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civil servant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226
226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과연 틀리지 않았다.
예전 한경의 판관이었을 때는 언제나 몸가짐을 조심하고 웃어른들을 아버지처럼 공경하던 연우혁이었지만, 황제와 황태자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권신이 되자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졌다.
일이 잘못됐다면 그것은 아랫사람들의 잘못이지 내 잘못이 아니다!
“과연 그래서 한경의 관리들이 구휼하고 있었던 건가. 실로 아름다운 일이다.”
“예! 저희도 하면서 내심 의아했는데 이제야 의문이 풀렸습니다!”
한경 사람들도 바보가 아닌 만큼, 한경 관리들이 피 같은 재산을 풀어 뿌리는데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 리 없었다.
물론 조정에서 고관이 온다는 소문은 들었다.
하지만 조정에서 고관이 오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 않은가. 올 때마다 매번 이러지는 않았다. 그리고 조정에서 고관이 오면 그 고관한테 직접 재물을 바치는 게 맞는 방법이지 백성한테 뿌리는 건 틀린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연우혁을 보니 그 의문이 풀렸다.
공명정대하기로 이름 높은 청백리답게 썩어빠진 한경 관리들의 뇌물을 거절한 게 분명했다.
‘아! 대인께서 베풀어주신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단 말인가!’
석공들은 새삼 연우혁의 은혜에 감격하여 엎드렸다. 연우혁은 놀란 내색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침착하게 행동하며 말했다.
“한경 관리들이 베푼 것은 한경 관리들의 공덕일 뿐. 너희들은 이상한 생각을 하면 안 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입은 그렇게 외쳤지만 석공들은 돌아가는 즉시 일꾼들에게 ‘연 대인이 돌아왔다’ ‘어쩐지 관리 놈들이 재산을 뿌리더라’라고 외칠 생각이었다.
이걸 퍼뜨리지 않는다면 입과 혀는 어디에 쓰겠는가?
* * *
“뭐라!”
이번 구휼 때문에 사라진 재산들은 한경 관리들을 마치 병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건 지부 대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언제나 인심 좋고 넉넉해보이던 얼굴은 홀쭉해졌고, 그렇게 좋아하던 술과 풍류도 사양한 채 침상 위에 옆으로만 드러누워 있었다.
그런 지부였지만 하인의 보고를 듣자 마치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그게 정말이냐!”
“예!”
도찰원이 작정하고 보낸 고관이 아닌, 연우혁과 용화공주가 유람을 위해 방문하는 것이라는 진상을 알게 된 지부는 마치 구름이 싹 개인 하늘마냥 밝은 표정을 지었다.
최근 들어서 이렇게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는가?
‘하늘이 한경의 청관들을 돕는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미리 알았으면 훨씬 손해가 덜했을 거란 아쉬움도 조금 있었지만, 지부는 그런 지나간 일을 붙잡고 일을 망치는 얼간이가 아니었다.
도찰원에서 작정하고 보낸 관리가 아닌 부마의 유람이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인 것이다.
그리고 냉정히 따져보면 아쉬워할 필요도 없었다. 한경에 뿌린 은자를 회수할 방법도 아직 남아있었다.
“성대히 주연(酒筵)을 준비해라! 한경의 관리들을 모두 불러 모으고! 내 연 대인을 손수 대접해야겠구나!”
“예!”
오랜만에 한경에 돌아온 옛 아들(이제는 아들이라고 감히 부를 수 없을 만큼 지위가 높아졌지만)을 대접할 생각에 지부는 기쁨으로 손바닥을 비볐다.
그러나 정작 주연 자리에 도착했을 때 지부를 반긴 광경은 예상과 조금 달랐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냐? 혹시 개방 놈들의 술자리냐?”
지부가 그렇게 말할 만큼 주연 자리가 소박했다. 장소도 관청, 그것도 넓고 화려한 정당이 아닌 형관 옆 공터에 걸상을 급히 깔아놓은 게 전부였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화도 나오지 않는 법. 지부는 자신의 말을 무시한 하인들을 혼내지도 못하고 눈만 끔벅거렸다.
“죄, 죄송합니다. 웬… 웬 포쾌 놈들이 와서…!”
“뭐, 뭐라고? 한경의 포쾌들이?”
“아닙니다! 다른 곳의 포쾌들인데…”
하인들은 울상이 되어서 변명을 시작했다. 그들도 지금 주연 자리가 많이 이상하단 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저번보다 더 커다란 군선을 빌려서 강 위에 호화롭게 주연을 준비하려던 하인들이었다. 그런데 한 무리의 무도한 포쾌들이 우르르 달려오더니 그들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네놈들은 지부 어른의 하인이렷다? 어디를 가는 것이냐?
-이, 이게 무슨 짓이십니까? 저희는 지금 명을 받아서…
-그래서 무슨 명을 받았냔 말이다! 감히 포쾌의 명을 거역해? 네놈의 머리통이 두 개는 되나보구나!
-아니 한낱 포쾌 주제에 여기가 어디라고… 억!
무슨 자기들이 금의위 교위인 줄 아는 포쾌들의 압박에 하인들은 두들겨 맞고 명령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포쾌들은 다시 한 번 묵곤을 휘두르더니 화를 냈다.
-연 대인의 말이 사실이었구나! 이 탐관오리 놈들! 여기 어르신들께서는 너희 탐관오리 놈들이 벌일 탐학질을 막기 위해서 오셨다!
-예?! 대체 이게 무슨…
-따라와라! 주연은 우리가 명령하는 대로 준비하도록 하거라.
“…이렇게 된 것입니다!”
하인들은 엉엉 울며 말했다. 지부는 상황이 혼란스러웠지만 어떻게든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연우혁을 따라다니는 무인들인가? 무인들은 원래 괴팍하고 검소한 이들이 많지. 그래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구나!’
자신이 준비한 주연치고는 너무 소박하게 진행됐지만 지부는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손님들을 제대로 대접하고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었다.
“자네들, 혹시라도 대접에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될 걸세. 부마께서 한 때는 한경의 관리로 지냈다지만 그 때를 잊지 못하고 경망스럽게 구는 자가 있다면…”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부 대인! 여기 있는 관리들 중 그렇게 어리석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금 통판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여기 있는 고관들 중 연우혁에게 아버지 대접을 받지 않은 이가 드물었지만, 지금 부마로 돌아온 연우혁에게 그 이야기를 꺼낼 만큼 멍청한 사람은 없었다.
원래 이런 옛 이야기는 상대가 꺼내주면 황송스러워하며 맞장구를 치는 용도였지, 아랫사람이 먼저 꺼냈다가는 바로 건방진 놈이 되는 것이다. 아쉬운 게 많은 한경 관리들 입장에서는 더더욱 조심해야 했다.
“연 대인께서 들어오십니다!”
“자, 자! 모두 준비하게!”
* * *
개방 거지들이나 즐길 법한 소박한 주연이었지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술 몇 잔 걸친 연우혁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여기 계신 분들이 없었다면 이 보잘것없는 후학이 어찌 한 몸 건사할 수 있었겠습니까’하고 외치자 분위기는 거의 천마가 돌아온 마교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심지어 그 냉혹하고 무자비한 궁 판관도 가슴 뭉클한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지부도 같이 눈물을 펑펑 쏟았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연 대인! 대인께서 출세하신 것은 오로지 대인의 공 아니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 대인! 저번처럼 아들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차라리 저를 때려죽이셔도 그런 말은 감히 하지 못하겠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사이에서 술이 좀 더 오가자, 지부는 슬슬 이야기를 꺼낼 준비를 했다.
한경 관리들이 모두 원하는 바로 그것!
…백성들한테 구휼 목적으로 뿌린 재산의 회수였다.
물론 한경 관리들이 아무리 금은보화에 미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백성들을 찾아가 일일이 다시 뜯어낼 만큼 미치진 않았다. 안 그래도 소란이 일어난 지 그리 길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진짜 지부의 저택까지 불탈 수 있었다.
한경 관리들은 훨씬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즉 한경의 거상과 부호들을 상대로 뜯어내는 걸 선호했다.
당연히 그냥 뜯어낼 순 없었다.
한경 백성들에게서 재산을 갈취한다면 한경 곳곳에 불길이 치솟고 관청에 습격이 들어오지만 한경 부호들에게서 재산을 갈취하면 바로 조정에 투서가 들어갔다.
하지만 조정에서 손꼽히는 총신이자 한경 출신인 연 부마의 이름으로 부탁한다면?
그런 부탁을 감히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크게 재산을 내놓을 것이다.
“연 대인!”
“왜 그러시지요?”
“연 대인이 온다면 직접 대접하고 싶은 한경의 부호들이 강가의 모래알처럼 많습니다. 이들을 한 번 불러 모으면 어떻겠습니까?”
“저는 여기 계신 분들이면 충분합니다.”
“…연 대인. 지금 이 대접이 조금 소홀히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저는 너무나도 아쉽고, 또 전하께서도…”
“흑!”
연우혁은 취했는지 갑자기 다시 눈물을 터뜨렸다.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하니 또 다시 옛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납니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연 대인!”
상황을 모르는 하급 관리들은 저 멀리 앉아 있다가 괜히 감동해서 외쳤다. 지부는 슬슬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또 어찌어찌 반 시진 정도가 지났다. 연우혁이 눈물을 멈추자 지부는 다시 말을 꺼냈다.
“연 대인. 그런데…”
“그러고 보니 여기 오면서 새로 세워진 송덕비를 보았습니다. 정말 감동했습니다.”
“!”
지부는 잘 됐다 싶었다. 마침 하려던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연 대인. 한경의 관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백성들을 그만큼 아낀 증표라고나 할까요! 그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한경 관리들은 청렴해서 대접이 변변치 않습니다. 한경의 부호들이…”
“흑흑!”
연우혁은 다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전하께서 그걸 보시더니 송덕비의 숫자가 생각보다 적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차마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무슨 그런 막말을?’
‘이만큼 송덕비가 있는 곳이 대체 구주에 어디 있단 말인가?’
한경 고관들은 진심으로 억울해했다.
송덕비가 이렇게 여럿 있는 지역이 얼마나 된다고!
“조금만 더 세워지면 제 체면이 설 텐데… 흑흑.”
궁 판관이 지부에게 눈짓했다. 무공을 익힌 고수들은 전음을 보낼 수 있었지만, 한경의 고관들도 그에 못지 않게 구체적인 전달이 가능했다.
괜히 연우혁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고 빨리 줄 건 주라는 뜻이었다.
지부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어차피 한경의 부호들에게서 다시 뜯어내면 되는 만큼 상관없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연 대인. 여기 청관들의 남은 재산을 긁어모아서라도 송덕비를 세워드리겠습니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연 대인의 체면을 위해서라면 저희는 목이 잘려도 웃을 수 있습니다!”
“흑흑! 한 대인!”
다시 한 번 자리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다시 말을 꺼낼 수 있는 상황이 오기까지 지부는 반 시진을 기다려야했다.
“커헉.”
“왜, 왜 그러십니까?”
“혈마를 상대하면서 입은 부상이 다시… 기쁘다고 과음한 게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연우혁의 얼굴이 창백해지자 한경 관리들은 더욱 기겁했다.
“대인을 모셔라!”
“크흑. 다들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인과 저희 사이에!”
“조금만 요양하면 괜찮아질 겁니다. 쿨럭쿨럭.”
포쾌들이 우르르 달려오더니 연우혁을 부축했다. 한경 관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연우혁의 건강을 걱정했다.
“안회가 요절했듯이, 원래 문일지십의 기재들은 하늘의 질투를 받아 그 수명이 짧지 않습니까? 무공을 익혔는데도 연 대인께서 저러니 실로 걱정입니다.”
“불길한 소리 하지 말게. 곧 괜찮아지실 테니까! 빨리 송덕비나 더 세워드리도록 하게. 대인께서 얼마나 부끄러우셨겠나! 전하 앞에서 체면이 서지 않으셨을 거야.”
“음…”
떠드는 한경의 고관들 사이에서 궁 판관은 순간 고개를 갸우뚱했다.
술자리에 있었을 때는 자신도 마치 홀린 듯 넘어갔었는데, 자리가 파하고 나니 무언가 이상함이 느껴진 것이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 * *
“아프다고 해라.”
“예.”
연우혁은 장원 안에서 느긋이 누운 채 버티고 있었다. 관리들이 재산을 더 푸는 순간 바로 야반도주할 생각이었다.
‘날 원망하지 마십시오. 다 여기서 배운 것들이니.’
연우혁도 한경 출신 관리였다. 관리들이 연우혁의 이름을 빌려 부호들에게 금은보화를 뜯어내고 싶어하는 걸 못 알아챌 리 없었다.
화를 내며 안 된다고 소리치면 지부의 체면이 상하고 우의가 상할 테니, 연우혁이 서로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가짜 와병밖에 없었다.
‘송덕비를 추가로 지어야 하니 아마 그동안은 날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저. 연 대인.”
“네 이놈! 아프다는 말을 뭘로 들은 것이냐!”
마두 한 명이 쭈뼛대며 말하자 연우혁은 크게 호통쳤다.
포쾌가 되어서 이렇게 어수룩하다니.
“그, 그게 아니오라. 무림인들이 대인을 뵙고 싶어합니다.”
“지부가 염탐을 위해 보냈을 수 있다.”
“그럼 돌려보낼까요?”
“네 이놈!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해서 어떻게 포쾌를 한단 말이냐!”
“……”
마두는 옛날이 미친듯이 그리웠다.
“당연히 아픈 척을 해야 의심을 안 하지 않겠느냐.”
“과연… 하지만 무인의 기감을 속이는 건 훨씬 어렵지 않습니까?”
“사정을 말하고 부탁하면 충분하다.”
“협박이군요.”
딱!
“네 이놈!”
“설, 설득을 잘못 말한 거였습니다.”
“그래. 들어오라고 전해라.”
포쾌가 말을 전하러 돌아간 사이 환관 한 명이 조용히 먼저 와서 속삭였다.
“대인. 무림인들이 찾아온 목적을 알아냈습니다.”
“오. 그게 무엇이지?”
“탁씨세가를 설득한 것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러 온 모양입니다.”
“탁씨세가?”
의아해하며 이름을 기억도 못하는 연우혁의 모습에, 동창 환관은 순간 탁씨세가 무인들을 진심으로 동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