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50)
00150 걸어다니는 결정체 =========================================================================
귀국길에 오른 유지웅 부부는 곧바로 분석에 들어갔다. 주제는 퍼플 결정체를 어떡하면 사용할 수 있을까였다.
“분명히 변수가 있어. 하나하나 생각해보자.”
“히카리 때와 스크리너 때, 뭐가 같고 뭐가 달랐지?”
“절체절명의 순간? 근데 그건 너무 추상적이야.”
“아, 진짜 답답하네. 어디다 물어볼 수도 없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정효주가 무릎을 탁 쳤다.
“보호막! 보호막이 걸려 있었어!”
“그게 왜?”
“퍼플 결정체가 둘로 나뉘어서 너랑 나랑 반씩 가진 거잖아?”
“그렇지. 아! 설마?”
“따로 떨어져 있을 땐 반응 없다가, 보호막이 걸린 상태에서는 서로 이어져서 사용 가능한 건 아닐까?”
“근데 보호막은 레이드 내내 걸려 있잖아. 왜 하필 위급한 순간에만 그런 거지?”
“위기에 몰리면 사람이 잠재력이 막 나온다잖아? 그거랑 비슷한 게 아닐까?”
“시험해볼까?”
둘은 곧바로 V-23을 타고 사람이 없는 바다로 갔다. 유지웅은 그녀에게 보호막을 걸었다. 잔뜩 긴장한 채 그녀는 수평선에 대고 손을 뻗어 보았다.
“하앗!”
우렁찬 기합을 터트려 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머쓱한 얼굴로 돌아봤다. 유지웅도 조금 민망했다.
“이게 아닌가?”
“지, 지웅아! 새똥!”
“뭐?”
유지웅은 놀라서 위를 쳐다봤다. 뭔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새똥이라는 것을 깨닫기에는 너무 시간이 걸렸다. 놀란 정효주가 그보다 더 빠르게 반응했다. 그녀는 남편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새똥을 막기 위해 튕겨지듯이 달려갔다.
번쩍!
순간 붉은 섬광이 단숨에 허공을 그었다.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던 새똥이 순식간에 증발해 날아갔다.
“…….”
“…….”
유지웅은 저도 모르게 딸꾹질을 했다. 방금 보호막도 안 걸려 있었다. 만약 광선의 방향이 조금만 아래로 틀어졌으면, 그녀는 꼼짝없이 과부 신세가 되었으리라.
“미, 미안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정효주가 당황해서 머뭇거렸다. 그녀는 자신이 해놓고도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유지웅이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다시 한 번 해보자!”
“어, 어떻게?”
“나도 몰라! 하지만 네 감정 상태에 따라서 궁극 기술이 발동되고 말고 하는 거 같아! 다시 한 번 해봐! 연습하면 제어할 수 있을 거야!”
그날 둘은 바닷가가 초토화되도록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또 연습을 했다. 그래서 성과가 있었다. 몇 가지 결론도 얻었다.
먼저 보호막이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는 궁극 기술이 나가지 않는다. 어느 정도 제어에 익숙해진 뒤 일부러 보호막을 제거한 상태에서 시도해봤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반대로 보호막을 걸고 다시 시도하니까 성공했다.
“퍼플 결정체가 둘로 나뉘어서 그런가 봐. 하나로 합쳐져야만 온전히 발동되는 거야.”
“보호막이 그 계기가 되는 거고?”
“그렇지 않을까?”
아직 불안정하지만 정효주는 적어도 세 번 시도하면 한 번은 시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의식적으로 계속해서 피나는 연습을 한 덕분이었다.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체크하지 못했다. 하지만 언뜻 보기에도 쿤겐의 궁극 기술보다 더 셀 것 같았다.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 쿤겐은 S급 장비지만 그녀는 퍼플 결정체로 궁극 기술을 쓰는 거니까.
날이 저물 때까지 연습한 결과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자유자재로 궁극기를 사용할 수 있으면 레이드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블랙 몹의 다리 한 짝도 한 방에 날려버린 가공한 공격이 아니었던가?
“근데 쿤겐은 하루에 세 번밖에 못 쓰던데, 나는 왜 이렇게 많이 쓸 수 있는 거지?”
“위력 차이일 걸? 쿤겐도 약하게 발사하면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대. 근데 그러면 의미가 없으니까 괴수한테 통할 정도의 출력으로 사용하는 거래. 그렇게 쓰면 세 번이 한계고.”
“퍼플 결정체니까 쿤겐보다는 더 많이 쓸 수 있겠지? 아니면 횟수를 줄이고 위력을 더 높이던가.”
“그렇지 않을까?”
이제 남은 것은 꾸준한 연습을 통해서 실전에서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뿐이다. 세 번에 한 번 정도 성공하는 제어 수준으로는 아직 실전용이라 하기에는 멀었다.
하나가 해결되자 하나가 또 의문으로 떠올랐다.
“그럼 지웅이 네 궁극기는 뭘까?”
“그건 내일 알아보자. 오늘은 늦었어.”
둘은 다시 V-23을 타고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V-23을 갖고 있으니까 확실히 이동이 편했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둘은 다시 어제 그 바닷가로 갔다. 이번에는 유지웅 차례였다.
“그게 아니라니까! 마음을 좀 정숙하게 하고, 손끝에 모든 힘을 집중해! 신경을 뻗치란 말이야!”
“너무 추상적이야!”
“자, 이렇게 한 번 해봐.”
몇 시간을 끙끙댔지만 끝내 유지웅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 궁극기술을 사용한답시고 시도했다가 보호막만 주구장창 펼쳤을 뿐이다. 혹시나 보호막이 좀 더 단단해진 것은 아닐까 추정도 해봤지만, 겉보기에는 차이점이 없었다.
“저기, 혹시 말이야.”
“뭔데? 짚이는 거 있니?”
“난 그냥 저장 탱크 같은 거 아닐까? 운영체제 안 깔린 대용량 HDD 보관소 같은 거. 효주 너는 윈도우 세븐 깔린 SSD 같은 거고.”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다시 한 번 해봐.”
“안 된단 말이야!”
“의지가 부족해서 그래!”
“의지만으로는 안 되는 것도 있어!”
정효주는 어떻게든 남편의 잠재력을 끄집어내서 강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에 닦달을 하고 달래도 보면서 연습을 시켰다. 그러나 날이 저물도록 끝내 아무 성과도 없었다. 이쯤 되자 그녀도 아까 그가 농담처럼 말했던 가설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말 그런 걸까? 너는 쓰지 못하고 걍 결정체 반쪽을 보관만 하는 저장 탱크 같은 걸까?”
“맞는 거 같아. 보호막을 걸어주면 둘로 나뉜 결정체가 순간적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당연히 정효주에게 보호막을 건 상태에서 그가 궁극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지 시험해본 것이다. 물론 아무 반응도 일어나지 않고 시간만 허비했다.
“혹시 네가 딜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탱커도 일단 딜 능력은 있잖아.”
“어, 그럼 나는 보호막 쪽으로 능력이 발휘되는 걸까?”
“근데 이걸 어떻게 시험하지?”
일단 정효주 쪽은 어느 정도 결론을 냈다. 보호막이 걸린 상태에서 퍼플 결정체의 힘을 사용할 수 있고, 쿤겐의 궁극기를 넘어선 가공한 광선 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유지웅 쪽은 아직 아무 것도 알아낸 게 없었다. 단순히 저장 탱크 역할만 하는 건지, 아니면 딜링 능력이 없어서 퍼플 결정체가 반응하지 않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보호막 쪽으로 궁극 기술이 발휘되는 건지 말이다.
“S급 강화 장비로는 광역 보호막을 쓸 수 있었는데. 퍼플 결정체로도 당연히 뭔가 가능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내 말이.”
둘은 열심히 고민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바닷가에 나가서 피나는 연습을 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브라우니가 블루 결정체를 낼름 먹어버린 문제 해결이 얼추 끝이 보였다. 유지웅을 대리해서 협상에 임한 법무법인 킴벌리는 결국 고소까지 가지 않고 합의하는 선에서 마무리 짓기로 했다. 물론 변호사진이 자의대로 판단한 게 아니라 유지웅의 의사를 확인하고 조율을 한 것이다.
정부는 당장 결정체 값을 물어줄 돈이 없었다. 그래서 일정한 기한을 두고 차차 갚아나가기로 했다. 그 대신 브라우니의 소유권은 임시지만 유지웅에게 귀속되었다. 일종의 양도담보가 된 셈이다.
“뭐, 안 갚으셔도 돼요. 저거 배 가르면 되니까요.”
“……반드시 갚겠습니다.”
블루 결정체가 어디 없어진 것도 아니고, 브라우니 체내에 얌전히 들어 있을 것이다. 정부가 못 갚으면 저걸 잡아서 배를 가르면 그만이다.
소유권이 임시 귀속되었다고 하지만 브라우니에 대한 책임 등등 기타 법적인 책무는 여전히 정부에게 있었다. 유지웅은 담보 목적 하에서만 소유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채무 변제를 뒤로 미룬 정부는 일단 숨을 돌렸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호시탐탐 브라우니의 배를 가를 궁리만 하고 있는 둘의 마수에서 브라우니를 지켜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빚을 갚아야 했다.
“이야, 옛날 생각나네. 내가 블루 결정체 때문에 정부에 빚 져서 쩔쩔맸었는데. 그 반대가 됐어.”
“그러게. 그때 네가 김 변호사님 선임해서 빚도 천억까지 깎았던 거 기억 나.”
“하지만 나는 한 푼도 안 깎아주지. 아, 좀 안 되긴 했네. 깎아줄 걸 그랬나?”
그렇게 중얼거리던 유지웅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저렇게 위험한 걸 때려잡지 않고 자꾸 키우려고 하니까 그 책임은 져야지. 우리가 진작 저거 잡자고 몇 번이나 말을 했어.”
그가 노려보자 자기를 탓하는 건 아는지 브라우니는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생긴 건 독수리처럼 생긴 녀석이 하는 짓은 완전히 강아지였다. 저거 대체 종이 뭐야?
“일단 조련 의뢰는 받았으니까 길들이기는 해야겠지.”
둘은 어떻게 저것을 길들일까 궁리했다. 하지만 딱히 좋은 방법이 생각 안 났다. 정효주가 말했다.
“그냥 잡아버리는 게 좋을 텐데.”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브라우니가 쪼르르 달려와서 배를 까뒤집고 뒹굴었다.
사육에 관한 아이디어를 낸 것은 관리책임부서였다.
“일단 레이드에 데리고 가보는 게 어떨까요?”
“레이드요? 또 먹으면 어떡해요? 블루 결정체 디게 비싼데, 그거 갚을 돈 있어요?”
“저렴한 레이드를 하는 거죠. 옐로 몹 레이드에 데려가서 레이드를 한 다음에 먹지 못하게 막는 겁니다. 먹어서는 안 된다는 걸 교육시키는 거죠.”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옐로 몹이라면 쉽게 잡을 수도 있고. 힐러도, 딜러도 필요 없었다. 정효주가 혼자 딜하면 그만이다. 퍼플 결정체가 있으니, 조금 과장해서 옐로 몹쯤은 이제 한 방에 보낼 수도 있으리라.
둘은 바로 브라우니를 끌고 레이드에 나섰다.
“야, 꼭 사냥개 새끼 데리고 사냥 가는 기분이네.”
“그러게. 사냥감 냉큼 잡아먹기만 해봐.”
“그럼 맞아야지.”
그렇게 두 명의 대원과 한 마리 팻을 거느린 전무후무한 소규모 공격대가 결성되었다.
“브라우니! 물어!”
막상 레이드를 시작했지만 정효주는 나서지 않았다. 탱킹보다는 브라우니를 통제하는데 주력했다. 브라우니는 말귀를 알아듣는 것처럼 열심히 그녀가 시키는 대로 했다. 마치 토끼를 눈앞에 둔 사냥개처럼 옐로 몹을 마음대로 요리했다.
코뿔소 형태를 한 옐로 몹은 브라우니 앞에서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했다. 그저 놀라서 도망치기 바빴다. 브라우니는 놀리기라도 하듯이 이리저리 재빠르게 뛰면서 앞을 막아섰다. 덕분에 옐로 몹은 멀리 달아나지도 못하고, 자꾸 같은 반경만 맴돌아야 했다.
“꼭 초식 동물 같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해. 옐로 몹은 초식 동물, 레드 몹은 육식 동물.”
“어, 그러고 보니 옐로 몹은 비선공이잖아? 와, 어쩜 그렇게 딱 맞아떨어지지?”
“그럼 블랙 몹은 뭘까?”
“육식 동물 중에서도 좀 쎈 거 있잖아. 레드 몹이 여우같은 거면 블랙 몹은 사자 같은 거. 딱 맞아떨어지네.”
“아, 잡았다!”
마침내 브라우니가 옐로 몹을 물어서 죽여 버렸다. 정효주가 얼른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먹지 마! 먹지 말라고! 안 돼! 아! 저거 또 먹었어!”
브라우니는 벌써 네 번이나 괴수 사체를 먹어치웠다. 아무리 먹지 말라고 악을 쓰고 혼을 내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척을 하는 건지 식탐을 못 이기는 건지, 아무튼 자꾸만 먹어치웠다.
무려 여섯 번째가 돼서야 브라우니는 먹지 말라고 할 때는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그때부터는 괴수 사체를 먹지 않고 얌전히 기다렸다. 처음으로 사육의 성과가 나타난 것이다.
============================ 작품 후기 ============================
이름을 티버로 할 걸 그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