그 기합에 당장이라도 떠날 듯했던 현공의 고개가 뚝뚝거리며 돌아왔고.
쿠르릉! 쩌저저저저적―!
불현듯 거대한 기막이 산산조각으로 박살 나는 동시에, 한 쌍의 인마가 허공을 질주해 내려왔다.
귓전을 먹먹하게 채우는 우렛소리와 함께였다. 말발굽이 대기를 때릴 때마다 지진 같은 울림이 땅거죽은 물론 공기마저 후려치고 쪼갰다.
[어디 있나. 광야일멸.]강맹하게 울렸다. 사람의 목소리인지 충격파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음성.
찰나지간 현공의 눈이 커졌다.
“그 몰골… 북방의 종자가 감히 본파에……?”
북방의 세작, 초광몽마.
미쳐버린 장문인.
사문을 바로잡고자 하는 무당 고수들.
돌연히 난입한 절세의 인마.
새하얀 운무로 둘러싸인 선산(仙山) 무당은 삽시간에 개세적인 격전지로 화했다.
옥암이 눈을 한 번 질끈 감는 한편, 무당산 특유의 온화한 공기가 공력 파동으로 불구덩이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목적이 무엇이냐?”
[너는, 칠(七).]쿠르릉!
순간 대기가 희멀건 벼락으로 가득 찼다.
허공답보로 육중하게 달려오던 인마를 현공의 검이 막아 세운 반동이었다.
사방이 번쩍거리며 명멸했고, 지상에선 앙상하게나마 푸르렀던 나무들이 태풍에 휩쓸린 것마냥 뿌리까지 뽑혀 날아갔다.
그 와중에 인마를 둘러친 철빛의 호신강기는 현공의 송문고검에 시뻘건 불티만 튀겼다.
베어지지 않는다.
“놈.”
현공의 눈에 전투마를 탄 사내가 비쳤다.
무지막지한 거구였다.
천극문주마냥 삿갓을 썼는데, 얼굴을 가리기 위한 용도인 듯했다. 김처럼 쉴 새 없이 이지러지는 기파 탓에 하관마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물음에 답하라. 헛된 싸움이다.]그 와중에 사내의 어조는 무심했다. 귓전을 때리는 것마냥 강력한 기파만 인근을 어지럽힐 뿐이었다.
순백의 햇살이 줄기줄기 쏟아지는 오후였다.
* * *
―우선 장문진인의 심마를 더욱 부추기는 기파의 근원부터 없애야 합니다. 초광몽마가 부리는 음공이 주된 원인이지요. 본파가 알기론 신투의 기예인데, 믿기지 않을 만큼 은밀하고 악랄합니다. 아… 또한 절대로 그자와 눈을 마주하지 마십시오. 정 공에겐 별다른 일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혹시 모르니…….
주세화의 조언이었다.
지금은 정연신과 함께 있지 않다. 그가 아래로 질주하기 시작하자마자 뒤로 밀려나간 까닭이다. 그녀의 경공은 태염룡보다 아래였다.
‘그리고.’
정연신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입마의 현공진인은 분명히 존재 자체로 큰 문제지만, 초광몽마까지 그런지는 모르겠다.
갑작스럽게 난입한 기파 탓이었다. 전에 느껴본 적이 드물 만큼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공력의 군집체.
심지어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두 명의 내가고수가 한 몸처럼 같이 다니는 느낌인데, 현공진인에게 밀릴 것 같지가 않다. 믿기지 않지만 분명히 그랬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간 정연신과 입황성은 무수한 싸움을 치렀고, 온갖 희생과 함께 결과를 냈다.
그 덕에.
이미 무림 강호는 어느 정도 정리된 상태였다.
천하에 기인이사가 무수히 많다지만, 이처럼 뜬금없이 천하오검과 무(武)를 나눌 만한 존재가 튀어나올 수 있을까.
세상을 독보하는 절세고수들이 있다고 해도 그렇다. 이 순간 느껴지는 난입자들의 기파는 몹시 이질적이었다.
투박한데도 정교했다. 동시에 파괴적이었다. 이처럼 상반된 기질을 한 몸에 품고 있는데, 어떤 무공을 사용할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이다.
‘완전히 다른 강호에서 온 게 아니면….’
정연신은 자신의 생각에 무심코 놀랐다. 동시에 옆에서 익숙한 기척을 느꼈다.
“이번에는, 그간 어디에 계셨습니까?”
허공을 가로지르던 그가 불쑥 물었다. 바로 곁에 신천화가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입매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늘 기억하고 경계해라. 이형공허를 성취한 술법무공의 고수들은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 온 공간을 보법의 간합으로 삼아버리니까. 틀림없이 북방 강호에도 두어 명은 있을 거다.”
“제게도 이형공허의 구결을 베풀어 주시면 되는 일 아닙니까?”
결코 뻔뻔한 물음이 아니다.
개인이 무공을 구걸한 게 아니라, 신검단주 대리가 대국적으로 공격 수단을 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당당해야 옳았다.
하지만 신천화는 묘한 웃음으로 고개를 살짝 저을 뿐이었다.
“이미 천하목의 줄기에서 줄기로 어디든 이동할 수 있지 않나? 이형공허를 따라붙는 신기(神技)의 검격마저 지녔고. 넌 이미 십전완미의 무인이야.”
“완벽하지 않습니다.”
“이미 충분해. 널 위해서다.”
사락.
그녀가 가볍게 뒷짐을 진다. 또 한 번 땅을 내리찍고 치솟은 정연신과 보폭을 맞추면서였다.
이 순간 사방이 일그러져 있을 만큼 쾌속한 경공 질주. 곧장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그 이상 술법무공에 발 들이지 않는 게 좋아. 삼라만상을 깊숙이 들여다본 이들의 최후는 대체로 끔찍했지. 내가 가르쳐 준 것들도 마찬가지야. 가벼운 기교로만 쓰고 칼질을 우선시해라.”
“끔찍했다는 건…?”
“시체가 무덤에 들어가듯, 자연지기가 온갖 사혈(死穴)을 침습해 단명하는 수가 있지. 이처럼 술법무공은 제 기량 바깥의 조화를 부리는 사술이다. 귀한 법보를 덕지덕지 두르고 다니는 게 아니면, 필연적으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어. 이를 경계하는 것이야말로 술법무공을 익힌 자들의 숙명이고.”
“…일전에 무당의 장문진인과 손을 섞었습니다. 자연지기로 신체 바깥의 힘을 부리시던데, 믿기 힘들 만큼 안정적인 기파가 느껴졌습니다.”
“그야 장삼봉의 무공이니.”
그것으로 끝인 양 별다른 설명이 따라붙지 않는다. 곧이어 신천화가 말을 맺었다.
“네 번. 내가 생전에 이형공허를 시전한 횟수다. 곧 죽을 놈이 아니면 남발할 공부가 못 돼. 차라리 그 삼청력을 온전히 깨치는 데 집중하는 편이 백번 낫지.”
“…….”
문득 정연신은 어떤 기시감을 느꼈다. 이런 대화를 이미 나눴던 것 같은데…?
‘입황대전 직후였나?’
분명했다.
이미 한 번 들은 이야기다. 진실된 신천화가 천하에서 사라지기 직전에. 즉, 그간 동행한 신천화는 어찌 된 일인지 제정신이 아니게 된 정연신의 허상이었단 의미.
파라라라라라락!
불현듯 소맷자락이 격하게 팔을 때렸다. 정확히는 그 감촉이 짙게 느껴졌다.
“…….”
방금 전까지 대화를 나누던 신천화는 사라지고 없었다. 정확히는 어느샌가 전방으로 멀리 이동한 상태였다.
흐릿하게.
그녀의 등이 보였다.
그 각진 어깨 너머로 웬 전장이 펼쳐져 있는데, 자줏빛 옷자락을 펄럭이고 있는 뒷모습과 몹시 어울린다.
한데 지금은 어째서인지 한 가지 모습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보석처럼.
‘아.’
저 자색의 무인은.
이 순간 정연신의 눈에 신천화로 보이다가도 용희명으로도 비쳤고, 찰나지간 마연적의 믿음직한 등으로 일렁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시 신천화로 돌아왔다. 어찌 됐든 하나같이 천하의 모든 전장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신검단주들이었다.
동시에 주화입마의 환영이기도 했다.
나이 열여덟.
백회혈을 오고 가던 천지간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폭증된 상황에서, 본성 무사들의 죽음을 연이어 대면해 온 청년에게 소리 없이 찾아들었던 심마(心魔).
마땅히 머릿속에서 부숴야 제 자신을 찾을 수 있을 터였다.
‘아니.’
정연신은 생각했다. 거기서 끝내면 안 돼.
쿠우우우웅!
십리광요의 추진 경파에 지면이 산산조각으로 박살 났다. 지진마냥 멀리까지 번져 나가는 균열. 또 한 번 발을 내디딘 것이다.
어느새 십칠 보째였다. 정연신은 등 뒤로 희끗한 충격파를 터뜨리며 공간을 완전히 격해 버렸다.
후우욱!
허공으로 치솟는다. 무당산의 전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지점.
찰나였다.
세 가지 모습으로 일렁이던 환영에 정연신의 몸이 겹쳐진 순간, 그의 기다란 흑발과 자줏빛 장포가 한층 더 짙어졌다.
포근했다. 유아독존이란 말도 떠올랐다.
‘당연하지.’
그들을 잇는 자.
온 천하에 자신뿐이니까.
마지막으로 정연신의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입황대전 직후, 참된 신천화가 천하에서 사라지며 건넸던 이야기들. 이제는 반추가 가능했다.
노고가 클 수밖에 없으리란 덕담과 함께 그 모든 말을 끝맺은 작별 인사가 있었다. 이 순간 정연신의 뇌리에서 또 한 번 울렸다.
―너 역시 신검단주다.
순간 시야에 반투명한 유리 조각들이 맺혔다. 그리고 완전히 박살 나 사라졌다.
투쾅――!
그 파편들의 이름은 여러 가지였다. 열패감, 조급함, 애상, 열등감, 두려움… 사람의 시야를 좁히고, 마음을 지옥불 위에 올려놓는 심마.
신천화의 허상과 몸을 겹친 정연신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발끝으로 널리 흘려보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파편들은 십리광요의 은은한 경파 부스러기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득하게 높은 곳.
온 세상이 티 없이 맑아졌다고 느낀 순간.
“저건 또 뭡니까?!”
“광야일멸… 아니, 연화나타, 빈객이시다! 어찌 이리 빠르게……!”
“…이미 검을 나눈 아해로구나. 찾지 말라 했을 터인데.”
“입황성 섬예? 왜 멀쩡해 보이는…?”
그는 이미 흐릿한 경파의 폭풍에 휘감긴 곳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의문을 터뜨린 미청년이 전장의 중앙에 존재했는데, 그 곁엔 현공진인이 함께였다.
‘초광몽마.’
정연신은 허리춤으로 손을 옮겼다.
스윽.
띠에 매인 칼자루를 움켜쥔 찰나, 고즈넉한 소나무의 문양이 느껴졌다. 송문고검으로부터 청량한 굉음이 일어난 것도 동시였다.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박살 나는 소리. 자연검의 위장이 깨진 것이다.
“……!”
순간 무당 신선들의 모든 시선이 송문고검으로 빨려드는 한편.
쿠구구구구궁―!
저마다 고절하게 터져 나오던 기파들이 원형으로 뒤섞이기 시작했다. 정연신의 손아귀에서 비롯된 힘이다.
어지럽고도 강맹한 공력 파동의 향연이 한 줄로 엮이기까지 찰나였다.
정연신은 어느새 역수로 쥔 송문고검을 무심히 내려찍듯 떨어뜨렸다.
퍼어어어억!
오래된 검이 초광몽마의 갈비뼈를 뚫다 못해 지면으로 고정시켜 버린다. 뒤늦게 그의 비명이 울리고, 현공진인이 눈매를 칼날처럼 세운 찰나.
일격의 충격파가 터지지 않았다.
파스스스―!
그저 널찍한 공터의 흙이 사방으로 밀려나며 하나의 문양을 그리기만 했다. 커다란 이무기가 똬리를 트는 것처럼.
문득.
지면을 힐끗 내려다본 현공진인의 움직임이 멎었다. 고매한 공력 파동을 발하던 무당 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
탁, 타닥―
땔감이 부스러지는 듯한 소리.
좌중의 발아래에서 새파란 태극이 은은하게 불타고 있다. 기나긴 청염(靑炎)으로 이루어진 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