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211)
211화 – 무식하게 돌진하자
유일조선은 연일 축제였다.
세계 최초이자, 세계 최대인 2만TEU급 컨테이너선을 무사히 출산한 이후로도 선박 명명-인도식이 계속됐다.
열심히 뿌렸던 씨앗들이 풍성한 수확을 자랑하며 결실을 맺고 있다는 의미다. 계속된 선박 인도로 유일조선의 금고는 금화로 가득 찼다.
미래 먹거리도 착착 준비됐다. 얼마 전엔 유일조선의 첫 LNG선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즉, LNG선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곧 LPG선도 나올 예정이다.
이 바닥에서 선박을 건조한 경험은 돈 주고라도 한다는 젊어서 고생과도 같다. 수많은 선종과 선형을 건조해본 경험이 있고 없고는 조선사의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로 작용한다.
유일조선은 이제 상선이라고 불리는 모든 선종을 건조했고, 건조할 수 있는 경험을 갖췄다. 수 없는 고생 끝에 결실을 일궈냈으니, 이제 질주할 일만 남았다. 회사 분위기가 축제 아닌 게 이상할 지경이다.
그러나 모두가 축제를 즐기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도 우중충한 몰골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가 있었다.
그가 머무는 방은 너구리굴이 된 지 오래였고, 공기청정기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요며칠 두문불출하며 담배만 피워대는 정한호 전무가 그 방의 주인이었다.
“하아. 이거 답이 안 나오는구만…….”
정 전무는 혼잣말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암모니아추진선 개발. 그는 무도인의 자존심을 내세우며 5년 내로 끝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걸 이뤄내기 위해 회사 기술연구소는 물론이고, 기자재업체들, 대학, 정부출연연구원, 선급 등 끌어올 수 있는 모든 곳을 불러다 매머드급 팀을 구성했다. 책정된 예산도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연구는 생각만큼 진척되지 못했다. 개발 방향을 잡아줘야 할 유일조선이 여전히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언장담과 달리 그는 암모니아를 알면 알수록 다루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발 총책임자인 자신이 방향을 설정해야 했지만, 점점 미궁에 빠지는 느낌에 애꿎은 담배만 피워댔다.
“전무님,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어렵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려워.”
“그건 그렇죠…….”
기술연구소 이중산 부소장 역시 암모니아추진선 개발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하나마나한 위로의 말만 건넬 뿐이었다.
“전무님. 처음이니까 목표를 현실적으로 잡으시죠. 아무리 생각해도 디젤이랑 혼합해서 가는 방향이 최선인 것 같습니다.”
“그거야 그렇긴 하지.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가면 탈탄소는 개나 주는 꼴이라고.”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정 전무는 대답을 내뱉기 전에 두툼한 종이뭉치를 가리켰다. 프린터가 토할 정도로 뽑아낸 논문들이었다.
“자, 이 논문을 봐봐. 그저 탈탄소라는 명분 때문만도 아니야.”
“아휴, 쳐다만 봐도 토할 것 같습니다. 이젠 달달 외울 지경이에요.”
“자네도 읽어봐서 알겠지만, 암모니아에 디젤을 섞는 방식은 심각한 문제가 있단 말이야. 암모니아 비율이 높아질수록 질소산화물 배출이 급격히 증가해 버려.”
“아산화질소도 엄청 나오죠. 그렇긴 해도-”
“그렇다니까. 아산화질소, 이게 온실가스 중에서는 최고라고 하잖아. 절대 나오면 안 돼.”
“그렇다고 스파크점화 방식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렇지. 우리가 맨디젤이랑 손잡았는데, 이제 와서 SI엔진으로 가자는 건 개발 포기하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SI엔진으로는 대형선 구동에 한계가 있어.”
“결국 돌고 돌아 암모니아 100%, CI엔진만이 답이라는 얘긴데……. 그러자니-”
“그게 된다면 뭐, 완벽하지. 근데 압축비가 35:1까지 나와야 해서 말이지…….”
두 엔지니어들의 한숨 나오는 대화. 암모니아 자체가 가진 문제 때문이다.
암모니아는 최소점화에너지가 680mJ일 정도로 매우 높아서 불붙이기도 쉽지 않고, 불을 붙여도 화염속도가 매우 낮아 완전 연소가 불가능에 가깝다. 불완전 연소 비율이 높을수록 질소산화물 배출이 많아지는 문제도 있다.
가솔린 엔진으로 알려진 스파크점화엔진, 그러니까 SI엔진에서는 암모니아에 수소를 섞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SI엔진은 힘이 약해 대형선에 적합하지 않다.
거기다 맨디젤과 협업이 깨질 우려까지 있다. 디젤에 살고 디젤에 죽는 맨디젤은 오로지 압축착화엔진, 그러니까 CI엔진만 외치고 있다.
CI엔진을 암모니아로 구동할 때 문제는 없느냐?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다. 암모니아 특성 때문에 35:1에 달하는 높은 압축비가 필요해 엔진 가격이 금덩어리에 달할 정도로 비싸진다. 게다가 설계 자체도 매우 어렵다.
맨디젤에서는 개발의 용이성을 고려해 암모니아와 벙커씨유를 혼합해 사용하는 이중연료방식을 제안해 왔다. 여러 문제가 있긴 하지만, 가장 현실성이 높은 개발방식이다. 이 방식이라면 목표인 5년 내 개발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정 전무는 쉬이 결론을 내지 못했다. 탄소배출이 전혀 없는 선박을 개발하겠다고 큰소리 펑펑 쳤던 그에게 벙커씨유를 섞는 건 사문난적일 뿐이었다.
계속되는 고민. 정 전무가 축제를 즐기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는 이유였다.
이 부소장도 정 전무의 고민을 십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방향을 결정할 대장이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고 있을 수 없었다.
프로젝트의 모든 참여자들이 유일조선만 바라보며 대기하고 있는 상황.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착수에 들어가야 했다. 그는 오늘 어떻게든 결론을 내겠다는 각오로 솔루션을 하나 꺼내들었다.
“상무님은 뭐라고 합니까?”
“상무? 누구?”
“유 상무님 말입니다. 말로야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로 매번 놀라게 하지 않았습니까?”
“유 상무? 허허. 이번엔 쥐뿔도 없어.”
“쥐뿔도 없다니요?”
“아니, 전엔 생뚱맞은 소리도 해가면서 머리를 팍팍 돌게 해 주더니만, 이번엔 적극 서포트할 테니까 열심히 해 보란 소리밖에 안 해.”
“흐음. 그만큼 전무님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개뿔……. 유 상무 그놈이 이렇게 막혀 있을 때 담배 고프다고 와서는 밑도 끝도 없는 소리들 던지고 갔단 말이야. 정작 담배는 얼마 안 피우긴 했지만…….”
“그게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죠.”
“그러니까 말이야. 처음엔 저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다가도,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게 길인 경우가 많았단 말이지.”
“그게 유 상무님의 신기 아니겠습니까? 하하.”
“신기가 있으면 뭐해? 지금은 뭐가 그리 바쁜지 암모니아의 암자도 꺼내질 않는다니까. 이럴 때 와서는 헛소리 좀 해 주고 가면 좀 좋으련만…….”
이 부소장은 유연성 상무가 이번 프로젝트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매번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에 미안함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만큼은 연구소의 자존심을 세워주려는 배려라고 할까?
그는 나이답게 않게 속이 깊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아쉬웠다.
자신도 정 전무 못지않은 엔지니어이자 테크니션이지만, 유연성 상무의 뻘소리에 의지하곤 했다. 난데없이 던지고 간 말들이 에코십으로, 2만TEU급 컨테이너선으로, LNG추진선으로 구현됐으니 말이다. 이번에도 뻘소리 한 번 개운하게 해 줬으면 하는 아쉬움.
그러나 정 전무도, 이 부소장도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이전의 작품들은 유 상무가 전생에 배우고 익힌 것들이라 얘기할 거리가 많았지만, 이번 암모니아추진선 개발에 대해서는 그도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또다시 말은 사라지고 담배 연기만 사무실을 가득 메웠다.
이 부소장은 오랜 침묵을 참지 못하고 다시 솔루션을 꺼내 들었다. 이번엔 과학적 연구방법론에 입각한 솔루션이었다.
“전무님. 그냥 가봅시다.”
“그냥 가다니?”
“맨땅에 헤딩 오지게 하다 보면 뭔가 답이 나오겠죠. 우리가 언제 성공확률 따져가면서 일했습니까? 노가다도 하고, 삽질도 하고. 그게 우리 방식 아닙니까?”
“허허. 그게 우리 주특기이긴 하지.”
“그럼요. 우리는 무식하게 해야 성과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래가지고 5년 내로 끝낼 수 있겠냐 이거지. 이럴 줄 알았으면 유 상무 말대로 10년 잡을 걸 그랬어.”
“원래 목표는 빡세게 잡는 법입니다. 10년으로 잡으면 여유가 생겨서 몸뚱아리가 게을러집니다. 5년 잡고 무식하게 가다보면 되겠죠, 뭐.”
“그래서 100% 암모니아 디젤엔진으로 움직이는 선박으로 가자?”
“솔직히 그게 가능할까 싶지만, 뭐 어떻습니까? 회사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우리가 죽어라 노가다 뛰다보면 실마리가 나오겠죠. 우리가 언제부터 고상하게 일했습니까!”
“허허.”
정 전무는 모처럼 웃음을 지어 보였다.
회사가 급성장하면서 조직도 방대해졌다. 대기업의 면모를 갖췄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 덕에 자신은 일선 현장에서 벗어나 뒷짐 쥐며 거들먹거릴 수 있게 됐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최고급 세단을 타고 다니며 말이다.
그게 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정 전무는 이 부소장의 무식하게 돌진하자는 말에 잊고 있었던 헝그리 정신을 떠올렸다.
“회사 처음 들어왔을 때 기억나지?”
“그럼요. 진짜 끔찍했죠. 대흥에 있을 때 맨날 시발시발하면서 때려쳐야지 노래를 불렀는데, 여기 와 보니까 대흥이 천상낙원입디다.”
“허허허. 욕이 절로 나오던 우리 회사가 이만큼 큰 걸 보면, 참 감개가 무량해. 그렇지?”
“진짜 맨땅에 헤딩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헤딩하느라 머리가 다 까졌다 아닙니까? 하하.”
“그러고 보면 자네 말처럼 초심으로 돌아가는 게 답일 수도 있겠어.”
“전무님. 우리가 배 좀 나왔다고 뭐 있어 보이려고 해 봐야 안 된다니까요.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갑시다. 지금 며칠째 고민만 하는 겁니까?”
“허허. 노가다 좋지.”
정 전무는 예전 유일조선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캐치프레이즈였던 ‘무식하게 돌진하자’를 되뇌었다. 무식하게 돌진하다 보면 성과가 나올 것이란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게 다 유 상무, 금마 때문이야.”
“네? 아니, 멀쩡히 일 잘하고 있는 상무님은 왜 걸고 넘어지십니까?”
“그놈이 이거 개발하면 앞으로 30년은 배부르게 살 수 있다고 어찌나 부담을 주는지 원. 그러니 내가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지. 안 그래?”
“전무님다운 말씀이십니다. 요 며칠 딴 사람 같더니, 이제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신 것 같습니다.”
“욕인지 칭찬인지 모르겠는데?”
“이 프로젝트가 30년 먹고 살게 해줄 아이템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부담 가질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에코십은 이제 막 해 먹고 있고, LNG추진선이랑 LPG추진선은 아직 본전도 못 뽑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10년 이상은 해 먹을 텐데, 뭘 그리 조급하게 생각하십니까?”
“유 상무가 자네처럼 얘기했으면, 내가 이러고 있지 않았다니까. 그놈 때문에 한 달을 허비했구만. 허허.”
“제가 봤을 땐 상무님이 우리 방식에 가장 충실한 분 같습니다. 오히려 전무님이 초심을 잃고 방황한 겁니다. 저기 쌓여있는 것 좀 보세요.”
이 부소장은 사무실 한쪽에 가리켰다.
가득 쌓인 음료수 박스. 유 상무가 힘내라는 의미로 갖다 놓은 에너지드링크. 포션처럼 빨아먹으면서 삽질 거하게 해 보자는 각오가 절로 다져지는 토템 같은 존재이다.
“허허. 저거 마셔가면서 무식하게 해보란 뜻으로 저렇게 잔뜩 갖다 놨다는 거지?”
“저게 해답일 수 있습니다.”
“감옥생활이니, 영치금 넉넉히 넣어주겠다느니, 이제 보니까 그냥 한 소리가 아니었구만.”
“자자. 이제 그만 고민하시고 뭐든 진행해 봅시다. 완벽한 암모니아추진선을 목표로 잡고 그냥 무식하게 가는 겁니다.”
“그래, 뭐. 해 보자고. 저거 다 마실 때 되면 뭔가 나오겠지? 근데 말이야. 신기한 것이 저거 마시니까 잠도 안 오고 집중도 잘 되더라니까.”
“전무님이나 저나 학창시절에 저거 마시면서 공부하셨으면 지금쯤 노벨상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하하.”
“허허. 난 아마 유도 국가대표로 올림픽 나가서 금메달을 땄겠지.”
결국 그들은 주특기를 살리기로 결정했다. 인내와 끈기로 포장되지만, 실제론 밤잠 안 자가며 무식하게 밀어붙이는 방식 말이다.
정 전무와 이 부소장은 에너지드링크를 원샷하고는 깊고 진한 트림을 내뱉었다.
그렇게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모를 암모니아추진선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개발에 성공한다면, 이젠 유일조선 모든 임직원들의 목표가 된 세계 1위 달성도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