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643
■ 642화. 안전 (2) □ ᓚᘏᗢ
세상의 수많은 발명품 중 대부분은 거의 군용품으로부터 시작된 경우가 많다.
GPS, 컴퓨터, 인터넷, 트렌치 코트, 통조림 등등. 많은 발명품들이 군용에서부터 시작됐다.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 과학이 발전됐다고 굳게 믿는 중이다. 이건 어느 정도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이 세상은 종족전쟁과 그 직후에 벌어진 인간 연합끼리의 내전을 제외하면 전쟁이 일어난 경우는 거의 없다.
그나마 대포를 비롯한 화약의 사용법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 이후로 이렇다 할 전쟁이 터지지 않아 발전은 멈췄다.
물론 세계가 세계인지라 시대를 한참 초월한 발명품들도 있다. 이제는 지긋지긋한 냉장고와 마력 기관을 탑재한 전차까지.
내가 이번에 세실리에게 부탁한 안전모도 이에 해당할 것이다. 안전모의 역사를 잘 모르지만 적어도 근대에 나와야 하는 물건이다.
플라스틱은커녕 철조차 귀한 중세에 안전모는 무슨 안전모. 강한 자만 살아남는 시대가 바로 중세다.
“이거면 되겠어?”
“응. 이거 만들기 어려웠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 투구를 만드는 거랑 비슷했거든. 네가 요청한 것처럼 최대한 단단하게 만들었고.”
그런 의미에서 안전모의 등장은 파격적이라기보다는 어리둥절할 것이다. 나는 세실리가 전달해준 안전모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최대한 전생의 것과 똑같이 디자인했기 때문인지 외양 자체는 내가 알던 안전모와 똑같다.
얼굴을 고정시키는 끈은 나중에 따로 장착하면 될 터.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비록 기술이 모자라 내피는 없지만 차차 보강하면 될 것이다.
퉁! 퉁!
주먹으로 망치를 찍듯이 내려찍으니 북을 치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강도와 탄성도 얼추 비슷한 것 같다.
물론 이것만으로 확실한 건 아니다. 나는 확신을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 떨어뜨리기 적당한 물건 없나 싶어서.
하지만 침실에는 책을 제외하면 마땅한 게 별로 없다. 바깥에 나가서 적당한 크기의 돌을 챙기는 게 나을 것 같다.
“누나. 잠깐 도와줄 수 있어?”
“네 부탁이면 언제든지.”
“고마워. 일단 마당으로 나가자.”
나는 안전모를 들고 세실리와 함께 바깥으로 나섰다. 중간중간 만나는 사람들마다 인사를 해주는 건 덤.
이윽고 저택 마당으로 나섰을 때, 나는 걸음을 옮기다 말고 잠깐 멈췄다.
“아. 잠깐만 기다려봐. 뭐 좀 가지고 나올게.”
“알았어.”
머지않아 세실리는 내가 들고 나온 물건들을 보며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수박귤 아니야?”
“응.”
나는 수박처럼 생긴 귤, 수박귤 2개를 각각 옆구리에 낀 채 돌아왔다. 겨울이 다가오는 시점이라 수박 대용으로 쓸 예정이다.
명칭을 보듯이 수박처럼 엄청 큰 귤이다. 뭐 이런 귤이 다 있나 싶지만 여기는 지구와 다른 환경이라는 걸 상기하자.
아무튼 세실리는 내가 머슬렌지를 들고 오자 어벙한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 나를 따라 이동했다.
뒤이어 연무장으로도 사용되는 넓은 공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남은 건 세팅이다.
“하나는 그냥 놓고, 다른 하나는 안전모를 씌울 거야.”
“방어력을 시험하는 거구나. 나는 뭘 하면 될까?”
“누나는 저기 있는 돌을 위로 올렸다가 그대로 떨어뜨리면 돼. 염력 마법은 사용할 수 있지?”
“물론.”
세팅도 금방 끝났다. 수박만한 귤에 안전모를 올리니 뭔가 귀엽긴 하다.
그 사이 세실리는 적당한 크기의 돌을 마법으로 둥둥 띄우기 시작했다. 내가 그만하라고 말할 때까지 높이 올라가는 돌.
이윽고 적당한 높이에서 멈춘 후에 그대로 낙하시켰다. 돌은 중력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퍼억!
그리고 수박귤이 떨어지는 돌에게 사망했다. 아예 못 먹을 정도로 산산조각나버린 수박귤.
조금 아깝긴 하지만 효능을 시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아버지에게 혼나지 않도록 잘 치우기만 하면 된다.
“이제 여기에 떨어뜨려줘.”
다음은 안전모를 씌운 수박귤 쪽이다. 혹시 파편이 튕기면 곤란하니 아까보다 좀 더 멀리 떨어졌다.
세실리는 의심 반 기대 반의 표정으로 있다가 내 신호에 돌을 낙하시켰다. 아까와 비슷한 속도로 떨어지는 돌.
빠악!
플라스틱과 돌이 강하게 부딪히는 소음이 퍼진다. 고정끈이 없어서 그런지 안전모가 붕- 하고 떴다가 그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놀랍게도 수박귤은 멀쩡했다. 그 높은 위치에서 맞았는데도 상처 하나 없다.
안전모도 마찬가지. 강철이었다면 찌그러진 흔적이라도 있을 텐데 안전모는 흙먼지만 묻었을 뿐이다.
정말 완벽하다. 세실리는 내가 원했던 안전모를 그대로 제작해줬다. 역시 마족도 손재주 하나는 좋은 편이다.
“와······ 이게 이렇게 단단했어? 강철보다 단단한 거 같은데?”
세실리는 흙먼지만 조금 묻고 멀쩡한 안전모를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이리저리 둘러보는 게 뭔가 귀엽다.
“응. 열에 약한 거지 은근히 단단해. 잘만 이용하면 강철보다 단단할 걸?”
“진짜? 전혀 몰랐네. 그래서 네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거구나.”
헬리움은 플라스틱을 만들 정도로 연금술이 뛰어난 국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플라스틱은 너무 일찍 발명됐다.
지구에서도 첫 발명 당시 플라스틱으로 장난감이나 만들었다고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총기류 및 다양한 곳에 사용된 거고.
이 세상은 더 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 대량생산을 위한 공장조차 제대로 도입되지 않았다. 사실 이게 가장 큰 요인이다.
제작도 힘든데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 다른 물질보다 가격 성능 대비에서 현격히 떨어지니 찬밥 신세로 지낸 거다.
“앞으로 공사를 하거나 위험한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이걸 쓰라고 할 거야. 이거 하루에 얼마나 만들 수 있어?”
“최대 5개 정도 만들 수 있어. 연금술사랑 대장장이가 힘을 합쳐서 제작하는 거라 상당히 까다롭거든.”
공장이 없다보니 저게 최대일 수밖에 없다. 사실 이것도 마법과 마족의 능력이 합쳐져서 만든 거지, 원래라면 꿈도 못 꾼다.
“가격은?”
“인건비만 생각해도······ 하나당 최소 30골드는 넘을 거야.”
원화로 치환했을 때 하나당 대략 300만원이라는 소리다. 무슨 안전모 하나가 그리 비싸냐! 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
수작업이라 그렇다. 멀리 가지 않아도 갑옷 세트 하나를 제작하기 위한 비용이 원화 기준 억 단위가 넘어간다.
비록 공장이 들어섰다지만 아직 완벽히 흡수한 건 아니다. 비싼 건 여전히 비싸다.
“강철 투구보다는 훨씬 싼 편이네?”
“헬리움에 썩어넘치는 게 석유라서 그래. 공장만 들어서면 이런 건 바로 만들 걸?”
그래도 가격 성능 대비가 미쳤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기사들은 상징 때문에 강철 투구를 쓰겠지만 다른 사람은 전부 안전모를 택할 터.
300만원이라는 가격에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가 생기는 것이다. 나는 새삼 플라스틱의 위용을 느낄 수 있었다.
플라스틱이 비운의 발명품으로 그대로 묻혔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건 조금 궁금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네. 인간이나 드워프는 몰라도 다른 종족은 귀 때문에 쓰기가 어렵잖아. 특히 마족은······”
나는 그리 말하며 세실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라 위로 우뚝 솟아난 뿔로.
마족은 뿔이라는 신체 특징으로 인해 투구를 쓰기 힘들다. 심지어 뿔마저 각기 다른 모양을 띄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세실리는 단순히 관자놀이에서부터 위로 솟은 뿔이지만, 가르츠는 양처럼 돌돌 말려진 뿔이다. 이 특징 때문이라도 상용화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건 그냥 깎아버리면 돼. 당장 축구를 하려고 뿔을 깎는 마족이 있을 정도인데.”
“그 정도야? 마족은 뿔에 큰 의미는 두잖아.”
“다른 사람이 만졌을 때만 한해서야. 뿔을 깎지 않는 이유도 외관상의 문제 때문이고.”
세실리의 설명은 매우 단순했다. 마족이 뿔을 깎지 않는 이유는 굳이 깎을 필요성을 못 느껴라서.
뿔을 깎는다고한들 흑발적안이라는 마족만의 고유 색상이 있다. 더구나 외관상으로 좋지 않아 다들 놔두는 거란다.
따라서 뿔을 깎는데에 불편함을 겪는 마족은 아무도 없다고. 그러면 다행이다.
“다른 종족은 음······ 지금은 인간이랑 드워프만 생각하자. 그게 나을 것 같아.”
“알았어. 이거 몇 개 정도 만들면 될까?”
“서류만 파악하고 알려줄게.”
며칠 후, 영지에 지내는 노동자들에게 안전모를 지급했다. 서류를 따로 작성할 필요없이 세실리가 전부 무료로 주더라.
다들 처음에 미심쩍어했다. 하기야 강철 투구도 아니고 생전 처음 보는 물질로 만든 투구이니 당연한 거겠지.
그래서 세실리에게 보여줬던 실험을 그대로 보여줬다. 큰 충격에도 수박귤이 멀쩡한 모습에 다들 납득하고 쓰기 시작했다.
겸사겸사 리나에게도 소개시켜줬다. 나는 몰라도 이제는 무역으로 넘어가서 ‘협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닥치고 내 돈 가져가!”
“고마워.”
협상은 무슨 눈에 불을 켜고 교역을 맺으려고 하더라. 세실리로서는 제국의 돈을 쓸어담을 수 있었다.
솔직히 둘 다 이득인 것이, 헬리움은 막대한 부를 쥘 수 있었으며 리나는 엄청 싼 가격에 강철보다 단단한 안전모를 얻을 수 있었다.
더구나 비밀리에 갤리온을 제작할 예정이다. 숙련공들 중 한 명이라도 다치는 순간 계획이 틀어지는데 그걸 최대한 막는 게 안전모다.
‘드워프의 반응이 궁금해지네.’
조만간 소식이 퍼져서 마키나까지 닿기를 기다리면 된다. 그러면 헬리움은 말 그대로 돈이란 돈은 다 먹겠지.
이래서 기술 및 자원 독점이 무시무시하다. 전생의 중동도 석유로 미국을 찍어눌렀던 적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 또다른 안전 장비가 없나 싶어 열심히 구상하고 있을 때, 전혀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반응이 터졌다.
[안전모를 쓴 모험가와 쓰지 않은 모험가의 생존 비율. 안전모를 쓴 모험가 쪽에서 더 높은 생존 비율을 달성해······] [단 30골드로 당신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강철보다 가볍고 단단한 투구가 있다면 믿을 것인가!] [본래 안전모는 인부들을 위한 장비. 최초로 도입을 시도한 사람은 제논이며······]하루 먹고 살기 바쁜 모험가들의 생존률이 대폭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