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57
나는 작가다 157화
157화
애니메이션.
흔히 우리나라에선 ‘만화영화’라고 부르는데, 전통으로 가면 프레임 촬영을 기반으로 하여 그림이나 사물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영화의 한 장르다.
2D부터 3D까지.
하지만 대체로 2D의 그림으로 영상매체를 만드는 걸 떠올렸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애니메이션을 언급하면 대체로 이리 불렀다.
‘일본 애니’.
사실 애니메이션은 우리나라도, 미국도, 독일도 있었으나 가장 가까운 나라이자 가장 만화 문화가 뛰어난 일본이었기에 딱 떠올리면 저게 가장 먼저 떠올랐다.
대체로 서양권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책은 ‘코믹스’라고 떠올렸으니까.
이런 지식이 왜 있냐고?
내가 담당했던 작가 중 ‘만화의 달인’이라는 작품을 쓴 적이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작가의 원고를 같이 토의하는 편집자들은 수박겉핥기 지식이 꽤나 다채로웠다.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접하면서 지식이 쌓이기에.
어쨌거나 우리나라 문화의 기준으로 만화하면 웹툰 정도만 생각하던 내게 애니메이션이란 존재는 크게 다가왔다.
거기서 난 문득 한 가지 이름이 떠올랐다.
“마즈라…….”
“예?”
순간 이신양 감독은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이런 반응이 당연하다.
마즈라.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 중 한 곳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아직 등장하지 않은 곳이다.
총구의 부분을 가리키는 영어 ‘머즐’을 일본식으로 읽은 뒤 자기들 회사 이름으로 만든 이름이다, ‘마즈라’가.
1980년대부터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 자리를 잡아온 제작사 ‘가이아스’에서 2007년에 방영한 ‘승천돌파 그림투스’를 제작한 팀이 나와 만든 회사다.
만화가물을 쓰던 작가가 2000년에 회귀한 주인공이 먹던 회사이기도 했다.
‘그때 소설에서 설명하길 일본 애니메이션계는 고일 대로 고여서 그나마 신규 업체로 나타난 곳이 거기라고 했었지?’
그랬다.
2007년 ‘승천돌파 그림투스’를 제작한 팀이 나와서 2011년에 설립한 회사가 ‘마즈라’였고, 2000년에 회귀한 주인공이 흡수할 수 있는 곳은 그곳뿐이라고 했다.
‘설립한 대표 인터뷰도 봤었는데…….’
만화가물을 쓰던 작가가 내게 작품 상의를 원하면서 조사한 자료들도 보여줬다.
거기서 ‘마즈라’라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대표의 인터뷰를 보여주기도 했다.
인용하기 위해서.
‘가이아스는 정말 좋은 회사다. 각 팀들이 정말 말도 안 되는 기획을 가져와도 도전하게 해주는. 하지만 오히려 그게 부담스러웠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기획을 받아준 대신 성공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컸다. 때문에 좀 더 마음 편히 도전하기 위해 차렸다.’
마즈라의 대표가 그런 인터뷰를 했다며 보여줬다.
그것과 함께 주인공이 어떻게 하는지도 똑똑히 기억났다.
‘그리고 만화가물에서 회귀한 주인공은 만화가로 승승장구한 이후 국내 애니메이션계의 한계를 느낀 뒤 그곳을 흡수했지.’
정확하게는 흡수라기보단 먼저 선점했다.
마즈라의 대표가 2009년도부터 느끼기 시작한 ‘부담감’을 잘 이용해서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만화가로서 번 돈과 자신의 만든 만화에 대한 팬이란 걸 이용해서.
여기서 난 한 가지 문제점을 깨달았다.
‘베스트셀러에다가 노벨문학상까지 탔어도 만화가물에서의 주인공은 같은 분야란 게 어필이 됐는데, 나도 그게 가능할까?’
비록 웹툰을 시작하긴 했으나 이 시장은 어디까지나 아직 수출 사업까진 못해서 국내에서만 유명했다.
굳이 세계적으로 내가 내세울 건 아직 소설밖에 없었다.
만약 마즈라 대표가 내 소설을 좋아한다면 내가 봤던 만화가물의 주인공처럼 수월하겠으나 아니라면 포섭하긴 어려우리라.
거기에 대해서 난 생각했다.
“까짓것 부딪혀 보면 알겠지.”
또 내가 마즈라 쪽을 생각하던 걸 혼잣말로 내뱉어 버렸다.
이신양 감독이 또 의아하게 쳐다봤다.
“예?”
자꾸 이런 실수를 하다니.
난 아무 것도 아니라며 손사래 쳤다.
“아, 죄송합니다. 잠시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들으니 떠오른 게 있어서요.”
“어떤 거죠?”
“애니메이션을 깊게 알아보기 위해 일본으로 넘어가 볼까 싶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듣기 무섭게 일본으로 넘어간다고 하자 이신양 감독의 표정이 밝아졌다.
왜 이렇게 쳐다봐?
이신양 감독이 감탄하며 물었다.
“오, 그럼 작가님께선 애니메이션 쪽으로 관심이 있으신 건가요?”
“있긴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 분야를 성장시킬 수 있다면 거의 업적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왠지 도전해 보고 싶단 욕구가 생겼다.
그런 내게 이신양 감독은 다시 또 자신의 지인을 언급했다.
“그럼 혹시 제가 아는 형님 한 번 뵈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괜히 미안해서 반응이라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신양 감독은 자꾸 자기 지인을 소개시켜 주려고 했는데, 난 ‘애니메이션’이란 단어 하나 듣고 딴생각만 장난 아니게 했으니까.
이신양 감독은 다시 한 번 더 자신이 소개하려는 지인인지 누구라고 말하기 전에 잔뜩 미사여구를 붙였다.
“국가적으로 지원이 어려운 형태의 분야를 꿈꾸는 분이다 보니 거의 없거든요. 근데 꿈 하나는 정말 멋있는 형님입니다.”
나한테 정말 소개시켜 주고 싶은 사람인가 보다.
이 정도 정성이면 들어줘야만 할 것 같았다.
소개하려는 지인이 누구인지 물었다.
“어느 분이시죠?”
“‘양상훈’이란 형님인데 한국에서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성공시키고 싶어 하는 분입니다. 일본에서 나오는 만화들과 다른 그림체로 한국적 정서를 일깨우고 싶어 한달까요? 덕분에 흥행이 어려운 독립영화 수준의 분야를 붙잡고 계십니다. 아니, 오히려 독립영화보다 더 어려운 수준의 분야를 잡고 있죠. 독립영화는 차라리 영화인들이 관심이라도 보이니까요.”
‘양상훈!’
누군지 안다.
이 인물 역시 내가 담당하던 작가의 만화가물 자료에서 언급된 인물 중 하나였다.
이미 작품은 90년대부터 해왔던 감독인데, 처음에는 2000년까지 인형을 이용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활동하다가 그 한계성으로 인해 2D 분야로 옮겼던 이다.
이후 대부분 작품들이 매니악했는데, 대체로 이름을 알린 작품은 2011년 ‘인간은 돼지와 같다’였다.
인간을 탐욕의 상징인 돼지에 빗댄 작품으로 정말 적나라한 표현과 감정묘사를 보여줘서 영화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애당초 영화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 건 2003년에 발표한 ‘삶은 지옥과 같다’였으나 좀 더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작품은 ‘인간은 돼지와 같다’였다.
그러나 이 역시도 대중적으로 조금 알려지긴 했으나 엄청나게 대중적이다고 할 수는 없었다.
매우 어둡고 진지한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양상훈 감독에게도 인생 중 세 번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기회가 한 번 생겼다.
바로 천만 영화 ‘좀비열차’였다.
사실 이건 양상훈 감독 역시 대박칠 거라고 생각지 못한 작품이었다.
준비하고 있던 애니메이션 작품인 ‘좀비침략’의 투자가 어려워지자 프리퀄 개념으로 단기간에 제작했는데, 웃기게도 그게 덜컥 천만관객을 달성해 버린 것이다.
더 웃긴 건 이 여파로 인해 좀비침략 담으로 준비했던 애니메이션 작품이 묻혀 버렸다.
자기 작품의 프리퀄에 야심차게 준비한 차기작이 묻혀 버린 비운의 사나이.
이후 우리나라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싶었던 좀비 블록버스터 영화를 띄웠으니 영화 제작도 괜찮지 않을까 했는지 신작 ‘초능력’을 꺼냈으나 주로 영화인들이 주목하던 양상훈 감독 특유의 사회고발적인 면모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데다가 왠지 모를 어중간함에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결론은 천만영화를 만들 능력이 있으나 자기 장점에서 벗어날 것 같을 경우 잡아주기만 하면 충분히 좋은 인재란 것.
이신양 감독이 양상훈 감독에 대해 언급하기 무섭게 난 아는 척을 했다.
“‘삶은 지옥과 같다’의 감독님요?”
“어? 상훈 형님을 아십니까?”
설마 내가 양상훈 감독을 알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이신양 감독의 두 눈이 매우 커졌다.
내가 알고 있단 게 그리 놀라운 일인가?
그에 대해 대변해준 게 설아였다.
“에이, 감독님도 알고 있던 사부인데 그분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아신다고 하셨던 분이셨지? 와, 그래도 상훈 형님을 아신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역시 대작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엄청 넓은 시야를 지니셨네요, 작가님.”
아니, 뭘 또 이렇게까지 칭찬을 해주지.
괜히 머쓱했다.
대작가라니.
어쨌거나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그냥 어쩌다 보니 이래저래 아는 게 많을 뿐입니다.”
“어쩌다 보니 이래저래 아는 게 많은 정도가 이거라면 전 나가죽어야죠.”
“아니, 또 무슨 그런 말씀을……. 그래서 제가 양상훈 감독님을 뵙고 뭘 해주셨으면 하신 겁니까?”
“사실 그 형님이 정말 같은 영화인으로서 특수한 분야를 뚝심 있게 지키시는 걸 보면 존경스러운데 약간 욕심도 크신 분입니다.”
“욕심이 커요?”
“마케팅비를 억대로 원하시거든요. 근데 전 그 형님 작품이면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그 금액을 정말 믿고 투자해 주는 곳들이 없습니다.”
그럴 만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 문화는 그리 발달하지 않았으니 상업영화로 치면 그리 큰 비용은 아니나 이쪽으로 보면 커 보이긴 할 터.
심지어 대부분 양상훈 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마니악하다 보니 독립영화 수준, 아니, 그보다도 낮게 평가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실질적으로 ‘인간은 돼지와 같다’가 대중적이란 것도 영화인 기준으로 대중적인 거지, 실질적으로 양상훈 감독이 대중적인 감독으로 지지받는 건 프리퀄로 단기간에 기획해낸 영화 ‘좀비열차’가 개봉한 2016년이었으니 한참 멀었다.
이제 2009년이란 걸 감안하면 아직도 7년이나 남았다.
그전에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면야 손해 볼 게 없다.
욕심이 크다곤 하나 ‘좀비열차’ 하나만 대박치면 다 메우고도 남을 금액.
거기에 대해선 걱정하지 말라고 이신양 감독에게 말했다.
“잘 아시잖습니까? K E&M은 예술을 위한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는단 걸요.”
“후후.”
갑자기 내 말에 웃는 이신양 감독.
왜 이러나 싶었다.
“왜요?”
“K E&M이 아끼지 않는 게 아니라 작가님께서 안 아끼시는 거잖습니까?”
그러고 보니 이신양 감독도 우리 사람이 되면서 회사 전체적인 금전이 어떻게 도는지 알게 됐다.
아무래도 감독으로서 회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알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실질적인 회사의 주인이 나란 것까진 아직 몰랐지만 말이다.
주인공이 힘을 숨기는 느낌이려나?
어쨌거나 난 머쓱한 채 어색하게 웃었다.
“뭐, 그게 그렇게 되나요?”
그런 내게 이신양 감독은 선망 어린 시선을 보냈다.
“정말 부럽습니다.”
“어떤 게요?”
“저도 작가님처럼 성공해서 많은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해줬으면 싶거든요.”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하고 싶다라, 그에 대한 답은 딱 정해져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계속 성공해서 투자하시죠. 돈은 철이한테 말하면 알아서 잘 굴려줄 겁니다. 저도 이제 같은 회사 식구분들 덕 좀 보며 돈을 아끼고 싶네요.”
“꼭 성공하겠습니다.”
꼭 성공해서 자신도 보탬이 되겠다는 이신양 감독.
그에게 난 한 가지 정정할 점을 알려줬다.
“이미 성공하셨으면서 뭘 꼭 성공하시나요? 계속 성공하셔야죠.”
“예? 아! 하하, 그렇죠. 계속 성공해야죠!”
뒤늦게 자신이 어떤 말실수를 했는지 깨달은 이신양 감독의 호탕한 답변.
거기에 대해서 난 피식 웃은 뒤 방금 전 이야기의 본론으로 돌아갔다.
“그럼 양상훈 감독님은 언제쯤 뵐까요?”
“언제든지 작가님께서 괜찮으실 때 제가 약속을 잡겠습니다!”
“그럼 양상훈 감독님께 여쭤보고 약속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세요. 저야 언제든 괜찮습니다.”
조금 아쉽긴 하다.
뭐가?
예전 같으면 소설만 쓰는 작가로 살 땐 백수처럼 산다고 할 텐데, 요샌 너무 바쁘게 사니 백수처럼 산다고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