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325)
EP.325 달려라 이노쨩, 달려라 렌카 #3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길.
적지도, 많지도 않은 인파 사이에서 렌카의 허리를 두르고 있던 나는, 그녀가 연신 헛기침을 하자 물었다.
“왜 그래요?”
“…. 몰라.”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스킨십을 하니 부끄러웠나보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간 나는, 렌카와 함께 차를 타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완전히 어두워진 하늘 아래로 묵묵히 운전을 하는데, 옆에서 렌카가 자꾸 몸을 뒤척였다.
이노쨩과 관련된 일이 불안한 건지, 아니면 내 손길을 원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부장.”
“왜.”
“무슨 생각해요?”
“아무 생각도 안 해.”
“오늘 재미있었어요?”
“아니.”
“저랑 있는 게 싫은 거면 왜 만나자고 했을 때 알았다고 대답했어요?”
“나는 영화가 재미있었냐고 물어본 건 줄 알았는데.”
“저랑 있는 건 어땠는데요?”
“재미없었어. 하도 그 이상한 유저가 나 같다고 지껄여대니까.”
자기 자신을 이상하다고 하다니.
필사적으로 부인하려는 모습이 웃기다.
“지껄이다니요. 말 예쁘게 안 해요?”
“…. 하도 그 유저만 언급하니까 짜증나.”
“잘했어요. 하면 되잖아. 근데 진짜 비슷해서 언급하게 되는 거예요.”
“말투가?”
“말투도 그렇고… 그 사람 닉네임이 이노쨩이거든요?”
“…. 근데?”
“생각하면 할수록 이노오를 줄인 것 같단 말이에요?”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참…”
찔끔했구나. 말투에 긴장감이 서려있다.
“부장 성은 이노의 노를 장음으로 발음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이노오잖아요. 이노오라는 성씨는 정말 희귀하거든요? 전국을 다 뒤져도 열 가구 미만일 걸요? 그 열 가구 중에 부장네 가족들이 네다섯 가구는 차지할 거예요.”
“네가 무슨 조사원이야? 그걸 어떻게 아는데? 그리고 열 가구는 무슨… 찾아보면 많아…!”
“아닐 텐데?”
“그, 그래서 내가 그 이노쨩이라는 유저란 거야!? 그 사람은 그냥 성씨가 이노라서 이노쨩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거겠지…! 이노라는 성씨는 많잖아.”
“듣고 보니 그렇긴 하겠네요.”
“그렇지?”
“예. 근데 왜 이렇게 당황해요?”
“그건… 나를 굳이 이노오라고 단정을 짓는데다, 그 사람이라고 확신한 것처럼 말하니까… 네 그 편협한 시각을 비판한 거지…”
그 사람 맞잖아.
왜 스스로 업보를 쌓고 그러니.
뒷감당의 범위가 무척 커지고 있는데, 지금이라도 순순히 인정하면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지만… 렌카는 여전히 다른 마음을 먹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은 렌카에게 부담만 조금 주고 끝내려 했으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아예 사실확인을 해야겠다.
렌카는 자신이 이노쨩이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부정하고 싶겠지만, 차라리 이러는 편이 그녀에게도 나을 것이다.
언제고 터질 건데 여기서 미적지근하게 끝내버리면, 그녀는 하루하루 심장이 조여지는 스트레스를 받겠지.
그럴 바에 확 터뜨려버리고 해소하는 게 훨씬 좋다.
처음에야 미칠 정도로 창피해하겠지만 이건 시간이 해결해줄 거다.
“이노쨩이란 사람 또한 부장처럼 애니를 좋아하고, 부장이랑 말투도 비슷하고… 합리적인 의심은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죠?”
무덤덤한 내 말에, 렌카가 침묵한 채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아니에요?”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니. 이 의심병 환자 새끼야.”
“만약에, 아주 만약에요.”
“뭐.”
“그 이노쨩이 부장이잖아요?”
“아 진짜…!”
짜증을 내는 렌카.
한손으로 그녀의 허벅지를 톡톡 건드려 달랜 내가 말했다.
“가정을 하는 거니까 들어봐봐요.”
“하아…”
“만약 이노쨩이 부장이라면, 저는 부장한테 정말 큰 벌을 내릴 겁니다.”
“큰 벌…?”
“예.”
“…. 내가 그딴 걸 신경이나 쓰고 있을 줄 알아?”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는 눈동자, 그리고 꼼지락거리는 손을 보니 충분히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은데.
렌카가 이노쨩이 아니라면 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뭔 개소리냐고 하거나, 아니라거나 하며 태연하게 굴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이노쨩을 너무 의식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이노쨩의 입장에서 방금의 내 말을 듣고, 그에 대한 대답을 했다.
벌을 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이다.
증거가 될 수는 있지만 약간 애매한데…
무척이나 당황하고 있는 저 말투를 물고 늘어지면 되긴 하지만, 조금만 더… 본의 아니게 걸리는 쪽으로 유도해보자.
“그럼 별로 안 무섭다는 거예요?”
“어. 엄청 지쳐. 휴대폰이라도 볼래?”
“휴대폰은 왜?”
“어플 깔려있는지 확인해보면 되잖아.”
먼저 저렇게 말을 하는 걸 보니까 삭제를 했나보다.
날 만나기 전에 삭제했을 리는 없겠고, 아마 영화를 보기 전에 화장실을 갔을 때 작업을 해놓은 것 같았다.
“어플이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그, 그런 큰 커뮤니티면 전용 어플이 있는 건 당연하지…! 애초에 알고 있었어…!”
“그렇구나. 근데 어플은 삭제가 자유롭잖아요.”
“그럼 내가 삭제라도 했다는 거야?”
“아뇨. 이제 의심 안 할게요. 미안해요.”
“…. 그래.”
순순히 물러나는 척한 나는 잠깐 묵묵히 운전을 하다가, 렌카의 집으로 가는… 직진을 해야 하는 도로에서 벗어났다.
“뭐야? 어디 가?”
핸들을 왼쪽으로 트는 날 향한 렌카의 물음.
전방을 주시하며 손에 힘을 뺀 내가 태연히 대답했다.
“만화책 사러.”
“뭐하러?”
“아사가오 씨의 가계사정 2편 나왔어요.”
“…. 변태 같은 새끼.”
“말 예쁘게.”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
“예쁘게 하라는데 왜 더 심하게 말해요.”
“팩트를 전달했을 뿐이야.”
“그래요. 그거 재미있었죠?”
“뭐? 아사가오 씨 그거?”
“예. 저한테 빌려갔었잖아요.”
“별로야. 너무 선정적이기만 해.”
“주인님의 비밀이랑 여자친구 조교일지는요?”
“그건 의외로 마음에 들더라.”
걸렸다.
아사가오 씨의 가계사정. 조교물 만화다.
렌카와 현실에서 함께 샀던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인님의 비밀과 여자친구 조교일지는 다르다.
이건 내가 애니쉐어 상에서 이노쨩에게 추천해준, 현실에서는 언급을 한 적이 없는 만화였다.
“부장.”
“왜.”
“방금 실수했어요.”
“실수? 뭐가? 아…!?”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렌카가 짧은 비명을 토해냈다.
때마침 신호에 걸려 차를 정차시킨 나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렇죠?”
렌카로서도 조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MK를 언급하거나, 그가 추천해주었던 책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자고,
그런 흔한 실수 같은 건 하지 말자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넘어갈 것처럼 굴자 긴장이 살짝 풀렸고, 그에 다소 안심하다가 실수를 저지른 것 같았다.
“…..”
침묵하는 그녀.
저 반응으로 이노쨩의 정체는 까발려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렌카는 인정을 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실수라니…?”
아주 뻔뻔하게 저런 태도로 나왔던 것이다.
이제 포기할 때도 됐는데, 참 어지간하다.
“제 입으로 직접 말해요?”
“어…! 말해봐. 내가 무슨 실수를 했는데?”
“주인님의 비밀, 여자친구 조교일지.”
“그, 그게 왜?”
“애니쉐어에서 내가 추천해줬던 거잖아요.”
“아… 그랬었어? 난 몰랐지.”
“몰랐던 거면 방금 내가 실수라고 했을 때 왜 놀랐는데요?”
렌카의 눈동자가 한 바퀴 굴러가는 게, 그녀의 다리가 파리하게 떨리는 게 보인다.
뇌가 엄청난 회전을 하고 있는 것도 느껴지는 듯하다.
“그건… 네가 말한 것들은 나도 옛날에 읽었던 만화였는데, 네 입에서 나오니까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뿐이야.”
“의식의 흐름대로?”
“뭐… 그런 거지…”
“여자친구 조교일지는 옛날 만화가 아닌데.”
“1년 넘었으면 다 옛날이지…!”
“이대로 넘어갈 수는 있는데, 그렇게 되면 부장도 엄청 찜찜할 것 같지 않아요?”
“뭐래…”
기가 찬 듯 자신의 얼굴 앞에서 한손을 내젓는데, 제스처가 너무 뻣뻣해서 어색함이 전해져온다.
피식한 나는 불쑥 손을 뻗어 렌카의 윗가슴에 가져다대었다.
“무, 뭐하는…!”
깜짝 놀라선 온몸이 굳어버린 그녀의 심장 박동이 무척이나 빠르게 뛰고 있다.
상체를 쑤욱 내밀어 렌카의 얼굴을 살펴보니, 식은땀마저도 나는 중이었다.
목에 손을 대니 체온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게 느껴질 정도다.
강추위라도 찾아온 듯 이빨까지 딱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몸의 반응이 너무 솔직하다.
렌카의 코앞까지 얼굴을 가져간 내가 나직이 말했다.
“지금 솔직하게 얘기하면 수위는 낮춰줄게요.”
“…. 개, 개소리도 정도껏…”
“달려라 이노쨩 맞죠?”
“아니라니까…”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달려라 이노쨩 맞죠?”
“…..”
꿀꺽.
렌카가 목젖을 꿀렁이는 소리가 귓가에 굉장히 크게 들려온다.
생기가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는 그녀의 눈.
방금 홱 까뒤집혔다가 돌아오기까지 했다.
후욱, 후욱 내뱉어지는 렌카의 거친 콧바람이 얼굴을 간질이는 것을 느끼며, 나는 아까보다 더욱 낮아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맞잖아.”
“그…”
말을 잇지 못하는 렌카. 이 정도면 완전히 끝난 거라고 봐도 됐다.
그녀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하였는지, 당장에라도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은 것 같은… 그런 처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치?”
이어지는 내 상냥한 재촉에도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가 대답을 한 건,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었을 때였다.
“주,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