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 신영조선 인수협상(1)
덴마크로 출국을 이틀 앞두고, 통영 미륵도로 차를 몰았다.
할 일이 쌓였을 땐 훌쩍 여행을……. 그랬으면 좋겠네. 일을 못 끝내고 출장 가면 내내 기분이 찝찝하고 집중도 안 돼. 벌여놓은 일을 마무리까진 아니어도 윤곽이라도 잡아 놔야 해.
수리조선소로 적합한 매물 찾기. 그동안 지도로 고성, 통영 일대를 뒤져가며 쓸 만한 조선소를 추려봤다. 지금 조업 중인 곳을 누구 맘대로? 길어야 3년 안에 다 망할 조선소들인데 뭐.
조선업 구조조정이 그렇다.
금융기관들이 거액을 빌려줬기 때문에 채권단으로 전환됐을 뿐, 이들은 조선사를 살릴 생각이 없다. 왜냐? 살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가지고 있는 일감만 처리하고 문 닫자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채권단 자율협약, 워크아웃 등등 어떤 형태건 은행들이 개입하는 순간 망하는 것이 확정된다고 보면 된다.
돈이 넘쳐나는 갑부가 인수하겠다고 하면 모르겠지만, 빅3도 돈이 없어서 회사채를 1조씩 발행하는 판에 누가 그 짓을 하겠나.
바로 나? 그렇다. 내가 인수할 것이다. 인수해서 수리조선소 새끈하게 하나 만들어야지.
그래서 처음 염두에 뒀던 곳은 통영 미륵도에 나란히 위치한 통영 삼형제였다.
신선조선, 선호조선, 신영조선. 미륵도 중심지에 위치한 이 세 조선사는 통영 조선업의 상징이자 통영을 먹여 살린 어미 새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다 망할 운명이다. 신선조선은 워크아웃에 들어가 곧 망할 운명이고, 선호조선도 모기업이 흔들리면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오랜 역사를 가진 신영조선도 모기업이 와해되면서 심란한 상황이다. 채권단이 일단 받아내긴 했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사이좋게 나란히 붙어 있으니까, 셋 다 인수할까 싶어서 미륵도를 둘러봤는데, 이건 아니다 싶더라.
전생에 경남도가 이 망한 곳을 관광지로 개발하겠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천년고도 경주에 마천루가 들어선 것 같은 느낌? 나폴리와 조선소, 이거 안 어울리잖아.
아버지도 외쳤듯이, 결국 쓸 만한 매물은 신영조선 뿐. 아니다 싶다면서 신영조선을 인수하겠다? 그만한 가치가 있거든.
이 정신 나간 것이 통영에 있는 조선소 비좁다고 고성에다 60만평짜리 조선소를 짓고 있거든. 그건 먹을 만하지. 고로 미륵도에 위치한 본사 건물로 들어갔다.
과거 보러 서울 간 이몽룡이 금의환향이라도 한 것처럼 신영조선 하현우 사장이 과하게 환한 웃음으로 나를 맞이했다.
“아이고, 유 이사님! 어서 오세요. 요즘 엄청 바쁘다고 하던데요.”
“바빠 죽어도 이웃사촌에게 인사할 시간은 있습니다.”
“하하. 잘 오셨습니다. 아직 식사 안 하셨죠?”
“제가 대접하려고 왔으니 당연히 안 먹었지요. 자, 나가시죠.”
“이거 공짜 밥은 없는 법인데……. 이왕 먹는 거 비싼 거로 얻어먹어야겠습니다. 하하.”
하 사장은 웃음을 잃지 않았지만, 그 웃음으로 어두움까지 가리진 못했다. 저 사람 지금 속이 아주 썩어 문드러졌을 것이야. 약 치기 딱 좋은 상황이지.
“사장님, 아귀찜 좋아하시죠?”
“아귀찜 싫어하는 통영사람도 있습니까? 하하. 여기서 차로 10분 거리에 괜찮은데 있으니까 거기로 가시죠. 거기 아귀내장수육이 아주 예술입니다.”
아, 씨. 침 흘릴 뻔했네. 아귀찜이나 대구뽈찜 하나 시키고 아귀내장수육 곁들이면 최소 소주 2병짜리다. 침을 안 흘릴 수가 없지.
대낮부터 쓰러지면 어쩌나 걱정하며 가게에 자리를 잡았는데, 역시나……. 기본으로 깔리는 찬부터 절로 소주를 부른다. 아, 몰라. 이건 마셔줘야 해.
콸콸콸.
첫 잔 예의를 되뇌며 원샷을 날리는데, 그새를 못 참고 하 사장이 먼저 운을 띄웠다. 얼마나 목이 마르면 이리 급하게 우물을 찾으실꼬.
“이거 연초 신년회 때 뵀으니, 근 일 년 만입니다.”
“크으. 오랜만에 봬서 그런지 술이 달달합니다. 제가 자주 찾아와서 이렇게 한 잔씩 꺾었어야 하는데요. 바쁘다는 핑계로 사람 구실 못 해서 죄송합니다.”
“허허. 뭐 다 그렇지요. 우리 이사님 나이 때가 제일 바쁠 때죠. 다 이해합니다. 허허허.”
소주의 목 넘김이 좋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오늘 분위기가 유독 좋아 보이긴 하다.
오랜만에 벗을 만나서? 그런 게 어딨어! 이 만남이 서로에게 이익이 될 것 같으니까 그런 거겠지. 어떤 이익이 있을지 확인할 시간이 됐군.
“사장님, 요새 정신없으시죠?”
“아휴, 말도 마세요. 진짜 뒤로 자빠졌는데 코가 깨진 기분이라니까요.”
“은행들이 갑자기 미쳐 돌아 버려가지고 조선소 다 죽이겠다고 이러니, 나 참.”
그러고 보니까 금융위기 이후 이쪽 사람들 만나면 대화 패턴이 늘 똑같다. ‘정신없지? 말도 마라’로 시작해서 ‘은행 나쁜 놈, 정부 나쁜 놈’ 등등. 그러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한숨 푹푹.
“이번에 확실히 느꼈습니다. 나만 열심히 해서 잘 해 봐야 소용이 없구나. 우리 회사가 잘 나가면 뭐합니까? 그룹은 휘청거리는데, 은행은 돈 다 뽑아가 놓고 돈 안 빌려주고. 답이 없습디다.”
“하아, 진짜 안타까운 일입니다. 신영조선이 이렇게 위기에 빠질 회사가 아닌데요. 그나저나 고성에 조선소 건립하는 건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하 사장이 고성 얘기에 바로 소주잔을 비워냈다. 빈 잔에 소주를 채우기 무섭게 또다시 비워낸다. 목이 많이 마르셨나 보우.
“토지 조성 다 끝났고, 공구리도 쳤고, 이제 공장 올리고 크레인 갖다 박으면 끝인데,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 아닙니까! 열심히 죽 썼는데 개새끼한테 주게 생겼다니까요.”
“도크도 파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그거야 뭐 2단계 사업이니까 일단 터만 잡아놨습니다. 1단계 마무리 쳐서 가동 들어가고 난 뒤에 생각할 일이지요. 근데 지금은 1단계조차 손도 못 대게 하고 있으니 원.”
신영조선의 모기업인 신영해운은 금융위기 이후 망하는 회사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해운으로 돈을 버는데, 그 돈이 조선소로 흘러가는 것 같아. 어차피 바다에서 일하는 것은 똑같으니까 조선소 하나 차리면 되겠군. 조선소 세우려고 하니 돈이 엄청 들어가네? 그 돈을 건설회사가 다 가져가는구만. 그럼 건설회사도 하나 인수하지 뭐.
금융위기로 폭탄을 맞은 4개 업종. 해운, 조선, 건설, 철강 중에 3개 업종이 신영그룹의 주력회사였다. 안 망하는 것이 용할 정도이다.
결국 1조 원짜리 대형조선소 건립 계획은 돈만 처묵처묵한 채 중단됐고, 신영조선은 죽어라 배 만들어 팔아도 이자조차 내기 어려운 형편에 빠졌다.
“채권단은 뭐라고 합니까?”
“뭐라고 하긴요. 자율협약으로는 택도 없으니까 워크아웃 들어가자고 하죠. 사실 주인이 바뀐 마당에 우리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거 맺는 순간 조선소 문 닫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요. 은행 놈들이 이 바닥을 알기나 합니까? 저들 손해 줄일 생각만 하지. 그래도 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노조가 있어서 그 눈치 좀 본다고 제안 형식으로 워크아웃 하자고 하는 것 같은데, 결국 저들 하고 싶은 대로 하겠죠.”
“아이고. 저는 신영그룹 와해되면서 우리 신영조선 어쩌나 걱정했거든요. 채권단이 떠안아서 그래도 다행이다, 이렇게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허허. 저는 뻔한 수순이라고 봤습니다. 일감이 떨어져 가는데 뭐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일감 다 떨어지고 나면 통영 앞바다에 뛰어들 수밖에요.”
기업 구조조정은 자율협약, 워크아웃, 법정관리 순으로 들어가는데, 우리 같은 중소중견기업들에게 자율협약은 있으나 마나다. 채권단인 은행이 전혀 간섭 안 하고 도와만 주겠다는 것이 자율협약인데, 은행 놈들이 그걸 제시할 이유가 없으니까.
결국 워크아웃부터 들어가게 돼 있다. 안 그러면 가만 안 두겠다고 하는데 별수 없잖아. 그런데 워크아웃은 구속력이 있어서 채권단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은행들이 힘들어하는 조선사 살릴 목적으로 구조조정하겠어? 그러니 워크아웃 들어가면 세간살이 다 팔고 문 닫는 길만 주어질 뿐이다.
나 때문에 키코로 두들겨 맞았으면 정신 좀 차릴 줄 알았더니, 이 은행 놈들은 뭐 하나 달라진 것이 없어. 그럴 줄 알고 신영조선 사겠다고 여기 온 것이기도 하지만.
“설계인력들은 놀고 있겠네요?”
“지금 몇 달째 사무실 청소만 하고 있어요. 일이 있으면 외주라도 받아서 시키겠는데……. 아휴, 인건비라도 줄여야 하는데, 그렇다고 고생한 애들 내보낼 수도 없고……. 갑갑합니다.”
“제가 그래서 신영조선을 도울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해 봤거든요.”
소주를 물처럼 마시던 하 사장이 정신이 번쩍 드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 사장의 원하는 답은 딱 하나일 것이다. 유일하게 잘 나가는 유일조선이 인수하겠다고 하는 것.
미안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신영조선이 설계 잘 하기로 유명한 곳 아닙니까? 그 설계인력들이 마냥 손가락만 빨고 있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그 인력들을 우리 회사로 보내는 건 어떻겠습니까?”
“네?”
“아, 물론 설계가 어떤 의미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당장 인건비라도 줄이려면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야 지금 설계인력 부족해서 대거 충원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신영조선 인력들로 채우면,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하 사장이 바로 소주잔을 원샷으로 비웠다.
기분이 좀 언짢겠지. 회사 망한다고 죽는 소리하는 사람 앞에서 망하기 전에 알짜는 내놓고 죽으란 소리를 했으니. 미안하지만, 그것만 하고 끝내지 않을 거야.
“이사님은 우리 회사가 회생이 안 될 것이라고 보는 겁니까?”
“뭐……. 현실을 냉철하게 본다면 아무래도……. 1년 넘게 수주가 중단됐는데, 회생했다고 쳐도 당장 내년부터 답이 없지 않습니까? 채권단이 수주 막았을 때부터 답이 정해졌다고 봐야죠.”
“하아. 솔직히 설계인력 넘기라는 소리에 화가 납니다. 그런데! 화를 내봐야 뭐가 바뀌겠습니까? 화날 상황에서 화도 못 내는 상황. 이사님 말대로 답이 정해졌다고 보는 것이 맞겠죠.”
이쯤에서 기운 차리는 말 한마디 던져줘야겠군.
“사장님. 제가 다른 곳은 몰라도 신영조선은 정말 대단한 회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 아시죠?”
“뭐 방식이 맘에 들지 않지만, 우리 회사 생각해 주려는 마음만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신영조선의 힘은 사장님과 직원들의 만들어 낸 것 아닙니까? 제가 사람 살리는 허준 한번 돼 보겠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분 나빠하지 마시구요.”
“기분 나쁠 일이 얼마나 더 있겠습니까? 허허. 개의치 말고 얘기해 보세요.”
“신영조선의 운명은 길어야 내년 3월입니다. 내년 3월까지 일감이 있으니까 일단 일은 하게 해 주겠죠. 일감이 다 소진되면? 그럼 채권단이 신영조선 처리를 놓고 쇼를 할 겁니다. 결국엔 청산 절차에 들어가서 자산별로 쪼개어 팔릴 겁니다.”
“…….”
“은행 놈들이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다고 봅니다.”
“맞는 말이라 뭐라 할 말이 없군요.”
“그래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그 상황이 오면! 제가 신영조선 인력 전부 다 끌어안겠습니다. 고흥에 짓다 만 조선소 부지도 사들여서 거기서 새 출발 할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하 사장은 진짜 목이 탔는지, 이번엔 물을 원샷했다.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두 번을 더 따라 마셨다.
어때? 솔깃하지? 동고동락했던 직원들과 새 출발 할 수 있다는 말이 얼마나 희망적인가!
“그게 정말입니까? 아니, 그럴 생각이 있다면 채권단한테 가서 인수 의사를 전달해야 하는 것이-”
“은행놈들 좋은 일 할 이유가 뭐 있습니까? 그놈들도 손해를 봐야죠. 저는 신영조선 자산만 싸게 인수하겠다는 겁니다.”
“흐음. 대단히 고마운 말씀이긴 한데, 한편으론 좀 씁쓸하군요. 우리 회사가 인수할 만한 매력도 없다는 것이요.”
“아니요. 매력은 넘쳐납니다. 다만, 은행 놈들한테 조금이라도 타격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첫 번째, 두 번째는 신영조선과 우리 회사가 너무 겹칩니다. 우리도 캐파가 남아도는데, 신영조선까지 떠안기는 부담이 크거든요.”
“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까는 우리 인력 그대로 고성조선소에서 새 출발 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고성에 세계 최고의 수리조선소를 세울 생각이거든요.”
“뭐라구요? 수리조선소요?”
뭘 놀라고 그래. 안타깝지만, 신조선 시장은 포화상태야. 허준이 아니라 화타가 와도 못 살려.
설계인력을 우리 회사로 데려와서 잘 재우고 먹일 테니까 걱정 말고. 나머지 인력들은 몇 달만 고생해. 고성조선소 부지 싸게 사서 수리조선소 세우자마자 그 인력 다시 데려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