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189)
189화 –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유연성 일당이 독일과 프랑스를 헤집고 나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무렵, 한 무리의 인파가 맨디젤의 선박엔진사업부를 찾아왔다.
우진조선의 유럽 각지 지사장들과 본사에서 넘어온 기술본부장까지. 그야말로 호화 멤버들이었다.
우진조선으로서는 사장은 물론, 사장 할애비라도 보냈어야 할 정도로 절실했다.
차세대 선박으로 꼽은 메탄올추진선 개발을 위해서는 맨디젤과 협업이 반드시 필요했다. 오늘 당장 개발을 해도 맨디젤이 엔진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맨디젤이 아니면 바르질라에 엔진개발을 요청해도 되긴 하다. 어차피 이 바닥은 맨디젤 아니면 바르질라이니까. LNG추진선 개발에서 유일조선에 선수를 빼앗긴 우진조선이 바르질라와 함께 LNG추진선을 개발하는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엔 반드시 맨디젤이어야 했다.
“본부장님, 오케이하겠죠?”
우진조선 모정길 영업부장이 불안함이 가득 담긴 채로 우승보 기술본부장에게 바람을 건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맨디젤 측에서 얘기나 해 보자며 일단 오라고는 했는데, 그 뉘앙스가 영 찝찝했기 때문이다.
“야, 모 부장. 내가 누구야? 우진조선 넘버 투야. 제아무리 맨디젤이라도 고개 뻣뻣이 세울 상황이 아니야. 그게 우리 회사의 힘이고. 알겠어?”
“LNG추진선 개발을 바르질라랑 손잡았다고 뭐라고 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것들이 먼저 배신 때려놓고 뭘 뭐라고 해? 그럼 우리가 유일조선 그딴 놈들한테 로열티 줘가면서 읍소라도 하란 말이야? 모 부장, 긴장하는 건 좋은데, 적당히 해.”
모 부장은 우 본부장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도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역시 유일조선 때문이다.
우진조선은 맨디젤, 머스트라인과 십수 년에 걸친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 콤비플레이로 상선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유일조선이 나대기 시작한 이후로 그 협력관계가 깨져버렸다. 유일조선은 머스트라인을 꼬신 걸로도 모자라 맨디젤을 구워삶았다. 우진조선 내부에서 유일조선 얘기만 나오면 부들거리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모 부장의 불안함은 거기서 출발했다.
십수 년 협력관계도 한 큐에 깨어질 정도로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윗대가리들은 맨디젤의 일탈을 혼내겠다는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우 본부장은 강경함 그 자체였다. 맨디젤이 선박엔진 시장에서 잘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줬건만, 그 은혜를 모르고 유일조선과 손잡았다며 분노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자가 협상단장으로 선정된 것도 참 아이러니다.
“모 부장. 유럽놈들 상대할 때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큰소리도 치고! 화도 내고! 그래야 우습게 안 보인다 이 말이야. 거기다 상대가 누구야? 배은망덕한 맨디젤 아니야? 좀 세게 나가도 된다고. 알겠어?”
이번에 괜히 한 소리 했다가 망신만 당하는 건 아닌지…….
“본부장님. 그래도 이번엔 반드시 맨디젤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점에 고려해 주십시오.”
“반드시? 반드시가 어디 있어? 그놈들이 정신 못 차리고 있으면 정신이 바짝 들게 해 줘야지. 아니, 우리가 그놈들 하루 이틀 도와줬어? 여차하면 바르질라로 가겠다고 엄포를 놓으면 찍소리 못할 거야.”
“본부장님도 아시겠지만, 바르질라의 오토 사이클은 한계가 있습니다.”
“허허. 이 봐, 모 부장. 우리나라에서 나만큼 엔진 잘 아는 사람이 또 있어? 디젤 사이클이라고 해서 완벽한 건 아니니까 서로 오십 보 백 보야. 거 참, 걱정도 어지간히 하라니깐?”
“이번에 LNG추진엔진을 비교해 보니까 효율 차이가…….”
“거 참. 바르질라 건 연료압축기가 필요 없잖아. 녹스도 적게 나오고. 다 일장일단이 있다니까. 그나저나 이거 위치가 바뀐 거 아닌가? 기술쟁이인 내가 걱정하고, 영업쟁이인 자네가 염려 말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허허허.”
모 부장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영업쟁이인 자신도 걱정하는 일을 기술쟁이가 왜 외면하는지.
뭐가 됐건 차세대 선박에 들어갈 엔진은 무조건 맨디젤이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포장하고 포장해도 맨디젤의 전매특허, 디젤 사이클 방식의 뛰어난 효율성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우진조선 일행은 맨디젤 선박엔진사업부가 자리한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왠지 느낌이 폭격이라도 맞은 거 같지 않아?”
“함부르크가 독일의 해운 수도라서 그러지 않을까 싶네요. 탠저린 펀드들 무너지면서 이쪽도 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겠죠.”
“탠저린 펀드 하니까 유일조선 그 미친놈들 생각나네. 펀드 파산해서 계약취소됐다고 그 자리에 자가발주로 LNG선을 집어넣는다? 허허. 미친 짓 몇 번으로 재미 좀 봤다고 완전 미쳐버린 게 아닌가 싶어.”
“아, 네.”
모 부장은 본부장이 미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었다.
영업본부는 한 차례 홍역을 겪으며 물갈이를 거친 탓인지 분위기가 꽤 달라졌다. 자신도 그렇고, 조필성 영업본부장도 유일조선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부서들은 여전했다. 감히 유일조선 따위가 빅3인 우진조선과 맞먹으려 든다며 화부터 냈다. 쓸데없는 분노가 이성을 마비시켰다고 할까?
모 부장은 우진조선이 주인 없는 회사라 그런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이들이 회사의 성장과 발전보다는 자존심 세우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점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안타까움도 잠시, 함부르크로 날아온 유럽 지사장들과 기술본부장을 인솔해 맨디젤로 들어갔다.
“반갑습니다. 간단히 얘기나 할 생각이었는데 많이도 오셨군요.”
맨디젤의 틸 린데만은 특유의 딱딱함을 자랑하며 인사말을 건넸다. 우승보 기술본부장도 그에 만만치 않게 거만한 자세로 인사를 받아냈다.
“하하. 우리가 2인3각을 하며 끈끈한 팀워크를 자랑한 사이 아닙니까? 자주 오지도 못하는데, 한 번 올 때 사절단을 호화롭게 꾸며야지요.”
“그렇군요.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서 오늘 오신 모든 분들과 충분한 대화가 어렵다는 점은 양해 바랍니다.”
“그럼요, 그럼요. 우리 우진조선이 맨디젤을 이렇게 각별하게 생각한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맨디젤은 우리와 함께 했을 때가 가장 빛이 났지요. 하하.”
적당한 악수와 명함교환이 끝나고 각자 자리에 앉자마자 대화는 본론에 들어갔다. 칼퇴근을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틸 린데만이 시간이 넉넉지 않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으니 한 시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이메일로 보내주신 제안서는 잘 읽었습니다. 메탄올추진선,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암모니아와 함께 상용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연료이죠.”
“암모니아요? 하하. 발화점이 600도가 넘어가는 걸 어떻게 연료로 씁니까? 뭐 억지로 쓰라고 하면 쓰겠지만, 그걸로 엔진이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암모니아를 연료로 쓰기 위해 넘어야 할 벽이 많은 것이 사실이죠. 그렇다고 해서 메탄올이 우위에 있다고 평가하기도 그렇군요. 메탄올을 탄소중립에너지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론상으론 완벽한 탄소중립이죠. 아직은 기술적인 문제가 있지만, 그건 어느 것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걸로 따지면 메탄올이 최고 아니겠습니까? 빨리 상용화해서 지구온난화를 하루라도 빨리 막는 게 중요하죠.”
린데만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우 본부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다가올 미래엔 선박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게 될 겁니다. 메탄올추진선이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이죠. 같이 해 봅시다. 맨디젤이 엔진 개발하고, 우리가 연료공급시스템 개발하는 걸로 말이죠. 어떻습니까?”
“…….”
“허허. 뭘 그리 고민하십니까? 맨디젤과 우진조선이 보통 사이입니까? 우리는 깐부 아닙니까?”
린데만은 침묵을 끝내고 마이크를 잡았다.
“기술적인 얘기를 하는데, 양 사의 관계가 왜 나옵니까? 불필요한 얘기는 삼가셨으면 합니다.”
“불필요요? 우리 사이에 그 정도 얘기도 못 합니까? 이런 얘기도 하고 저런 얘기도 하는 것이지……. 그런 게 커뮤니케이션 아닙니까? 너무 딱딱하게 그러지 맙시다. 우리도 아무 말 안 하고 넘어가는데…….”
“아까부터 자꾸 뼈가 담긴 말씀들을 하시네요? 뭐 기분 나쁜 일 있습니까?”
“하하. 마, 됐습니다. 시시콜콜 얘기해 봐야 좋을 것도 없고……. 우리 사이에 그 정도는 익스큐즈해 줘야지요.”
“뭘 익스큐즈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우리 사이를 강조하는 겁니까? 우진조선이 LNG추진선 개발을 바르질라 같이 진행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 그거요? 하하. 아니, 맨디젤이 유일조선이랑 같이 개발했잖아요.”
“다른 회사가 개발했으면 개발한 것이죠. 그것과 우진조선이 바르질라와 독자개발하는 것은 다른 얘기입니다. 유일조선이 먼저 개발했으니 그걸 사용하면 안 된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에이, 우리가 가오가 있지요. 어떻게 핫바지한테 로열티 주면서까지 씁니까? 당연히 독자개발할 수밖에 없죠.”
“핫바지요? 그럼 우리가 핫바지랑 손잡았다는 말씀이십니까?”
모 부장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상대의 반격에 가만있을 본부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본부장이 입을 열기 전에 이상하게 흘러가는 분위기를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아따, 참말로. 뭔 말씀을 그리 서운하게 합니까?”
“유일조선한테 로열티 주기 싫다면서요? 결국 우리가 유일조선이랑 같이 개발한 엔진은 쓸 수 없으니 독자개발한다는 뜻으로밖에 안 들립니다.”
“거 참. 말이 좀 그렇네. 막말로 우리 배신하고 유일조선한테 붙은 게 누군데 그럽니까? 아무 말 안 하고 넘어가 주니까 우리를 빙다리로 보는 것도 아니고.”
“배신이요? 붙어먹어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막말로 우리 덕분에 컸으면 유일조선이 그딴 제안을 해도 받아들이지 말았어야죠. 그게 배신이 아니고 뭐가 배신입니까?”
“엔진 메이커는 해운사가 결정합니다! 우진조선 덕 본 것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맨디젤을 모욕하는 그 발언을 묵과할 수 없습니다. 당장 사과하세요.”
“사과? 허허허. 사과는 그쪽에서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니요?”
린데만과 우 본부장의 말싸움을 묵묵히 듣던 모 부장은 끝났다고 확신했다. 중간에 대화가 이상하게 흘러간다고 느꼈을 때 바로 끼어들었어야 했다.
순간의 판단 잘못이 일을 이 지경까지 끌고 가 버렸구나. 신경 건드리지 말고 점잖게 얘기하라고 그렇게 얘기했건만……. 왜 영업본부장이 아닌 기술본부장을 보냈는지, 그는 사장의 결정을 원망하기까지 했다.
모 부장은 자신이 수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있는 지사장들은 본부장 눈치를 살피며 커피나 마시고 있었으니.
“본부장님. 저랑 잠깐 얘기 좀…….”
“마, 됐어. 아니, 우리가 이 전범기업 새끼들 먹여 살려 줬더니만, 말하는 본새가 싸가지가 없잖아. 좋게좋게 넘어가 주려고 했는데, 계속 말꼬리 잡는 거 봐봐. 우리랑 싸우자는 소리 아니야? 뭐, 이 새끼들 아니면 엔진 못 만들어?”
“본부장님, 그런 얘기는 다른 자리에서 하시고, 여기선 우리 프로젝트에 집중하시죠. 흥분을 가라앉히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 새끼 말하는 거 들었지? 나 보고 사과를 하래.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다 됐고, 바르질라로 가. 이 새끼들 오냐오냐해 주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우리말로 떠든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니다. 애당초 유일조선 얘기만 나오면 유독 흥분하는 저 본부장을 협상단장으로 세우지 말았어야 했다.
모 부장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일단 린데만을 조용한 곳으로 끌고 갔다. 린데만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린데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시간도 없는데, 누가 잘났니 못났니 논쟁할 이유는 없습니다. 우진조선에서 보내준 그 많은 자료로 관심이 생겨,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나 볼 생각이었는데, 내가 괜한 짓을 한 것 같습니다.”
“린데만 씨.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저희가 기술적인 부문에 대한 준비를 많이 해 왔으니, 차분하게 얘기를 나누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우리 맨디젤을 모욕한 발언에 대한 사과를 받기 전까지는 차분하게 얘기하기 쉽지 않겠습니다.”
“…….”
모 부장은 마지막 기대마저 사라진 느낌이었다. 우 본부장은 다혈질인 성격에도 사과라는 단어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제가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미스터 모는 잘못한 것이 없으니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시간도 다 됐으니, 결론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 맨디젤은 탄소중립 연료로 구동되는 엔진 개발을 면밀히 검토했으며, 그 결과 메탄올은 개발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이상입니다.”
“뭐라구요?”
“여기서 스위스까지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거기로 가 보세요. 바르질라가 성대하게 환영해 주겠죠.”
모 부장은 확신했다. 이대로 귀국한다면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씌우리라는 것을. 본부장이 자신의 잘못이니 책임지겠다고 할 리가 없다.
아직도 씩씩거리고 있는 본부장의 아가리를 찢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