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679
■ 678화. 자유와 방임 (2) □ ᓚᘏᗢ
지구와 이 세상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한다면 이 두 개를 꼽을 수 있다. 마나와 몬스터.
마나와 몬스터는 지구에 있어서 소위 ‘판타지’라 칭해지는 요소지만, 이 세상은 일상 속에 녹아있다.
마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주 중요한 에너지이며 몬스터는 인류 최대의 위협이라 여길 정도로 위험한 존재들이다.
여기서 마나 관련 기술이 발달된 근본적인 이유도 몬스터 때문이다. 마나가 없었더라면 인류는 아직까지 몬스터와 경쟁하고 있었겠지.
물론 선천적으로 신체 능력이 몬스터와 비등한 수인이나, 마법을 숨 쉬듯이 사용하는 엘프는 몬스터의 위협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하지만 이들조차 오우거 이상의 몬스터는 버겁다. 먼 과거, 수인은 성인식을 치를 때 오우거 3마리의 머리를 따고 오는 문화가 있었다.
이처럼 태생적으로 인간보다 우월한 능력을 지닌 종족들조차 몬스터는 ‘위협’으로 남아있다.
[우리의 이야기가 끝난 시대라면 나도 아버지의 의견을 받아들였겠지. 하지만 그 당시 인류는 약해도 너무 약했단다. 문명을 세우고 전쟁까지 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제대로 된 ‘나라’라 부르기에는 어려웠지.]“그래서 신들이 인류를 도와주고, 그에 따라 숭배를 한 거군요.”
[그렇지 않고서야 인류는 몬스터에게 멸망했을 테니까.]신화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신의 축복 혹은 도움을 받은 인간이 수많은 괴수들을 토벌하는 이야기.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헤라클레스가, 게르만 신화에서는 지크프리트가 있다. 북유럽 신화는 아예 자기들끼리 공멸했다.
이렇듯 신화에서 다양한 괴수가 등장하며 영웅 혹은 신들이 직접 토벌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 이야기가 숭배받는 건 덤이고.
부모란 응당 자식의 독립을 도와주는 존재. 그러나 자식이 독립할 ‘준비’가 될 때까지 부모가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의무다.
하지만 만물의 아버지는 그것을 간과했는지, 아니면 인류를 너무 믿었는지 몰라도 무작정 방임시켰다.
진정으로 인류를 사랑하는 신이라면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됐다. 너무 먼 미래를 지켜본 것이다.
[무엇보다 그때 당시는 신과 인류의 거리가 매우 가까웠던 때란다. 가끔 가다가 신과 인류 사이의 아이가 태어나는 일도 있었지. 혹은 영웅이 신화적인 업적을 이루어 신으로 승천하는 경우도 간간이 있었단다.]“평범한 신화 시대였군요. 그런 세상에서 느닷없이 방임을 결정했으니······”
전쟁이 안 일어나는 게 이상할 정도다. 전쟁 중에 이산 가족이 생기는 것조차 큰 비극적인데 이건 윗선의 명령이다.
무엇보다 당시 인류가 신들의 도움 없이 몬스터, 그것도 드래곤 같은 재앙급 몬스터와 싸워 승리할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우리 아버지조차 군대의 도움을 받고 겨우겨우 토벌했음에도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그 트라우마로 스스로 공적까지 감췄다.
[많은 신들이 아버지에게 간청했지. 적어도 몇 백년 정도만 지켜봐달라고. 인류는 너무 나약하다고 말이야. 다른 건 몰라도 가족들과 헤어지는 것만큼은 싫었던 신들이 많았단다.]“그런데도 강경하게 나선 건가요?”
[네가 살던 세상, 그러니까 지구의 예시를 들며 묵살했지. 지구는 신들을 부르는 목소리가 많았음에도 대멸망을 진행시켰다는 식으로.]이건 지구의 신들 입장도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 우선 대멸망이 일어난 건 거의 확정적이지만 시간대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전에 언급했듯이 로마는 올림푸스 신앙에서 기독교로 넘어갔다. 그 시점을 기준으로 고대에 대홍수가 일어났다고 보면 된다.
“······혹시 이 세상의 인류도 신들을 욕하는 걸 넘어 신격을 깎아내리거나 그랬나요?”
“그딴 미친 사람이······”
[있었단다. 정말 많이.]내 질문에 케이트가 말도 안 된다고 부정하려던 찰나, 루미너스가 긍정적인 대답을 그렇다.
신앙심이 충만한 케이트로서는 경악하다 못해 부정하고 싶은 일일 터. 그래서인지 입을 떡 벌린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평소에는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그녀지만 신과 관련된 일에는 표정이 다채롭게 변하는 것 같다.
[대부분 아이가 투정을 부리는 식으로 생각했지. 선을 넘는다면 천벌을 내렸지만 말이다. 너희 세상도 비슷한 일이 많지 않았니?]“틈만 나면 신에게 욕설을 뱉거나 깎아내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런 말이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은 그 인성이 참 볼만하다. 그걸 아는데 깝치는 그리스인들도 대단하다.
듣는 사람이 없다면 욕하는 게 나랏님이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듣는 사람이 많은데도 신들을 대놓고 폄하했다.
심지어 어떤 왕은 신들을 ‘시험’하기 위해 자기 아들로 국을 끓여 대령했을 정도. 당연하게도 신들은 그 왕에게 천벌을 내렸다.
“그러면 인간의 극악무도함이 도를 지나쳐 멸망시켜야 될 정도였나요?”
[인류로 치자면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정도였지.]지구의 신들이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한 대홍수.
대홍수를 일으킨 원인을 보면 대부분 하나로 귀결된다. 인간들의 죄악이 극에 다다라서.
도대체 얼마나 죄악이 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모격인 신들조차 ‘답이 없다’라 생각한 것이다.
이후로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대홍수가 지나간 후에 야훼가 말했다. 다시는 물을 이용해 인류를 심판하지 않을 거라고.
그러나 물로 심판하지 않는다는 거지, 다른 방식으로 심판을 가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가장 큰 예로 요한 묵시록이 기록돼 있는 종말론이다. 어떤 형태의 종말이 다가올지는 모른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케이트가 약간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에 나는 그녀를 쳐다봤다.
무언가 한참 생각하던 그녀는 이내 낮게 깔린 목소리로 알아듣기 쉽게 정리했다.
“아이작 님의 세상은 인류의 잔악무도함이 극에 달해 신들께서 눈물을 머금고 멸망시킨 반면, 만물의 아버지는 그런 사정도 모른 채 멸망시키려 들었다는 겁니까?”
[정리하자면 그렇지. 우리도 지구의 사정은 뒤늦게 알았단다. 사정을 알게 되었을 때는 너무 늦었고.]“아이러니한 일이네요. 아이작 님의 세상은 인류가 오만했고, 이 세상은 최고신이라는 작자가 오만에 빠졌으니.”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자 있을 법한 속사정이다. 나는 케이트의 정리를 듣고 괜스레 착잡해졌다.
부모는 자식이 살인을 해도 감싸줄 존재다. 더 나아가 많은 부모가 자식의 죄의 덮기 위해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지구의 신들은 눈물을 머금고 벌을 내린 셈이다. 가슴이 찢어지다 못해 큰 상처로 남게 되는 일이었겠지.
[지구의 신들은 경험으로 본인들의 방식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단다. 또한 그들은 이리 말했지. 자신들의 존재가 널리 알려진 이상 피조물들은 또다시 자신들을 찾을 거라고. 자신들은 부모이기에 그들의 부름에 응답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실제로 그랬죠.”
신화는 사라지지 않고 기록으로 남아 이어졌다. 그리고 인류는 그것을 철학으로 삼고 본인들만의 문화를 만들었다.
대홍수는 신들이 인류에게 행한 심판임과 동시에 부모로서의 회초리에 가까웠을 것이다.
반면 만물의 아버지는? 의무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으면서 무작정 회초리만 들었다.
자식이 아직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심판을 내리려 하니 다른 신들로서는 ‘폭력’에 지나지 않았을 터.
[만약 아버지가 지구의 사정을 좀 더 알고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겠지. 이제는 의미가 없는 가정이구나.]“너무 상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루미너스 님. 루미너스 님께서는 할 일을 하셨을 뿐입니다.”
루미너스가 착잡하다는 어조로 말하자 케이트가 위로해줬다.
루미너스는 자식으로서 부모를 살해하는, 가장 큰 죄인 패륜을 저질렀다.
하지만 부모로서 자식을 지키기 위해 응당 해야 할 의무를 지켰을 뿐이다. 그 누구도 그를 탓할 이유가 없다.
[고맙구나. 그러나 나의 죄는 너희들이 직접 치르게 해줘야겠지. 난 그때를 기다리마.]“루미너스 님을 향한 신앙, 그리고 신격이 깎일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 일이 알려진다면 루미너스는 더욱 찬양받을 것이다.
비록 지혜를 잃은 나머지 광기에 휘말렸지만, 그 누구라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루미너스는 본인의 자식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비극이란 비극은 몽땅 집어넣은 셈이다.
“다만 문제는 제가 살던 신들과 이곳을 연관짓는 건데······”
“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장 거슬리는 문제점을 언급하자 케이트가 걱정말라는 듯이 말한다. 이에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만, 케이트는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부분은 아이작 님의 존재만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미 아이작 님 덕분에 다른 세상의 존재가 알려졌으니.”
“······그걸로 될까요?”
내가 반신반의한 목소리로 묻자 루미너스가 거들어줬다.
[지구의 신들이 우리에게 말하더구나. 지구는 하늘 밖으로 진출했음에도 다른 세상의 존재를 모르는데 이곳은 아니라고 말이다.]“··· ···”
[지구의 속담으로는 죽 쒀서 개 준 꼴이라고 하더구나.]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다.
* * *
루미너스와의 대화가 끝나고 아이작은 곧장 예배실 밖으로 나섰다.
다만 케이트는 루미너스가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그대로 공간 속에 남겨뒀다.
루미너스 말로는 케이트의 신성력으로도 약간이나마 유지할 수 있다고. 대신 시간을 느리게 흘러가는 건 힘들다고 말했다.
어찌 됐거나 새하얀 공간 속에는 케이트와 루미너스 단 둘이 남게 됐다.
[계획하던 일은 잘 진행되고 있니?]루미너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미래를 읽을 수 있음에도 케이트의 계획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뉘앙스다.
그 이유는 지극히 간단한 것이, 케이트의 운명은 어느 순간부터 아이작과 함께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들은 아이작의 미래를 모른다.
따라서 케이트의 미래는 어느 정도 읽을 수는 있어도 변동이 심해 사실상 무의미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케이트는 루미너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존경심이 담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루미너스 님의 비호와 훌륭한 조력자 덕분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행이구나. 그럼 그 아이와 언제쯤 이어질 생각이니?]“그건······”
장난스러운 질문에 케이트가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했다. 누가 보아도 사랑에 빠진 여인의 반응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루미너스는 흐뭇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복잡한 심경이 들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케이트는 아이작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 신앙적인 의미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말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두 가지 모두 섞였다고 보면 된다. 그렇기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은혜를 받고 싶지만, 아무래도 체리와 상의해야 되니까요.”
[시기를 맞추기 어렵겠구나.]“네. 만약 세실리 님께서 먼저 아이를 품으면 모르지만, 최근들어 너무 바빠서 힘듭니다.”
케이트도 마리가 어떤 연유로 임신했는지 알고 있다. 약 같은 건 아이작의 은혜(?)를 막을 수 없었다.
피임도구를 사용하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케이트는 그러기가 싫었다.
감히 도구따위가 아이작이 내려준 은혜를 막는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것만큼은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이런 면에서는 고집이 세구나.]루미너스도 케이트의 황소 고집을 잘 알고 있기에 따로 조언하지 않았다. 이건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다.
아이가 무작정 떼를 쓰는데 부모가 어찌할 도리가 있겠나. 그저 조심하라고 당부할 수밖에 없다.
“설령 시간이 오래 걸려도 상관없습니다. 당장은 서로 바쁠 테니 만날 시간도 없겠죠.”
[그렇겠지.]“그런데······ 루미너스 님.”
[말하렴.]케이트는 약간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꺼냈다.
“정말로 괜찮으신 겁니까? 저는 루미너스 님의 신앙을 유지한 채로 아이작 님을 보필하고 싶습니다.”
[괜찮단다. 나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기억되는 것일 테니. 그리고 너희를 보살피지 않는 것도 아니란다.]“하지만······”
[나는 너무 오랫동안 너희들을 지켜봤단다. 짧은 시간동안 아주 훌륭히 성장했더구나.]회환에 잠긴 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루미너스. 케이트는 복잡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이제 품에서 떠나보낼 때가 됐지. 그리고······]루미너스는 웃음기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그 아이에게 한 방 먹이고 싶은 마음도 있단다.]* * *
많고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모두가 잊지 않은 게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아이작이 무수한 연참으로 찍어내듯이 작성한 ‘피와 강철’. 이것 또한 거의 예언서로 취급되는 중이다.
그리고······
[악마의 화신의 최후. 지하 벙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히틀러.]악마의 죽음과 동시에 ‘세상의 파괴자’가 도래할 때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