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277)
00277 회장의 일상 =========================================================================
유지웅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무슨 말씀이시죠?”
“퍼플 결정체를 안 미국이 쉬이 수락하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공동 연구쯤은 요구사항으로 내걸겠죠. 만약 그렇게 나온다면 어떡하실 건가요?”
“거절할 건데요.”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유지웅은 말을 잘랐다.
“이 좋은 걸 나 혼자 독점해야지, 뭐 하러 남하고 나눠요?”
이 사람은 날이 갈수록 표현이 좀 더 직접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맞는 말이다. 좋은 것은 남과 나누지 않는 법. 나눌 필요가 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독점 의사가 너무 완강한 게 한편으로는 마음에 걸렸다.
“저, 그럼 우리 정부와 협조 관계는 어떻게…….”
“협조요? 그럴 생각 없는데요.”
“하지만 대단히 중대한 프로젝트입니다. 사기업의 힘만으로는 힘에 부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니…….”
“충분히 넘치고도 남는데요. 혼자 할 거예요. 그러려고 연구단지도 만든 거니까요.”
한 번 떠봤는데 역시 안 먹힌다. 강우석은 아쉬웠다. 그래도 혹시나 국가가 곁다리 걸칠 수는 없을까 했는데.
그가 이곳까지 찾아온 목표는 하나다. 퍼플 결정체 연구가 외국에 흘러가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일단 유지웅의 명확한 의사를 확인해서 마음이 놓였다. 하기야 물건의 주인이 가장 그 물건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법이니.
“사실 미국에 먼저 공개한 것 때문에 공동 연구를 생각하시는 건 아닌지 걱정했었습니다. 이 나라 정치가로서 그런 중대한 보물이 해외로 나가는 건 원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니 정말 다행입니다.”
“물건의 가치도 못 인식하는 바보라면, 진작 퍼플 결정체를 세상에 공개했을 거예요.”
“그렇군요. 맞는 말씀입니다.”
눈앞의 청년이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어떻게 된 게 하는 것마다 전부 풍파를 불러온다. 일본에 있는 약탈 문화재를 수집하는 것만 해도 그렇다. 세간에 공개되면 어떤 식으로든 소란을 불러올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일은 없겠지. 안전지대와 퍼플 결정체가 다른 모든 것들을 짓누를 테니까.
“의원님께서 도와주셔야 할 게 있는데요.”
“말씀하시지요.”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행정과 법률적으로 몇 가지 걸리는 게 있다고 하더군요. 대단한 건 아니고 허가나 절차상 번거로운 게 있나 봐요. 그 문제를 손봐주시면 좋겠어요.”
“이래 봬도 정치가입니다. 로비 없이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에이, 취미로 정치하시는 거 다 아는데 로비가 필요해요? 사모님이 미국에서 100대 부자라고 들었는데.”
로비 운운한 것은 당연히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강우석은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행정절차 같은 건 제가 손봐드리지요.”
퍼플 결정체 연구를 자국민이 독점한다.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강우석은 홀가분해졌다.
* * *
혼란스러운 중국을 향한 외교 공작이 한창이었으나 이미 백악관은 중국이 관심 밖이었다. 빌클런은 귀국도 미룬 채 원격 화상으로 어떡하면 퍼플 결정체 공동 연구를 할 수 있을지 방법을 짜내는데 골몰했다.
특히 결정체 관련 미국 내 최고 과학자인 가렌 박사가 당장 한국으로 오겠다는 걸 말리느라고 많은 이들이 고생했다고 한다. 그는 다음 세기 과학기술을 좌지우지할 프로젝트라며, 반드시 미국에 이 연구에 참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연구를 가지는 나라가 다음 세기를 선도할 겁니다. 여기서 뒤쳐지면 미국의 미래는 없습니다.”
다른 이도 아닌 미국 제일의 과학자가 한 말이다. 백악관 참모진은 심각하게 방법을 의논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조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유지웅이 과연 마음에 들어할지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다.
루딘은 오히려 거래 자체가 성립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비관적인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무슨 소린가? 어떤 조건을 제시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니? 우리가 할 일은 제니스 회장이 공동 연구를 받아들일 만한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 아닌가?」
「장관님, 제니스 회장은 욕심이 많은 인물입니다. 블루 결정체처럼 흔한 것도 아니고, 다시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퍼플 결정체 연구를 과연 남과 나누려 들까요? 우리 EIS에서 그간 수집한 그의 인물됨에 따르면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더더욱 받아들이게 만들어야지.」
「미국을 통째로 갖다 바치는 한이 있어도 그는 수락하지 않을 겁니다. 애초에 그럴 수도 없지만요.」
「그럼 루딘 국장의 생각은 대체 뭐지? 그냥 깔끔하게 여기서 접자는 말인가? 우리 미국이 다음 세기 결정체 분야에서 뒤쳐지는 걸 방관하겠다는 건가?」
「절취라도 생각하시는 겁니까?」
「필요하다면 응당 그래야지!」
논쟁이 점점 과열을 띠고 있었다. 빌클런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제지했다.
“그만두게. 격분해서 한 실수로 알겠네.”
「하지만 각하.」
“자네도 CIA를 닮아가나?”
「…….」
에너지부 장관이 다소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빌클런도 심정적으로는 공감했다. 퍼플 결정체 연구가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뒤쳐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마음 같아서는 훔쳐서라도 차지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되기에 에너지부 장관의 과격한 언사를 제지한 것이다. 그럴 리는 없지만 이 회의 내용이 도청이라도 당한다면, 그래서 유지웅에게 알려지면 큰일 난다.
표정에서 대통령의 그런 불안함을 알아차렸는지 루딘 국장이 자신 있게 말했다.
「염려하지 마시지요. 이 원격 회의는 우리 EIS가 관리하는 위성으로 주관하고 있습니다. 현재 완벽한 도청방지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어떤 말을 해도, 심지어 제니스 회장의 욕을 해도 괜찮습니다.」
“아니네.”
빌클런은 쓴웃음을 지었다. 보안 문제 때문이 아니라 일개 개인이 화를 낼까 봐 도청을 염려했다니. 어쩌다가 미국이 이렇게 되었을까.
“루딘 국장, 자네가 생각해둔 바는 있나?”
「제니스 회장은 퍼플 결정체의 핵심 연구는 절대로 남과 공유하지 않을 겁니다. 수십 조 원의 자본을 들여 연구단지를 아예 바닥부터 새로 설립한 것에서 그 의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리가 있군.”
「무의미한 일에 힘을 빼는 것보다, 이 일을 어떡하면 우리 미국에 더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실리는 챙기지 못하겠지만 명분은 얻을 수 있습니다.」
“명분? 좀 더 자세히 말해보게.”
「공동연구를 하는 척만 해도 됩니다. 대외적으로 제니스 회장이 우리 민주당을 공식 파트너로 지정했다는 상징성을 띠게 됩니다. 다음 대선의 승리 요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빌클런은 탁자를 탁 쳤다. 그런 수가 있구나.
「크리스탈 시티의 연구 자료를 제공하는 게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안전지대 설치 대가라는 것을 들먹이면 오히려 국민의 지지를 얻어낼 수도 있습니다. 미국이 연구에 참여한다고 그가 한 마디만 해주면 지지율은 급상승할 겁니다.」
실제로 공동연구에 참가하지 않았다 해도, 대중은 어차피 그런 사실까지는 알 수가 없다. 알려고 들지도 않는다. 그저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실에 믿고 흥분하고 열광할 뿐이다. 그것은 지지를 높이는 수단이 된다.
「작은 거짓말 한 마디 해주는 건 제니스 회장에게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 뒤로 회의를 거듭했지만 그 이상의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공동연구를 따내는 건 불가능했다. 루딘의 말대로 수십 조 원의 돈을 들여 단독 연구단지를 만든 것부터 남과 나누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인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음 선거에 이것을 이용하자. 이 얼마나 실리에 충실한 발상인가?
빌클런은 마침내 결정을 내렸고 유지웅을 만났다.
“안전지대 설치 조건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미국 주요 대도시 전부에 안전지대를 설치하는 조건으로 유지웅은 세 가지를 걸었다.
첫째, 괴수방위를 위해 투입되던 비용을 대신 지급하는 것. 비용은 물가 상승에 따라 당연히 상승한다.
둘째, 제니스 소속 인원에 대해서 면세, 외교관 면책 혜택, 미국 내 활동에 관한 최대의 편의 보장이었다.
셋째, 미국 내 최대의 결정체 종합연구단지인 크리스탈 시티가 축적한 모든 연구 자료를 제공하는 것. 당연히 공공연구소는 물론이고 사기업의 것도 포함한다.
“대신에 퍼플 결정체 공동 연구에 미국이 참가한다고 선언해 주십시오. 선언만 해주시면 됩니다.”
자세한 설명을 하지도 않았는데 유지웅은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알아들었다.
“알겠습니다. 아예 연방 정부 관할 연구팀 하나를 제니스 연구단지로 보내시는 건 어떤가요? 물론 연구에 참가하지는 못하지만 대외적인 위장은 될 거예요. 퍼플 결정체 공동연구는 못해도 다른 분야에서 연구 협조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보는데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빌클런은 내심 놀라워했다.
선언만 해달라. 그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대외적인 미국의 위상 상승 등 여러 가지 이익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민주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 걸 일절 설명하지도 않았는데 유지웅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안다는 듯이, 그런 요구를 할 줄 알았다는 듯이 ‘왜요?’라고 묻지도 않고 수락해주었다.
이건 둘 중 하나다. 그가 거느린 자문단이 미국이 이런 요구를 할 것이라고 이미 예상을 했거나, 아니면 그가 요구를 받은 순간 스스로 거기까지 꿰뚫어본 것.
‘아마 전자겠지.’
유지웅이 거느린 두뇌도 결코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빌클런은 가벼운 긴장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청년이 미국의 친구라는 것에 감사했다.
‘과연 미국 시민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그렇게 자문해보지만 고개만 저어진다. 유지웅은 한국어밖에 할 줄 모른다. 친척들, 친지들도 다 한국에 산다. 그런 이가 굳이 미국까지 올 필요가 있을까? 그냥 한국에 사는 게 제일 편하고 재미있을 텐데.
* * *
“대통령이 수락했네.”
“그렇습니까?”
“현실적으로 가장 유익한 대안이었지. 부국장, 좋은 조언을 해주었어.”
“우리 EIS야말로 제니스 회장의 됨됨이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으니까요. 차라리 선거에 이용하는 게 패를 버리지 않는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것으로 이번 대선은 승리하겠군.”
빌클런의 방한 목적은 애초에 미국의 이익이 아닌 민주당의 이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걸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중국 상황은 어떻지?”
“일이 꽤 재미있게 흘러갑니다.”
“호오? 무슨 의미인가?”
“일단 중국은 차후 민족별로 여러 개의 나라로 분열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 타도를 외치며 일어난 레이더들 손에 의해 새로운 민주화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심지어 제니스 회장이 중국 레이더를 해방하고 개인 지위를 높여주기 위해 개입한 거라는 말이 나돌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은 애초에 유지웅이 의도하지 않은 민주화가 진행 중이었다. 공산당은 붕괴할 것으로 보이고, 나라도 여러 갈래로 쪼개질 것이다. 근데 그게 레이더를 해방하기 위해서라는 오해가 쌓여가고 있었다. 유지웅 입장에서 볼 때는 좋은 일이다.
루딘은 왜 일이 재미있게 되어간다고 표현했는지 알아차렸다.
“정작 당사자는 이미 중국에 아무 관심도 없는데 말이지.”
“네, 정말 재미있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되어간다. 꼭 중국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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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말은 매수자가 옮기고 밤말도 매수자가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