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20
나는 작가다 120화
120화
“……100억이면 일반인 기준으로 평생 놀고먹기만 해도 살 수 있는 금액인데요?”
너무 대수롭지 않게 금액을 부르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기야 이 사람은 일반인이 아니지.
대형 로펌,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을 쥐락펴락하는 부대표였다.
말이 부대표지, 아버지인 대표가 자리를 비우면 설아네 어머님이 앉을 것이다.
그녀가 아니더라도 남편이 옮겨서 앉거나 하겠지.
어느 연예인은 50억에 달하는 아파트 두 채도 가뿐히 사며 자기 엄마와 동생에게 줬다.
그런 연예인들이나 그들보다도 더 버는 재벌들의 돈을 쉴 새 없이 쪽쪽 빨아가는 게 법조계였다.
특히 법무법인 광해 같은 곳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수백, 수천억 원이 돈도 아닌 이들에게 수억에서 수십억 원을 하루에 수십 번씩 받아내기만 해도 수천억에 이른다.
100억 원이란 금액이 크게 느껴질 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난 다르다.
물론, 이것저것해서 기부 이후로도 수천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벌긴 했으나 여전히 내 머릿속에는 기억이 남아 있다.
몇천 원, 몇만 원도 아끼며 살던 평범한 편집자의 기억이.
그렇다 보니 아무리 돈을 잘 벌어도 한 방에 100억이란 거액의 집 한 채를 산다는 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거기서 설아네 어머님이 내 위치를 바로 잡아줬다.
“그거야 일반인이죠. 어디 우리 이 작가님이 일반인이신가요? 그래도 이왕 국민적인 스타라면 개포동 로얄층에는 사셔야죠.”
그래, 이젠 일반인이 아니다.
그 이야기를 남의 입을 통해서 들으니 새삼 지금 내 자신이 어떤지 되돌아보게 됐다.
절대 일반인이 아니지.
그나저나 개포동이라니.
정말 부자들이나 살던 동네 아닌가?
이젠 내가 그곳에서 살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 기준으로 놀라운 경치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로얄층요?”
그냥 아파트도 아니고 로얄층이라니.
가장 위층으로 다른 층 아파트보다도 매매가가 훨씬 높은 것이지 않던가?
남는 집이 로얄층이라니.
“네, 옆 단지 로얄층에 세 들어왔던 연예인이 갑자기 사고가 하나 터져서 나가 버렸거든요. 그리고 나선 아무도 안 들어오네요.”
“그 집에 제가 들어가면 좀 그렇지 않습니까? 사고 터뜨린 연예인이 살던 집에 살면?”
분명 설아네 어머님은 나한테 그랬다.
자기 딸인 설아의 사부란 게 알려졌을 때 괜히 창피한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했다고. 그래서 100억에 가까운 아파트를 30% 할인까지 해줄 테니 사라고 했다.
근데 이제 보니 나한테 부정 탄 집을 떠넘기려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설아네 어머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뇨, 당연히 거길 내어드릴 순 없죠.”
“음?”
“거긴 우리가 들어가고, 지금 우리가 사는 로얄층을 팔 거예요. 뛰어난 법조계 인사들이 쓰던 아파트에 들어온 국민 작가 이준경, 타이틀 괜찮지 않나요? 물론, 이 보도 자료는 이준경 작가님이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후 후속 보도 중 하나가 되겠지만요.”
연예인이 사고 친 다음 나간 집은 자신들이 들어가고, 본래 자신들이 살던 집을 내게 팔겠단다.
정말 딸 사랑이 지극정성인 어머니다.
난 거기에 대해서 한 가지 질문을 더했다.
“근데 그 집으로 들어가면 나중에 설아가 거기 산 걸로도 이미지가 깎이지 않을까요?”
“후훗, 그건 걱정 마시죠. 아직 설아 어려요. 설아가 커서 뭔가를 이룰 나이가 될 때쯤에는 더 좋은 고급 아파트가 세워질 텐데, 거기로 이사할 거랍니다.”
아직 설아는 어리기에 세간의 집중을 받지 않으니 지금 당장 자신들이 그 집으로 들어가도 괜찮단다.
꽤 계산이 빠른 설아네 어머님이었다.
그녀는 이 이야기를 끝으로 내게 제안했다.
“30% 깎아드리기로 했으니 60억에 드릴게요. 어때요?”
“전혀 싼 것 같진 않지만, 30%나 싸게 팔면 부대표님도 꽤 손해가 크실 텐데 괜찮으십니까?”
거의 30억 원을 손해 보는 판매라니.
일반인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될 소리였다.
하지만 상대는 일반인이 아니다.
이미 100억 원이란 거액도 막 100원짜리 동전마냥 불렀으니 30억 원이 클 리가 없지.
또한 설아네 어머님은 내게 그리 싸게 아파트를 넘기는 이유에 대해 덧붙였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해두죠. 그리고 우리 설아 사부님이라면 그 정돈 사셔야 하지 않겠어요?”
“근데 평수가 어떻게 됩니까?”
들어가면 혼자 살아야 할 집이다.
괜히 평수가 넓으면 관리하기 힘들리라.
사서 부모님께 드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일하시는 곳이랑 멀다 보니 이사하라고 해도 안 하실 게 분명했다.
결국 내가 혼자 살아야 하기에 평수를 물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설아네 어머님이 참 놀랄 소리를 내뱉었다.
“100평도 안 돼요.”
100평도 안 된다는 말이 이리 쉽게 나올 줄이야.
난 황당하단 반응을 보였다.
“아니, 아까부터 너무 100이란 숫자를 100원처럼 이야기하시는 것 같습니다?”
“에이! 우리 이준경 작가님한텐 100원처럼 이야기해도 되죠, 뭐.”
“무슨 그런…….”
절대 100억이나 100평인 100원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이야기는 필요 없단 듯이 설아네 어머님이 결론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래요? 전 우리 설아 때문에 이준경 작가님께서 좋은 집에 사셨으면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내 개인적인 매출은 수천억에 이르러도 거의 대부분 캐시 카우처럼 회사에 돈을 다 넣고 있었다.
이따금씩 필요한 것만 월급처럼 몇 백씩만 받고 있었고 말이다.
그러니 60억짜리 아파트를 사는 게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돈을 빼건, 아니면 회사가 사건 해야 하는데 이 모든 과정에는 철이가 필요했다.
“끄응, 일단 제 돈은 거의 벌어들이는 족족 회사에 밀어 넣고 있기 때문에 경리 쪽 담당하는 애랑 이야기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철이 씨랑요?”
“네.”
“제가 할게요.”
갑자기 자신이 철이랑 직접 통화하겠다는 설아네 어머님.
내 돈이 오가는 일인데 왜 그녀가 철이랑 이야기하겠다는 건지.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다.
“예?”
“연락처도 있고 어차피 이준경 작가님께서 사신다고 하면 법이나 세금적인 문제로 같이 이야기해야 하니 제가 바로 하는 편이 나을 것 같거든요.”
설아네 어머님 이야기도 전혀 틀리지 않았다.
뭔가 법적이거나 세금적인 문제가 생기면 철이가 광해 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해결하곤 했다.
그러니 어차피 거액의 아파트를 사려면 철이나 광해 쪽이 이야기도 나누긴 해야 하니 설아네 어머님이 녀석과 대화를 나누는 게 낫긴 하리라.
“아니, 아직 산다곤…….”
“철이 씨만 설득하면 사신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그러니 제가 연락할게요.”
“끙, 알겠습니다.”
왠지 말린 기분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설아네 어머님은 그리 마음먹은 것 같았다.
“그럼 철이 씨랑 이야기하고 전화할게요.”
“예.”
그렇게 난 설아네 어머님과의 통화를 마쳤다.
통화가 끝난 뒤 난 방금 전 들었던 아파트 매매가를 읊조렸다.
“60억…….”
적지 않은 금액이다.
설아네 어머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기부한 이후로 바짝 벌어서 수천억 원의 수익을 이뤄냈으나 그래도 크긴 컸다.
근데 사람이 있어보여야 한다는 말은 왠지 와 닿긴 했다.
“확실히 이젠 있어 보여야 할 위치긴 하지.”
국가적 기부를 한 기부천사, 수천억 원의 수익 작가,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 거기다가 혜성처럼 떠오른 신인배우까지.
“노벨문학상도 후보작만 하고, 달성하진 못하겠지? 판타지스타 때처럼.”
판타지스타를 완결내고 톱스타를 준비하던 때 칠리아노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었다.
축구물 ‘판타지스타’가 노벨문학상 후보작에 올랐다고.
이걸로 정말 국가가 시끌벅적했었다.
대한민국 최초로 시가 아닌 소설이 노벨문학상 후보작에 올랐는데, 그것도 일반 문학도 아닌 고작 대여점에나 풀릴 법한 장르소설이 올랐다면서.
덕분에 내 팬들은 응원했으나 상업소설을 좋지 않게 보던 문예 쪽 사람들은 힐난하기 바빴다.
이런 글 같지도 않은 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노벨문학상 후보작에 올랐단 사실에 대하여.
오히려 그건 고마운 일이었다.
사실 노벨문학상 후보작에 오른 후 수많은 인터뷰 요청이 있었는데, 그들이 행한 부정적인 여론을 이용해서 괜히 얼굴이 밝혀져 봐야 좋을 게 없단 식으로 밀어붙였다.
그리 말하니 다들 개인정보나 이런 쪽으로 민감하니 건들지를 않았다.
하면 어찌 건들겠는가?
바보들이 아닌 이상 내 담당 회사인 K E&M 뒤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법무법인 광해가 있단 걸 알았다.
잘못 내 개인정보를 건드렸다간 광해의 칼날이 목에 들어올 터.
함부로 건드려야 건들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국내 여론은 이렇게 정리한 후 난 열심히 칠리아노 출판사와 연계하며 해외에 내 작품에다가 정말 괜찮다고 판단한 몇몇 작가의 작품들을 팔았다.
그러던 중 판타지스타의 결과가 나왔다.
당연히 떨어졌다.
뭔가 후보에 올랐다가 떨어졌으니 아쉽기도 했으나 난 그리 많은 아쉬움까진 느끼지 않았다.
이왕이면 뭔가 받는다면 판타지스타가 아닌 처녀작인 황제 로키였으면 했으니까.
그리고 칠리아노 출판사 쪽에 어필해서 이번엔 황제 로키 쪽으로 해봐 달라고 했다.
생각보다 칠리아노 보스의 영향력이 컸다.
과연 서양을 쥐락펴락하는 최대 규모의 마피아 보스답달까?
현재 노벨문학상 후보작으로 황제 로키가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때 난 사실 몰랐다.
이게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그러거나 말거나 이 모든 것에 어울리는 인물답게 60억짜리 아파트를 사라고 하니 거기에 대해서 내가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60억을 쓰게 생겼으니 메워야지.”
솔직히 내가 전화해서 이야기했다면 철이가 반대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하지만 설아네 어머님이 직접 이야기한단다.
이미 충분히 법무법인 광해 쪽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다 보니 철이 역시 그녀가 말한다면 반대의 ‘반’ 자도 못 꺼내리라.
그럼 당연히 60억은 쓰게 될 것이고, 난 그만큼 더 벌기 위해 일을 할 뿐이었다.
작가의 좋은 점이 이거인 것 같았다.
쓰는 만큼 벌 수 있다.
물론, 잘나가는 작가들에 한해서다.
못 나가는 작가 역시 쓰는 만큼 벌 순 있지만, 생계가 걸린 상황에서 더 쓴다고 해도 10만 원도 못 벌 경우 쓰다가 굶어 죽으리라.
그런 작가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편집자를 할 때도 많이 봤지만, 요 근래 연재사이트 KN월드의 커뮤니티에서도 이런 고민들이 많았다.
개중에 깜냥이 보이거나 내가 알기로 나중에 잘 팔 작가들은 회사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시켰다.
철이야 왜 애먼 돈을 쓰냐고 했지만, 성용 형님은 시장의 미래를 위해선 괜찮다고 나왔다.
아무리 철이가 돈에 관해서 으뜸이라곤 하나 대표로 있으면서 동시에 형님인 그의 뜻을 반하긴 어려웠다.
덕분에 지출이 좀 커지긴 했으나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편집자일 때 친하거나 담당인 작가들이 힘들면 뭐든 해주고 싶었다.
당연히 그들이 글을 써야 시장이 성장하고, 시장이 성장해야 나 또한 먹고살 수 있단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사람으로서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고 싶었다.
마음이야 그렇게 굴뚝같았으나 박봉인 일개 편집자가 모든 작가를 돕긴 어려웠다.
그리고 회귀한 난 능력이 됐으니 돕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 ‘우리’ 작가였으니까.
그렇게 ‘우리’ 작가들을 위해서, ‘우리’ 회사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글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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