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n away from an SSS-class obsessed man RAW novel - chapter 88
“으으……. 흣, 으……!”
“옷 마저 벗을까? 속옷 다 젖겠다.”
웃음 띤 얼굴의 이재현이 내 입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안을 휘젓던 손이 빠져나오고, 그대로 속옷과 바지를 잡아 내려 벗겨 냈다. 푹 젖은 아래에 차가운 공기가 닿고, 내 밑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마.”
“보고 싶은데.”
다리를 오므리며 몸을 움츠리자 작은 웃음을 흘린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티를 벗어 냈고, 은은한 달빛 아래 예전에 곁눈질로 보았던 하얗고 탄탄하게 근육 잡힌 몸이 드러났다. 나는 스스로 애매하게 말아 올려진 티와 브래지어를 벗어 내고, 상체를 세워 이재현을 마주 보고 앉았다.
날 빤히 바라보는 눈은 아직도 내 몸을 훑어 내리고 있었다. 물론 내 시선도 놈의 배와 팔에 자리 잡은 크고 예쁜 근육에 닿아 있었다. 천천히 내게로 뻗어진 길고 하얀 손가락이 내 목에서부터 일자로 떨어져 가슴 중앙을 훑어 내렸다.
“네 몸,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예뻐.”
“……상상했어?”
“어, 네가 알면 뒷걸음칠 정도로 수없이.”
내게 몸을 기울여 다가온 이재현은 내 머리를 쓸어내렸다. 쇄골에 닿은 미세한 온기가 미치도록 간지럽게 느껴졌다.
“상상 속에서 난…… 널 수없이 안았고, 지금은 그중에서 제일 널 배려하고 있어.”
내 턱을 들어 올린 그가 눈을 맞춘 채 속삭이듯 말해 왔다. 나는 이재현이 그랬던 것처럼 손가락을 들어 그의 가슴부터 예쁘게 갈라진 복부까지 훑어 내리며 말했다.
“배려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 손이 배를 타고 흘러 내려가 바지 위로 부풀어 오른 그의 중심부를 어루만졌고, 날 마주 보고 있는 이재현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졌다. 더운 숨을 내쉰 그가 순식간에 나를 다시 밀어 눕혔다. 금방이라도 입을 맞출 듯 다가온 이재현의 눈은 조금 초점이 나간 듯 보였다.
“구재희, 도망가지 않기야.”
의미 모를 말과 함께 이재현이 내 입술을 삼켰다. 잠깐 사이 식어 가던 밑으로 두 개의 손가락이 들어와 안을 휘저었다. 요동치는 허리를 감싼 팔이 내 움직임을 저지했고, 거친 키스에 혀가 엉켜 드는 소리와 밑에서 손가락이 움직여 만들어진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다시 아찔해진 정신에 눈앞이 아득해질 때쯤 이재현의 손이 빠져나갔고, 떨어진 입술에 고개를 돌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까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버겁게 느껴지던 키스였다. 한참 가물가물한 정신을 잡고 모자란 호흡을 채우는 데에 집중하던 때, 어느새 입에 콘돔을 물고 있는 그가 보였다.
‘콘돔은 언제부터 준비해 둔 걸까.’
힐끔 내려다본 곳에는 어느새 벗어 던진 그의 아랫도리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시선을 들어 올리니 드러난 이재현의 것이 꼿꼿하게 서 있는 게 보였다. 그의 하얗고 붉은 피부와 어울리는 분홍빛이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커다란 크기에 잠시 김세한과 이런 점까지 닮은 건가 생각해야 했다.
“후우…….”
머릴 넘기며 한 손으로 내 허벅지를 고정하듯 감싸 잡은 손에 아까의 대범함과 조급함이 날아가고 약간의 두려움이 밀려왔다. 내 밑에 느껴지는 묵직한 열기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안으로 뻑뻑하게 밀려들어 올수록 내 허벅지를 잡은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도망가지 말라는 건 이런 의미였나.’
이재현은 마치 나를 뚫어 낼 듯한 힘으로 자신의 것을 밀어 넣고 있었다. 너무 오랜만인 탓일까. 처음도 아닌데 놈을 받아들인 안쪽에서 고통 어린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잠깐, 읏, 하, 아……. 아파.”
신음하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자 이재현이 몸을 포개듯 내 위로 올라와 허벅지 대신 허리를 잡았다.
“힘 풀어.”
“그게…… 읏, 될 리가…….”
푹, 녀석이 또 한 번 크게 밀고 들어오자 배 안에선 고통스러운 진동이 울려 댔다. 다리가 바들바들 떨려 오고, 입에선 신음이 새어 나왔다.
“흐, 아윽……! 하아…….”
배 안쪽을 가득 채운 놈의 성기는 안에서도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너무 뜨거워서 온몸 전체가 위험할 정도로 데워지는 것만 같았다. 이재현의 입에선 또 한 번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 들어갔어.”
“흐으, 으…….”
“네 안, 엄청 좁아. 계속 날 밀어내는 거 같아.”
안에 가득 들어찬 이재현의 것에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게 고작인 내 입술을 매만지던 손이 배를 쓰다듬었다.
“예뻐…….”
“하……. 으, 아, 아직 움직이지 마…….”
“허락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배려…… 못할 거 같아.”
스윽 빠져나갔던 그가 다시 한번 안으로 밀려들었다. 머리가 아득해지는 감각과 밑에서 올라온 충격에, 쾌락과 고통 그 어딘가를 아슬하게 넘나들고 있었다.
이재현은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내 가슴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걸 손바닥 가득 움켜쥔 그가 작은 숨을 뱉으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
“너무 예쁘다.”
가슴과 엉덩이를 손에 가득 쥐었던 그가 가슴을 입에 머금고 빨아당겼다. 혀가 의도적으로 내 돌기를 감싸듯 움직였고, 얼마 안 가 이를 세워 살짝 깨물었다.
“아윽! 아파, 으읏……!”
다시 부드럽게 혀로 꼿꼿해진 유두를 훑어 낸 그가 가슴에 얼굴을 묻고 뜨거운 숨을 뱉어 냈다. 그리고 다시 연한 살을 머금고, 빨아당기기를 반복하다 중얼거리듯 욕설을 뱉고는 고개를 겹치며 속삭였다.
“이 박아 넣고 싶어. 여기에.”
가슴을 아플 만큼 움켜쥔 손에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자 귓바퀴를 혀로 살살 훑어 내고 다시 허락을 구하듯 물어 왔다.
“응?”
그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못 한 채 신음만 흘리자, 슬그머니 내려가 내 쇄골에 이를 세워 박아 넣었다.
“윽!”
고통스러운 신음에 잠시 눈을 들어 날 확인한 그가 달래듯 깨물었던 부위를 혀로 쓸었다. 높게 세워진 코가 내 가슴을 긁듯 움직이고, 얼마 가지 않아 가슴에도 아까와 똑같은 고통이 일었다.
“아윽! 하, 하지 마, 아파…….”
“하아……. 정말 너무 귀여워.”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던 그가 뜨거운 숨을 흘리다 올라와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고, 더 크게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단단해지고 커진 것 같은 그의 성기가 안을 가득 채우다 못해 흘러넘칠 것 같았다.
“아윽……! 하…… 아흐…….”
“구재희, 소리 너무 크면 다른 방에 들릴지도 몰라.”
고요한 밤, 방 안에서도 물 마시러 거실에 누군가가 나오는 소리가 들리곤 했으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잘근, 입술을 깨문 나를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려다본 이재현은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빠져나간 것과 달리 들어올 땐 묵직하게 쳐올려서 애써 닫아 놓은 입술에선 자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윽…… 읍, 흐으……! 아, 살, 흐으 살살…….”
애원하듯 내 허리를 감싼 팔을 잡았지만 날 내려다보는 그의 눈은 흐릿해져 이미 내 소리는 듣지 않고 있는 듯 보였다. 순간 이재현의 성기가 깊숙하게 들어와 눈을 질끈 감았고, 곧 배에 작은 경련이 일었다.
“읏……! 거기…… 싫어.”
“아……. 엄청 깊이 있네.”
대화는 전혀 되고 있지 않았고, 그때부터 이재현은 내가 싫다는 곳만 집요하게 긁어 내듯 움직였다. 배 안에서 꿈틀대는 게 이재현인지, 내 내벽인지 모를 정도로 모든 게 섞여 드는 것만 같았고, 허리를 고정하듯 잡은 팔 탓에 몸을 움직일 수도 없어 그저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 뿐이었다.
“하으, 읏, 응…… 아으……!”
“……소리.”
그 말에 입술을 깨물었지만, 곧 다시 밀려드는 이물감에 입을 다물기는 힘들어 미간을 찌푸렸고, 그런 날 내려다보던 이재현은 속절없이 흔들리는 내 고개를 잡아 입을 맞췄다.
“읍, 응, ……윽.”
아래에서 들려오는 철퍽거리는 소리와 엉켜 드는 혀에서 나는 젖은 소리가 삼켜진 신음 대신 방을 채웠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눈앞이 흐릿해졌을 때, 배 안쪽 깊은 곳에서 터진 쾌락의 전류가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떨리는 내 몸을 눈치챈 것인지, 이재현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입을 떼어 냈다.
“아, 흐으…….”
골반이 제멋대로 떨리고 튕기기를 반복했다. 허벅지가 덜덜 떨리고, 머리가 온통 새하얘져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내뱉는 숨이 다 느껴질 정도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나를 삼킬 듯 응시하고 있는 이재현의 눈이 시야를 가득 메우고 머릿속을 채울 뿐이었다.
“구재희…… 좋아해.”
녀석은 땀에 젖은 내 머리카락을 넘기고 이마에 입을 맞춘 뒤.
“나 외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귓가에 나지막한 목소리를 흘리곤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흣, 나…… 윽, 아직.”
힘이 다 빠져 눅진해진 내부가 무방비하게 긁혀, 쾌락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머리를 잠식했고, 눈앞이 다시 온통 새하얘지고 있었다.
“하흐읏……! 하, 재현아, 그만…….”
다급함에 평소라면 부르지 않았을 호칭으로 그를 불렀고, 그에 반응하기라도 한 듯 이재현의 허릿짓이 한층 난폭해졌다.
“목소리, 귀여워……. 더 내 봐. 다 들려주자, 응?”
“하으…… 읍, 으, ……윽.”
놀리는 듯한 이재현의 말에 나는 오히려 입술을 깨물었고, 날 내려다보는 그의 목에 팔을 감아 잡아 내려 끌어안았다. 엉망일 게 뻔한 지금의 얼굴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재현은 순순히 몸을 낮춰 내 몸 위로 무게를 실었다. 허릿짓에 몸이 흔들릴 때마다 서로의 가슴이 맞닿아 뜨거운 열기가 피부를 달궜다.
“구재희…… 재희야.”
내 목과 머리카락에 얼굴을 부비듯 파고들던 그가 내 이름을 불렀고, 이재현의 것이 단번에 내 안 가장 깊은 곳을 찌르고 작게 꿀렁였다.
“하아…….”
귓가에 토해진 한숨과 작게 떨리는 몸이 그가 절정에 다다랐음을 알려 왔다. 허리를 작게 움직인 그가 내 목과 귓불을 머금듯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더워…….’
그가 빠져나간 밑에 차가운 공기가 들어와 필요 이상으로 달궈졌던 내부를 식혔다.
손등으로 눈을 가린 채 가쁜 숨을 내쉴 때였다. 내 허릴 잡아 날 뒤집은 그가 어느새 내 등을 감싸듯 몸을 밀착해 왔다. 영문도 모른 채 엎드린 내가 뒤를 돌아보려 하자 배를 받쳐 든 그가 귓가에 속삭이듯 말해 왔다.
“구재희, 허리 들어.”
엉덩이로 닿아 오는 묵직한 것에 본능적으로 몸을 빼자, 이재현이 골반을 잡아 끌어 내렸다. 배를 들어 억지로 허리를 세우게 한 그가 아직도 그 열기를 다 식히지 못한 내부에 자신의 것을 밀어 넣으며 속삭였다.
“도망가지 말라고 했잖아.”
이재현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 몸을 돌리고 들어 올려 자세를 바꾸며 말없이 허리를 흔들었다. 이재현은 이따금 목덜미와 귀에 더운 숨을 뱉었고,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다 내게 입을 맞추기를 반복했다. 그사이 내 안에선 크고 작은 절정이 지나가 허리가 휘고 경련이 일었지만, 이재현의 허리는 멈추지 않았다.
“눈 감지 마, 나 봐.”
허용 범위 이상의 끔찍한 쾌락은 고통과 닮아 괴로움에 눈을 질끈 감은 내게 그가 명령조로 말해 왔다. 날 응시하는 눈은 아까와 다를 바 없이 날 삼켜 낼 듯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재현은 그의 말을 빌려 ‘발정 난 개새끼 같은 성애적 욕구’에 잠식당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바쁜 집요한 악취미를 가진 남자였다. 그리고 아마 이게 내가 품기로 마음먹은 남자의 실체였다. 예쁘게 꾸미지도, 연기하지도 않은, 가장 밑바닥의 이재현.
***
무거운 눈을 들어 올리자마자 시야 가득 이재현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허릿짓에 속절없이 흔들리다 거의 쓰러지다시피 눈을 감았고, 그새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새벽 특유의 푸른 빛이 방 안을 비춰 미끈하고 하얀 이재현의 피부를 창백하게 만들었다.
“좀 잤어?”
내 머리를 쓸어 넘기는 손길은 차갑게 보이던 것과 달리, 스친 귀에 열이 오를 만큼 뜨거웠다.
“응……. 넌?”
밤새 신음했던 탓일까, 생각보다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이재현은 미소를 머금고 작게 고개 저었다.
“잠이 안 와. 꿈일까 봐. 지금 네가 너무 예뻐서 사실 아직도 안 믿겨.”
덜덜 떨며 했던 사과도, 감정의 소용돌이도 아득히 멀어지고, 이제야 팀원도 다 사는 곳에서 너무 생각 없이 일을 치른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몇 시야? 애들 일어나기 전에…….”
“다 일어난 거 같던데.”
“뭐? 아……. 망했어.”
같은 방에서 나온 남녀, 너무 티가 날 민망한 상황에 김성민의 낄낄거리는 소리가 벌써 울리는 듯해 머리가 아득해졌다. 이마를 짚은 나와 달리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이재현은 내 얼굴부터 목, 어깨를 쓸어내리듯 어루만지며 곧 잠이 들 듯 나른한 목소리를 흘렸다.
“문 잠그려고 일어났었는데, 이미 잠겨 있더라. 네가 잠갔어?”
“아……. 응.”
“그렇다는 건…… 어제 내 방에 온 목적이 분명했다는 말이네.”
엄지로 내 쇄골을 지분거리던 이재현이 내리깔렸던 눈을 들어 날 마주 보았다. 약간 가늘어진 눈이 날 놀리려는 장난기를 담고 있어 미간을 찌푸렸다.
“나 놀리면 재밌어?”
“재미도 있지만, 그냥 너무 사랑스러워서. 구재희가 그런 사고와 행동을 했다는 게.”
내 볼과 이마에 차례로 입 맞춘 이재현이 내 손을 끌어당겨 손등에도 입을 맞추었다.
“너무 예뻐.”
예쁜 미소를 머금은 채, 누가 봐도 사랑을 가득 담은 눈으로 날 담아내는 이재현을 보고 있자니 가슴 깊이 몽글몽글한 달콤함이 올라왔다. 몸에 스치는 뽀송한 이불도, 이따금 다리에 스치는 이재현의 피부도, 포근하고 따뜻한 향기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잠도 못 잤으면서 컨디션 좋아 보이네. 어젯밤이 꽤 만족스러우셨나 봐?”
똑같이 놀려 줄 생각으로 꺼낸 말이었지만, 이재현은 날 끌어당겨 내 쇄골 부근에 코를 박고 웅얼댔다.
“말이라고 해? 몇 년을 기다리던 밤인데.”
“……몇 년?”
“네 상상 했다고 했잖아. 좋아한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했거든. 미안해. 그다지 순수하지 못해서.”
가까워진 몸 탓에 겹쳐진 다리가 나를 옭아매듯 감아 왔고, 허벅지 부근에 놈의 중심부가 닿았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존재감에 몸을 슬쩍 빼려 하자 내 품에 안기듯 있던 이재현이 고개를 들어 입술을 포개 왔다. 아침 인사라 하기에는 진득한 키스에 몸을 꿈틀댈수록 어젯밤처럼 더 집요하게 나를 붙들어 올 뿐이었다.
마침내 떨어진 입술 사이로 더운 숨이 토해졌다. 몇 시간 전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듯 쉽사리 머리가 뜨거워졌다. 몽롱한 눈으로 내 입술을 응시하던 이재현은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미 숨기는 건 늦었는데. 그런 김에 좀 더 지각할까, 우리? 이미 늦은 거 좀 더 늦어도 똑같아.”
선원들을 유혹하는 세이렌의 노래처럼 달콤한 목소리였지만, 내 허벅지를 포박하듯 누르고 있는 이재현의 허벅지를 밀어냈다.
“옷 입어.”
내 말을 무시하듯 꼼짝도 않던 이재현의 몸이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자 쉽사리 떨어져 나간다. 내내 휘둘리기만 하던 나도 이제야 놈을 다루는 법을 어느 정도 깨달은 것 같았다. 대체로 말 안 듣는 어린애를 사탕으로 꾀는 것과 비슷한 원리일 뿐이었지만.
상체를 일으켜 세우자 이불에서 벗어난 살갗에 생각보다 차가운 공기가 스쳤고, 허리엔 욱신거리는 통증이 밀려들었다. 알고 있는 고통이었지만, 실로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감각이었다.
“윽…….”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외마디 신음에 나보다 한발 먼저 옷을 걸친 이재현이 다시 침대 위로 올라왔다.
“왜? 허리 아파?”
걱정하는 말치곤 허리를 쓸어내리는 손길이 은근했다.
“걱정하는 척은…….”
“걱정하는 거야.”
“이럴 거면 그만하랄 때 멈춰 줬어야지.”
이재현을 살짝 밀치며 침대를 벗어나고 나서야 아픈 게 허리뿐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평소 운동을 할 리 없는 몸뚱이가 갑작스러운 활동량에 놀란 것 같았다. 더군다나 내려다보이는 가슴께엔 크고 작은 붉은 자국과 멍, 잇자국이 남아 있었다. 실소가 나올 정도로 얼룩덜룩한 몸이었지만, 어젯밤 내내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던 그를 생각해 본다면 무리도 아니었다.
고개를 저으며 옷을 찾아 움직였고, 분명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어야 할 내 옷은 네모반듯하게 개어져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이런 데에서 섬세하네.’
이미 옷을 다 입은 이재현은 침대에 걸터앉아 주섬주섬 옷을 입는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신경 쓰여 눈을 맞추었을 땐.
“내가 입혀 줄까?”
쓸데없는 말을 하기에 무시했다. 이재현은 그런 내 반응을 화가 났다고 판단한 것인지 옷을 다 입기 무섭게 뒤에서 내 허리를 감싸 안고, 내 목 부근에 고개를 묻었다.
“미안해. 내 욕심 채우느라 바빴어, 어제는…….”
이재현의 큰 몸이 등 뒤로 공간 없이 닿아, 새벽 공기에 차가워졌던 몸을 데웠고, 부슬거리는 머리에선 옅은 비누 향이 났다. 웅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도, 내 허리를 감싼 단단한 팔도, 잠시지만 내 눈치를 살폈을 영악한 머리통도 그다지 나쁘지 않아서 어깨에 닿아 있는 그의 머리를 살짝 헝클이며 대답했다.
“됐어. 내 이기심으로 시작한 거잖아. 덕분에 아무 생각 안 나기도 했고. 뭐…… 나도 꽤…… 좋았으니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대로 이재현에게 안겼을 땐 김세한에 대한 생각은 나지 않았다. 게다가 이재현이 얼마나 나를 원하고, 좋아하는지도 밤새 한껏 깨닫게 되었다.
“…….”
아무 반응이 없는 놈에 내뱉은 말을 후회할 때쯤, 내 배에 닿아 있는 팔이 더 단단하게 나를 조여 왔다. 등에 닿은 몸으로부터 작게 전해져 오는 진동이 지금 그가 웃음을 참고 있음을 알려 왔다.
“왜 웃어…….”
“좀만 이러고 있자. 감정이 폭발해서 진정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