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80
나는 작가다 080화
80화
처음에는 아니라고 하더니 뒤늦게 자신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납득한 칠리아노 보스.
안지훈이 만약 실제로도 그런 일을 벌인다면 그럴 거라고 생각할 때였다.
이탈리아전이었던 16강이 끝나고 안지훈의 인터뷰 장면이 나왔다.
한 기자가 안지훈에게 질문을 던졌다.
“안지훈 선수! 이탈리아팀에 계신데 그렇게 골을 넣으셨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심지어 두 골 다 본인이 넣으신 것도 모자라 이탈리아를 떨어뜨린 골든골이라니. 이탈리아에서 원성을 살 것 같은데요?”
칠리아노 보스 역시 납득한 질문이었다.
현재 이탈리아팀에서 활약을 알아주는 건 극소수 이탈리아의 축구팬과 꽤 날린다는 축구 선수들이 전부였다.
꽤 유명한 이탈리아 판타지스타들이 자신들과 비등한 실력자라고 호평하지만, 어차피 그는 다른 국가의 사람이니 좋게 받아들일 리가 만무했다.
심지어 백인도 아니고 동양인인 안지훈.
그가 인터뷰에 대해 답했다.
“원성을 살 건 압니다. 감안해야죠. 어디까지나 제게 있어서 축구 경기는 삶 그 자체입니다. 한데 제가 그런 걸 생각하며 경기를 흐지부지 뛴다면 과연 축구 선수로서 살아 있음을 느낄까요?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그건 이탈리아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만약 어느 이탈리아 선수가 한국팀에 있는데 저와 같은 상황이라면 월드컵이 끝나고 돌아가야 할 한국의 원성을 걱정해서 슈팅할 수 있는 기회를 날릴까요?”
거기서 안지훈은 잠시 말을 멈췄다.
모두가 생각했다.
‘그럴 리가.’
맞다.
축구 선수가 어찌 경기에서 득점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버린단 말인가?
안지훈 선수의 말마따나 그런 축구 선수는 더 이상 가치가 없었다.
득점할 기회조차 제 발로 차버린다는 건 축구 선수로서의 자존심을 버린 것이요, 또한 자신을 믿고 있던 자국민에 대한 배신과도 같았다.
다들 그리 생각할 무렵 안지훈이 자문자답했다.
“아뇨, 말도 안 되죠. 축구 선수라면 자신이 득점할 기회가 생겼다면 차야 합니다. 공을 차지 않는 축구. 이건 말이 안 되잖습니까?”
인터뷰에 모두가 탄성을 자아냈다.
“아!”
그 탄성은 소설 속 모두가 아닌 판타지스타를 읽던 칠리아노 보스의 입에서도 흘러나왔다.
방금 전까지 안지훈이 실제로 월드컵에서 그래 버린다면 암살령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축구를 좋아한다고 자처하면서 자신이 그걸 망가뜨리려고 했던 건과 다름없었으니까.
거기서 칠리아노 보스가 말했다.
“흠, 그래. 축구 선수라면 득점할 기회가 있으면 해야지. 허, 이거 안 선수가 직접 말해서 적은 건가? 아니면 리라는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대사인가?”
인터뷰 장면에서 감탄을 마지않던 칠리아노 보스의 손은 더 이상 원고를 넘기질 못했다.
자신도 모르게 쑥스러우면서도 주인공 안지훈에게 감정이입하며 전율을 느꼈기에.
칠리아노 보스가 판타지스타의 원고를 읽는 건 거기서 멈췄다. 그러곤 갑자기 서재에 있던 전화기를 들어올렸다.
“어, 그리프 구단주 연결 좀 해봐.”
“예, 보스.”
얼마 있지 않아 칠리아노 보스의 전화를 그리프 구단주가 받았다.
“오, 보스. 무슨 일이십니까?”
“구단주, 내 부탁 하나만 하세.”
“예? 무슨 부탁이십니까? 또 보고 싶은 선수라도 생기신 겁니까?”
보통 자신에게 칠리아노 보스가 부탁할 땐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그리프 구단에 있는 축구 선수 중 마음에 드는 이와 함께 식사 자리 한 번 마련해 달란 것.
보통 이런 자리를 마련해도 정말 팬심으로 만나고 깔끔하게 헤어졌기에 종종 들어주곤 했다.
게다가 이탈리아 내에서 칠리아노 마피아 조직과 앙금이 쌓여 봐야 좋을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좀 다른 부탁이었다.
“자네 구단에 미스터 안이라고 있지 않은가?”
“코리아 선수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리프 구단주 입장에선 꽤나 의외였다.
칠리아노 보스가 이탈리안 선수가 아닌 타국의 선수에게 관심을 보이다니.
심지어 코리아라는 먼 아시아 국가의 조그만 땅에서 온 선수를 말이다.
“그 선수는 왜요?”
“듣기로 그 선수를 유로파 출전 선수에서 제명했다더군?”
“아무래도 이탈리아 출신 선수들 위주로 내보내는 게 좋으니까요.”
평소 그리프 구단주의 행실을 보면 칠리아노 보스는 충분히 그럴 인물이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칠리아노 보스의 머릿속에는 안지훈이 박혀 버렸다.
과연 이준경 작가가 쓴 판타지스타란 소설에서처럼 안지훈이 잘 뛸 수 있을 지가 궁금했다.
“실력이 뛰어나다던데, 그냥 출전시키지?”
“예? 아무리 보스라도 그건 좀…….”
구단의 모든 결정.
그건 오로지 구단주만이 내릴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 없는 일.
그건 축구팬인 칠리아노 보스조차 모르지 않았다.
심지어 구단 하나를 지원하면서 구단주 못지않은 영향력까지 지닌 그였으니 더더욱 모를 수가 없었다.
한데 자신에게 한 선수를 유로파에 출전시키라고 이야기하다니.
심지어 한국인 선수를 말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
칠리아노 보스는 공짜로 해달란 게 아니라며 이야기했다.
“어차피 그 선수 보스만 룰로 겨울쯤 자유 이적이 가능하지? 내가 데려가면서 안 내도 되는 이적료 빵빵하게 넣어주겠네. 어때?”
“예? 안데르로 데려가시게요?”
칠리아노 보스가 돈을 대주는 곳 중 안데르란 팀이 있었다.
2003년까지 이탈리아내 4위 팀으로 있다가 2004년부터 승승장구하며 1위 팀인 밀라노와 견줄 정도로 성장할 팀이었다.
소설에서 본 안지훈이나 자신과 친한 이탈리아 선수들의 호평을 감안하면 안데르로 데려가도 나쁘지 않다고 여긴 칠리아노 보스.
맞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데려가고 싶어졌어.”
“그럴 바에 차라리 괜찮은 이탈리아 선수를 데려가지 그러십니까?”
최고라 자부할 수 있는 선수까진 아니어도 칠리아노 보스라면 그 밑 수준의 선수 정돈 내어줄 수 있었다.
어쨌거나 이탈리아 내에서 칠리아노 보스에게 도움이 되면 돌아오는 게 컸으니까.
하지만 칠리아노 보스는 안지훈이 아니면 안 된단 걸 다른 말로 의사를 내비췄다.
“득점율이 높은 공격수들을 내놓으라고 하면 내줄 건가?”
“그, 그건 좀…….”
뻔히 안 되는 걸 알면서 내뱉은 말에 그리프 구단주가 당황했다.
그 반응에 칠리아노 보스가 피식 웃었다.
“미스터 안이면 되네. 그리고 어차피 내가 데려갈 선수이니 유로파에서 활약하는 걸 보고 싶어서 그러네. 만약 그가 활약하지 못하면 자넨 비싼 값에 필요도 없는 선수 팔아서 좋고, 활약한다면 자네 구단의 위상이 올라가니 좋은 게 아닌가?”
“흠, 좋습니다. 솔직히 전 그 코리아 선수가 그렇게 잘한다고는 안 보고 있는데, 보스가 그렇게까지 나온다면 해드리죠. 대신 이적료는 꽤 비싸게 부를 겁니다.”
“걱정 말게. 내 충분히 챙겨주겠네.”
“알겠습니다.”
“그럼 끊겠네.”
“예, 나중에 식사나 한 번 하시죠.”
“그래.”
그렇게 칠리아노 보스는 그리프 구단주와의 통화를 마쳤다.
판타지스타 번역본에 적힌 안지훈의 이름을 검지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어디 한 번 소설만큼 잘하는지 보자고. 만약 이 소설처럼 안 된다면 둘 다 목숨을 내놓아야 할 거야.”
자신이 꽤 큰돈을 쓰게 만든 두 한국인에게 홀로 경고하는 칠리아노 보스.
그는 몰랐다.
나중에 이준경 작가로부터 받은 원고가 세부 내용은 다르나 월드컵의 문어 프리보다도 뛰어난 노스트라다무스가 될 걸란 걸. 또한 2004년부터 최강의 팀으로 군림하게 될 안데르의 상승세가 일 년이 앞당겨졌단 걸.
* * *
“후, 드디어 집이구나.”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집에 들어오기 무섭게 침대에 누웠다.
침대까지 이동하며 옷을 한 꺼풀씩 싹 다 벗으며.
오늘은 여독이나 풀잔 생각으로 누웠을 때였다.
띵동.
“응? 누구야?”
일어나기 귀찮은데.
딱히 생각해 봐도 올 사람이 없었다.
굳이 우리 집에 방문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면…….
“설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무슨 요일이더라?”
정신없는 여행 끝에 피곤해서 날짜 감각조차 무르다.
침대 옆 서랍장에 올려둔 휴대폰을 가져와 날짜를 확인했다.
“아, 토요일구나.”
주말이다.
설아가 항상 내게 글을 배우겠다며 오던 날.
하지만 오늘은 좀 쉬고 싶었다.
설아에게 전화를 걸까 했더니 녀석이 먼저 걸었다.
또로롱.
“응, 설아야.”
“싸부, 오늘도 집에 없어요?”
“어, 그게…….”
집에 없다고 하면 그냥 좋게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왠지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서 뭐라고 해야 하나 고민할 찰나.
강설아가 재빠르게 눈치챘다.
“에이, 있으시네. 왜 안 열어줘요!”
이미 알아차린 상태에서 거짓말해 봐야 좋을 게 없었다.
아무리 어려도 여자는 여자.
여자의 눈치는 무시하지 못했다.
결국 지금 집에 있단 사실을 밝히고 정공법으로 나갔다.
“오늘 이탈리아에서 돌아와 가지고 좀 피곤한데, 내일 오면 안 될까?”
“에에, 그래요?”
“응.”
“알았어요. 저도 유럽 다녀온 날은 피곤했으니 이해해 드려야죠.”
생각보다 날 잘 이해해 주며 돌아가겠다는 강설아.
근데 어처구니가 없다.
아직 초등학생인 주제에 유럽을 다녀온 여독에 대해 이야기하다니.
아무리 잘난 집 자식이라지만 기가 찼다.
“야, 넌 초등학생이 유럽 여행도 다녀왔냐?”
“그냥 엄마가 외국어도 배울 겸 경험 삼아 자주 다니라고 보내주거든요.”
정말 저 집은 얼마나 버는 건지.
초등학생 아이를 유학도 아니고 여행으로 외국어가 트이도록 만들다니.
혹시나 해서 난 이탈리아어도 가능한지 물었다.
“그럼 이탈리아어도 할 줄 아냐?”
질문하기 무섭게 강설아의 입에서 알아듣지 못할 외계어가 튀어나왔다.
“ArrivederLa, Ti vedo domani.”
“응? 뭐라고?”
“안녕히 계세요, 내일 보자구요.”
아마도 방금 내뱉은 외계어가 그런 뜻을 지닌 이탈리아어였나 보다.
어쨌거나 곱게 가고 내일 온단다.
하여간 애치곤 성숙하다.
보통 애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직성이 풀렸는데, 설아는 전혀 떼도 쓰지 않고 날 배려해서 돌아간다고 했으니까.
“어, 그래. 조심히 가.”
가라고 하기 무섭게 갑자기 설아가 훅 치고 들어왔다.
“저 이탈리아어 잘하니까 나중에 가게 되면 같이 가요!”
같이 이탈리아 여행을 가자는 설아에게 난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고 했다.
“너랑 둘이 이탈리아 가면 너희 부모님한테 고소당할걸.”
어린 딸을 데리고 간다면 부모 입장에서 당연히 걱정할 거라고 생각해서 내뱉은 말인데, 이걸 설아가 참 19금마냥 해석했다.
“에, 도대체 저한테 뭘 하실 생각이기에…….”
아주 꼬맹이 주제에 야설 작가로서의 싹을 보이려고 하니 어이가 없다며 돌려보냈다.
“꼬맹아, 됐고. 내일 보자.”
“에엣, 꼬맹이 아닌데!”
“꼬맹이거든. 그럼 끊는다.”
“알겠어요, 싸부! 낼 봬요!”
“그래.”
그렇게 설아와 통화를 마치고 휴대폰을 다시 서랍장에 올려놓으려는데 또 전화가 왔다.
또로롱.
“으아, 뭐지? 설아인가?”
다행이 날 귀찮게 생각은 아니었는지 설아가 아니다.
휴대폰 액정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