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349)
EP.349 뜻밖의 추격전 #2
“아 선배…! 이거 좀 놔줘요…! 지금 체육복이 목을 졸라서 아프거든요? 흉터 생기면 책임질 거예요?”
“조금 풀어줄게. 이러면 안 아프지?”
“아프지는 않지만 옷 늘어나잖아요…!”
내게 뒷덜미를 잡힌 채 버둥거리는 히요리.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구석까지 히요리를 데리고 간 내가 그녀를 풀어주었다.
“도망가면 당장 미유키한테 달려가서 도망간 사람 정체가 너라고 말한다?”
“…. 고자질쟁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날 노려보는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다.
당장 키스를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내가 말했다.
“핑계 한 번 대봐. 그럼 봐줄 수도 있어.”
그러자 히요리의 안색이 활짝 폈다.
내가 용서해주리라는 믿음이 있었을까?
내 팔을 툭툭 건드리며 호들갑을 떤 그녀가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시작했다.
“아니… 원래는 벌점을 각오하고 들어가려 했는데용…”
“근데?”
“때마침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개구멍이 보이지 뭐예요…! 제가 원래 그런 걸 보면 참을 수가 없거든요…”
이해한다.
구멍이 보이면 뭐라도 넣어보는 게 맞지.
그게 몸이든, 다른 것이든.
“벌점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잡지 않으면 바보잖아요. 그렇죠?”
이어지는 히요리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헛웃음을 친 내가 그녀의 밑을 가리켰다.
“글쎄… 벌점을 각오한 것치고는 운동화 상태가 이상한데?”
“뭐가요?”
“러닝화잖아. 평소에 넌 다른 신발을 신고 오고.”
“쓸데없이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애초에 도망갈 생각으로 왔다는 걸 인정하는 거지?”
“아닌뎅…”
“그래, 그렇다고 치고… 핑계가 허술하니까 지금 당장…”
“잠깐…!! 한 번만 봐주면 안 돼요? 네? 엄마가 벌점 받으면 용돈 줄인다고 해서…”
하도 사고를 많이 치고 다니니까 그런 수단까지 동원하셨구나.
넷째 장모님의 마음은 충분히 공감 간다.
교배 프레스로 장모님의 마음을 잘 위로해줘야겠다.
“선배가 학생회에요? 아니잖아요…! 학생회를 껄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끼리의 정도 없어요?”
“대체 어딜 봐서 내가 학생회를 껄끄럽게 생각한다고 하는 거야? 난 학생회 좋아해.”
“아…! 학생회의 앞잡이였어요?”
“앞잡이가 뭐냐? 말이 좀 거슬린다?”
“…. 죄송. 하나자와 선배랑 친한 건 알지만 봐주면 안 될까요…?”
“그럼 나한테 빚 하나 지는 걸로 할래?”
“네…? 엄청 불안한데…”
“그럼 깔끔하게 미유키한테 말하는 걸로 끝내든가.”
“아 싫어…!”
“반말 그만하고.”
“알았어요…! 근데 빚은 조금 너무하다고 생각해요.”
불리해지니까 냅다 존댓말을 쓰는 게 웃기다.
“꼬우면 나한테 걸리질 말았어야지.”
“평소에도 이런 시간대에 와요? 아닌 것 같은데… 벼르고 있었던 거 아니에요?”
“내가 그럴 이유라도 있냐? 그냥 오늘따라 늦잠을 잔 거야. 아마 이렇게 될 운명이었나보지.”
“선배가 절 봐주는 운명이 아닐까요?”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히요리를 골려먹으려던 나는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히요리의 와이셔츠로 눈이 갔기 때문.
뛰느라 흘린 땀에 밑가슴 부근이 살짝 젖어있는데, 이걸 그냥 넘겨버리면 다른 놈들도 보겠지.
속으로 혀를 찬 내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갈아입을 옷은 있냐?”
“그건 왜요?”
“땀 찼잖아.”
“어디에? 여기?”
자신의 밑가슴을 만지작거리려고 하는 그녀.
경계심이 전혀 없는 그 행동에 다급하게 고개를 돌린 내가 그녀를 타박했다.
“남들 앞에서 이상한 짓 좀 하지 마라.”
“저는 선배가 땀 찼다고 하길래 어디인지 확인해보려고 하는 건데요?”
내가 그 말을 하자마자 정확하게 가슴인 걸 인지했으면서 웃기는 소리를 하고 있다.
지금 이렇게 개방적으로 구는 네가 내 자지를 보고도 그럴 수 있는지 무조건 확인해주도록 하마.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네. 어쨌든 빚 졌으니까 내가 부르면 나와.”
“부르면 나오라구요? 뭐할 건데요?”
“아직 안 정했어.”
“알았어용… 이제 가도 돼요?”
“어.”
“매점 들렀다가 갈 건데 같이 갈래요?”
“지금 들어가면 간신히 시간에 맞출 수 있을 텐데 뭔 매점이야? 1교시 끝나고 가.”
“저를 억압하려고 하지 말아주세요.”
“사춘기 소녀 같은 말은 그만하고 가봐. 아니다. 매점 들를 것 같으니까 건물까지는 같이 가야겠다.”
정곡을 찔린 듯 흠칫하는 히요리.
솔직한 히요리의 반응에 피식한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매점 쪽으로 방향을 틀려는 그녀의 등을 떠밀며 건물로 들어갔다.
**
히요리에게 생긴 그 빚을 받을 기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주말이 되었을 때 찾아왔다.
미유키가 동창을 만나러 가고, 렌카와 치나미가 둘이서 놀러 가겠다고 했던 것이다.
아침부터 무료해진 나는 곧장 히요리에게 전화를 했고,
-안녕, 마츠켄.
아침 일찍 일어난 듯 상쾌하게 날 맞이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선배가 빠졌잖아.”
-할까요? 말까요?
“됐다. 나오기나 해.”
-네? 지금요?
“그래, 너네 집 어디냐?”
-데리러 오려구요?
“어. 밖은 아니지?”
-밖인데용?
그새 나갔다고? 어제까지만 해도 피곤하다고 노래를 불렀던 애가?
주말이라 늦잠을 자도 됐을 텐데… 어이가 없구나.
“선약 있어?”
-아뇨. 지금은 없어요.
“그럼 뭐하러 나왔는데?”
-쓰레기 버리러.
“하아…”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한숨소리에 즐거워졌을까?
휴대폰 너머에서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네가 좋아하니까 나도 좋다.
가만 놔두면 온갖 짓을 다 할 것 같은 너를, 근시일 내로 잡아먹어버리고 말 거다.
아니면 내가 잡아먹히거나.
“지금은 약속 없는 거지?”
-없엉.
“오후에는 있고?”
-네.
“그럼 영화나 한 편 보자.”
-저한테 선택권은 없는 거예요?
“없어. 빚 갚아야지.”
-알았어용. 집 주소 찍어줄게요.
전화를 끊자마자, 히요리가 자신의 집 주소를 보내왔다.
히로인들 중에서 우리 집과 가장 먼 거리에 있구나. 씻고 바로 나가야겠다.
히요리에게 1시간 뒤에 만나자고 메시지를 보내놓은 나는 곧장 욕실로 들어가 꼼꼼하게 샤워를 마쳤다.
옷은 뭘로 입어야 히요리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을까?
덥고 맑은 날이니만큼, 시원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하늘색 셔츠를 베이지색 바지와 조합하는 게 괜찮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요새 옷을 사러 간 적이 없었다.
미유키와 단둘이서 가도 좋지만, 렌카와 치나미도 불러서 다 같이 쇼핑을 하면 최고일 것 같은데…
조만간 넌지시 이야기를 꺼내봐야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데이트에 대한 기대감을 품은 채 히요리의 동네에 도착한 나는, 차에서 내려 그녀가 사는 집을 살펴보았다.
마치 미유키의 집이 생각나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
2층 높이의 아담한 단독주택. 3인… 아니, 히요리의 어린 동생까지 포함해 4인 가족이 살기에 딱 적당한 크기였다.
지붕은 많이 볼 수 있는 은회색이었고, 연식이 꽤나 오래 된 듯했지만 관리는 아주 잘 되어있었다.
근데 내가 왜 히요리의 집을 자세히 살피고 있는 거지?
어차피 히요리는 우리 집으로 올 텐데.
그녀의 어머니인 리온도… 아니다. 나쁜 생각은 그만두자.
약속한 시간보다 15분 정도 일찍 도착한 상황이라 조금 기다려야할 줄 알았는데, 5분가량이 지나자 히요리의 집 현관문이 열리면서 그녀가 나왔다.
“마츠켄!”
집 근처에 차를 대어놓고 나와있는 날 발견하고는, 한손을 마구 흔들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그녀.
반가운 기색으로 인사를 하는 말괄량이를 보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하지만 그녀가 입은 옷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히요리는 캐주얼한 하얀색 끈나시를 입고 있었다.
쇄골에서부터 어깨라인, 그리고 겨드랑이까지 다 드러나는 끈나시 말이다.
허리라인이 배꼽까지 오는 하이한 밝은색 청반바지 덕에 다리가 더욱 길쭉하게 보이는 건 덤.
히요리에게 굉장히 어울리는 코디였다.
그러나 노출이 너무 심했다.
나시의 넥 부분이 스퀘어 형태라 윗가슴이 가려진 건 좋았지만, 얇은 재질이라 그녀가 착용하고 있는 검은색 누드 브라가 희미하게 비쳤다.
걸칠 거라도 갖고 오든가… 이런 문란한 패션은 나와 은밀한 곳에서 데이트를 할 때나, 바다 같은 곳에 갈 때가 아닌 이상 안 된단다.
애초에 저런 코디를 일상용으로 입을 땐 가디건이나 셔츠를 덧입지 않나?
과감해도 너무 과감하다.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다가오는 그녀를 향해 미간을 구긴 내가 말했다.
“가서 가디건이라도 갖고 와.”
“왜요?”
“헐벗었잖아.”
“또 또 보수적이게 구는 거예요? 오늘 덥대요.”
“갖고 와.”
“저번에도 그랬지만, 저를 너무 억압…”
“안 돼.”
단호하고 보수적인 내 말에 입술을 삐죽 내미는 히요리.
그럼에도 은근히 기분이 좋은 듯 입꼬리를 살포시 올린 그녀가 순순히 대답했다.
“알았어요.”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무어라 꿍얼거린 히요리가 잽싸게 집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그녀의 팔에 걸쳐져있는 오버 사이즈 셔츠를 본 나는, 그제야 만족스런 얼굴로 자동차를 턱짓했다.
그러자 총총걸음으로 조수석에 올라탄 히요리가 코를 킁킁거리더니, 운전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는 내게 고개를 돌렸다.
“선배 차에서 아저씨 냄새나요.”
“…. 진짜로?”
“아니요. 자두 냄새밖에 안 나요.”
“야이 씨… 죽을래?”
“죽기 싫어요. 근데 아저씨라는 말이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어요?”
“충격적인 게 아니라, 날 속이려고 하니까 그런 거지.”
“그런 것치고는 눈이 엄청 커졌는데?”
그냥 아저씨라고 하면 모르겠는데, 아저씨 냄새까지 난다고 하니까 그렇지.
20대 초반 남자한테 그런 말을 하면 누구라도 깜짝 놀랄 거다.
이거 담아둔다.
“시끄럽고, 못 보는 장르 있어?”
“없엉. 근데 영화 말고 다른 거 하면 안 돼요?”
“뭐할 건데.”
“쇼핑.”
안 그래도 앞전에 옷 쇼핑을 생각하긴 했었는데, 히요리가 내 마음을 잘 알아차렸구나.
하지만 쇼핑은 히로인들의 우애를 위해서 남겨놓을 거란다.
나중에 너도 껴서 하자꾸나.
“그건 친구들이랑 만났을 때 해.”
“선배 만났으니까 지금 하면 되잖아요.”
음음. 날 친구라고 생각하는 히요리의 태도가 기껍다고 해야 할지, 곤란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히요리가 셔츠를 입느라 올라간 팔, 그 아래의 매끈한 겨드랑이를 보고 싶은 유혹을 간신히 참아낸 내가 말했다.
“영화관으로 간다.”
“네. 근데 저 배고파요.”
“근처에서 뭐라도 먹든지 하자.”
“회전초밥 먹으러 가요. 영화관 옆에 있어요.”
역시 싸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히요리라 그런지, 주변 지리를 잘 알고 있다.
근데 왜 지치는 느낌이 들까? 오전부터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중앙에 구멍이 송송 난 볼이 있는 재갈이라도 물려야하나?
아니, 이건 렌카한테 쓸 거라 아껴둬야 맞다.
“에어컨 약하게 틀어주세요. 저 피부가 얇아서 추위를 많이 타요. 좀만 앞으로 가면 편의점 있거든요? 거기서 메론 우유랑 스이츄 사러 가요.”
그러한 생각을 해본 나는, 휴대폰을 쥔 채 온갖 요구사항을 말하기 시작한 히요리를 슬쩍 쳐다보고는 차를 출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