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43
나는 작가다 043화
43화
“홍 대리.”
“예, 사장님.”
여전히 김두식은 양경철을 노려보면서 홍성용에게 물었다.
“너 지금 나한테 보고하려던 거 황제 로키 종이책 부수 건이지?”
“맞습니다.”
“그거 내가 직접 보고하라고 말했지?”
“예.”
“양 과장한테 그거 이야기 안 했어?”
“했습니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나눈 김두식은 양경철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들었는데 사무실 분위기 흐린 거냐?”
“그, 그게…….”
양경철은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김두식은 변명할 기회조차 없앴다.
“됐고, 홍 대리.”
“예, 사장님.”
“여기서 보고해.”
자신에게 보고하려던 내용이 뭔지 다들 들으란 듯이 발표시켰다.
거기서 홍성용은 방금 전화받았던 내용이 뭔지 밝혔다.
“총판에서 반품 요청은 없고, 추가 주문만 잔뜩 들어왔답니다.”
“……?!”
총판에서 추가 주문이란 말에 사무실 내에 있던 사람들 모두의 두 눈이 놀란 토끼처럼 커졌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다들 알았기에.
황제 로키는 8천 부를 찍고서 창고에 두지 않고 전국 총판과 서점에다가 싹 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가 주문이 들어왔다.
이건 책 물량이 부족하니 더 찍어야 한다는 거다.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었다.
증쇄.
그랬다.
황제 로키가 증쇄를 하게 된 것이다.
요 근래 대여점 수가 줄어들면서 8천 부를 찍으면 증쇄는 정말 드문 케이스였다.
한데 그걸 황제 로키가 달성했다.
그러나 아직 푸른숲 출판사가 놀랄 일은 더 남아 있었다.
“그래서 얼마나 더 찍어야 하는데?”
“현재 추가 주문만 2만 부 정도 된다고 합니다. 창고 추가 배본 물량까지 다 나가서 당혹스럽다며 추가 인쇄해 올 거면 천 부만 더 찍어 달랍니다. 추가 배본 주문 오면 뿌릴 것도 없을 것 같다고.”
이건 김두식조차 생각지 못했는지 그마저도 당혹스러워했다.
“뭐?”
김두식의 반응은 곧 출판사 분위기와 같았다.
하나같이 전부 술렁거렸다.
8천 부를 찍었다면 2천 부만 증쇄해도 대박이었다.
근데 황제 로키가 그 열 배를 달성한 것이다.
그 사실에 놀란 건 양경철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까지 사장한테 그렇게 혼났으면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는데, 황제 로키의 2만 부 증쇄는 앞선 모든 것들을 까먹게 만들 정도로 놀라운 기록이었다.
양경철은 혹여나 홍성용이 잘못 안 게 아닌가 싶었다.
이 시장에 2만 부 증쇄라니.
“호, 홍 대리, 너 잘못 들은 거 아니야?”
이준경을 담당하는 이가 홍성용이었다.
근데 그가 담당하는 작가가 2만 부 증쇄라니.
실적이 그 하나만으로도 자신이 해온 모든 것보다 대단해진다.
당연히 실적이 높아지면 직급은 낮아도 뭐라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제발 홍성용이 잘못 들었길 바랐다.
하지만 홍성용은 제대로 들었다면 정확한 이야기를 건넸다.
“아닙니다. 서점에서 만 부, 총판들에서 만 부를 더 필요로 한다고 하더군요. 창고장님께서 직접 연락 주신 겁니다.”
사실이라며 말한 홍성용의 이야기는 더욱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증쇄도 사실인가 싶을 정도인데, 여기서 만 부를 더 찍어야 할지도 모른단다.
양경철의 얼굴이 경악함으로 물들었다.
“마, 말도 안 돼. 그럼 3만 부를 찍을 수도 있단 소리야?”
“예, 그렇습니다.”
무덤덤하게 대답하는 홍성용을 내세워 김두식이 나무랐다.
“이래도 홍 대리가 너보다 낮아 보이냐? 양 과장, 너 때문에 이 복덩이를 놓칠 뻔한 건 기억하겠지?”
그랬다.
양경철 때문에 하마터면 푸른숲 출판사나는 이준경이란 작가를 놓칠 뻔했다.
그걸 모르지 않기에 양경철이 할 수 있는 사죄뿐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됐고, 한동안 자숙해라. 안 그러면 짬 무시하고 홍 대리를 네 위로 앉히는 수가 있다.”
“……예.”
김두식이 양경철을 정리한 후 홍성용에게 고개를 돌렸다.
“홍 대리.”
“예.”
“넌 잠깐 나 좀 따라와. 그리고 장 부장.”
홍성용을 데려가기 전 김두식이 장도철을 불렀다.
“예, 사장님.”
“장 부장은 여기 분위기 정리 좀 해. 난 홍 대리랑 임원실에서 이야기 좀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장도철에게 사무실 분위기 정리를 맡긴 김두식이 홍성용을 데리고 임원실로 들어갔다.
임원실에 잠시나마 들어가지 못하게 된 장도철은 사무실 직원들에게 말했다.
“다들 하던 일이나 집중해. 어차피 황제 로키는 홍 대리 거니까.”
“예.”
직원들이 모두 대답한 다음 자기 업무용 PC를 쳐다봤다.
거기서 장도철은 양경철을 불렀다.
“양 과장.”
“예, 부장님.”
“넌 나 좀 따라와.”
“알겠습니다.”
장도철은 양경철을 데리고 흡연실로 쓰는 베란다로 나갔다.
베란다로 나오기 무섭게 장도철은 양경철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퍽!
“크윽!”
양경철의 상체가 새우처럼 꺾였다.
양손으로 방금 맞은 정강이를 부여쥐면서.
그런 양경철에게 장도철이 언성을 높였다.
“야, 이 새끼야. 정신 못 차려?”
“혀, 형님…….”
갑자기 자신에게 이리 화를 내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보여주기식인가?
그럼 사무실 안에서 적당히 화냈으면 될 텐데.
이어지는 말에 장도철이 제대로 화났단 걸 깨달았다.
“형님은 염병할. 지금은 부장님이니 부장님이라고 불러라.”
평소라면 둘이 담배를 피울 때 형님, 동생하던 사이였다.
근데 부장님이라고 부르란다.
이건 장도철이 정말 자신에게 화가 잔뜩 날 때 보이던 반응.
잘못 건드려 봐야 좋을 게 없었다.
양경철은 곧장 장도철이 시킨 대로 했다.
“예, 부장님.”
부장님이라고 부르기 무섭게 장도철이 양경철을 쏘아붙였다.
“너 짬을 똥꼬로 먹었냐?”
“그, 그게 무슨…….”
“홍 대리가 사장이 지시한 거라고 하면 적당히 넘어가야지. 거기서 왜 홍 대리를 까고 지랄이야, 지랄은?”
“요새 이준경 작가 계약한 거 하나 가지고 너무 나대는 것 같아서…….”
나댄다.
사실 나댈 것도 없었다.
그냥 담당으로 계약한 이준경 작가가 잘되니 다들 축하해 주고, 사장이 좀 더 편의를 봐주고 그랬을 뿐이지.
홍성용이 스스로 내색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장도철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비록 자신 앞에 있는 양경철만큼은 아니지만, 그를 제외한 직원들 중 가장 오래 일해왔던 사이니까.
그러나 양경철이 나댄다고 생각하니 그 기준에 맞춰서 이야기했다.
나댄다는 기준으로 잡고 이야기해도 양경철이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 깨닫도록.
“그럼 안 나대냐?”
“예?”
“네가 병신짓해서 놓칠 뻔한 황금알 낳는 거위를 잡아왔는데, 걔 뒤를 사장이 봐주고도 남는단 생각이 안 돼? 대가리는 장식이야?”
“부, 부장님…….”
“씨발, 가뜩이나 지금 나갈 타이밍도 놓치게 생겼구만. 넌 왜 괜히 또 사장 성질을 건들고 지랄이야?”
“나, 나갈 타이밍을 놓치다뇨?”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곧 같이 나가서 무한 출판사를 차리자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일부러 작가들 부수도 낮추고, 홍성용에게 대충이라도 인수인계를 한 게 아니던가?
근데 나갈 타이밍을 놓쳤다고 하니 당혹스러웠다.
당황하는 양경철에게 장도철이 혀를 찼다.
“아, 이 새끼가 진짜. 술 마시고 아가리 털 줄만 알지. 진짜 짬을 똥꼬로 처먹었네. 야, 경철아.”
“예, 형님.”
이름을 부르길래 형님, 동생 사이로 돌아온 줄 알았다.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형님이라고 부르기 무섭게 장도철이 인상을 팍 썼다.
“부장님이라고, 이 새끼야.”
“부, 부장님.”
양경철이 도통 감을 못 잡는 것 같자 장도철은 어째서 나가기 어려워졌는지 알려줬다.
“지금 황제 로키가 2만 부를 증쇄했어. 근데 더 증쇄할지도 모른다네? 지금 시장에서 이게 가능해 보이는 작가가 있냐?”
“그, 그게…….”
지금 시장에 2만 부 증쇄가 가능한 작가.
그런 인물이 누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쉬지 않고 들어오는 일들로 인해 머리가 백지였으니까.
그런 양경철에게 장도철이 한 작가를 꼽았다.
“판매만 따지면 드래곤 피아를 쓴 김영수 작가급까지 올라가게 생긴 놈이다. 아니, 심지어 이준경 이 새끼는 글까지 막 찍어내잖아? 비빌 작가가 없어. 근데 이 출판사가 그런 작가를 지녔네?”
만약 이번 2만 부 증쇄가 성공하고, 홍성용이 말한 것처럼 만 부라도 더 찍기 시작한 뒤 그 판매고가 완결까지 유지된다면 한 가지 사실은 확정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장르 시장판의 모든 작가들 급수를 한 단계씩 낮춰 버릴 괴물 작가가 등장하는 거란 사실이.
거기까지 듣고서야 어느 정도 하얗게 새어버렸던 정신이 좀 돌아왔는지 양경철은 말을 이어 붙였다.
“……이준경 작가의 작품을 그렇게 팔아준 출판사라고 소문나서 작가들이 여기로 몰리겠군요.”
그제야 업계에 좀 종사한 티를 내는 양경철.
장도철이 처음으로 화만 내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도 짬을 아예 똥구녕에만 처박진 않았구나.”
“그, 그래도 제가 과장인데 대리한테 무시를 당하란 말씀이십니까?”
양경철은 직급이 벼슬이라도 되는 것마냥 이야기했다. 물론, 계속 푸른숲 출판사에 있는다면 벼슬일 순 있었다.
하지만 장도철은 자신과 하기로 한 계획이 있으면서 그런 소리를 해대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 여기 계속 다닐 거냐?”
“예?”
“어차피 나갈 곳인데 그깟 무시 좀 당하면 어떻다고?”
“그, 그래도…….”
딱 방금 전 질문이 장도철이 양경철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였다.
여기서 ‘그렇네요!’ 하면서 나갈 때까지 적당히 참는 모습을 보인다면 봐주려고 했다.
근데 여전히 별것도 아닌 직급을 놓지 못하는 걸 보곤 정이 떨어졌다.
“됐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구나. 그냥 너랑 나랑 같이 나가는 건 없던 일로 하자.”
여태까지 계속 같이 나가기로 해놓곤 그걸 무산시키자 양경철은 장도철에게 최후의 보루를 꺼냈다.
“제, 제 돈도 좀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차라리 그 최후의 보루가 사과를 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었야만 했다. 그랬다면 떠나려던 장도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되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양경철은 잘못된 최후의 보루를 꺼내 벌렸다.
거기서 장도철은 선을 그었다.
“천만 원, 그 푼돈? 그냥 돌려줄게. 없던 일로 하자.”
“혀, 형님!”
또 자신에게 형님이라고 양경철이 부르자 장도철은 다시금 정강이를 깠다.
퍽!
“크윽!”
“이 새끼야, 누가 네 형님이야. 부장님이라니까?”
“죄, 죄송합니다. 부장님,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사정사정하는 양경철.
녀석을 보면서 장도철은 들고 있던 담배를 피웠다.
“후우, 일단 나 담배마저 피울 테니 넌 들어가서 직원들한테 사과해.”
“사, 사과요?”
“시발, 그럼 분위기 개같이 만들어놓고 그냥 가만히 있겠다고?”
“하, 하겠습니다!”
“빨리 처들어가.”
“옙!”
“후우, 씨발. 못났어도 술상무나 시키면 딱이어서 데려갈까 했더니 저렇게 멍청해서 어따 쓰냐.”
그리 말하고 담배 한 모금을 마시곤 양경철에 대한 처리를 결정 내렸다.
“그냥 개판치고 나갈 거니 저놈한테 다 뒤집어씌우고 가면 되겠다.”
장도철은 마지막 한 모금을 더 내뿜은 뒤 재떨이에다가 담뱃불을 꺼뜨렸다.
치이익!
짓이긴 담배 꽁초는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차가운 재떨이에 힘없이 쓰러지며 버림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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