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Scrapped Extra Villain RAW novel - Chapter 282
“…그러네요.”
루리가 동조했다. 3대 공작이 쓰러졌으니, 곧 비공정 갑판이 전장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물론, 그렇게 되도록 바라볼 리가 없다.
“우리가 지켜야 한다.”
붉은 벼락과 함께 나타난 아네트가 둘에게 말했다.
아네트, 루리, 아델라. 셋의 기원은 남다르다. 일반적인 성장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아네트의 경우, 역대 데퍼들리 제국 황제들의 영혼이 담긴 영혼석의 힘을 세계수의 도움으로 흡수했다.
대륙을 일통할 뻔했던 제국의 황제들이다. 그 힘, 가히 천문학적일 터.
루리의 경우도 마찬가지. 불의 정령왕과 계약하여 그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루리의 경지와 깨달음이 적기에 일부만 꺼내 쓸 뿐, 그 힘의 원천은 무한하다.
아델라 또한 마찬가지. 황금의 권능은 곧 인간의 신 해머드의 혈족에게만 나타나는 힘. 사실상 신성에 가깝다. 또한 네이처 파이브 중 하나인 사막의 제관까지 취했다. 인간의 신과 대자연의 힘. 그 에너지의 한계를 측량하려는 것 자체가 우둔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흐음. 정말 우리만 남았구나. 나약한 것들.”
“우리가 지켜야죠. 할 수 있어요.”
“긍정하지. 짐도 아직은 여유가 있다.”
이 셋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강해지진 않았다. 과거가 미래로 보내는 소망을 이어받은 형식으로 강해졌기에, 일반적인 기사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먼저 가겠다!”
아네트가 출력을 끌어올린다. 붉은 전격이 사방으로 쏘아 다닌다. 검붉은 번갯불이 번쩍이는 곳마다 혼돈의 찌꺼기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흡사 레이튼 공작과 닮은 민첩한 전투 스타일. 아니…, 마틴의 백병전을 카피한 것이 분명했다.
“저도요!”
루리가 불새가 되어서 쏘아진다. 그녀의 의지가 향하는 곳마다 혼돈 위로 불이 덧씌워지며 공간을 불사른다.
그야말로 대량학살이란 단어가 절로 떠오를 정도였다. 에너지 소모 따위는 조금도 염려하지 않는, 그야말로 대화력전.
“…너희, 지킨다는 개념을 모르는 거냐?”
짜증 가득한 눈빛으로 아델라가 심상을 퍼뜨렸다. 옥좌가 4척의 비공정 정면에 위치한다.
“쯧, 이따위 것들에게 보일 기술이 아니었거늘.”
사막의 제관이 태양처럼 밝게 빛나며 광명을 비춘다. 어디선가 황금모래가 모여들어 무언가를 형성한다.
기사단도 아니고, 황금의 창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거대한 건축물. 이내 작지만 부유하는 요새가 완성된다.
“…전부 쓸어버려.”
요새 내에서 황금의 창들이 자동화기처럼 쏘아진다. 그야말로 화력의 정점!
그뿐만이 아니다. 이 화력을 뚫고 들어오면, 그때부터가 진짜다. 요새 내부에서 황금모래 기사단이 날아오른다. 황금날개가 달리고 각양의 무기를 든 기사단. 그 중심에는 아델라가 총애하는 해리스 경도 있었다.
마틴이 구한 세 명의 여인이 맹활약을 펼치는 동안. 선실에서도 룩펠스와 네르진 등이 이를 악물고 퍼져버린 마나 엔진들을 일으켜 세웠다.
“앞으로 한 번.”
“한 번은 버틸 겁니다!”
“다이브 준비!”
윌로우 리더의 지시에 비공정이 기어코 다이브를 준비한다.
“아델라 황녀! 루리 공녀! 아네트 황제! 복귀하도록!”
다시 한번 거대한 거인이 일어선다. 4척의 비공정을 감싼 마나의 거인. 카록 공작이었다.
아델라와 루리, 아네트가 돌아와서 갑판 위에 주저앉았다.
루리는 거대한 힘의 통로가 되는 바람에 울렁거렸는지 토악질을 했다. 아델라는 옥좌 위에 앉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고. 아네트는 아예 드러누웠다.
그러나 덕분에, 원정군은 최후의 방어전을 해낼 여력을 다시 회복했다.
“다이브 개시!”
윌로우의 외침에 맞춰서 비공정들이 시공간 왜곡 통로로 진입한다. 혼돈의 찌꺼기들이 메뚜기 떼처럼 몰려오는 걸 원정군이 악착같이 막아낸다.
“버텨! 버티라고!”
“실패하면 다 죽어!”
그리고 비공정은 무사히 시공간 왜곡 통로에 들어섰다. 급속 상승하는 가속력에 방어 마법이 찌그러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배가 비명을 지르고 선체가 찌그러진다. 혼돈 침식 때문에 갑판의 금기사들 몇몇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 다녔다. 선체가 덜컹거리며 지친 금기사들 몇 명이 난간 아래로 떨어졌다. 이제는… 그들을 구해줄 여력을 가진 사람도 없어서 그저 망연히 바라만 보아야 했다.
[다이브 완료까지 10!]그리고.
[3! 2! 1! 다이브 완료!]네 척의 비공정이 험난한 여정에 굴하지 않고 시공간 왜곡 통로를 빠져나왔다.
곧 이어질 혼돈의 찌꺼기들과의 재접전과 선체의 수리를 하려고 각오하던 이들이, 멈칫했다.
“…전원 숨 돌리도록.”
대미궁 지도를 보던 윌로우가 친히 방송했다.
“우리는 무수한 타임카오스 던전들을 거쳐…, 끝내 목적지에 도달했으니.”
선내의 선원들이 환호성을 여기저기서 질러댄다. 힘에 부쳐 쓰러진 이들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어두운 공간이었다. 그러나 혼돈의 찌꺼기는 보이지 않았다. 지긋지긋하던 공방전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
그러나 매사에 냉정히 전황을 살필 의무가 있는 윌로우는 차마 기뻐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사기 진작을 위해 희망적인 말을 꺼내긴 했지만.
‘아무것도, 없어.’
비공정을 맞이한 곳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어둠의 공간이었다.
*
어둠의 공간에 진입하고 한 시간째. 아무런 징후가 감지되지 않음에 따라, 원정군은 본격적인 재정비에 들어갔다.
“여기 식사하세요.”
“아, 고맙소.”
갑판 위에서 쉴새 없이 밀려드는 혼돈의 찌꺼기들을 상대로 싸워준 용사들은 각자의 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한 최고의 휴식을 누리는 중이었다.
반면에 조금의 쉬는 시간조차 없어서 과로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이들도 있었다.
“제기랄, 이거 안 되겠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엔지니어들이다. 그들은 곧장 배를 수리하러 나섰다. 마도공학자, 기계공학자, 마법사, 연금술사 등을 가리지 않고 전부. 룩펠스와 네르진도 여기에 속했다.
“네르진입니다. 마나 엔진 10개 중에 3개가 퍼졌고, 5개는 아예 죽어버렸습니다. 룩펠스 경, 그쪽은 어떻습니까?”
“여긴 6개가 죽었네. 다이브가 3분만 더 길었어도 과부하 한계로 폭발했겠더군.”
“…아슬아슬했군요.”
“자네 실력이 출중했던 덕분이지.”
네르진의 마도학적 지식은 인류 최고의 마법사라 추켜세워지는 룩펠스조차 감탄할 것들이었다.
“시간이 주어졌으니, 방어 마법이나 정화 마법은 어떻게 복구하면 된다지만….”
“그래, 마나 엔진은 방법이 없군.”
“아예 부품을 새로 갈아 끼워야 하는데, 이미 예비 부품은 다 썼고 비공정이라 해도 대장간은 없으니까요.”
비공정이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다. 비단 마나 엔진만이 아니었다.
“…이런 개떡 같은, 용골에 금 갔는데…?”
“마법으로 땜빵 쳐야지…. 안 하면 뚝 부러져서 다 죽을 텐데, 어쩌겠냐.”
배의 척추인 용골에 금이 간 것이다. 전부는 아니고 단 한 척만. 다른 함선들도 용골만 성할 뿐 치명적인 파손을 여럿 떠안았다.
“허허, 마지막 다이브는 대체 어떻게 버틴 거지?”
“하늘이 도우신 거지. 아직 대륙이 망할 때가 아닌가 봐.”
그리하여 다양한 분야의 권위자들로 구성된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항해가 불가능합니다.”
“….”
윌로우는 구겨진 얼굴로 통계 수치를 살폈다. 수백 개의 홀로그램. 몇 번을 보고 서로 다르게 비교해봐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그렇군.”
룩펠스가 덧붙였다.
“다행이라면 비공정의 부유 기능까지 마비되지는 않았다는 걸세. 기능만 정상이라면 영구적으로 부유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니….”
비공정 통째로 저 바닥조차 보이지 않는 혼돈의 아가리로 떨어질 일은 없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반대로 말하자면.
“우린, 여기에 조난당한 걸세.”
탈출할 방법도 없어졌다.
다음으로는 비공정 이곳저곳의 장치들로 이곳을 연구한 참모진들이 발언했다.
“이곳은… 앞선 곳과 다릅니다. 혼돈의 찌꺼기는 물론이고,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우리뿐입니다. 이전의 공략되어 찌꺼기들만 남은 타임카오스 던전에서는 혼돈이라도 있었지, 여긴 정말로 무(無)의 공간인 것마냥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장선이 먼저 여길 지나간 게 아니었나?”
“물론입니다. 앞서 대장선에게 공략되었던 찌꺼기들만 봐도 알 수 있죠. 다만….”
참모진은 통계 자료를 가져왔다.
“현재 우리가 있는 타임카오스 던전에 대한 자료가 기존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더군요. 경계의 타임카오스 던전이죠. 경계가, 최초의 타임카오스 던전을 지키고 선 겁니다.”
경계의 타임카오스 던전이 위험한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건.
“경계의 던전의 특성이 뭡니까? 첫째는 불멸성이죠. 아무리 공략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또 살아서 움직이죠. 경계를 가로막던 던전이 알아서 물러가지 않았습니까. 아마, 대장선은… 경계가 일부러 막지 않은 게 분명합니다.”
결론.
“대장선도 함정에 빠졌지만, 우린 우리대로 제대로 함정에 빠진 게 분명합니다.”
아찔해졌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영원한 표류가 예정된 게 아닌가.
…이 소식은 곧바로 비공정 내의 모두에게 전해졌다. 아무라도 좋으니, 방도를 강구해 보라고. 그러나 최고의 지성인들이 떠올리지 못한 걸 쉽게 떠올리진 못할 터였다.
“비공정 내의 식량이 떨어져서 아사할 때까지, 이 광경만 봐야 한다고?”
한 기사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
“….”
“….”
그 치열했던 30일의 원정이, 100회를 넘긴 다이브가, 그 결과가 고작 이거라니. 세상을 구하기는커녕, 비참하고 불쌍한 결말을 맞이하게 됐다.
한 기사는 이렇게 한 바퀴 비공정을 돌아다니면서 정보들을 취합했다. 총사령관 윌로우가 참모진과 회의를 나누거나, 엔지니어들이 자포자기하는 모습도 보았다.
의무실에서는 금기사들 몇이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조차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같은 중환자인데도 병실 자리가 부족해서 개인실에 의료기기를 놓고 치료받는 이들도 있었으니.
부관인 데르조는, 상관에게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갑판의 선두에 서서 멍하니 어둠을 바라볼 뿐인 여인에게.
“그렇다는군요, 셀리나 경.”
데르조. 달빛의 기사 셀리나의 부관.
“…이상하네에.”
그녀가 고개를 까딱인다.
“그보다 몸은 괜찮아, 데르조?”
“아, 예. 살만합니다.”
데르조는 목과 팔에 깁스를 둘렀다. 팔은 교전 중에 다쳤고, 목은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다이브 중 함선이 요동칠 때 바닥을 나뒹굴며 다친 것이다.
“저보다 더한 부상을 입은 분들도 많으니까요.”
“헤에, 데르조는 착하네.”
뭐라 말하려는 찰나, 셀리나가 주제를 바꿨다.
“그보다 있지. 데르조. 이상하지 않아? 아무리 봐도.”
또 시작이군. 데르조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또 상관의 질문이니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뭐가 말입니까?”
플래티넘 넘버링 No.10 달빛의 검사 셀리나. 백금기사 중에서도 상위권에, 왕국의 보물인 월광검을 들었고, 신박한 발상으로 타임카오스 던전을 공략하기로도 유명했다.
그중 그녀를 가리키는 제일 유명한 별명이 바로 ‘괴짜’다.
“헤에, 이상한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