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44
나는 작가다 044화
44화
“후, 드래곤 나이트는 다 됐고.”
시간은 확인했다.
오후 다섯 시.
철이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일곱 시였으니 용사무적 두 편을 쓰고 나면 딱 될 것 같았다.
그때였다.
또로롱.
전화가 왔다.
“응? 성용 형님이네.”
발신자가 성용 형님인 걸 확인하곤 받았다.
“예, 형님.”
“좋은 소식 하나와 나쁜 소식 하나가 있다. 뭐부터 들을래?”
나한테 나쁜 소식이랄 게 있나 싶었다.
그게 뭔지 궁금하다.
“나쁜 소식부터요.”
“계약서 좀 바꿔줘야 할 것 같아.”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계약서를 왜 바꿔 달란 건지.
이해할 수 없단 반응을 보이자 성용 형님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너무 큰일을 저질러 버렸어…….”
큰일을 저질렀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계약서를 바꿔줘야 할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큰일이라면 하나밖에 없어 보였다.
“설마 증쇄했어요?”
“눈치는 참 빨라요.”
“근데 왜 계약서를 바꿔요?”
“그게 지금 증쇄한 부수대로라면 도저히 출판사가 감당할 수가 없어…….”
출판사가 감당할 수 없다.
난 거기서 내 계약 조건을 떠올려 봤다.
8천 부, 14%, 전권 보장.
거기다가 천 부를 증쇄할 때마다 2%가 추가됐다.
결국 증쇄한 부수가 꽤 된단 소리였다.
“몇 부나 증쇄했길래요?”
“맞춰 봐. 그게 좋은 소식이니까.”
갑작스러운 증쇄 관련 퀴즈.
거기서 난 계산을 때려봤다.
‘어디 보자.’
8천 원 중 출판사가 가져가는 몫이 절반을 좀 넘겼다.
여유롭게 출판사가 5천 원, 판매처가 3천 원을 먹는다고 쳐보자.
그중 1,500원 정도는 인쇄 및 물류 유통 등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쓰였다.
나중에 판매 부수가 점점 떨어지면서 판형을 신조판으로 바꾸면서 작아지고, 더 시장이 안 좋아지면서 싸구려 종이를 쓰면서 더 단가가 내려가긴 했으나 지금은 1,500원 정도가 들었다.
그렇다면 출판사의 종이책 순이익은 4천 원.
8천 원에서 50% 정도를 먹는다고 보면 됐다.
거기서 보통 1, 20%는 창고 및 회사 운영, 인건비용으로 쓰였다.
직원들 월급이나 사무실 비용 등등.
그렇게 해서 보통 1, 20%를 남겨서 최종 순이익을 만들고 나머지가 작가 몫이었다.
즉, 50% 중 최대 25%는 남겨야 출판사에게 뭔가 남았다.
근데 나 때문에 그게 안 남는다?
얼추 내 계약 조건이 30%까지 치고 올라갔다고 보면 됐다.
‘14%가 30%가 되려면 16%가 필요하고, 내가 천 부당 2%씩 오르니까…….’
계산을 끝낸 내가 성용 형님에게 물었다.
“8천 부요?”
거기서 씁쓸한 성용 형님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차라리 그 정도였으면 굳이 계약서를 바꾸자고도 안 했겠다.”
“예? 8천 부가 넘는다고요? 그럼 만 부?”
솔직히 8천 부 증쇄도 놀라운데 만 부라면 기가 찰 일이었다.
비록 지금 대여점 시장이 그나마 증쇄가 꽤 있던 마지막 노선이라곤 하나 만 부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근데 이어지는 성용 형님의 대답은 더욱 놀라웠다.
“아니, 그 두 배다.”
“두 배라면…… 컥!”
만 부의 두 배, 계산하면 2만 부다.
근데 너무 놀라서 그 계산을 손가락까지 접으면서 하던 난 순간 사레가 들렸다.
2만 부라니.
아무리 들어봐도 농담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진짜인지 재차 확인했다.
“제가 지금 잘못 들은 거 아니죠?”
“놀란 거 보니 제대로 들은 것 같네.”
“2, 2만 부를 증쇄했다고요?”
“어, 거기서 더 할지도 몰라.”
2만 부 증쇄도 지금 말이 되나 싶을 정도다.
근데 거기서 더할 수 있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또 있나 싶었다.
“그게 가능한 겁니까?”
“아마 이 소식이 알려지면 업계 전체가 너랑 똑같이 물을걸? 그게 가능하냐고.”
“그럼 진짜 2만 부를 증쇄했다고요?”
“어.”
거기서부터 난 다시 계산을 때려봤다.
내가 증쇄한 게 2만 부란 기준으로.
2만 부를 증쇄했으면 계약상 내가 가져가야 한 퍼센티지가 40%가 인센티브로 붙었다.
그럼 총 인세 비율이 종이책 판매액의 54%.
출판사가 가져가야 할 몫을 다 주고도 추가로 더 줘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출판사 입장에선 내 계약 조건을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협의가 필요했다.
계약 조건을 출판사 마음대로 바꿀 순 없으니까.
근데 이상하다.
“사장님이 용케 그걸 말해주라고 하셨네요?”
지금 시기라면 작가가 출간을 얼마나 했는지 알기 쉽지 않으니 속여도 될 법했다.
그냥 몇천 부 더 했다고 말해서 추가로 돈이 꽂히면 그에 만족하는 시장이었으니까.
물론, 보통 작가도 아니고 나라면 당연히 총판을 찾아가건, 아니면 내가 알던 푸른숲 출판사 공용 이메일이건 뒤져서 부수를 알아냈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성용 형님은 왜 김두식이 그렇게 안 했는지 알려줬다.
“이미 한 차례 부수 속인 걸로 옴팡 뒤집어쓴 회사가 하나 있잖아. 잘나가는 작가 부수 속였다가 소송 걸려서 아예 회사 통째로 넘겼잖아.”
잘나가는 작가 부수를 속였다가 소송으로 아예 회사가 넘어간 곳.
어딘지 떠올랐다.
“아, 토지 출판사요?”
“그래, 거기. 괜히 속였다가 똑같은 꼴 당할 순 없다고 사장님이 있는 그대로 말해서 협의해 오라고 시키더라.”
“그렇군요.”
“지금 네 계약 조건상으로 같은 일이 벌어지면 출판사가 넘어가는 수준이 아닐 걸 아니까 하신 말씀이겠지.”
그렇긴 하다.
방금 이야기한 토지 출판사의 경우 흑무로 유명한 진두준 작가 인세를 떼어먹었지만, 다행이 흑무의 경우 출간 주기가 긴 덕에 몇 권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 경우 벌써 황제 로키가 20권에다가 드래곤 나이트 원고가 10권에 이르렀다.
황제 로키가 팔린 부수를 보면 독자 충성도가 어마어마한 거니 차기작 드래곤 나이트도 꽤나 많이 팔려 나갈 거다.
그렇게 두 작품의 인세를 속였다가 나중에 들켜서 토해내는 것도 모자라 추가로 징벌할 걸 생각하면 액수가 엄청나리라.
이건 차라리 사실을 밝힌 게 김두식이 대처를 잘한 거였다.
만약 실제로 출간된 부수와 인세가 다르다면 난 바로 소송으로 넘겼을 거다.
이미 토지 출판사의 선례도 있으니 법정에서 승소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흐음, 근데 이거 협의잖아요. 제가 바뀔 계약 조건을 납득하지 못하면 안 될 텐데요.”
“일단 사장님이 이야기하신 것부터 알려줄게.”
“예.”
“계약 퍼센티지는 20%로 고정하자고 하셨어.”
“그게 말이 됩니까? 반도 더 깎았잖아요?”
“들어봐.”
“흐음, 알겠습니다.”
과연 김두식은 내 계약 조건을 20%로 낮추고, 뭘 주기로 했는지 성용 형님이 이야기했다.
“대신 너한테 50% 지분을 주시겠대.”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 욕심 많은 양반이 나한테 지분을 50%나 준다고?
정말이냐고 성용 형님에게 물었다.
“예? 저한테 푸른숲 출판사 지분을 50%나 주신다고요?”
“당연히 푸른숲은 아니지.”
그래, 나한테 푸른숲 출판사 지분을 50% 주면 김두식이 아니지.
한데 푸른숲 출판사의 지분이 아니면 대관절 무슨 지분을 준다는 건지 의아했다.
“그럼요?”
“안 그래도 출판사 내부에서 세금 때문에 브랜드 하나 빼기로 계획하던 게 있었거든. 근데 네 작품 때문에 세금 폭탄 맞을 것 같아서 지금 급하게 진행 중이야.”
“브랜드를 하나 빼자? 업체를 나눠서 매출을 분리한 다음 세금 덜 내려고요?”
“잘 아네.”
잘 알 수밖에.
지금 말하는 브랜드 이름이 뭔지도 알았다.
‘풀’이란 이름의 출판 브랜드였다.
방금 성용 형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세금이 아파질 것 같자 만든 브랜드다.
출판사 주축인 장도철, 양경철, 홍성용 세 사람에게 넘기면 위험할 것 같아 ‘이진우’란 직원의 명의로 올려놓은 ‘풀 출판사’.
‘그랬다가 김두식이 뒤통수를 크게 한 방 맞았지.’
얼마 있지 않아 장도철하고 양경철이 무한 출판사를 만들며 나가서 푸른숲에 혼란의 시기가 찾아왔다.
그때 성용 형님은 푸른숲 출판사를 교통 정리하느라 바빴고, 최고참 둘이 나가면서 김두식은 이진우에게 풀 출판사의 전권을 맡겼다.
근데 이진우가 은근히 욕심이 있던 양반이었다.
자신과 몇몇 직원이 고생해서 풀 출판사를 꽤 잘 운영하게 되니 푸른숲 출판사의 자회사가 아닌 아예 독립체로 가져갔다.
직원들에게 이 ‘풀 출판사’는 우리가 일궈낸 곳이라고 끌어들이면서.
그 계획은 성공적으로 돌아갔고, 이진우가 대표로 풀 출판사를 갖고 나갔다.
덕분에 푸른숲 출판사가 풀 출판사 가지고 몇 년 치 떼어먹었던 세금을 40% 부가하여 두들겨 맞았다.
‘생각해 보니 지금이 딱 그 시기구나.’
내가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서 푸른숲 출판사에서 새로운 브랜드인 ‘풀’을 내놓은 게.
그걸 생각해 보니 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진우가 아니라 내가 따로 푸른숲 출판사의 일정 부분을 먹는 게 가능한 거네?’
그랬다.
이진우가 풀 출판사를 먹을 수 있던 건 지분 분배 따위 없이 그냥 명의 자체를 올려놓고 만들었다 보니 혼자 챙길 수 있어서였다.
근데 여기서 풀 출판사의 지분 50%를 나한테 넘긴다?
그럼 나머지 50% 지분을 가진 사람만 챙기면 가만히 앉아서 출판사 하나를 먹는 것도 가능하단 소리였다.
비록 원래 있던 조건을 감안하면 금전적으로는 크게 손해를 볼지 몰랐지만, 이건 잘만 굴리면 오히려 내가 받기로 했던 것보다 더 크게 벌어들일 수 있지 않나 싶었다.
거기서 난 성용 형님에게 말했다.
“좋아요. 그 조건 받아들일게요.”
“진짜?”
사실 지분 50%를 준다고 해도 새로운 브랜드가 지닌 거기 때문에 그리 가치 있다고 보긴 어려웠다.
한데 그 조건을 내가 받아들이니 성용 형님 입장에선 놀랄 수밖에.
당연히 내 입장에서도 그 조건만 받아들이면 손해였다.
이제부터 손해를 이익으로 바꾸기 위한 제안을 끄집어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무슨 조건?”
“매출을 분리하기 위해선 새로운 브랜드의 대표도 있어야 하고, 작품도 있어야 할 거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 새로운 브랜드 이름이 뭐죠?”
“풀이야.”
역시 풀이구나.
예상한 답변을 들은 난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거기 나머지 지분 50%를 형님에게 주고 대표로 올리라고 해주세요. 그리고 제 작품이 가져가는 매출액이 가장 클 테니, 황제 로키와 드래곤 나이트 계약은 모두 풀 출판사로 옮겨 달라고 하시고요. 제가 믿고 따르는 형님이 새로운 브랜드 대표이고, 작품도 거기에 있어야 이 조건을 받아들일 거라고 전해주세요.”
***
똑똑!
이준경 작가와 통화를 마친 홍성용이 임원실을 노크했다.
“대표님, 홍성용 대리입니다.”
“들어와.”
홍성용은 임원실로 들어갔다.
그러기 무섭게 김두식이 물었다.
“이준경 작가랑 협의 잘했냐?”
“조건을 받아들이겠답니다.”
“오, 진짜?”
솔직히 이준경 작가 입장에서 생각하면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일 수도 있었다.
새로운 브랜드 지분을 가져봐야 푸른숲 출판사에게 뭔가 큰 영향력이 생기거나 하진 않았으니까.
김두식이 생각한 대로 그냥 받아들이진 않았다.
“예, 대신 조건이 좀 있습니다.”
그럼 그렇지, 중얼거리면서 홍성용에게 이준경 작가가 내건 조건이 뭔지 확인했다.
“뭔데?”
“출판사에서 자기가 믿을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 새로운 브랜드 대표를 저로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황제 로키랑 드래곤 나이트 계약도 그쪽으로 옮겨 달라 했고요.”
이준경 작가가 제시한 조건에 김두식은 잠시나마 고민에 잠겼다.
“흐음, 원래 그쪽 명의는 이 주임으로 올리려고 했는데…….”
요새 양경철이 하는 게 못미더워서 푸른숲 출판사의 주력적인 업무는 장도철과 홍성용에게 맡길 심산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브랜드인 ‘풀 출판사’의 대표는 홍성용 다음으로 직급이 있는 이진우로 올릴 생각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이득을 생각하면 새로운 브랜드를 이진우가 아닌 홍성용에게 맡겨도 괜찮아 보였다.
‘요 근래 좀 이상해도 장도철이랑 양경철이 둘이서 푸른숲 쪽 업무는 잘할 테니…….’
속으로 고민 끝에 김두식은 이준경 작가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래, 그렇게 한다고 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