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346)
EP.346 시내에서 만난 말괄량이 #2
저런 이벤트는 러브 코미디물의 아주 흔한 클리셰라고 할 수 있었다.
보통 히로인이 눈치 없는 헌팅남에게 끌려가려고 할 때, 주인공이 그 장면을 보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하고, 히로인은 고맙다면서 주인공을 향한 호감도를 채우고는 한다.
헌데 히요리가 처한 상황은 조금 달랐다.
그녀의 앞길을 막은 사람이 일반인이 아니라, 호스트였기 때문이었다.
물증은 없었지만 옷차림하며, 헤어스타일까지… 분명 그쪽에서 일하는 놈이 맞았다.
“딱 한 번만 나랑 커피 마셔줘. 진짜 딱 한 번만.”
“싫은데요?”
“이렇게 부탁할게, 응?”
“으… 싫어요.”
질척하게 구는 놈에게 인상을 마구 찌푸리는 히요리.
대놓고 싫은 티를 내니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하지만, 그럼에도 호스트는 구질구질할 정도로 히요리에게 달라붙었다.
저러는 게 짜증나니까 대충 얻어먹고 끝내야지… 같은 생각을 하다간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
말을 잘하는 데다 기본적으로 잘생긴 얼굴 또한 장착했다보니, 좋지 않은 첫 만남이라도 몇 차례 대화를 나누다보면 나중엔 그 생각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았다.
호스트에게 잘못 걸리면 인생이 나락으로 가고는 한다.
그들은 보통 ‘혼에’라고 하는 영업을 시작으로 온갖 방법을 쓰며 여자를 정성껏 떨어뜨리는데, 그 끝이 대부분 좋지 않다.
빚을 지게 만들어 여성들이 풍속점에서 일을 하게 하거나, 길거리 성매매를 하여 돈을 벌도록 시키면서 이쪽에 발을 들이게 하여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히로인을 꼬시는 내가 저들을 욕할 자격이 있겠느냐만, 그래도 여자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목적을 갖고 있는 저놈들보단 내가 천 배는 더 낫지.
비교는 사절이다.
어쨌거나 놈은 히요리를 그런 혼에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 같았다.
아니면 웬만한 일반인보다 아름다운 그녀를 진짜로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 하거나.
물론 히요리가 저런 놈에게 넘어가리라는 생각 따윈 추호도 없지만, 그녀가 호스트와 엮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정말 나빠진다.
눈썹을 구긴 나는 아직까지도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호스트와 히요리에게로 다가갔다.
“일행이 있다고? 그럼 일행 것도 사줄게. 치즈케이크 좋아해?”
“아 좀…! 싫어하니까 저리… 으응?”
질색을 하다가 옆으로 다가온 날 보고 눈을 큼지막하게 뜨는 그녀.
내가 진짜인지 확인해보려는 듯 자신의 기다란 속눈썹을 두어 번 감았다 뜬 그녀의 안색이 활짝 펴졌다.
“마츠켄!”
마츠마츠켄에서 줄어든 애칭이 어이가 없다.
헌데 이젠 선배라는 호칭도 안 붙이는구나.
물론 반갑기도 하거니와, 호스트에게 나와 가까운 사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행동일 테니 넘어가주자.
“여기서 뭐하냐?”
호스트와 히요리를 번갈아 쳐다보던 내 물음.
히요리가 내게 바짝 다가와 붙더니 대답했다.
“호스트한테 헌팅당하고 있었어. 날 풍속점에 팔 생각인 것 같아.”
히요리도 기본적으로 호스트의 특성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근데 당사자를 앞에 두고 너무 솔직한 거 아니니?
의지할만한 사람이 옆에 있어서 용기가 생겼나보다.
“파, 팔다니… 그럴 생각은 정말 없었는데…?”
히요리의 노골적인 대사에 당황했는지, 호스트가 말을 더듬었다.
호스트와 히요리 사이를 가로막은 나는, 눈을 살짝 내리깔며 놈을 쳐다보았다.
“그냥 가라.”
“그래, 가버려.”
내 뒤에서 옆으로 고개를 내밀고 맞장구를 치는 히요리 때문에 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어떻게든 참아낼 수 있었다.
놈의 키는 적당히 크긴 했지만 나보다는 작았고, 덩치 차이는 상당했다.
그에 위압감을 느꼈을까?
호스트가 똥 씹은 표정을 짓더니, 한손을 들어올리는 가벼운 제스처를 취하며 우리에게서 몸을 돌렸다.
일반인이라면 몰라도 호스트가 히요리에게 접근하다니…
저놈 얼굴 기억해놨다. 모든 일이 끝나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인생을 파멸로 이끌어주마.
“하아… 너무 질척거려서 힘들었어요.”
빠르게 멀어지는 호스트를 본 히요리의 중얼거림.
주변을 둘러본 내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여긴 유흥가도 별로 없는데 잘못 걸렸나보네.”
“그러게요. 오늘 운이 없나봐요. 아니지… 운이 좋은 건가?”
그런 말을 하고는 날 빤히 올려다보는 히요리.
곤란한 상황에 딱 맞춰 나타난 날 보며 운수가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고마운 마음을 담은 히요리의 눈빛과, 그녀의 복장을 훑어본 내가 쓰읍… 하는 소리를 냈다.
“옷은 언제 갈아입은 거야?”
“라커에 사복 챙겨놨었어요.”
“치마가 왜 이렇게 짧아? 옷 좀 단정하게 입어라. 가볍게 하고 다니니까 저런 애들이 널 쉽게 보고 다가오는 거 아니야.”
“아 왜 잔소리해요…! 방금 큰일을 겪은 사람한테…!”
“할 만하니까 하지. 카페에 손님으로 올 때도 맨날 치마만 입던데, 집에 바지 없냐?”
“있죠.”
“그럼 바지 입어.”
“생각해볼게요.”
“생각하지 말고 그냥 입어. 그리고 감사인사는 안 해?”
“하려고 했는데, 선배가 자꾸 뭐라고 하니까 하기 싫어졌어요.”
“그럼 하지 말든가.”
“농담이에요. 구해줘서 고마워요.”
진심이 담긴 히요리의 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 그녀의 부담스런 시선을 피한 내가 말했다.
“앞전엔 대놓고 반말하더니 또 지금은 존댓말만 쓰네?”
“아까는 친한 느낌을 줘서 그 사람을 빨리 쫓아버리려고 그런 거잖아요. 그것도 몰라요?”
“알고 있었어.”
“아는 눈치가 아니었는데? 선배는 엄청 둔하네요.”
그런 척을 하는 거란다.
너는 내가 도망간 호스트처럼 가볍게 구는 것보다 이런 쪽을 더 신선하게 느끼잖아.
쉽게 말하자면 취향저격이라는 거지. 아니면 말고.
“여기서 뭐하려고 한 거야? 또 친구 만나려고?”
“넹.”
우리 히요리는 참… 발이 넓구나.
심심하진 않겠다. 그래서 나한테 메시지나 전화를 하지 않는 건가?
“미츠시마는 왜 없어? 맨날 붙어 다니잖아.”
“집은 따로 있고, 약속장소에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그렇죠. 선배는 여기서 뭐하는 중이에요?”
“보드게임이나 게임기 같은 거 사려고.”
“아 진짜요? 보드게임 매장이 어디 있는지 아는데 데려다줄까요?”
“친구들 안 만나?”
“만날 건데, 아직 시간 많아요.”
“그럼 같이 가든가.”
“그래요. 저만 믿고 따라오세요. 납치 안 할 테니까 불안해하지 말고.”
그냥 납치해줬으면 좋겠는데.
잡아먹히는 시츄에이션이 굉장히 꼴릴 것 같아.
라는 말을 삼킨 나는, 개구쟁이처럼 히히 웃는 히요리와 보폭을 맞추며 매장으로 향했다.
**
“미니빌! 요거 엄청 재미있어요.”
2 ~ 4인용 모노폴리 같은 경영 게임을 가리키는 그녀.
추천 게임 인원은 4인이지만 둘이서도 가능하고, 이걸로 렌카와 치나미를 집으로 초대해 미유키와의 사이를 좁혀주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5, 6인까지 가능한 게임은 없나?
나중엔 히요리와 가능하면 미호까지도 끼워야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걸 찾고 싶다.
“이거 늑대인간 찾는 거네? 이것도 재미있고, 하나비랑 할리갈리도 가볍게 할 만하고…”
히요리가 쭈욱 늘어선 보드게임 박스를 둘러보며 신이 난 듯 재잘거렸다.
원래 말이 많은 편이기도 하지만 평소보다 더 심한데, 아까 내가 의젓하게 다가와 호스트를 물려주고, 히요리 자신을 보수적이지만 진심으로 챙겨주는 모습에 호감도가 상당히 올랐나보다.
히요리가 추천하는 것들을 몇 개 산 나는, 좋아라하는 그녀와 함께 가게를 나섰다.
“이제 돌아가는 거예요?”
“아니. 휴대용 게임기도 하나 사게.”
“휴대용 게임기? 게임 좋아해요?”
“좋아하는 건 아닌데, 동물들의 숲인가 뭔가가 재미있다길래 한 번 해보려고.”
“동물들의 숲이요? 아직 안 해봤어요?”
“넌 해봤냐?”
“응. 친구들이랑 자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해요.”
“지금도?”
“넹.”
그럼 무조건 사야겠구나.
온라인으로 물건을 훔칠 수도 있다는데, 히요리가 까불 때마다 그녀의 집에 있는 자재를 털어가야겠다.
히요리와 같이 가게에 들어간 나는 게임기와 타이틀을 두 개씩 샀다.
그리고 히요리는, 내가 왜 이걸 두 개 구매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았다.
미유키와 하려고 하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면 좋겠는데, 히요리의 표정이 천진난만해서 읽어낼 수가 없다.
양손에 큼지막한 쇼핑백을 챙기고 가게를 나온 내가 물었다.
“이제 가냐?”
“아뇨. 아직. 선배 계정 만드는 것까지 도와주고 가려구요. 만들 줄 모르잖아요.”
“설명서 있잖아.”
“그거 보면서 어느 세월에 해요? 빨리 전원 켜고 내놔요.”
“차에서 하면 안 되나?”
“그럼 그렇게 해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나와 히요리는 공용주차장에 주차된 차에 타고 게임기의 포장지를 뜯었다.
히요리는 제법 능숙하게 계정을 만들었다.
생년월일과 인증 코드까지 내게 확인을 시킨 그녀는, 내 계정의 닉네임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설정했다.
“다 됐어요.”
그녀가 건네는 게임기를 받아든 나는, [멍청켄 님, 환영합니다.]라는 화면의 문구를 보고 인상을 구겼다.
“고맙긴 한데… 닉네임이 왜 이래?”
“선배한테 딱 어울리는 걸로 지어봤어요.”
“이거 못 바꾸는 거 아니야?”
“원할 때마다 바꿀 수 있거든요? 여기 변경하기 버튼 안 보여요?”
“아, 그러네.”
“이렇게 느긋한 성격이었어요? 바보네, 바보.”
음음… 히요리에게 바보라는 말을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
“너보단 똑똑할 걸?”
“저보다 바보 맞는 것 같은뎅.”
“중간고사나 잘 치고 말해라.”
“아 그 얘긴 왜 또 해요…! 혼나볼래?”
혼내줘. 제발 날 따먹어줘.
“혼낼 자신은 있고?”
“아뇽. 이제 다 했으니까 가볼게요. 내일 봐요.”
제 할 말만 하고는 차에서 내리는 그녀.
다급히 조수석 창문을 내린 내가 언성을 높였다.
“야! 어디까지 가는데? 멀어?”
“멀진 않은데… 태워다주려구요?”
“어.”
“뭐야… 그러면 내리기 전에 말을 하지.”
“그냥 혼자 가라.”
“아 싫엉…! 탈래.”
애교 섞인 목소리로 앙탈 비슷한 것을 부린 히요리가 총총걸음으로 다시 다가오더니 차 문을 열었다.
오늘 이벤트는 스탠다드하긴 했지만, 히요리의 성격 덕에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다.
조금만 더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냥 얼굴에 철판을 깔고 같이 놀아버릴까?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큰길로 나가서 직진하다가 사거리에서 좌회전!”
히요리의 힘찬 안내를 듣고 가짜 한숨을 푸욱 내쉬며 주차 브레이크를 해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