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202
Chapter 45. 공조(1)
영업국 VIP영업4팀 팀장 모호(模糊)는 설레는 마음으로 해저 식당에 입장했다.
무려 인사과장도, 처장도 아닌 인사국장과의 만찬이 아닌가.
‘지출이 좀 크긴 했지만…….’
국장에게 잘 보여 앞으로의 진급에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니다.
‘국장님의 눈에 확실히 들어야 돼.’
[‘언더 더 씨(Under the Sea)’의 명물, 주문하신 ‘진미(珍味)’ 코스입니다.]더군다나 다른 곳도 아니고, 이 비싼 레스토랑에까지 데려와 주지 않았나.
VIP영업팀 팀장의 감각이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예감이 좋다고.
‘잘하면 최초로 영업국장과 인사국장 모두를 뒷배로 얻을지도 몰라.’
그리 생각한 모호는 의욕을 불끈 다지며 싹싹하게 말했다.
[여기 투명상어의 지느러미도 맛보십시오, 국장님. 정말 맛있습니다.] [먹었네.] [그러시면 여기 이거, 별가사리도 아주 일품입니다. 한 점 드리겠…….] [됐으니까 자네나 먹게.]비록 뭘 물어도 단답형에, 혼자 뭘 생각하는지 제 쪽은 쳐다도 보지 않는 모습이 이상하긴 했지만.
‘후배 직원들을 아낀다 들었는데…… 낯을 가리시는 편인가?’
그럼 또 노련한 영업사원이 나서야 할 차례다.
생각해 내자.
10년 연속 ‘올해의 사원’ 자리를 지킨 실력으로.
‘어떤 얘깃거리를 좋아하실까.’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공통적으로 아는 인물이나 이야기가 가장 좋을 터.
둘 다 아는 인물.
그리고 오늘 이 시점에 꺼낼 만한 이야기라면…….
‘하나 있지.’
[그나저나 말입니다.]순수한 후배의 가면을 쓴 모호가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신임 팀장, 조금 독특하지 않았습니까?] [신임 팀장이 기백 명은 있었지 않나.] [아…… 그, 왜, 신입사원 말입니다. 이름이…… 이은호였나요?]오늘 행사에 참여했다면 알 수밖에 없는 공통의 인물.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고 만 이은호를 거론하며.
[가진 것도…… 흡!]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나선다며 우스갯소리로 넘기려 했다.
하지만.
섬뜩!
똑바로 맞춰 오는 국장의 눈빛에 저도 모르게 얼어 버렸다.
인자한 눈웃음 속에 감춰져 있던 새카만 눈.
서늘하다기보단 따끔따끔할 정도로 날카로운 눈빛.
속을 까 보려는 것처럼 심연까지 들여다보는 듯한 시선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입찰을 안 할 줄은 몰랐지. 깜빡 속았지 뭔가.]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국장의 표정은 멀쩡했다.
‘잘못 봤나?’
찰나의 눈빛이다.
인자하기로 유명한 국장이기에, 긴장한 나머지 잘못 봤나 생각하며 넘어갔다.
[제, 제 주머니에 얼마가 들어 있는지도 모르고 그리 나서다니.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 게 신입사원답더군요. 그…… 렇지 않습니까?]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다라.]국장도 분명 놈이 나설 때마다 불편해하는 게 눈에 보였으니 공감해 줄 테지.
그리 생각했는데.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지.] [맞습니다. 아는 만큼…… 예?] [아무것도 아닐세.]알 수 없는 소릴 하더니, 갑자기 몸을 뒤로 기대며 팔짱을 꼈다.
재밌는 유희거리를 찾은 듯 그를 관찰하며.
모호가 다급하게 외쳤다.
아까부터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보면 거짓말도 아니었기에, 그는 당당했다.
【판매 성공!】
【누적 실적 : 1,905,000점】
이은호의 개인 실적은 2백만 점.
그리고 모호의 실적은 1백 9십만 점.
단 10만 점 차이였다.
[‘올해의 사원’ 후보로 선정되셨습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고 승리를 쟁취하세요!]얼마 남지 않았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메시지도 받았고.
[딱 하루! 하루만 더 있으면 되찾을 자리입니다!]하지만 그런 것 따윈 개의치 않는다는 듯, 국장은 비릿한 미소를 띠고 입을 열었다.
[어찌 됐든 뺏긴 건 사실이지.] [하지만…….] [영업국장도 여간 아쉬워하는 게 아니더군.]흠칫!
모호의 속이 부글부글 끓을수록 손이 덜덜 떨렸다.
술을 반쯤 흘리며 제 잔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
[사실 난 다르게 생각한다네.] [……예?]국장의 나지막한 말이 술잔 위로 내려앉았다.
[단 이틀의 기록이지 않은가. 1년 내내 정당하게 붙었으면 자넬 이기긴 힘들었을 거라 생각한다네.] [……맞습니다! 영업이라는 게 다 노하우와 경험이 필요하지 말입니다! 게다가 그놈은 더러운 술수를 써서 온갖 공수표를 남발했다는 제보도…….] [그래그래. 그러니까.]따발총처럼 내뱉은 모호의 말을 국장이 가로막았다.
그리고 내뱉은 아이디어.
[영업국으로 데려가서 정정당당하게 다시 붙어 보면 되지 않겠나?] [예? 하지만…… 놈은 이미 인사국 산하에 새 팀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근데 어찌…….] [신생 팀이잖나.]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해체되면, 놈도 어쩌겠나. 시키는 대로 발령받아야지.] [해체……!]하지만 그 말을 내뱉은 이가 하늘의 별을 따겠다 해도 ‘그렇군요.’ 할 만한 위상을 가진 국장 아닌가.
그래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오래가지 못할 걸세.] [그따위 팀, 금방 해체될 게 분명합니다……!] [그럴 걸세. 아니면 정의 구현…… 뭐 그런 걸 해도 좋고.] [!!]그때부터였을까.
모호가 술을 퍼마시기 시작한 건.
아차 싶어 술잔을 놓으려고도 했으나, 국장은 되레 빈 잔에 술까지 따라 줬다.
만족스러운 듯 웃음기를 띠고서.
[아……! 2차는…….] [아쉽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하지.] [맘껏 먹고 마시게. 먼저 가네.] [……사, 살펴 가십시오!]국장이 사라지고도 한참 동안 홀로 술잔을 넘겼다.
술이 아니라면 끓어오르는 분노를 어찌하지 못할 것 같았다.
탁! 쪼르륵-
꿀꺽!
꿀꺽!
한 잔 술에 이은호의 가증스러운 낯짝이.
한 잔 술에 OJT 나온 신입에게 졌다며 비웃던 놈들을 털어 버렸다.
그러다 제가 술을 마시는지, 술이 저를 마시는지 모를 지경이 됐을 무렵.
드르르륵-
안내에 따라 문을 열고 나왔을 때.
[이은호?]운명처럼 놈을 마주쳤다.
[이 새끼가……! 또 하늘 같은 선배를 모른 척해?]뱃속에 불길을 머금은 것처럼 홧홧한 지금.
지금이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소식 들었을 텐데.]건방진 낯짝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똑바로, 그리고 용맹한 장수의 그것처럼 기세등등한 걸음걸이로.
놈에게로 걸어갈수록 주변 벽이나 바닥이 울렁거리는 것 같기도 했지만, 이 정도 술수로는 저를 어쩌지 못한다.
그리 생각하며.
[사택도 내 것이다. 네 손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야!]팍!
멱살을 잡아 쥐었다.
[하루아침에 다 뺏긴 심정을 느껴 봐라.]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
기대했던 국장에게 받지 못한 호의.
자리를 빼앗길 것 같다는 불안감이 날카롭게 벼려져 담긴 시선.
[음?]근데 왜…….
[……그새 쭈그렁탱이가 됐냐?]얼굴이 씹다 버린 오징어처럼 쭈그러들었는데.
그리고, 키도 이렇게 작았나?
[내가 키도 뺏어 버린 거냐……?]“푸하하!”
[……어?]모호는 당황스러웠다.
“하…… 술을 아주 들이부었나 보네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분명 이은호 멱살을 잡았는데.
왜 옆에서 이은호가 비웃고 있는 거지?
[……영업국 VIP영업4팀 모호(模糊).]이 쭈그렁탱이는 뭐고?
잠까안…… 이 얼굴 어디서어…….
끔뻑. 끔뻑.
모호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쪽 담당하는 VIP들, 내 단골들이기도 한데.]그러자 겨우 형체를 잡아가는…… 왜소한 사내의 얼굴을 알아봤을 때.
[오랜만에 연락 좀 돌려 봐야겠네요.] [허억! 소, 소, 소에…… 딸꾹!]휘청-
뒤로 넘어가며 생각했다.
이건 분명 꿈일 거라고.
그래야만 한다고.
그래야만…….
‘X발!’
* * *
【Rrrrrr…….】
【Rrrrrr…….】
【Rrrrrr…….】
정신없이 울리는 전화 소리에 설핏 잠에서 깼다.
밤새 나쁜 꿈을 꾼 것 같다.
그리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을 때.
깨질 듯 울리는 머리에 모호의 생각이 멈췄다.
하지만.
[지금 VIP들이 다 난리라고요! 도대체 지난밤에 무슨 짓을 하셨길래 이러는 겁니까?!] [……뭐? VIP들이 왜! 똑바로 말해!]불길한 직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두통을 이겼다.
게다가 그제야 눈에 들어온 붉은 메시지.
【Warning!】
【환불 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누적 실적 : 1,550,000점】
[환…… 불?]환불이라니.
이게 무슨 상황인가.
[X발, 우리 회사에 환불이 어디 있어!] [VIP들은 계약서를 따로 썼잖아요! 해 달라는 조항 다 넣어서!] [그거야…… 당연히 환불 같은 건 진짜로 신청하는 고객이 없었으니까!]오랜 영업 경력상 한 번 물건을 사 간 고객이 환불 신청을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근데 왜 하필 그 첫 경험이 지금이냐고!
‘올해의 사원’ 칭호 수복이 코앞인데!
[무슨 소리야? 갑자기 왜…… 누군데? 바로 찾아가서 머리 박아!] [하, X발…… 누구냐고요?] [X발?! 너 지금 욕했냐? 미쳤어?!] [예! X발! 한둘도 아니고, VIP 전부가 다 달려들어서 환불해 달라는데 욕 안 하게 생겼습니까?!] [!!]지금 무슨 미친 소릴 하냐 윽박지르려 했다.
하지만, 잇따라 떠오른 새빨간 메시지창을 보고선.
【환불 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누적 실적 : 1,380,000점】
【환불 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누적 실적 : 1,030,000점】
【환불 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누적 실적 : 880,000점】
……
말문이 막혀 버렸다.
[우리 실적까지 다 가져가 놓고! 올해의 사원만 돌려받으면 개인 평가는 제 실적으로 해 준다면서요!] [그, 그건…….]X됐다.
그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서, 팀원의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환불 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누적 실적 : 570,000점】
【환불 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누적 실적 : 430,000점】
【환불 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누적 실적 : 190,000점】
……
뚝뚝 떨어지는 실적이 눈으로 따라잡기도 힘들 지경이어서.
[이따위면 우리 팀, 목표 미달인데, 제 평가 어떡하실 겁니까?!]백구십만.
팀원들의 실적을 가로채기해서 쌓은 숫자였다.
어차피 이은호도 더러운 술수를 썼을 테니 이 정도는 정의 구현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근데 이건…….
[……이, 일단…… 일단 끊어 봐! 내가 어떻게든…….] [이미 다 깎였는데 뭘 어쩝니까! 팀장 자르고 물갈이하지 않는 이상 절대 안 봐준다는데!] [나, 날 자른다고?!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야!] [저라도 살고 봐야겠습니다! 실적 가로채기했다는 거, 다 불고 광명 찾겠다고요!]이게 이렇게 된다고?!
갑자기 왜!
도대체 왜!
[X발 새끼가…… 그럼 넌 살 거 같아?! 공범이야 그것도!]머리털이 쭈뼛 선 모호가 뒤늦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해 봤지만.
이미 끊어진 뒤였다.
통화도.
팀원들과의 연결도.
잠시 꿈꾸었던 인맥의 동아줄도.
그리고…….
‘올해의 사원’을 되찾겠다는 희망도.
[다 죽는다고오오오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