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170)
Chapter 170 – 첫눈
“아 진짜? 마츠다 군이랑 같이 단체전에 나간다구?”
놀란 듯한 미유키의 물음에, 뒷좌석에 앉아있던 테츠야가 앞좌석 사이로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미유키를 쳐다보며 활짝 웃었다.
“응. 응원 올 거지?”
“음… 언제 하는데?”
“새해 전에. 수학여행이랑 겹치는 시기는 아냐.”
“그래? 그러면 가야지. 꼭 응원할게.”
“알았어.”
만족스런 표정으로 헤실거리는 테츠야. 쪼개는 꼴을 보니 짜증이 난다. 미유키와 할 대화 주제를 하나하나씩 까먹는 이 새끼가 너무 싫다. 이래서 태우기 싫었던 건데… 민폐가 따로 없다.
그렇게 테츠야를 집에 내려주고 미유키의 집으로 가는 길. 묵묵히 운전을 하고 있는 내게, 그녀가 물었다.
“마츠다 군은 왜 대회에 나간다고 말 안 했어?”
“말하려고 했는데, 쟤가 먼저 했어.”
“왜 마츠다 군이 먼저 안 해?”
음음… 간담이 서늘해지는 말이다. 동시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테츠야가 지껄이는 것보다 내가 알려주는 걸 더 선호하는 듯해서. 아니, 근데 테츠야가 음식물 찌꺼기보다 못한 놈이란 걸 감안하면 당연한 거잖아.
“먼저 하려고 했다니까.”
“근데 안 했잖아.”
“쟤가 선수를 쳐서 그래.”
“마츠다 군이 먼저 치면 되는데?”
“주먹으로?”
“…. 생각하는 거 하고는… 하나도 재미없거든?”
헛웃음을 친 미유키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행을 하면서 미유키를 흘깃거린 나는, 차창에 희미하게 반사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자신의 아랫입술을 안쪽으로 오므리고 있다. 웃음을 참고 있는 건가? 가끔 평소엔 무시할 정도로 재미없는, 툭 던지다시피 하는 개그에 터질 때가 있는데 지금 미유키가 그런 상태인가보다.
“웃기냐?”
“…. 재미없다고 한 거 못 들었어?”
“나 봐봐.”
“싫어. 운전에 집중해.”
“웃었네.”
“누가 그래?”
“웃고 있잖아.”
“아니라니까?”
시답잖게 티격태격하는 사이, 차가 미유키의 집에 도착했다. 그에 툴툴거리던 미유키가 안전벨트를 풀고 자신의 가방을 챙겼다. 이후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려다가,
“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놀란 탄성을 터뜨렸다. 그 반응에 뭔가 싶었던 내가 물었다.
“뭔데?”
“마츠다 군…!”
“어.”
“눈 와…!”
“눈?”
“응. 눈. 빨리 내려봐.”
미유키를 따라 차에서 내린 나는, 그녀의 말마따나 희고 자그마한 눈송이가 솔솔 내리고 있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첫눈 시기가 되긴 했지. 요즘 고생하고 있는 내게 주는 신의 선물인가?
보통은 크리스마스에 첫눈이 내리고, 그때 뽀송뽀송한 데이트를 하는 게 일반적인 클리셰지만… 지금 보는 게 차라리 낫다고 본다. 크리스마스엔 쓰리섬 때문에 분위기가 묘할 테니까.
“와아…!”
감탄을 하고 있는 미유키의 옆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긴 나는,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러 내 쪽으로 당겨왔다. 추위로 인해 연한 핑크빛으로 달아오른 그녀의 뺨을, 엄지로 부드럽게 쓰다듬은 내가 말했다.
“조금밖에 안 내리네.”
“그러게… 그래도 매번 비만 왔었는데, 오늘 눈 보니까 좋다.”
“많이 내릴 때 놀러가자.”
“응.”
미유키의 표정은 제법 상기되어있었다. 매년 보는 눈이지만 이번엔 나와 함께 있어서 감회가 남다른 듯하다. 말없이 한참동안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던 미유키가,
“흐응…”
돌연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눈을 보고 풋풋한 마음이 인 모양이었다. 그녀 특유의 기분 좋은 콧소리를 내뱉기까지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좋아해. 많이…”
내 가슴팍에 자신의 얼굴을 부비적거린 미유키의 고백. 그녀의 등을 토닥인 나 또한 진심어린 감정을 전했다.
“나도.”
**
미유키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치나미에게 연락을 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신호음이 두 번도 채 지나가기 전에 전화를 받는 치나미. 독특한 그녀의 인사에 피식한 내가 물었다.
“지금 어디에요? 부장이랑 아이스크림 먹고 있어요?”
-네. 맞아요.
“혹시 눈 내린 거 봤어요? 잠깐 내렸었는데.”
-으응…? 눈이요…? 여긴 내리지 않았어요.
“엄청 조금 와서 못 봤을 수도 있겠네요. 아쉽게 됐습니다.”
-으음… 정말 첫눈이 왔었나요?
“예.”
-세상에… 세상에…! 첫눈을 놓치다니 올해는 아주 불운하겠네요…! 물론 내년까지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요.
그런 미신도 있었어? 처음 들어본다. 치나미가 스스로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역시 엉뚱하다.
치나미가 눈을 봤다면 당장 달려가려고 했다. 기념할만한 날이니만큼 그녀와도 시간을 보내고 싶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못 봤다니까 뭐… 다음 기회를 노려야지.
-뭐야? 누구야?
수화기 너머에서부터 들려오는 렌카의 의아한 목소리. 한숨을 포옥 내쉰 치나미가 내게 양해를 구하고는 대답했다.
-마츠다 후배님이신데, 첫눈이 내렸대요.
-눈? 여긴 안 왔잖아.
-조금 내려서 못 봤을 수도 있대요.
-거짓말이야. 믿지 마.
렌카가 자꾸 업보 스택을 쌓고 있다. 계속 그렇게 해봐라. 어떻게 되나.
-거짓말이라니요… 마츠다 후배님께서 저를 속이실 이유는 없어요.
-빨리 끊고 아이스크림 먹자. 네가 좋아하는 아이스 모찌도 나오네.
-앗…! 흠흠… 후배님. 먹고 다시 전화를 드려도 괜찮을까요?
나보다 모찌가 더 중요해? 서운하게 하네? 이게 다 렌카 때문이다. 저 악독한 여우가 치나미를 홀려서 그렇다. 갚아주지 않으면 도리가 아니겠지?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나는 곧장 노트북을 열어, 이벤트용 코스프레 옷을 파는 사이트에 들어갔다. 거기서 다음에 사용할 여러 소품들과 옷을 구매해놓은 뒤, 귀여운 장갑을 파는 쇼핑몰에 접속했다. 치나미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였다.
내가 본 품목은 장갑이었다. 일반적인 겨울용 장갑이 아니라, 벙어리 장갑 말이다.
부피가 얇은 니트형 벙어리 장갑은 안 된다. 치나미는 무조건 두툼한 것으로 껴야 해. 색깔은 핑크나 베이지색이 어울릴 듯하다.
그 상태로 자신의 자그마한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며, 마치 율동을 하듯 손인사를 하는 치나미를 상상해보니 절로 아빠미소가 새어나오려고 한다.
그나저나 다음 관계는 언제 할까. 쓰리섬 전에 몇 번 해서 치나미를 적응시켜놓고 싶은데… 날을 한 번 잡아봐야겠다.
**
다음날. 미유키와 함께 등교를 한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테츠야가 들어오자 미간을 좁혔다. 놈의 헤어스타일이 바뀌어있었기 때문이다.
“테츠야 군, 왔어? 오늘 오후수업 때 쪽지시험 있으니까 미리 복… 습…”
미유키 또한 그의 요상한 머리를 발견하고는 인사를 하다 말고 당혹스러워했다.
“스타일 조금 바꿔봤는데… 어때?”
우리의 반응을 살핀 테츠야가 무안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지껄이는 꼴을 보아하니 자신의 헤어스타일이 잘못되어있다는 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 그…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어색하게 웃는 미유키. 배려를 한답시고 말을 아끼는 것 같은데… 저건 솔직하게 말해줘야 한다. 안 그러면 다른 사람들한테 민폐다. 눈이 썩어버리고 말 거야.
자리에서 일어나 테츠야의 곁으로 다다간 나는, 놈의 반원형으로 패여 있는 옆머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너 이거 어디서 했냐?”
“어제 동네 미용실에서… 옆머리가 버섯처럼 되는 게 싫어서 조금 눌러달라고 했는데, 이상해?”
이건 옆머리를 누른 게 아니라 두개골을 누른 거잖아. 엑스레이를 찍어보면 측두엽이 움푹 들어가 있을 것 같다.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이런 스타일이 나오지? 다운펌도 아닌 듯한데… 뭐 날이 날카로운 아이스크림 스쿱 같은 걸로 자른 건가? 갑자기 미용사의 역량이 궁금해진다.
아무리 내가 테츠야를 혐오한다지만, 이건 남자로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오늘 시내 샵에 가서 짧게 잘라라. 시원하게.”
내 조언을 들은 테츠야의 얼굴이 요상하게 변했다. 이제야 눈치챈 모양이었다. 자신의 머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 그렇게 이상해?”
“네가 봤을 땐 안 이상했냐?”
“난 괜찮은 것 같은데…”
“더럽게 이상하니까 토 달지 말고 잘라라. 수업시간 전까지는 모자 써서 전체적으로 다 누르고.”
“모자가 지금 있을 리 없잖아…”
“그럼 물이라도 묻혀서 눌러놔 새꺄.”
“아, 알았어…”
비웃음거리가 될 뻔한 걸 살려줬으니까 고마워해라 씨발아. 만약 이번에도 저번 여름방학 때처럼 내 헤어스타일을 따라하면, 다시는 오늘처럼 봐주지 않을 거다.
그렇게 사소한 해프닝이 지나가고, 곧 시작된 수업. 연신 자신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테츠야를 보며 작게 혀를 찬 나는, 미유키가 허리를 콕콕 찌르자 고개를 돌렸다.
“왜.”
입을 다문 채로 방글방글한 미소를 지으며, 노트 귀퉁이를 가리키는 그녀. 그곳을 확인해보니,
[친절하게 구는 거 보기 좋았어. 근데 욕은 별로였어.]예쁘장한 글씨체로 쓰인 문장이 있었다. 테츠야에게 ‘새끼’라고 했던 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구나.
나는 시큰둥하게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눈썹을 꿈틀한 미유키가 샤프를 들어, 그 문장 밑에 새로운 문장을 썼다.
[욕은 나쁜 거야.]새끼 정도는 넘어가줄 수 있지 않나? 욕과 폭력에 관해서만큼은 타협이 없는 미유키답다.
불만이 그득한 표정을 지은 나는 칠판으로 눈을 돌렸다. 그때,
스으윽.
미유키가 자신의 따스한 손을 내 바지 안으로 들여보내, 팬티 윗부분을 조심조심 주물럭거렸다. 태연하게 교과서를 보며 수업을 듣는 척을 하는 치밀함까지 보이면서 말이다.
오늘 내가 예쁜 짓을 해서 칭찬을 해주고 싶은 듯한 행동. 오랜만에 교실에서 포상을 받는구나. 기다리고 있었다.
미유키가 이럴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나는, 침착하게 책상과의 거리를 좁혀 옆자리의 시야를 차단했다. 그리고는 미유키처럼 뻔뻔하게 교과서에 시선을 두고, 그녀의 손길을 즐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