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284)
00284 대항해 레이드 =========================================================================
브라우니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저 녀석은 제법 강하다. 좀 많이 강하다. 시시하게 사냥했던 다른 녀석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도 브라우니는 자신할 수 있었다. 저게 아무리 쎄봤자 나보다는 약해! 라고 말이다.
……물론 아주 많이 차이가 나는 건 아니고, 한 끗발 정도 뒤지는 수준? 당연히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다. 그러니까 무조건은 아니고 동등한 전투 환경에서는 말이다.
“저기 아래에 있어! 가서 잡아 와!”
“왜 그래? 물이라서 싫다는 거야? 아까는 잘만 들어가서 사냥했잖아?”
“아! 답답해! 뭐라는 거야! 말을 해, 말을!”
“저 아래 있다니까! 빨리 물속에 들어가서 잡아 오라고!”
아니, 아무리 주인이라지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저거는 나와 겨우 한 끗발 차이인데, 물속에 들어가서 싸우라고? 아무리 내가 물고기 출신이라지만, 물을 떠나 진화한 지가 언제인데 한 끗발 차이 나는 녀석과 물속에서 싸우라고?
물 밖에서, 하다못해 서로에게 동등한 조건에서 싸우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밟아줄 수 있다.
하지만 물속은 곤란하다. 물속은 저 녀석의 세상이다. 자신은 오래 전에 지느러미를 잃고 날개를 얻었다. 이 몸으로 물속에 들어가 봐야 처 발리기만 하지.
마침 암컷 주인도 이 자리에 없다. 좀 말귀를 못 알아듣는 척을 해도 맞아죽지는 않을 거다. 왜 납작 엎드려서 주인을 따르는데? 다 안 죽고 잘 살자는 뜻에서 그러는 거다. 근데 물속에 들어가서 혼자 저 녀석과 싸웠다가 무슨 험한 꼴을 겪을지 누가 보장하나?
이제 홀몸도 아닌데. 키워야 할 어린 딸아이도 있는데. 몸 사릴 때가 됐다.
* * *
어류 괴수는 단숨에 일본 선박 두 척을 침몰 직전으로 만들고 다시 바다 속으로 깊이 잠수했다. 소나가 미친 듯이 반응했다. 철판 붕괴음 때문에 바다 속이 엉망이 되어 그 거대한 개체가 어디에 있는지 잡히지도 않았다.
해면에는 배를 버리고 뛰어내린 승무원들이 지르는 아우성으로 가득했다. 침몰하지 않은 세 척의 선박에서 급히 구조 작업에 나섰다.
“젠장!”
브라우니가 꿈쩍도 하지 않으니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유지웅은 발을 동동 굴렀다.
「나왔습니다! 결정도 수치 11,500! 꽤 강력한 레드 몹입니다!」
장태준이 교신기로 급히 보고했다. 유지웅은 이번 일에 장태준을 비롯해서 다섯 명의 지원팀을 데려왔다. 레이드를 위해서가 아니라 만약 괴수와 조우할 경우 데이터를 채집하기 위해서다.
다행히 미국제 휴대용 탐지장비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괴수가 해수면 가까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제대로 결정도를 탐지한 것이다. 깊이 잠수했을 때는 당연히 물에 막혀 탐지되지 않았다.
“11,500?”
브라우니는 13,000 정도. 브라우니보다는 약하지만 꽤 강력한 개체라는 소리다. 적어도, 그러니까 블랙 몹을 빼고 지금까지 마주쳤던 ‘레드 몹’ 중에서는 제일 강력한 녀석이다.
“써, 혹시 전투 환경 때문에 브라우니가 꺼려하는 것은 아닐까요?”
“무슨 뜻이죠?”
“제가 만약 브라우니라면, 저보다 조금 약한 녀석이라 해도 저한테 불리한 환경에서는 싸우고 싶지 않을 겁니다. 물속은 새 형태를 한 브라우니보다는 물고기 형태를 하고 있는 녀석에게 더 유리한 환경이니까요.”
듣고 보니 그럴 듯 했다. 유지웅은 얼른 브라우니를 돌아보고는 물었다.
“너, 물속이라서 그러는 거야? 너한테 불리한 환경이니까?”
―끼이잉…….
“아, 뭐라는 거야! 답답해!”
효주는 말을 참 잘 알아듣던데 자신은 도저히 안 된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아니 그전에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건지 아닌지도 구별을 못하겠다.
“좋아. 그럼 가서 적당히 유인만 해. 그래야 우리 배들이 공격 받지 않을 테니까. 알았지?”
―캬아악!
말이 끝나자마자 브라우니는 패기 있게 한 곡조 뽑아 올리고는 그대로 솟구쳤다. 마지막으로 확인된 괴수가 있는 방향으로 힘차게 날아갔다. 유지웅은 다소 멍하게 바라봤다.
“저거…… 사람 말 알아듣는 거 맞죠?”
“제가 보기에는 그런 것 같습니다.”
브라우니는 물속에 들어가지는 않고 수면을 낮게 날면서 물을 파바바박 때렸다. 브라우니의 발톱이 할퀴고 지나갈 때마다 하얀 물보라가 정신없이 튀었다.
흠칫 놀란 괴수는 더 이상 선박을 공격하지 않았다. 브라우니를 강력한 천적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물러서거나 멀리 도망가지도 않았다. 오히려 물속으로 들어올 거면 들어와 보라는 듯이 일부러 수면 아래를 빠르게 지나가기도 했다.
―캬아아악! 캬아악!
녀석의 그림자가 낮게 비칠 때마다 브라우니는 금방이라도 물속에 들어갈 것처럼 달려들며 위협적인 포효를 질렀다. 하지만 발톱을 물 아래로 살짝 담그는 정도 이하로는 절대, 절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녀석도 수면 근처에 가깝게 지나갈 뿐 절대 물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두 괴수의 팽팽한 신경전이 끈기 있게 이어졌다.
일단 시간은 번 셈이다. 유지웅은 장태준에게 물었다.
“무슨 방법이 없나요?”
애초에 레이드를 하기 위해 나선 길이 아니다. 수송 물자를 실은 선박을 입항시키기 위해 인솔을 온 길이다. 브라우니가 위협적인 기운을 퍼트리면 당연히 블랙 몹이 아닌 이상 알아서 물러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는 브라우니보다 한 끗발 약한 녀석. 게다가 물속이라는 이점이 있다. 그래서 겁을 집어먹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계속 신경을 거슬리게 만든다. 이래서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한 수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나왔나 보다.
「잡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녀석이 도망간다는 보장도 없고, 저렇게 대치 중인데 다른 녀석이 추가로 습격하면 골치 아파 집니다. 차라리 지금 잡는 게 낫습니다.」
“하지만 해양 레이드는 불가능하잖아요? 방법이 있어요?”
「쿤겐이 궁극기로 녀석을 공격하면 될 것 같습니다. 헬기를 이용하면 녀석이 눈치 채기 전에 맞출 수 있을 겁니다. 죽이지는 못해도 강력한 위협을 주어 쫓을 수는 있습니다.」
“위험할 것 같은데…….”
「녀석이 수면 위 헬기를 공격할 수단은 없을 겁니다. 있다 해도 브라우니 때문에 헬기를 공격하지는 못할 거고요.」
유지웅은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그가 결정한다고 해서 다 끝나는 것은 아니다. 쿤겐의 의사가 남았다.
“하겠습니다.”
“쿤겐, 괜찮겠어요?”
“물론입니다. 세계 최초의 해양 레이드인데, 그 영예를 다른 이에게 뺏길 순 없죠.”
이런 일을 시키려고 데려온 건 아닌데. 미안해졌다. 나중에 돌아가면 잘해줘야겠다.
헬기가 준비되고 쿤겐이 탑승했다. 만약의 사태를 위해서 유지웅도 동승했다. 필요한 경우 보호막이라도 쳐주기 위해서였다.
선단 후미는 지옥이었다. 침몰 중인 일본 선박은 연료가 유폭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다른 한 척은 용골이 부러져 배가 아래로 푹 꺾인 채 표류하고 있었다. 선미 부분은 이미 가라앉았고 선수 부분도 곧 가라앉을 것으로 보였다.
일본 승무원들이 헬기를 보고는 아우성을 쳤다. 구조하기 위해서 온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다른 3척의 선박에서 구조 활동이 한창이었지만 손발이 모자랐다.
“괴수는 어디 있죠?”
“더 뒤쪽입니다. 브라우니가 잘 유인해주고 있군요.”
수면 아래에 검고 거대한 그림자가 언뜻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졌다. 마치 브라우니 보고 들어올 테면 들어와 봐라 하고 약을 올리는 것만 같았다.
조준 위치를 잡고 헬기가 호버링했다. 쿤겐은 발아래 펼쳐진 수면을 내려다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살짝 땀에 젖은 하얀 턱선이 너무 예뻐 보였다. 유지웅은 순간적으로 미안해졌다. 아,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녀가 두 손을 아래로 뻗었다. 손에서 희미한 빛이 맺히기 시작했다. 괴수는 수면층과 불과 몇 미터를 유지한 채 미끄러지듯이 유영하고 있었다. 마치 브라우니를 조롱하듯이. 지금이 기회였다.
“핫!”
날카로운 기합과 함께 하얀 섬광이 수면으로 내리꽂혔다. 순식간에 물이 증발하며 희뿌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시야가 막혀 아래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어떻게 됐나요?”
“빗나간 것 같습니다!”
유지웅은 육안 확인을 포기하고 급히 관측장비를 확인했다. 수면 아래 비치는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써. 명중률이 좋지 않아서.”
“괜찮아요. 다시 공격하면 되죠.”
S급 충전장비도 있으니 8번 정도까지는 괜찮다. 앞으로 7번은 더 쏠 수 있다. 쿤겐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궁극기는 다른 건 다 좋은데 명중률이 낮다는 게 문제였다. 아니면 그녀가 사격에 소질이 없는지도.
―끼잉, 끄응, 끼이잉…….
브라우니가 낮은 울음소리를 냈다. 아까와는 판이하게 다른 느낌을 주는 소리였다.
“왜 저러는 거죠?”
“글쎄요…….”
헬기팀은 잔뜩 경계하고 후속 공격을 준비했다. 그러나 바다 속은 잠잠했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더 이상 괴수의 그림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허공을 느리게 배회하는 브라우니가 낮고 느린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설마 도망쳤나?”
“쿤겐의 궁극기에 위협을 느끼고 도주했을지도 모릅니다. 브라우니가 물속에 들어오지 않고 공격할 수단이 있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겠군요.”
장태준이 그렇게 자기 생각을 말했다. 그 가설이 맞다면, 단순히 공격 본능에 휩싸여서 덤비는 다른 레드 몹과는 다르다는 뜻인가? 어느 정도 지능이 발달한 개체?
일단 유지웅은 헬기를 철수하고 선단을 수습했다. 한국 선박은 피해가 거의 없었다. 그가 탔던 배가 육탄 공격을 받긴 했지만 몇 개 격벽을 차단해서 항해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일본의 피해는 컸다. 가장 후미에 있던 탓인지 괴수가 마음껏 유린했던 것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보다 거대한 대형 수송선 두 척이 침몰했고 세 척이 남았다. 실종자 수만 300여 명에 달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그런 사고로 실종되었다는 것은 ‘시체를 찾지 못했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즉 사실상 사망이다.
“세 척이라도 무사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일본 선단을 책임지는 관료는 오히려 세 척을 건졌다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는 괴수가 일단 물러갔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 한 척만이라도 본국에 입항하려 했다는 것이다.
일단 선박은 급히 태평양을 가로질렀다. 유지웅은 특급 선실에 임시 수뇌부를 편성하고, 자문단과 더불어 원격 화상을 통해 바로 회의에 들어갔다.
「현대에는 탐지장비의 발달로 육지, 특히 거주구역 주변에 서식하는 레드 몹들은 어느 정도 그 숫자와 위치가 파악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바다는 그런 게 안 되죠. 너무 넓고 또 깊어서 수색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결정도가 근 일만에 달한다면 꽤 강력한 레드 몹인데요. 다른 항로에 나타난 녀석들도 그에 맞먹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됩니다.」
「일단 선단이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회장님이 직접 선단 호위를 하실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더 큰일입니다. 브라우니를 다른 인물이 통제할 수만 있어도 한결 편할 텐데요.」
한창 회의 중인데 갑자기 선원 한 명이 뛰어 들어왔다. 그의 표정은 다급함에 질려 있었다.
“회의 중에 죄송합니다! 소나에 반응이 있었습니다! 후방 30km 지점에서 거대한 반응 두 개가 추적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괴수 같습니다!”
“두 마리?”
유지웅은 벌떡 일어났다. 포기하고 도망간 게 아니라, 설마 친구를 데리러 간 건가?
============================ 작품 후기 ============================
올챙이 시절은 다 잊은 브라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