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488
악당이 살아가는 방법 외전-15화
각종 부가 효과를 부여해 주는, 개당 최소 수십만 길드를 호가하는 최고급 도핑 포션을 까고 냄비에 붓기 시작한다.
새끼손가락만 한 앰플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바닥도 적시지 못할 정도로 미미한 양이었지만 포션의 개수가 두 자릿수를 넘을 무렵에는 냄비에서 넘칠 정도로 양이 늘어났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성훈은 곧 두 눈을 딱 감고 냄비를 입가로 가져갔다.
-히드라의 정제된 피를 섭취하셨습니다. 마력 운행 속도가 상승합니다.
-식스 센스 포션을 섭취하셨습니다. 육감이…….
-타오르는 투지 포션을 섭취하셨습니다. 용기와 자신감이…….
목구멍에서 창자가 튀어나올 만큼 끔찍한 맛이었지만 미리내의 요리로 단련된 성훈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원샷하는데 성공했다.
두근거리는 심장과 솟아오르는 투지.
본신의 힘만으로도 두려울 게 없었지만 지금부터 만나는 대상은 이 정도 준비도 모자란 감이 있는 위험인물이었다.
만약을 대비해 버프 스킬까지 발동을 마친 성훈은 두 눈 딱 감고 문을 열었다.
“나, 나 왔어.”
“……종원이랑 장기 미션하러 간다더니 예정보다 훨씬 빨리 왔네 뭔가 일이라도 있었나 봐”
“하, 하하하하.”
결혼생활 3년 만에 처음 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에 성훈은 마른 침을 삼키며 급하게 미리내의 전신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잠옷을 제외하면 특별히 아이템은 착용하지 않았다. 검도 없으니 일단 한시름 놓을 수 있는게…… 아니지! 심검劍이니 뭐니 해서 생각만으로 검을 만들어 내 상대방을 꼬치로 만들 수 있다고. 긴장을 풀지 마라.’
“…….”
“…….”
진정한 고수끼리의 싸움은 눈 깜짝할 사이에 결판나는 법이다. 그리고 역량과 기량이라는 부분에서 각각 사이좋게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두 절대강자는 모든 육감과 경험을 동원하여 상대방의 빈틈을 읽어 내려 하고 있었다. 영원과도 같은 순간이 지나고 미리내의 입이 움직이는 모습을 캐치한 성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스피드로 움직였다.
“당신…….”
“미안! 무조건 내가 잘못했어!”
뭐라 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무릎을 꿇은 성훈을 바라보며 미리내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살아남기 위해 짜낸 100%의 진심과 그동안 다져진 연기 덕분인지 미리내는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 듣고 싶어.”
‘살았다!’
부부싸움이라고 쓰고 생사결이라고 읽는 최악의 상황을 피해 간 성훈은 돌아오는 동안 백 번은 넘게 수정한 대본을 좌르르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설명이 이어질수록 확실히 미리내의 표정도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서 자유연맹이 하는 일에 태클 거는 사람이나 조직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예전 같았으면 그냥 일단 무조건 저지르고 봤겠지만 알다시피 내가 지 금은 둘도 없을 정의의 영웅,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오는 도덕적인 인간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어서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단 말이야”
“그래서 그런 일을 계획한 거야”
“그런 셈이지. 누가 보더라도 이상함을 느낄 수 없는 영웅 대 악당의 구도를 내 세워서 귀찮은 것들을 일거에 쓸어버리려고…….”
“그런데 왜 나에게는 비밀로 한 건데”
“그, 그게 워낙에 사소한 일이라서 굳이 너한테는 알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지.”
성민의 필사적인 변명에 미리내는 잠시 후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찜찜한 부분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좋아. 대신 다음부터는 나한테 말이라도 해 줘. 그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기나 해”
“그건 미안. 하지만 나도 그때는 엄청 놀랐다고. 대체 언제부터 정보 조직을 운용하고 있었던 거야”
“얼마 안 됐어. 당신한테만 힘든 일을 맡겨 둘 수는 없어서 조금이나마 힘이 될 까 해서….”
“……미리내!”
살짝 볼을 붉히며 말하는 미리내의 모습을 본 성훈은 그녀의 이름을 내뱉으며 살짝 손을 잡았다.
거의 협박에 못 이겨 시작된 결혼 생활이었지만 미리내는 정말로 훌륭한 동반자로 성장했다.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도 일편단심을 유지하고 부족함을 알고 더 나아지기 위해 매 순간마다 노력한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오직 검과 싸움밖에 모르던 그녀가 이렇게 변할 거라고 그 누가 알았겠는가! 어떻게 보자면 미리내야말로 지금 성훈이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메이커Maker 계획의 프로토 타입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대로 미리내를 껴안으려던 성훈은 이마에 와 닿는 부드러운 손가락의 감촉을 느끼며 그대로 몸을 멈췄다.
“일단 씻고 와. 흙투성이에 피 냄새가 풀풀 풍기잖아.”
“오케이! 조금만 기다리라고!”
성훈이 욕실로 들어가자 부끄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미리내는 바로 표정을 바꾸고 품에서 작은 펜과 종이를 꺼내들더니 뭔가를 열심히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보나마나 그 이유가 다는 아니겠지. 반대 세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자유연맹의 성세와 위치는 이미 확고해. 그렇게 큰 위험도 아니고 이렇게 부채질이라도 해 주지 않는 이상 하나로 뭉칠 수도 없는 그저 그런 놈들. 즉 굳이 피를 흘려도 되지 않는 일이라는 건데.’
반대 세력을 없앤다는 계획은 일종의 계륵이나 다름없었다. 해서 나쁠 건 없지만 한다고 해도 딱히 득 될 것도 없는 그런 미묘한 계획. 오히려 피해 확대나 전 후 처리 문제 같은 것까지 고려한다면 오히려 손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진짜 목적이야 뻔할 뻔 자였다.
‘어지간히 심심했었나 보네.’
거의 처음부터 성훈을 스토커처럼 따라다니고 바로 옆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계속해서 지켜봐왔다. 거기에 부부로 살을 맞대며 살아왔으니 이 정도를 읽는 것은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강하게 주장한다면 이 계획을 중지시킬 수도 있었지만 미리내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성훈이 저렇게 의욕이 넘치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봤다.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알고 있는 미리내는 이번 일로 성훈이 쌓인 스트레스를 다소나마 풀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남편이 걱정하지 않도록 아내는 열심히 내조를 해야겠지. 그럼 일단…….”
“어라 뭔가 말했어”
“아니, 그냥 혼잣말.”
막 욕실에서 나온 성훈에게 다가가는 와중에도 미리내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로스엔젤레스의 하위 도시로 갔다는 말은 그 곳의 지하 세력을 장악한다는 의도겠지. 거기서 위험이 될 만한 건 구파의 지원을 받는 흑사파니 치안 강화를 핑계로 당분간 도시 간의 이동에 제제를 걸어야겠네. 거기에 더해서 추가로 할건…….’
성훈이 언제 어디서나 사용하고 있는 표리부동 스킬을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구 사할 수 있게 된 미리내야말로 여러 가지 의미에서 성훈과 어울리는 진정한 천생연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 * *
랏시가 정찰을 다녀온 날을 기점으로 네브라의 세력과 블랙 버드 길드는 냉전 형식의 싸움에 들어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난히 블랙 버드 길드에게 승리가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서운 기세로 확장하고 있지만 제대로 내실을 다질 시간도 없었던 네브라에 비해 블랙 버드 길드는 모든 면에서 우월했다.
자금부터 시작해서 장사 방해, 마약 재료 수급, 여러 가지 유무형적인 견제를 곁들이면 오래 가지 않아 승부는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막상 패를 까 보니 전혀 예상 밖의 전개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루시아에게서 지원받은 어마어마한 자금은 오히려 블랙 버드 길드를 역으로 압박하기 시작했고 장사 방해 같은 원시적인 방법은 벌써 골수까지 홀린 중독자들이 끈질긴 방해에도 거듭 찾아와 큰 효용이 없었다.
가장 큰 효과를 거둘 거라고 생각했던 재료 차단은 전혀 효과가 없었다. 애초에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네브라는 1조 길드를 아낌없이 투자해 인근 도시에서 비 축분까지 남김없이 긁어모아 왔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리해지는 쪽은 블랙 버드 길드 쪽이었다.
“저 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표정 보니까 좋은 소식은 아닌가 보네.”
“2조와 3조에서 이탈자가 8명 나왔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1조에서도 2명…….”
“1조에서도 배신자가 나왔다고 내가 지금까지 그 놈들을 붙잡아둔다고 수익의 태반을 투자하고 혀가 닳도록 똥꼬를 빨아 줬는데 고작해야 며칠 못 견디고 나 간 거야”
“대, 대장. 조금 더 부드러운 단어를 선택하시는게…….”
“지금 그럴 여유가 어디 있어!”
랏시의 분노는 지극히 타당하다고 할 수 있었다.
흑사파에 대적하기 위해서 랏시는 무력을 증가시키는 걸 최우선으로 목표로 삼았다. 어중이떠중이나 좀 싸운다는 사람들이 모인 2조와 3조와 달리 1조는 과거 순위권에 있었던 랭커나 두각을 드러냈었던 강자로 구성된 집단이었다.
그만큼 그 무력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노력을 들였는데 설마 빛의 속도로 배신할 줄이야.
‘돈으로 고용된 놈들인 만큼 큰 신용은 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현재 남아 있는 현금이 얼마나 되지”
“들어오는 곳은 없는데 나가는 곳은 많다 보니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일단 급한 김에 마약 재료가 아니라 길드 수급으로 방향을 틀기는 했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습니다.”
원래는 블랙 버드 길드의 재정 상황은 이 정도로 나쁘지는 않았다. 평상시라면 지금의 몇 배는 되는 기간을 버틸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무리하게 시작한 냉전 과 상식 이상의 자금 압박,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위에서부터의 명령 타령을 하며 같이 움직이는 걸 거부한 흑사파의 움직임 때문에 위험이 더 빨리 찾아왔다.
“중국 놈들만 협력했어도 이 정도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텐데…….”
“저 그리고 사실 제임스가 비공식적으로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제안”
“……현재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빚 문서들을 액면가의 7할로 매입할 의도가 있다고 합니다.”
“그 개 같은 새끼가!”
쾅!
손님들의 성욕을 만족시킬 장난감으로 사용하든 미션에서 몸빵이나 화살받이로 사용하든 단순 노동력으로 활용하든 자유자재인 노예. 노예의 질과 양이야말로 지하 세력의 성세와 관련되어 있었다.
그런 노예를 합법적으로 부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빚 문서. 지금 빚 문서를 팔면 잠깐은 숨통이 트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제 살 깎아먹기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한참을 고민하던 랏시는 결정을 내렸다.
“애들 싸그리 긁어모아. 전쟁이다.”
“예 하지만 흑사파가…….”
“그놈들 문제는 나중으로 미뤄.”
“……알겠습니다.”
여기서 전력을 소모한다면 추후 흑사파와의 경쟁에서 불리할 것이다.
그러나 싸움을 피한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더 먼 미래를 대비하기 전에 지금 당장 말라죽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단기간 내에 승부를 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