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266)
266화 – 작업 들어가자
빅딜을 성사시켰다. 빅3라고 불린 회사, 순양중공업을 결국 식구로 맞이했다. 다윗이 골리앗을 품었다는 말들이 쏟아질 것이다.
매출 13조, 자산 15조짜리를 날름 먹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을 누리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일을 크게 벌려놓은 만큼 수습할 일도 장난이 아니다.
일단 내 금고부터 활짝 열어야 한다. 금고지기에게 안부 전화 좀 해야겠구만.
내 친구 박동명. 이 시간이면 일어나서 혓바닥에 피가 날 정도로 칫솔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 잠깐만. 나 양치 중.
타이밍 아주 예술이다.
동명이가 묵은 가래까지 게워내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통화가 재개됐다.
-너는 전화를 해도 꼭 이럴 때만 골라서 하더라.
“우리 작업 하나 하자.”
-응? 너, 연성이 맞지?
“아직 잠이 안 깼어? 양치를 했는데도 잠이 안 깰 정도면 치약에 문제 있는 거 아니냐?”
-아니, 당연히 이런저런 개소리 한참 지껄일 줄 알았는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니까 낯설어서.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오지게 바쁜데 서로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너도 아침부터 개소리 듣고 싶지 않을 거 아니야.”
-응? 거기 아침이야? 너 뉴욕 왔어?
저 한결같은 새끼. 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줘야 말귀가 훤히 트일는지.
“아, 됐고. 작업이나 하자고.”
-무슨 작업?
“대흥중공업 지분 5%가 생겼어. 그걸 이스턴캐피탈 이름으로 사면 안 되잖아?”
-5%? 그걸 어디서 구했어? 한두 푼이 아니었을 텐데.
“아직 결제 안 했으니까 1조 구해놔.”
-1조? 와! 너 그러다가 대흥중공업도 인수하겠다고 하겠다? 하하하.
“응. 인수할 거야.”
-어? 어, 그래. 너의 그 웅대한 꿈을 누가 막겠냐.
“그러니까 돈 부지런히 벌어놔.”
-이 자식은 돈 맡겨놓은 사람처럼 구네. 내가 뭐 달러 찍어내는 사람인 줄 알아?
“응.”
-응?
“응! 여튼 이번에 5% 더 받아오기로 했어. 근데 지금 이스턴캐피탈이 이미 2.99% 가지고 있잖아?”
-지분 더 추가되면 대흥중공업에서 가만 안 있겠지.
“맞아. 그러니까 이건 안 걸리게 여기저기 분산해서 잘 숨겨놓자고.”
-어디 보자. 6% 확보했고, 5% 추가되니까 총 11%네? 그걸로 대흥중공업을 먹을 수 있어? 택도 없을 텐데?
“걱정 마셔. 최소한 30%까지는 끌어올릴 테니까. 우리 박 사장님은 돈이나 시원하게 마련해 두세요.”
-30%? 아이쿠야. 돈이야 걱정할 게 없는데, 나는 네 머리가 더 걱정이 된다. 그냥 재벌도 아니고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의 지분을 무슨 수로 30%까지 확보할 수 있다고 그래?
그나마 나를 알고, 내 꿈을 안다고 자부하는 놈의 반응이 이렇다.
지금이야 미친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 역시 기다려봐라. 대흥중공업까지 깔끔하게 먹고 나면 유일조선그룹의 세계 1위 조선사 달성 기념식 열어서 뷔페 대접할 테니까. 다섯 접시 먹어도 모른 척해 주리라.
“순양에서 넘기는 거야. 거기도 은밀하게 작업한 것 같으니까, 연락 오면 잘 다독거려가면서 말 안 나오게 잘 처리해 줘.”
-순양에, 대흥에. 재벌 놀이에 심취하셨네. 기껏 돈 벌어놨더니, 굴뚝들 사는데 돈 다 쓰겠다야.
“그러려고 돈 번 거니까 아까워하지 마. 너도 내 덕에 돈도 많이 벌고, 월가 유명인사가 됐잖아. 그러니 마름 노릇 잘하라고.”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아까워서 그래. 더 좋은 투자처가 널리고 널렸는데, 왜 그렇게 굴뚝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니까.
넌 안 죽어봐서 그래.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죽으면 한이 맺혀서 다시 살아나더라고. 죽고 싶어도 못 죽게 되니까, 이번 생엔 다른 꿀단지 다 집어치우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거야.
“굴뚝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투자처가 된다는 걸 보여주면 되지.”
-야. 굴뚝은 아무리 관리 잘해도 굴뚝이야. 제조업은 답이 딱 나오는 곳이라니까.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얼마나 의미 있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괜히 욕심내지 말고, 쌀밥 먹고 사는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고 살자고. 안분지족!”
-요샌 귀찮아서 아침엔 대충 콘플레이크 먹고 마는데?
아, 개새끼. 늘 알면서도 당하는 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동명이와 화기애애한 통화를 마치자마자, 바로 또 다른 전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일드금융투자 박한철 대표, 아니, 이젠 회장이지.
-어, 그래. 연성아. 이번엔 얼마가 필요하니?
“회장님 되시더니 역술이라도 익히신 겁니까? 뭐 말도 꺼내기 전에 돈 얘기부터 하시네요.”
-순양중공업 인수하기로 합의할 때 되지 않았어? 전화하는 타이밍 보니까 인력 보내달라는 소리거나 인수자금 필요하다는 소리 할 때가 아닌가 싶어서. 하하.
“제 주변엔 왜 이리 귀신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최종 합의하고 왔습니다. 이제 실무협상 들어가야 하는데 쓸만한 사람들 좀 보내주세요.”
-오호, 그래? 그거 잘 됐구나. 이제 유일조선이 조선업에서는 세계 최강자 수준으로 올라설 일만 남았구나. 하하. 그런데 돈은 안 부족해?
“순양중공업 살 정도 돈이야 넘치고 넘치죠. 다른 쪽으론 돈이 좀 부족하긴 합니다.”
-다른 쪽? 또 무슨 꿍꿍이인 거냐?
이스턴캐피탈이 내돈내회사니 금고처럼 이용해도 양심의 가책이 덜하지만, 마일드금융투자는 그저 조력자일 뿐이니 함부로 할 수 없다. 그러니 늘 공손한 자세로 돈을 달라고 해야 해.
“삼촌, 작업 한번 크게 하십시다.”
-무슨 일을 꾸미길래 크게 작업을 하자고 하는 거야?
“유선이가 대수조선 물려받고 싶어 하는데, 그러려면 대흥중공업그룹에서 계열 분리돼야 하거든요. 근데 그러기엔 돈이 너무 모자라요.
-너넨 이미 부부가 된 거냐? 식도 안 올려놓고 아주 그냥 부부처럼 행세하네? 하하.
“올해 안으로 식 올리기로 했습니다. 순양중공업 인수 마무리 짓고 나서 날짜 잡을 생각입니다. 그래서 도와줄 겁니까? 안 도와줄 겁니까? 투자금 회수는 확실합니다. 아니, 제가 2배 이상으로 불려드리겠습니다.”
-그래서 대수조선을 떼어낼 돈이 필요하다? 사실상 인수하겠다는 소리 아니야?
“뭐, 그렇죠. 대수조선 대주주가 대흥영암조선이라, 거기서 지분을 넘겨받아야 하거든요. 가지고 있는 지분이 42%라서 들어갈 돈이 많긴 합니다.”
-또 판을 키우겠다는 소리구나.
“저는 늘 배고픕니다. 순양중공업 인수 확정했으니, 바로 다음 작업 들어가야죠. 시간은 짧고 할 일은 많다. 그래서 도와주실 거죠?”
-대수조선이야 우량기업이니까 투자자 모집이 어렵지 않을 것 같긴 한데…….
“우리 회사 키워냈듯이 대수조선도 제대로 키워놓겠습니다. 그리고 유선이가 배당성향도 높이기로 했어요. 투자자에 대한 예우는 확실히 할 예정입니다.”
-그쪽 바닥에서 제일 잘나가는 네가 추천하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지. 뭐, 전화로 나눌 얘기는 아닌 것 같고. 언제 한번 올라와라. 유선이랑 같이. 그래도 삼촌삼촌 하면서 따르는데 밥이라도 한번 사 먹어야 하지 않겠냐? 하하.
“회장님께서 밥 사주신다면 이역만리라도 군소리 없이 달려가야죠. 곧 순양중공업 인수협약식 때문에 서울 올라가니까 그때 시간 한번 내주세요.”
-말 나오기 무섭게시리. 무슨 말을 못하겠네. 하하.
맛있는 밥 먹으러 서울 가자! 순양중공업 인수 협약식이야 대충 박수만 쳐주면 그만이지 뭐.
아! 이런 정신 나간 놈 같으니라고.
왜? 순양그룹과 담판을 지었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아직 전달하지도 않았다. 순양그룹 사람들 떠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기별조차 없으니, 부글부글하고 있을 것 같다.
당장 회장실로 달려가자.
***
“하하하.”
“좋으십니까?”
“그럼 당연히 좋지! 내가 이 회사를 처음 세웠을 때! 내심 빅3에 맞먹는 회사로 키워보겠다는 뜻이 있기는 했는데! 하하하. 그게 이렇게 이뤄질 줄은 몰랐다야. 하하하.”
순양중공업을 인수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이 아버지 귀에 들어가자 나온 반응이다. 다행히 늦게 왔다고 화를 내지 않았다. 순양중공업 인수는 아버지의 혈압관리에 특효약인 셈이다.
“다음 주에 합의사실을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언론 관리는 순양 측에서 하기로 했으니, 기사 보면서 즐기시면 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삼켰다는 기사가 쏟아지겠구나! 하하하.”
“진부하지만 그렇겠죠. 좀 배운 놈들이라면 우리 회사를 보아뱀이라고 할 겁니다.”
개나 소나 다 조선업에 뛰어들던 2000년대 초반, 개나 소처럼 시작한 우리 회사가 10년 동안 정신 나간 성장세를 보여주더니, 이제는 글로벌 넘버3인 순양중공업까지 먹어버렸다. 이걸 두 글자로 ‘쾌거’라고 하는 것이야.
“하하하. 그렇지, 그렇지. 쾌거야, 쾌거!”
“아버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인수절차가 마무리돼도, 반독점 심사가 끝나야 하기 때문에 꽤 시일이 걸립 겁니다. 모든 게 다 끝났다고 해도 양사의 이질적인 조직이 화학적 결합을 할 때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그렇지! 행여나 순양중공업에 가서 점령군처럼 행동하지는 말아라. 이 바닥 사람들은 자존심 하나로 먹고사는 사람들이야. 마음을 얻어야 한다 이 말이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허허. 웬일로 순순히 대답하는구나.”
“아버지 앞에서는 한 마리 순한 양이 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하여간 이놈 자식은 틈만 나면 뻘소리를 못해서 안달이 났어. 허허.”
내 뻘소리에도 환한 웃음으로 반응하는 아버지. 순양중공업 인수를 성사시킨 내게 건네는 최대 칭찬이 아닐까 싶다.
잠시 회상에 잠겼다.
여기까지 오느라 참 힘들고 힘들었다. 회귀라는 말도 안 되는 스킬빨 덕분에 탄탄대로를 달리긴 했지만, 늘 조마조마하며 애간장을 태웠달까? 회사 들어와 꼬박 7년 동안 죽어라 일만 했다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스킬빨을 이기는 건 노력이고, 노력을 이기는 건! 바로!
운빨이다. 그래, 여기까지 오는데 운빨이 너무 좋았어. 이건 다 운빨이 적재적소에서 팡팡 터졌기 때문이야.
“너 혹시…….”
“네, 말씀하세요.”
“네가 잘 나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아휴, 제가 어디 그럴 놈입니까? 다들 열심히 일한 덕분이기도 하고,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허허. 그래, 그래. 내가 늘 말했지? 이 바닥은 겸손해야 한다고. 앞으로 겸손한 자세를 잃지 말라고.”
“아버지도 귀신이십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냐?”
“아닙니다.”
우리 회사에는 내 속내를 읽어내는 사람이 너무 많단 말이야. 진짜 겸손하게 안 지내면 큰일 날 것 같아. 근데 자랑하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란 말이지.
자랑하고 싶다, 자랑하고 싶다.
“아버지.”
“그래. 이제 슬슬 우리 회사와 순양중공업의 통합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지. R&D랑 영업은 바로 통합하는 것이 좋을 거야. 근데 생산 쪽은 인위적으로 통합하다가 오히려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천천히 진행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번 달 클락슨 리포트 보셨습니까?”
“뭐 숫자만 가득 있는 걸 내가 봐서 뭐 하냐. 그게 왜?”
“그러니까 저번 달 집계로 순양중공업 수주잔량이 555만8,000CGT로 세계 3위였고, 우리가 482만3,000CGT로 4위였거든요.”
“그래서?”
“서로 합치면 수주잔량이 1,038만1,000CGT가 됩니다. 1위 대흥중공업 수주잔량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천만 얼마쯤 되겄지, 뭐.”
“네. 1,560만3,000CGT입니다. 우리랑 순양중공업 통합법인이 대흥중공업과 맞짱 한번 깔 수 있을 정도로 따라잡았다는 의미입니다. 이거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애도 아니고 호사가들이나 따지는 순위놀이 따위가 밥이 나와, 돈이 나와?”
“밥과 돈이 나올 수 있습니다. 2위 우진조선이 624만CGT로 대흥중공업 반절도 못 따라갔었거든요. 근데 이젠 확실한 1, 2위 경쟁이 펼쳐지는 것이죠. 빅4가 아니라 빅2가 된다는 겁니다. 위상이 달라지면 우리를 찾아오는 고객들 태도도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흐음. 그럴 수도 있겠구나. 빅4로 불릴 때도 좋았는데, 빅2로 불리면 뭐, 말할 것도 없겠지.”
“이제야 제가 자랑하는 걸 받아주시네요. 이건 꼭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허허. 자랑은 그 정도로 해. 앞으로가 정말 중요해. 요즘 그 뭐냐. 그……, 아, 이거 생각이 안 나네.”
“승자의 저주 말씀이십니까?”
“하하. 그래, 그거. 승자의 저주니 뭐니 말들이 많아. 순양중공업 잘못 관리했다가 호되게 체할 수 있으니까,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다고 생각하라 이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괜히 더 오바해서 대답했다. 아버지의 저 말투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태연함 육수에 근엄 한 스푼과 엄격 한 스푼을 더했지만, 속내는 나보다 더 신나서 방방 뛰고 있을 것이다.
경상도 아재들이란…….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