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278)
00278 회장의 일상 =========================================================================
회견에 초청 받은 기자들은 한껏 궁금증을 품은 채 수군거리며 기다렸다.
“김 기자, 뭐 들은 거 없나? 오늘 뭐 때문에 기자들을 이리 불렀는지 말이야.”
“없어. 나도 답답하다고.”
“그나저나 신기한 일일세. 일개 정공이 기자회견을 하는 일도 다 있고.”
“말이야 바른 말을 해야지, 제니스가 무슨 일개 정공인가? 거의 그룹이지, 그룹. 듣기로는 일성그룹도 제니스한테는 꼼짝도 못한다고 하던데.”
“에이, 아무리 그래도 설마 그 정도일라고.”
“이 사람 안 되겠는데? 세상 보는 눈이 그렇게 없어서야 기자 노릇 해먹고 살겠나?”
그렇게 수군거리는 와중에 마침내 발표자가 단상에 섰다. 제니스 공격대장의 대변인 역할을 수행하는 비서실장이었다. 일부 기자들은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젊네.”
“제니스 회장이 젊으니까, 나이 많은 사람보다는 젊은이들을 더 가까이 둔다고 하더라고. 자문단도 50세가 넘는 교수진은 거의 없다고 하던데.”
“그래도 비서실장치고는 너무 젊은데.”
기자들이 뭐라고 수군거리든 간에 목청을 가다듬은 비서실장은 발표문을 들고 읽어갔다.
“국민 여러분이 성원을 갖고 지켜봐주신 덕에 세종시에 건설 중인 제니스 연구단지 완공이 내년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에 저희 제니스에서는 중대한 사실 하나를 공개하고자 합니다.”
대외적으로 제니스의 위치는 참으로 미묘하고 복잡하다.
일단 제니스는 정규 공격대다. 괴수를 사냥해서 결정체를 팔아 수익을 창출하는 프리랜서들의 연합이다. 하지만 유지웅을 구심점으로 강력한 유대관계를 갖고 있으며, 그 아래 여러 다양한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국내 대부분의 레이더를 대상으로 한 보험재단을 갖고 있으며, 효웅산업의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향후 수십 조 원의 자본이 투입될 결정체 연구단지도 있다. 괜히 사람들이 유지웅을 제니스 회장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제니스는 글로벌 대기업처럼 취급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 대변인은 어디까지나 ‘제니스’라고만 자칭한다. 제니스 공격대라고도 하지 않고, 제니스 그룹이라고도 칭하지 않는다.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놓고 세간에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했다.
“현재 제니스는 결정도 10만을 초과하는,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퍼플 결정체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퍼플 결정체는 블루 결정체의 상위 등급의 결정체이며, 이를 연구해서 얻을 수 있는 성과는 다음 세기의 과학기술을 선도할 수 있을 거라고 감히 자부합니다. 세종시에 짓는 결정체 연구단지는 그 연구 프로젝트를 위한 기초 인프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순간 작게 이어지던 웅성거림이 딱 멈췄다. 기자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한 거지? 퍼플 결정체?
“뭐야? 퍼플 결정체?”
“그게 뭐야? 자네, 들은 거 있어?”
“아니?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퍼플 결정체? 그게 대체 뭐지?”
“지금 블루 결정체 상위 등급이라고 하지 않았나? 가만, 결정도가 십만이라면 대체 감정가가 얼마라는 거야? 10조 원?”
“세계에서 딱 하나뿐이라고?”
여기 모인 기자들은 나름대로 세상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지식인들이었다. 특히 결정체 분야라면 웬만한 전문가 뺨치는 수준의 식견을 자랑했다.
블루 결정체의 상위 등급 결정체.
결정도 십만 이상.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물건.
그리고 세종시 연구단지는 오로지 그것을 연구하기 위해서 지었다는 것.
그 사실들이 모이고 모여 무엇을 뜻하는지, 스스로 깨닫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 이는 이 자리에는 거의 없었다.
패닉과 혼란은 잠시였다. 금세 회견장이 달아올랐다. 잔뜩 흥분한 기자들의 질문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퍼플 결정체란 무엇입니까?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세상에서 단 하나뿐이라는 게 진실입니까?”
“혹시 빌클런 대통령이 방한한 것은 이것과 관련이 없는 겁니까! 우리 정부는 이 일을 알고 있습니까!”
폭탄을 떨어뜨린 것처럼 소란스러워졌다. 경호원들이 나서서 수습을 해보려 했지만 성난 들소떼와도 같은 기자들의 질문은 거침이 없었다. 끊어지지를 않았다.
“진정해 주십시오! 진정해 주십시오!”
비서실장이 아무리 목이 터져라 외쳐보았지만 기자들은 멈출 줄을 몰랐다. 멱살을 잡아서라도 대답을 얻어낼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비서실장은 오죽하면 공포까지 느꼈다.
겨우 장내 분위기가 진정되었다. 비서실장은 떨리는 손으로 발표문을 집어 들었다. 망할, 아직 본론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회장이 왜 직접 안 나오고 자기를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
“제니스 연구단지는 모든 결정체 관련 연구를 취급할 것이지만, 특히 이 퍼플 결정체를 중심으로 한 연구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운영될 것입니다. 이에 따라 연구에 필요한 우수한 인력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일 것임을 발표합니다. 그러므로…….”
발표문을 읽어 내려가던 비서실장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마지막에 추가된 이 문장은 뭐지? 어제 저녁에 검토할 때만 해도 없었는데? 설마 오늘 아침에 추가된 건가?
그는 슬며시 눈을 들어 장내 분위기를 살폈다. 백여 쌍이 넘어가는 눈동자가 자신의 말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만 끝나면 마음껏 휘저어주겠다는 각오가 확연했다.
……이건 도저히 발표문에 어울릴 문구가 아니다. 기껏 비서실에서 초안을 만들었는데, 회장이 마지막에 손을 댄 게 틀림없다. 그렇다고 즉흥적으로 수정하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빨리 발표를 끝내야 했다.
“평범한 두뇌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주인, 미래인, 초능력자 뺨칠 정도의 우수한 두뇌를 가진 석학들은 제니스로 와주십시오. 이상입니다.”
* * *
퍼플 결정체의 공표는 중국 사태를 단숨에 잊히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그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그 많은 돈을 들여서 연구단지를 만든 게 퍼플 결정체 하나 때문이라는 거야?”
“말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을까? 뭐 겸사겸사 다른 분야 연구도 하겠지만 일단은 퍼플 결정체 연구를 위한 인프라라고 확실하게 못을 박았잖아.”
“대체 그 퍼플 결정체라는 게 뭔데? 그만한 가치가 있어? 수십 조 원이나 쏟아 부어서 연구단지를 설립할 정도로?”
“너 같은 사람들 때문에 과거 나루호 발사가 몇 번이나 실패했던 거야.”
그렇게 친구를 나무란 대학생은 혀를 차면서 설명했다.
“미국이 왜 지금도 최강대국으로 남아있는지 알아?”
“레이드 산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라서 그런 거 아니야? 일단 레이더 대우도 좋고, 정공 활동도 활발하고…….”
“그거야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단순한 생각이지. 다른 나라들이 결정체가 대체 석유라며 환장해서 쓰기 바쁠 때부터 미국은 착실하게 미래를 준비했어. 엄청난 돈을 들여서 결정체를 연구했지.”
“그래서?”
“결정도 감정장비가 퀼캄 회사 독점인 거 알지? 한 번 감정할 때마다 퀼캄에 수수료로 5,000달러를 내는 거 알고 있어?”
“……그렇게 많이 내?”
“그래. 나라를 막론하고 정품 감정장비를 쓰는 곳이라면 퀼캄에 수수료로 5,000달러씩을 내야 돼. 프랑스도, 영국도, 중국도 예외는 아니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고. 전 세계에서 하루에 획득되는 결정체가 몇 개인데, 견수마다 5,000달러를 받는다면 대체 얼마나 될까?”
그제야 처음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던 친구는 좀 질린 표정이 되었다.
“그런 결정도 감정장비가 하루아침에 뚝 떨어졌겠어? 아니야. 총력을 기울여서 연구한 성과라고. 근데 그게 다가 아니야. 결정체가 사용되는 분야라면 군수와 민수를 막론하고 미국의 기초과학 기술이 핵심을 짜고 있어. 하다못해 결정체를 효율적으로 가공하고 정제하는 기술, 결정체를 내연 기관으로 사용하는 자동차 엔진 기술 같은 것도 전부 미국의 입김이 닿아 있다고.”
“와, 그 정도야?”
“결정체 가공이나 사용에 관한 원천 기술의 대부분은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고 보면 돼. 그게 미국이 최강대국으로 남아 있는 이유라고.”
미국은 결정체를 ‘팔아서’ 수익을 창출하는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은 양의 결정체를 수입하는 국가다. 그것은 생산량이 적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소비량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결정체는 이른바 신세대 유전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남들이 유전을 퍼내서 쓰는데 취해 있을 동안, 미국은 어떡하면 유전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데 더욱 주력을 가했다. 공격대 활성화도 소홀히 하지 않았지만, 남들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부분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일반인들이 잘 몰랐던 그런 배경들을 다룬 기사들이 쉬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 제니스가 또 한 번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제니스! 미국과 퍼플 결정체 공동 연구에 합의!」
「미국 최고의 연구진, 속속들이 방한 중!」
미국은 그린 결정체와 블루 결정체를 발 빠르게 연구해서 한 세대의 패권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다음 세대 패권의 향방을 결정한 퍼플 결정체가 제니스의 손안에 있다. 그런데 미국이 여기까지 손을 뻗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국민들은 다급해졌다.
「왜 제니스는 그런 중요한 연구를 미국과 나누려고 하는 건가?」
「정부는 대체 무엇 하고 있나?」
국민들의 비난이 빗발치자 정부도 난감해졌다. 사전에 언질을 받은 덕에, 정부는 미국의 공동연구가 민주당을 위한 선물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이른바 쇼였다. 하지만 대중에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발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국민들을 달래자니 미국의 눈치가 보이고,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있자니 국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어렵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정작 이 사태를 불러온 당사자는 ‘알아서 하세요.’라며 외면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세상이 시끌시끌해진 무렵 유지웅은 의외의 방문을 받았다.
“닥터 가렌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먼 길을 마다않고 미국에서 손수 찾아온, 장년의 백인 과학자였다. 결정체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권위자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탐이 나긴 했지만, 미국 정부의 주시를 받는 주요 인사라는 설명에는 조금 떨떠름해졌다.
“퍼플 결정체 연구에 우수한 인력이라면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보안 서약을 하셔야 합니다.”
인력을 받아들이는 것은 국적을 불문한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나라와 연구결과를 나누겠다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엄격한 보안 서약 및 체계적인 보안 관리를 받아야 한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 이력을 보아하니 가렌 박사님은 미 정부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취급을 받는 과학자시군요. 박사님의 인품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제 입장에서는 미 정부와의 알력 관계도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조국을 버리라는 겁니까?”
“……그런 뜻이 아니에요. 퍼플 결정체 연구에 참여한다면, 완전히 한 배를 타셔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국적은 따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 사람이냐 아니냐는 철저하게 차별합니다. 그 점을 각오하신 건가요?”
가렌 박사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백발이 섞인 금색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윽고 깊은 한숨을 쉬고, 그가 입을 열었다.
“제 과학자의 인생을 건 마지막 연구 테마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오래 전에 사망한 휘버 박사라는 과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감히 결정체학의 대부 소리를 들어도 부족할 게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연구를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했으며, 모든 관련 자료는 소실되었습니다. 제 마지막 꿈은 그 연구 자료를 복원하는 것입니다.”
“그런가요?”
“저는 퍼플 결정체가 그 최후의 희망을 붙잡을 단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그 연구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노년을 앞둔 과학자의 눈은 패기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그 연구 결과를 어느 나라가 차지하느냐는 이미 관심 밖입니다. 저는 오직 데머샤, 결정체 융합 촉매제를 복원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 작품 후기 ============================
술빨고 썼습니다.
승급했거든요. 은장 4티어임.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