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419)
EP.419 전국대회에서 생긴 일
“헤엑…!”
숨을 크게 빨아들이며 눈을 질끈 감는 미유키.
재채기를 하려는 미유키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마치 예전에 해수욕장에서 그녀가 먹은 바닷물을 피할 때처럼 재빨리 몸을 옆으로 움직였다.
“우으…”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타액이 뿜어지지 않았다.
재채기가 나오려고 했다가 쏘옥 들어가, 코를 훌쩍이며 귀여운 신음만 토해냈다.
괜히 멋쩍어진 내가 입맛을 다시자, 미유키가 숨을 깊게 빨아들였다 내쉬더니 말했다.
“그렇게 더러워? 맨날 먹는 거잖아.”
우리 미유키도 변태가 다 됐다.
저런 얘길 서슴없이 하는 걸 보면.
“내 순발력이 워낙 뛰어나니까 본능적으로 나온 거야.”
“그래? 다시 재채기하면 안 피한다는 소리야?”
“받아주지. 덤벼봐.”
“뭐래…”
힘없는 웃음을 터뜨린 미유키가 내 팔을 가볍게 밀었다.
어제보다 몸이 무거운지 손에 힘이 단 하나도 없다.
미유키를 침대에 눕도록 한 나는, 어제처럼 그녀에게 무릎베개를 해주었다.
그 상태로, 약간은 따뜻한 그녀의 이마와 복부에 손을 짚었다.
“열이 좀 나는 건가?”
“재봤는데 정상이었어. 근데 왜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은데도 옮기질 않지?”
“옮았으면 좋겠냐?”
“응.”
어제는 대회가 있어서 옮으면 안 된다고 걱정하더니, 지금은 참 무서운 발언을 하고 있다.
물론 장난인 걸 알았기에, 나는 웃는 낯으로 그녀의 앙탈을 넘겼다.
“난 잘 씻어서 안 걸려.”
“나는 잘 안 씻어?”
“그러니까 걸렸지.”
“그런가보네. 아, 맞다. 어제 테츠야 군한테 전화 왔었어.”
“전화? 전화는 자주 하지 않나?”
“응. 나 감기 다 나으면 날 잡고 공부하자는데… 어때?”
“해.”
흔쾌한 대답에 놀랐는지, 미유키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앓아서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날 올려다본 그녀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진짜?”
“어. 상관없어. 네 친구잖아.”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나는 테츠야와 공부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놈이 날을 잡으려고 하면 어떤 이유를 만들어서든 안 할 거다.
집에 똥을 들여놓는 건 작년 방학으로 족하다.
“마츠다 군의 친구이기도 하잖아.”
“그래, 뭐든.”
“왜 시큰둥하게 반응해?”
“시끄러.”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미유키의 입을 막자, 그녀가 혀를 날름 내밀어 손바닥 부근을 핥아댔다.
느릿하게 시계방향으로 빙글빙글 움직이는 혀끝의 감촉이 몹시도 자극적이었기에, 나는 미유키를 빤히 내려다보면서 살살 올라오는 쾌락을 느끼다가 그녀의 이마에 내 이마를 살짝 가져다대었다.
콩 하는 감각과 함께 감겼다 뜨이는 미유키의 눈.
저 사랑스러운 눈망울을 보자니 입가에 절로 아빠미소가 지어진다.
이 요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미치겠네.”
마구 샘솟아나는 감정을 저도 모르게 드러내자, 나직한 그 목소리를 들은 미유키의 눈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자신을 향한 애정임을 알아차리고 좋아하는 것이다.
입가를 가린 손을 떼어내니 미유키의 입 주변이 압력으로 약간 빨개져있었다.
그 모습마저도 몹시 예뻤기에, 나는 그대로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맞부딪쳤다.
그렇게 미유키와의 낯뜨거우면서도 풋풋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지금 출발.]저녁에 운동을 하자더니 점심에 오는구나.
그렇게나 내가 보고 싶은가? 어제 그 굴욕을 당했으면서?
아니, 오히려 중독이 된 걸지도 모르겠다.
대충 한 30분 정도 걸리겠거니 생각한 나는 느긋하게 집 안에서 히요리를 기다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메시지가 오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대문 초인종이 울리자, 설마 하며 밖으로 나가보았다.
“안녕요.”
로봇처럼 어깨 위로 한손을 들어올리는 히요리가 보인다.
애초에 연락을 근처 역에서 내렸을 때 했나보다.
대책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닌가? 나조차도 저런 무대뽀는 아닌데… 어이가 없다.
“너는 생각이라는 게 있냐?”
“연락하래서 했는데도 왜 난리에요?”
“그게 연락… 아니다. 일단 들어와.”
“아뇨. 안 들어갈 거예요.”
“자고 가라고 안 할 테니까 일단 들어와.”
“싫엉.”
“운동하러 온 거 아니야? 그 차림으로 어떻게 해?”
내 말마따나 히요리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허벅지가 반쯤 드러나는, 자락이 나풀거리는 테니스 치마 말이다.
그녀치고는 다소곳한 디자인이긴 했지만 내 화병이 돋아나는 건 변함없다.
“속바지 입었어요.”
“자랑스럽게 말하지 마. 치마로 코디를 하면 그게 보통 아니야?”
“그건 사람마다 다르죠.”
“너는 아니다?”
“넹.”
“근데 입었잖아.”
“오늘은 입어야겠더라구요.”
어제 일을 무척이나 의식하고 있는 듯한 발언에, 내 한쪽 입꼬리가 씰룩였다.
그에 히요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근데 왜 또 만나자마자 변태 같은 말을 해요?”
“치마를 입었다는 게 변태 같은 말이야?”
“선배가 하니까 그렇게 느껴져요. 정조대라도 차야지 안 되겠어요.”
“그게 뭔지는 알고 하는 소리니.”
“왜 몰라요? 제 소중한 부분을 보호하기 위한 신성한 물건이잖아요. 설마 이상한 쪽으로 생각한 건 아니겠죠? SM 같은 게 취향이에요?”
“싫어하진 않지.”
“그래요?”
히요리의 눈빛에 호기심이 깃들었다.
그쪽으로 흥미가 돋은 건가? 히요리가 이젠 렌카의 위치마저 빼앗으려고 하는구나.
렌카가 긴장해야겠다.
“옷부터 갈아입자.”
질렸다는 듯한 얼굴을 한 채로 집을 가리킨 내 말에, 히요리의 귓가가 확 빨개졌다.
어제 만져준 일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밖에서 갈아입을래요.”
“억지 부리지 말고 들어와. 아무 짓도 안 할 테니까.”
“진짜로요?”
“못 믿겠어?”
“네.”
“그럼 왜 온 건데?”
“운동하러.”
“날 믿으니까 같이 운동하려고 온 거 아니야?”
“이용하는 거죠. 가치가 있어서.”
“돌겠네… 강제로 들여보내기 전에 빨리 와.”
“넹.”
말다툼에서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대문 안으로 발을 들이미는 모습이 웃기다.
이젠 아예 제 집인 양 거실을 활보하면서 물을 마시고, 알아서 옷을 꺼내 욕실로 들어가는 히요리를 지켜보던 나는, 그녀를 지금 그냥 확 덮칠까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그러다가 펑퍼짐한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히요리가 나오자 문창을 열었다.
“가자.”
“심하게 하지는 않을 거죠?”
왜 자꾸 묘한 대사를 치는 거니.
물론 운동을 너무 막 시키지 말라는 뜻이 담겨있는, 현 상황과 어울리는 말이라 할 수 있었으나…
히요리가 한 말이라서 거라서 불순함이 담겨있다고 느껴진다.
보듬어주려 해도 저러니까 오히려 승부욕이 더 생긴다.
한 번만 더 까불면 엉덩이라도 때찌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내가 대답했다.
“안 아프게 할게.”
훅 들어온 반격을 예상치 못했을까?
히요리의 입술이 안으로 오므려졌다.
점점 불그스름해지는 눈 밑을 보아하니 야한 생각을 한 게 틀림없다.
본전도 못 찾는 주제에 왜 자꾸 까부는지…
그래도 내 입장에서는 히요리가 저러는 게 좋으니까 넘어가야겠다.
그리고 방금의 이 대화는 히요리의 첫 경험 때 그대로 다시 써먹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히요리의 업보를 그날 그대로 돌려주겠다는 다짐을 한 나는, 그렇게 그녀와 함께 간단한 러닝을 했다.
며칠간은 이런 식의 평화로운 생활을 누려야겠다.
**
“마츠다, 잘 지냈냐?”
살가운 기색으로 다가와 내 어깨에 팔을 두르는 검도부 선배.
대놓고 인상을 찌푸린 내가 대답했다.
“아뇨.”
“이 새끼 또 이러네. 같이 대회까지 나갔는데 정도 없냐 넌?”
그러고 보니 작년 전국대회에 같은 팀으로 참가했었던 게 새록새록 생각난다.
이름이 뭐였더라? 야마자키인가?
아니지, 이 사람은 졸업했는데… 기억이 전혀 안 난다.
“누구세요.”
진심으로 한 말이었지만, 선배 딴에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나보다.
갑자기 내 등을 팡팡 치며 호탕하게 웃어재꼈던 것이다.
껄껄거리는 선배에게 잡혀 있다가 쓰윽 지나가는 렌카를 놓친 나는, 그의 여자친구를 빼앗을까 말까 진심으로 고찰해보며 치나미를 도우러 갔다.
그녀는 대회 당일까지도 매니저 일에 전념하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나와 감독에게 모든 걸 맡겨도 될 텐데, 참 책임감이 깊은 사람이다.
가방을 안고 쫄래쫄래 걸어가는 그녀의 품에서 짐을 모조리 빼앗듯 가져온 내가 물었다.
“부장은 안 도와줘요?”
“앗, 오셨군요. 렌카는 가장 먼저 도와주러 오셨었는데, 제가 돌아가라고 했어요. 컨디션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되니까요.”
“그건 스승님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저는 매번 하는 루틴이라서 오히려 일을 해야 컨디션 조절이 잘 되어요.”
“그런가요? 저도 돕겠습니다.”
“그렇다면 짐을 반 절 정도 떼어주세요.”
“왜죠?”
“왜냐니요. 제 짐을 다 가져가시면 후배님만 일을 하시는 게 되잖아요.”
“그러네요. 이거 하나만 들어줘요 그럼.”
나는 가장 위에 있는 자그마한 여성용 가방을 치나미가 내민 손에 살포시 얹듯 내려놓았다.
그러자 어안이 벙벙해진 듯 입을 헤 벌린 그녀가 말했다.
“이것만 주시는 건가요?”
“예.”
“어째서일까요? 저는 반 절을 떼어달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제 입장에서는 그게 짐의 절반입니다.”
“말이 되지 않는군요. 억지에요.”
“그냥 그렇다고 쳐줘요.”
“흠. 그럼 이번만 넘어가겠어요.”
치나미와 대화를 하다보면 약간 사차원에 진입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녀의 말투에 저도 모르게 휘말려서 나까지 엉뚱해지는 기분이다.
우리가 타고 갈 버스에 짐을 다 옮겨놓은 나는, 오늘 먹은 음식이 흐물흐물하다며 자신의 팔에 웨이브를 주는 치나미를 바라보았다.
예전에 데이트를 했을 때도 저랬는데, 우리 치나미는 하나도 변하지 않아서 참 좋다.
그런 치나미의 콧등을 검지로 콕 찍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가 팔을 추욱 늘어뜨리더니 날 올려다보았다.
“방금 무엇을 하신 건가요?”
“행운을 불어넣어줬습니다.”
“오호라. 로맨스 만화에서 나올 법한 장면이군요.”
가끔 치나미는 지금처럼 굉장히 속세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말이지.
무안해진 내가 뒷머리를 긁으려는 찰나, 치나미가 방긋 웃어보이더니 감사를 표했다.
“아주 힘이 났어요. 고맙습니다, 후배님.”
음음. 주변이 밝아질 것 같은 환한 미소다.
역시 치나미는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
“별말씀을요. 부장보다 스승님을 응원할게요.”
“어허. 참가하시는 분들은 다 똑같이 응원을 해야 마땅하지요.”
“그러면 똑같이 응원하되, 스승님을 조금 더 응원할게요.”
“안 되어요. 평등하게 힘을 주세요.”
“단호하시군요. 알겠습니다.”
일을 다 끝내고 버스에 오르니, 앞좌석에서 팔짱을 낀 채 앉아있는 렌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
날 발견한 그녀의 짜증 섞인 탄성.
방금 분명히 반가운 낯으로 날 봤으면서… 순식간에 표정관리를 하는 걸 보니 가소롭다.
“안녕하세요, 부장.”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은 내 인사에 대충 고개만을 주억거리는 렌카.
그런 그녀의 어깨를 남들 몰래 툭 건드린 내가 말했다.
“출발하기 전에 뒤로 와요.”
“오, 왜…? 뭐하려고…?”
“젤리 갖고 왔는데 먹으라고요. 부장이랑 스승님한테만 주는 거예요.”
“아… 그런 거였어?”
“왜요? 내가 이상한 짓이라도 할까봐 불안했어요?”
“뭐래… 내가 무슨… 시간 봐서 갈 테니까 저리 가.”
누가 봐도 정곡을 찔린 얼굴로 화제를 돌리는 모습이 깜찍하구나.
대회만 끝나봐라. 내 사랑을 마구마구 갈구하도록 만들어주마.
라는 말을 삼킨 나는 얌전히 렌카를 지나쳐 치나미와 함께 나란히 뒷좌석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