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66
■ 165화. 헬리움의 밤 (2) □ ᓚᘏᗢ
아이실리아의 뒤를 따라가다보니 헬리움의 국왕이자 세실리의 아버지, 데스칼 드라트 아이실리아 빈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알현실이 아니라 손님을 응대하는 개인실에 머물고 있었다.
마족의 왕이니 카리스마가 넘치는 건 지극히 당연했지만,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와 나와 비슷한 체격을 지닌 미남이었다. 언듯 보면 가르츠처럼 젊어보이나 실상은 300살이 넘었다고.
세실리가 워낙 아이실리아와 닮았다보니 데스칼과 닮은 점을 찾기가 정말 어려웠지만, 두 부녀의 뿔의 형태가 똑같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이실리아의 뿔은 염소뿔처럼 뒤로 곧게 뻗어있었으니.
어쨌거나 저녁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세실리의 부모님과 함께 마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상견례나 다름없는 자리였기에 약간 긴장했지만 다행히 데스칼 쪽에서 편하게 대해줘서 조금 풀어질 수 있었다.
“우선 우리 마족을 구원해줬다는 부분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네. 마음 같아서는 왕위까지 넘겨주고 싶을 정도야.”
“그 정도까지는… 솔직히 마족의 인식이 바뀐 건 저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에요.”
“예상치 못한 상황이어도 제논 일대기 덕분에 우리 동족이 빛을 보기 시작한 건 변함이 없지. 목숨이 위험한 상황 속에서 우연히 누군가 구해줬다고 한들, 은혜를 입지 않은 건 아니지.”
루미너스, 그리고 모라에게서 들었던 말을 데스칼이 똑같이 말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이제는 내가 마족의 구원자라는 걸 겸허히 받아들여도 될 것 같다.
지금까지 살짝 부담스러운데다가 떠벌리기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피하고 있었지, 지금부터라도 명확히 인지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그런데 폐하.”
“아. 사석에서는 편하게 말을 놓아도 괜찮다네. 은인에게까지 존칭을 듣기는 내가 거북하거든.”
“그럼… 데스칼 님?”
“기왕이면 장인어른이라고 불렀으면 하네만?”
또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데스칼이 다소 유들유들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 세실리의 성격은 데스칼로부터 전해져 온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당장은 내가 어색하니 데스칼 씨로 부르기로 결정했다. 데스칼로 내가 편한대로 불러도 상관없다는 말을 남겼다.
“그래서 무엇이 묻고 싶은겐가?”
“왕비님의…”
“저는 장모님이라 불러주세요.”
왕비라는 단어를 입에 담자마자 아이실리아가 웃으며 정정했다.
“…아이실리아 님의…”
“장모님.”
“…장모님.”
“후훗.”
아버지와 어머니의 장난기를 동시에 물려받은 것이 세실리인 걸까. 그게 아니고서야 가끔씩 튀어나오는 소악마 세실리가 설명되지 않는다.
세실리는 내가 아이실리아를 장모님이라 지칭하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테이블 밑의 내 손을 슬쩍 붙잡았다. 그녀는 내 오른편에 앉아있었는데 자연스레 오른손을 만지게 된다.
그리고 손만 만진다면 상관이 없겠으나 그녀는 중지 손가락에 돋아난 펜혹을 집중적으로 만졌다. 까글까글한 펜혹을 다른 사람이 만져주니 기묘함이 들었다.
“…장모님의 이름이 미들네임에도 있던데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헬리움만의 전통인가요?”
“그렇다네. 헬리움의 왕과 그 자식은 왕비 혹은 부마의 이름을 미들네임에 넣는 전통이 있지. 만약 자네와 세실리 사이에 낳은 자식의 이름이 음… 혹시 생각해둔 이름이라도 있나?”
“…없는데요.”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질문에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답했다.
“그거 아쉽군. 일단 이름이 진이라고 치자면 진 드라트 아이작 빈인 것이지. 참고로 드라트와 빈은 왕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성이라네.”
“그렇군요. 드라트와 빈은 무슨 의미가 있나요?”
“드라트는 건국왕의 이름, 그리고 빈은 왕이라는 뜻이라네.”
여러모로 많은 사실을 얻게 되었다. 여담으로 데스칼이 예시로 둔 이름이 ‘진’이라는 건 넘어가도록 하자.
“우리 헬리움은 어떤가? 가르츠 경이 말하길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고 하던데.”
“그 말 그대로입니다. 헬리움은 사람이 사는 곳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래. 자네의 말대로야. 헬리움은 건국된 이래로 결코 사람 냄새가 나지 않던 적이 없어. 세상이 악마가 사는 곳이라니, 한 번 들어가면 결코 나오지 못 한다니 떠들어도 말이야. 우리는 사람이라네.”
평소 마음에 담아두었던 건지 나를 바라보는 데스칼의 눈은 따스하기 그지 없었다. 피처럼 붉었지만 무한한 감사를 품은 눈동자에 살짝 민망해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세실리는 테이블 아래에 있는 내 손을 만지느라 여념이 없었다. 슬쩍 그녀를 쳐다보니 싱글벙글 웃는 중이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 것일까. 나는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줬다. 그러자 세실리의 얼굴이 약간이나마 붉어졌다.
“보아하니 우리 딸에게 애정이 있는 것 같아 다행이군. 딸에게 들었을 때 마족의 은인이니 괜찮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예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거든.”
아무래도 나와 세실리가 테이블 밑으로 애정 행각을 벌인 게 들통난 모양이다. 그에 깜짝 놀라 데스칼을 바라보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옆에 앉은 아이실리아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는 특유의 성숙한 목소리로 안심이 된다는 듯이 말했다.
“사실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세실리가 제논을 찾았고, 더 나아가 애인 관계까지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심지어 아이작 님은 마리라는 약혼자까지 있다면서요?”
“아… 네. 그렇습니다.”
“저와 남편은 딸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있어요. 우리 마족에게는 짧은 순간일 수도 있지만, 아픈 후회보다는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는 게 좋을테니까. 제논 일대기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죠?”
“후회하는 게 아니라, 그리워하는 삶을 살 거라고 메리가 말했죠.”
대답은 세실리가 대신했다. 뒤이어 그녀는 테이블 아래에 꽉 잡고 있었던 손을 천천히 끌어올려 앞의 두 사람에게 보여줬다.
나는 처음에 당황했지만 딱히 숨기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순순히 그녀가 원하는대로 행동했다. 이윽고 연인처럼 다정하게 맞잡은 손이 테이블 위로 올려졌으며 세실리의 부모님도 그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엄마. 아빠. 저는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아이작의 곁에 몇 명의 여자가 있던간에 저는 아이작을 사랑할테니까요. 훗날 아이작이 모라님의 품으로 떠나도 저는 그를 그리워하면서 살 거예요.”
“누나. 난 누나를 끝으로 여자를 늘릴 생각이 없어.”
아델리아가 조금 걸리긴 해도 지금으로서는 세실리 이후로 여자를 늘릴 생각이 거의 없다. 마리가 선듯 승낙해줄지도 의문이고.
하지만 데스칼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데스칼은 내 말을 듣자마자 단호한 음성으로 반박했다.
“글쎄. 현실적으로 힘들 수도 있네만.”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자네의 가치를 다시 한 번 고려해보게. 이전까지만 해도 값을 매길 수 없었지만 세계수 뿌리의 오염, 그리고 악마 소환 징조 이후로는 나라의 지도자들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겠지. 세이비어에서는 성자로 우대하기 위해 추기경까지 급파했지. 자네를 건드리는 순간 우리 헬리움은 물론 세이비어까지 함께 나서서 그 나라를 철저하게 박살낼 수도 있다는 말이네. 그러니 건드리는 것보다는 회유책을 선택하겠지. 그리고 그 회유책은…”
“정략 결혼이죠.”
데스칼 다음으로 아이실리아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이에 데스칼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알려줬다.
“서로 사랑하여 이루어지는 결혼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지. 하지만 결혼은 일종의 계약으로 묶여있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네. 세실리에게 들으니 자네는 역사에 관심이 깊다던데?”
“네. 그렇습니다.”
“그럼 정략 결혼이 어째서 ‘방패’가 되어줄 수 있는지 잘 알겠군. 미네르바 제국 공작가 영애와 약혼을 했다고 했지? 그러면 자네가 정체를 밝히는 순간 테르스 왕국에서 자네를 견제할 수도 있어. 심할 경우 암살까지 시도할 수도 있는 노릇이고. 자네를 위해서라도 정략 결혼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네.”
“으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에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정략 결혼은 딴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으나 막상 직접 들으니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데스칼의 말처럼 마리와 결혼을 할 예정이니 사실상 미네르바 제국에 소속된 거나 마찬가지. 그러니 라이벌인 테르스 왕국 입장에서는 고까워질 수밖에 없다.
미네르바 제국은 물론, 헬리움, 그리고 세이비어에서도 나를 보호해주겠지만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는 것. 물론 정말로 테르스 왕국이 수를 쓰는 순간 집단으로 처맞을 준비를 해야 될 것이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구나.’
자국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닌, 나라끼리 이루어지는 정략 결혼의 힘은 매우 막강하다. 친자식이 사는 나라를 침략하는 순간 지도자의 평판은 급속도로 떨어질 것이며 타국의 신뢰도도 수직낙하할테니까.
아마 테르스 왕국의 왕녀가 헤일로 아카데미로 전학을 온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전에 내가 마이샬 영지를 출생지로 언급했던 탓에 테르스 왕국에서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자네 같은 경우는 국가조차 어찌하지 못할 정도의 위업을 쌓았으니 그런 면모가 더욱 두드러지겠지. 적이 많은 것보다는 아군이 많은 게 좋지 않은가?”
“그러면… 제 안전을 위해서라도 정략혼을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까?”
“안위를 우선시 여긴다면. 우리가 자네를 지켜주겠지만 한계가 명백할테니까.”
“복잡하군요.”
“정치가 그런 거라네. 뭐, 당장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어. 난 그저 가능성이 높은 상황을 알려준 것뿐이니까.”
데스칼은 걱정 말라는 듯이 대해줬지만 나에게는 전혀 아니다. 어쩌면 데스칼의 말대로 나와 주변인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영락없이 정략혼을 해야 할테니.
하지만 문제는 정략혼의 대상이다. 다른 나라는 물론, 미네르바 제국에서 확실히 못 박기 위해 리나를 정략혼 대상으로 보낸다면? 마리의 위치가 매우 애매해진다.
자그마치 황녀를 첩으로 둘 수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정치에 빠삭한 마리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농후하나 그래도 섭섭해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략혼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내가 잘 조율해야 무난한 가정사를 이어갈 수 있을 터. 여러모로 큰 책임감이 드는 선택지다.
“뭐, 귀찮은 정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군. 다른 주제로 넘어가도록 하세. 뭐든지 괜찮은지 자네가 편한대로 얘기해.”
“아. 제가 한 번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아이작 님?”
“네? 아, 네네. 말씀하세요.”
“아이작 님은 우리 딸의 어디가 좋으신 건가요? 애정이 있으니 우리 딸의 선택을 받아들인 것일테니 장모로서 궁금하네요.”
“으음…”
아이실리아의 질문을 듣고 세실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세실리도 어디 한 번 말해보라는 듯, 특유의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세실리의 외모를 천천히 훑어봤다. 요사스럽게 빛나는 붉은색 눈동자와 더불어 성숙한 미모. 시선을 살짝만 아래로 내려도 골짜기가 깊게 패일 정도로 큰 가슴이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다.
이것만 해도 세실리에게 애정을 느낄 여지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세실리가 눈웃음만 쳐줘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마당에 더이상의 설명은 필요없다.
그 어느 남자가 세실리에게 빠져들지 않을까. 하물며 세실리 쪽에서 먼저 애정을 과시하고 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이에 민망하다는 듯이 부끄러운 미소를 지었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콕 집어서 말하기가 힘드네요. 하나같이 부족함이 없는 여자에요. 얼굴도 그렇고 그… 네.”
“호호. 솔직해서 좋네요.”
“세실리가 모자람이 없는 아이긴 하지.”
아이실리아는 입을 손으로 가리면서 우아하게 웃었고 데스칼은 어딘가 뿌듯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처음부터 나에게 호감이 있어서 그런지 좋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앞쪽에서 흐뭇함이 피어올라가 속으로 안심하고 있을 때, 세실리가 자신을 보라는 듯이 맞잡았던 손에 힘을 주었다. 그에 세실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한 쪽 손으로 턱을 괸 채 따스함과 애정이 가득 들어있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포즈에 살짝 넋이 나가버린 건 덤.
마리가 특유의 활발함으로 나를 기운차게 만든다면, 세실리는 이런 매혹적인 분위기로 하여금 나를 끌어들였다.
“음. 이제 슬슬 식사가 준비된 모양이군.”
한동안 세실리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을 때 텔레파시라도 받았는지 데스칼이 입을 열었다. 세실리와 나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없이 데스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혹시 먹지 못하는 거라도 있나? 미리 말해놓겠네.”
“어지간한 건 다 먹을 수 있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그럼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아! 잠깐만요. 그전에 하나만 부탁할 게 있는데 괜찮나요?”
데스칼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아이실리아가 다급한 목소리로 제지했다. 그에 의문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자 아이실리아는 딱! 하고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놀랍게도 허공에 어느 책 한 권이 뿅- 하고 튀어나왔다. 보아하니 공간 이동과 관련된 마법을 사용한 것 같다.
뒤이어 아이실리아는 어딘가 익숙해 보이는 책을 나에게 건네더니 약간 흥분한 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부탁했다.
“식사하기 전에 사인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사인은 상관없는데 이건…”
“사크란의 최후가 담겨있는 제논 일대기 5권이에요. 현재 헬리움에 있어서 항상 가지고 다니는 책이죠.”
잘 생각해보니 가르츠도 공간 이동 마법으로 5권을 허공에서 꺼냈었지. 그 후로 나에게 사인까지 받았고.
나는 붉은 눈을 반짝거리며 기대하는 아이실리아를 보다가 피식 웃으며 늘 갖고 다니던 마법필을 꺼냈다. 이어서 책의 첫 페이지에 한글로 아이작이라고 쓴 사인을 새겨줬다.
“다 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 세실리에게도 사인을 해줬나요?”
“아뇨. 누나는 별 말을 안 해서…”
살짝 눈치를 보다가 세실리에게 조심히 권유했다.
“누나도 해줄까?”
“아니. 괜찮아. 난 어차피 확인 도장을 받을 건데 뭐하러 사인을 받니?”
“… …”
역시 섹드립은 그녀를 넘어설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쓰게 웃는 동안 아이실리아는 책을 품에 안더니 기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친필 사인은 제가 처음인 건가요? 정말 기쁘네요.”
“아. 사실 가르츠 씨가 먼저 받았습니다.”
“네?”
내가 사실을 털어놓자 아이실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했다. 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데스칼은 물론 세실리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세실리가 살짝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급히 질문했다.
“발락 경이 먼저 받았다고? 언제?”
“그… 헬리움에 처음 왔을 때 사인해줬지. 누나의 별장으로 가기 전에 말이야.”
“그렇단 말이지… 그런데 보고도 안 하고…”
“흠…”
세실리가 음산하게 중얼거리고 데스칼이 턱을 쓰다듬으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괜히 말했나 싶어 약간 불안해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세실리는 빙긋 웃더니 개의치 않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겠지. 일단 식사나 하러 가자.”
“…알겠어.”
“아참. 그리고 밤에 또 디저트 먹을 거니까 억지로 먹을 필요 없어. 알았지?”
“디저트? 무슨 디저트?”
내가 궁금해하고 있을 때 앞에서 아이실리아가 무언가 알아차렸는지 아, 하며 탄성을 질렀다. 데스칼은 볼을 긁적거리며 딴청을 피우는 중이었고.
그러한 반응들에 더욱 궁금해졌을 쯤, 아이실리아가 입꼬리를 진하게 올리더니 알쏭달쏭한 말을 꺼냈다.
“제가 특별히 만든 디저트에요. 헬리움에서 단 한 종류밖에 없는 디저트죠.”
“그런 것도 있어요?”
“네.”
고개를 끄덕이던 아이실리아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정말 맛있을 거예요.”
“…?”
* * *
그 말의 진의는 식사 후, 밤이 되고나서야 알 수 있었다.
“식사하기 전에 우리 엄마가 말했지? 헬리움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디저트라고.”
“…응.”
약간의 달빛만이 들어오는 침실 안. 단정하게 씻고 세실리와의 첫날밤을 기다리던 나는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모라에게서 받은 신성력이 무색하듯, 현재 내 심장은 미칠듯이 요동쳤으며 당장이라도 욕망에 휘둘릴 것 같은 느낌이다. 왜냐하면…
스르륵-
“어때? 우리 엄마가 친히 준비한 디저트가.”
검은색 속옷과 가터벨트. 이 단 두 가지만으로 설명이 될 것이다.
검은색 속옷은 세실리의 풍만한 가슴을 미처 다 가리지 못해 살이 삐져나왔고, 그 아래의 가터벨트는 남자의 원초적인 욕망을 자극시켰다.
심지어 그전까지 가운으로 가리고 있던 터라 현재 그녀는 이것 보라는 듯이 가운을 벗을 듯 말 듯한 자세로 섹시하게 서 있는 중이다. 덕분에 가슴은 물론이고 아르웬 못지 않은 넓은 골반이 부각되었다.
세실리는 정말로 서큐버스의 현신인 것일까.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엄청 맛있어 보이네.”
“그렇지?”
그 말을 하며 침대에 앉아있는 나에게 슬금슬금 접근하는 그녀. 암흑조차 온전히 가리지 못한 세실리의 자태가 시야에 선명히 들어왔다.
이윽고 나에게 가까이 접근한 그녀가 내 허벅지 위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가슴은 미친듯이 뛰기 시작하고 시선은 위아래를 왔다갔다 반복했다.
“아이작.”
“…응. 누나.”
“나에게 하고 싶은 말 없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나는 이미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그녀의 붉은색 눈동자를 보며 부드러이 웃어줬다.
“사랑해. 누나.”
“흐응~ 그것 말고는?”
이 요망한 서큐버스 같으니라고. 나는 샐죽거리는 세실리를 바라보다가 그녀가 원하는 말을 꺼냈다.
“잘 먹겠습니다.”
“그래. 그러… 으읍!”
세실리의 말은 미처 잇지 못 했다. 왜냐하면 내가 입으로 막아버렸으니까.
츄읍- 츕!
달짝지근한 딥키스를 시작으로, 진짜 밤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