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364
제364화
제이미 킴이 말해준 EV-1의 고향 행성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때도 EV-1은 동족을 완전 멸망에서 구하기 위해 폭탄을 해체하러 갔다.
EV-1은 지금 바로 탁일항이 기폭한 폭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유인환은 이진영에게 밀폐형 헤드 모듈을 씌우려고 했지만, 이진영은 한사코 거부하며 폭탄이 기폭된 방향을 바라봤다.
“이브이이이이이이이!”
비는 처량하게 이진영의 머리 위를 때린다.
이윽고 정보국이 예고한 임계시간을 알리면서 또다시 요란하게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어떠한 폭발음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더티밤이라도 방사능 낙진을 사방으로 뿌리려면 폭발이 필요했다.
이윽고 사이렌 소리가 멈추고 이진영의 주변에는 그저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어느새 눈은 진눈깨비에서 하얀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하얀 눈꽃이 흩날리면서 이진영은 슬픈 눈으로 눈을 바라봤다. 그의 손바닥에서 하얀 눈꽃이 천천히 물로 변해 물방울이 손바닥을 타고 흘러내린다.
* * *
새미선교회 다중폭탄테러 사건은 요란한 방사능 경보 사인으로 마무리되었다. 다행히 탁일항이 기폭한 폭탄은 임계점에 오르기 전에 완전 해체되었다.
뉴스에서는 이 더티밤이 왜 기폭 전에 멈췄는지 궁금해하며 사건을 추적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그곳 고속도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인터넷에 괴소문들은 많이 나돌았다.
붉은 조선 갑옷을 입은 뭔가가 몸을 던지면서 폭탄의 임계점 돌파를 막았다는 둥, 페어차일드에서 납이 섞인 시멘트 폭탄을 뿌렸다는 둥. 혹은 웬 슈퍼히어로가 폭탄을 들고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주장까지 있었다.
어찌 되었든 서울 서부와 인천 일대가 방사능에 오염될 뻔한 사건은 무사히 일단락되었다.
새미선교회 지도부는 해외 러다이트 조직과 연결된 정보들을 전부 불었고 연쇄 폭발이 벌어지는 걸 간신히 막았다.
만약 귀타귀가 살아있었다면 정말로 전 세계에서 더티밤들이 폭발하고 편서풍을 타고 북반구 전체를 오염시켰을 테지만 이 테러 사건은 그저 불발에 그쳤다.
덕분에 서가영 행정부는 단호한 일처리라는 찬사를 받으며 지지율이 폭등했다.
언론들은 민민당 정권에서 벌어진 3차 난민봉기를 새미선교회 테러사건과 비교하면서 정부의 강경한 대처가 효과를 발휘했다고 떠들었다.
그러나 실상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 뉴스를 보고 코웃음을 쳤다.
서가영 정부는 끝까지 우왕좌왕했고 현장 형사들 특히 중부, 북부서 형사들이 새미선교회 지도부를 잡지 않았다면 연쇄 테러에 전 세계가 시달렸을 것이다.
또한 귀타귀 사건의 실체 또한 철저하게 숨겨졌다.
초인공지능이니 뭐니 하는 게 밝혀진다면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질 테고 서가영 정부와 미국은 이 사실을 새미선교회의 교주 두 명에게 모든 책임을 씌웠다.
아닌 게 아니라 잡힌 다른 지도부들도 깔려 죽은 설교자 프레임과 뚱뚱한 원래 교주밖에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별 탈 없이 이 소동을 숨길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사건이 일단락되고 벚꽃이 필 무렵 경검과 국방부에 대규모 인사 개편이 시작되었다.
이 새미선교회 사태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사람은 바로 신임 이민호 경찰청장이었다.
이민호는 새미선교회 교주와 특별병과번호 야차왕을 시체나마 확보하면서 서울과 인천을 공포에 떨게 했던 참수사건을 드디어 해결했다.
사실 뒷사정을 보면 구리구리한 부분이 많았지만 일단 겉으로 드러난 모양새로 보면 이민호가 승진하는 게 당연했다.
이민호는 번쩍이는 새 계급장을 달고 중부서 주차장에 내렸다.
관용차 문을 열자마자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지고 난리였지만 이민호는 ‘기자회견은 나중에’를 연발하며 중부서 안으로 들어왔다.
중부서 강력전담부 행어 안에는 수많은 형사들이 짐을 싸고 있었다.
그동안 강력전담부는 난민 조폭과 각종 사건들을 해결하느라 몸집을 불렸고 거의 모든 사건들이 일단락되면서 점수를 채운 형사들이 전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민호가 오늘 중부서에 방문한 것도 각종 포상과 승진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뒤에는 훈장과 계급장을 단 비서가 뒤따르고 있었다.
“청장님!”
이민호를 알아보는 수많은 형사들이 앞다퉈서 경례를 붙였다. 이진영 덕에 이민호는 중부서 현장 경찰들에게 꽤나 인기가 좋았다.
이민호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전담부 행어를 둘러봤다.
작년 말 귀타귀 사건을 마지막으로 중부서의 관할에서는 강력범죄가 크게 줄었다.
이민호는 특히 새미선교회 검거 작전에서 활약한 형사들에게 특별승진과 포상을 결정했다.
이민호 개인적으로도 달랑거리는 목을 붙여준 고마운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육군과의 합동 작전 북새통 속에서도 지도부를 검거하며 전 세계적 테러를 막은 영웅들이었다.
“어이, 이진영이는 어디 갔어?”
“모르겠슴다. 좀 전까지 있었는데.”
애기아빠 박민영도 짐을 싸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귀타귀 사건을 처음 신고받아 현장에서 구른 박민영도 점수를 채워서 이번에 다시 영월로 되돌아가게 됐다.
박민영이 입은 정복에는 경위 계급장이 반짝였다. 무려 2계급 특진이었다.
새미선교회 작전에 참가한 형사들도 최소 1계급 특진을 받고 이제는 팀장급으로 다른 서에 배치되거나 전출 명령이 떨어졌다.
결국 가장 유능한 수사팀이었던 특별대응팀은 잠정 해체 명령이었다.
난민조직도 박살 나고, 딱히 사고를 칠만한 놈들이라곤 이제 배덕환의 웡롱 잔당들 밖에 없었다.
놈들은 비등록 난민을 상대로 세를 불리고 있긴 했지만 중화대루를 만들고 위세를 자랑했던 웡꺼 시절에 비하면 그저 동네 조폭에 지나지 않았다.
놈들보다 링로드를 타고 들어온 외국인 조직이 더 골치 아팠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케냐 아프리카계 조직이나 다국적 마피아들이 설치고 있었다.
강력전담부가 완전히 해체되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다국적 마피아들을 대비한 것이다.
이민호는 벌써부터 담배를 물고 담배 친구 이진영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 유인환! 이진영 못 봤냐?”
유인환은 경찰학교 교관으로 뽑혔다.
아무래도 나이와 연차를 고려하여 경감 승진 후 후학들을 가리키라는 뜻이었다.
“글쎄요? 좀 전까진 있었는데? 숙희 누나, 특장님…… 아니지 부장님 봤어요?”
윤숙희도 경감 승진이 내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다시 서울청의 부름을 받아서 성범죄 수사팀을 두 개나 꾸리게 되었다. 요새 난민들이나 다국적 마피아들의 성범죄가 서울 일대에서 극성이었다.
“어, 윤숙희 축하한다.”
“예에에. 뭘요? 어느 쪽이요?”
“뭐라니?”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민호는 윤숙희와 심봉근이 약혼한 줄 모르는 모양이었다.
심봉근도 윤숙희와 함께 서울 본청 특경으로 다시 발령받았다. 무려 야차왕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특경에서 현장 엑소슈트 부대 지휘관으로 낙점했다.
지휘관의 차를 들이받은 사건은 우야무야 넘어간 모양이었다.
심봉근은 약혼녀와 눈짓을 하다 말했다.
“아, 청장님, 이진영 부장님 찾으세요?”
“어? 이 쌔에끼 이거 나 온다는 소식 들었으면서 어디 도망간 거야? 설마 또 식장에서 도망치고 어디 간 거 아니냐?”
심봉근은 잠시 생각하더니 손뼉을 쳤다.
“아, 그 양반 어딨는지 알아요. 오늘 신병하고 새로운 로봇 도입되는 데 있을 거예요.”
“신병?”
“예, 검거 작전에서 많이 박살 났잖아요? 그래서, 저기 보세요. 많이들 신품이 배치된다니까요? 호리코시고 아선이고 팜플렛도 돌리고 난리였어요.”
“아아. 그거.”
이민호도 신임 청장이 된 후 로봇 대량 도입에 사인한 적이 있었고 이진영이 왜 로봇 행어에 갔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하여튼 누가 보면 실연당한 사람인 줄 알겠다.”
이민호는 투덜대며 로봇 행어쪽으로 걸어갔다.
“저…… 청장니임.”
“아이 깜짝이야아아!”
이민호는 급작스럽게 귓가에서 전상영의 목소리가 들리자 기겁하며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아 진짜, 당신 뭐야?”
“그…… 개를 기를 수 있을까요?”
“개요?”
이민호와 전상영은 나이가 엇비슷했고 이민호는 존댓말로 대답했다.
“저, 본청…….”
“아아, 이번에 이진영이 따라오기로 했죠? 본청에서 개 기를 수 있냐고요?”
“안 되면 경찰견 등록……. 마약 수사 잘 해요.”
이민호는 허공에서 몸을 버둥거리는 프랑소와즈를 바라봤다.
어차피 골치 아픈 놈들이란 놈들은 본청으로 다 불러오는 판에 포메라니안 개 한 마리 문제 될 것 없었다.
“똥은…….”
“잘 가립니다.”
이민호는 헥헥 대는 프랑소와즈와 전상영의 빵끗 웃는 얼굴을 보면서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 적응이 안 되는 괴인이었다.
전상영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자리로 돌아가 텐트를 마저 걷고 온갖 살림살이를 RR-04 위에 실었다.
“아니, 시발 여기다 뭔 살림을 차렸나…….”
이민호는 전상영의 짐들에 벌써부터 골치가 아팠다. 아마도 이 괴이한 폭탄마는 본청을 집 삼아 노숙을 할 게 뻔했다.
“내가 앓느니 죽지.”
이민호는 로봇 행어로 걸어가며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식까지는 시간이 1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이진영과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눌 시간 정도는 됐다.
“어어, 이진영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이진영은 이민호가 옆에서 말하는데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아아아앙. 그런 게 어딨어요! 나도 팀장님 따라 중부서 기계보병 특채로 간신히 들어 왔는데에!”
“학생, 그러니까 내 말을 들었어야지.”
“아니이이, 혼자 의리 없게 쑐랑 본청 가시는 게 어딨어요오!”
이진영은 임자를 만났다.
서영은 학생.
캐논볼 레이스 때 스카이러너 팀의 팀장이자 이진영과 이래저래 인연을 쌓은 서영은이 경찰정복을 입고 이진영에게 칭얼대고 있었다.
“이진영, 뭐야? 얘는 뭐고?”
“아…… 청장님.”
이진영이 설명하기도 전에 서영은이 씩씩하게 경례를 붙였다.
금년 1월 특채시험을 통과하고 경찰학교에서 막 중부서에 배치를 받은 서영은이었다. 그녀는 팔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긴장해서 이민호에게 경례했다.
“기계보병 특채 23기! 서영은 순경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아아아!”
어찌나 씩씩하게 말하는지 이민호는 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얘 뭐야?”
“그러니까요.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서영은이 옳다구나 싶어서 자신의 장대한 경찰 시험 통과 수기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
“어, 음. 알겠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듣지. 지금 이진영 부장과 중요한 할 이야기가 있어서. 어. 음.”
이민호는 이진영의 구원자가 됐다. 두 사람은 서영은의 수다가 시작되기 전에 냉큼 로봇 행어를 빠져나왔다.
새로 배치되는 로봇과 경찰관 그리고 중부서를 떠나는 형사들.
두 사람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흡연장으로 향했다. 이제 이진영이 이 정든 흡연장을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거, 고약한 여자였어요.”
“누구?”
“이효진 실장이요. 이미 본청으로 내정된 걸 알고 그 말을 한 거더군요. 본청으로 올 거면 태도 고치는 게 좋을 거라고.”
이진영은 어이가 없었는지 담배 연기와 한숨을 한 번에 쏟아냈다.
이진영은 승진을 거절하고 계속 특별대응팀장으로 남아있길 원했지만 이미 그의 거취는 본청 통합수사부장 자리로 내정되어 있었다.
통합수사부장.
직급은 공안부 부장과 똑같았고 말이 통합수사지 관할이 애매한 사건을 FBI처럼 포괄해서 다루는 곳이었다.
이전에는 일일이 지서에 수사본부를 설치했지만, 이제는 이진영이 전국을 떠돌면서 통합수사부가 어지간한 사건은 다 관할한다.
라는 건 표면상의 이유였고 특별대응팀의 활약에 감명을 받은 경찰 상부에서 마구 굴릴 수 있는 ‘불펜 투수’ 역할로 이진영을 뽑은 것이다.
“그나저나 그 전 청장님은 어떻게 되었대요?”
“수사방해, 테러용의로 뭐 빵에 갔지.”
“나 참. 그 사람도 새미선교회 단원이었다니.”
합동수사본부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연발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