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349)
00349 우정의 이름으로 =========================================================================
남기철은 그렇게 일단락이 된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생각에 불과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유지웅이 그를 집으로 초대한 것이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차린 게 없다 해놓고 무슨 만한전석을 가득 준비해놓았다. 끝도 없이 널린 이름 모를 요리에 남기철은 위압감을 느꼈다. 그는 처음 알았다. 요리에 압도될 수도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 같았으면 요리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으리라. 하지만 그는 조금 당혹스러워하기는 했을 뿐, 크게 긴장하지는 않았다.
다만 속으로 계속 궁금했다. 며칠 전에 찾아와서 엉뚱한 걸 물어보고 1억을 사례한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무슨 일로 집까지 초대를 한 걸까?
“요리는 괜찮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아주 맛있었습니다. 대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행이네요.”
식사를 마치고 유지웅과 남기철은 서재에서 마주 앉아 커피 타임을 가졌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아. 그냥 전에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어서요.”
“네?”
남기철은 당황스러웠다. 그게 끝난 게 아니었나?
“그때 정말 좋은 이야기 들었어요. 좀 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죠.”
물론 남기철은 썰을 풀어놓으라면 얼마든지, 몇 날 며칠을, 밤새도록 풀어나갈 수 있었다. 근데 돈까지 줘놓고는, 또 불러다가 같은 질문을 하고 있으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대체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러나 싶었던 것이다. 뜬금없이 ‘다른 사람은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알아서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 걸까? 지금까지 자기 잘난 맛에 살아온 주제에 말이다.
“저, 혹시 왜 그러시는 건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아, 이유가 있긴 한데 그건 말씀 못 드려요. 지극히 개인적인 거라서요.”
흘끔 보니 정효주가 쑥스러워 하고 있었다. 뭔가 남에게 말하기 창피한 이유라도 되는 건가?
‘새삼 사회적인 평판을 신경 쓰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보면 별로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물질적인 거라면 전부 다 가졌으니, 이제 그런 쪽으로 눈이 돌아갈 때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참 바람직한 일이다. 비단 둘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남기철은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일이 틀어지는 거 아닌가?’
좋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말을 해줘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그는 곧 고개를 가로 저었다. 유지웅이 원하는 것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는 것이다. 특정한 결과 도출을 위해 의도적인 곡해를 넣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먼저…….”
그렇게 남기철은 자기 생각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유지웅을 대하면서 겪었던 일, 그로 인한 고초, 그리고 그를 대하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그의 모습을 진솔하게 말했다.
유지웅은 진지하게 경청했다. 그는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면서 표정을 찡그리기도 했고, 피식 웃기도 했으며,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기도 했다. 어느 것 하나 솔직하지 않은 반응이 없었다.
“고맙습니다. 잘 들었어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기철은 그만 돌아가려고 일어섰다. 정효주가 정문까지 배웅을 나왔다. 그녀는 저번처럼 봉투 한 장을 내밀었다.
“사모님. 이러지 않으셔도…….”
“귀중한 시간을 내주셔서 조언을 해주셨는데 당연히 정당한 보수를 드려야지요. 자문료라고 생각해주세요.”
이번에도 1억이었다. 며칠 사이에 2억이라는 공돈이 연거푸 생기자 남기철은 마음이 들떴다. 지난 몇 년 간 유지웅 때문에 했던 마음고생이 한꺼번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바쁘신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세 번째부터는 남기철도 신이 나서 왔다. 한 번 올 때마다 1억씩 생긴다. 이런 게 싫다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
다만 그는 돈에 취하는 것을 스스로 경계했다. 돈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혹은 그가 듣기 좋은 말만 하게 되는 것을 우려해 항상 고삐를 바짝 채웠다.
유지웅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은, 거짓을 담지 않은 솔직한 평가였다. 사소한 욕심 때문에 엉뚱한 거짓을 섞었다가는 그의 화를 사게 될 것이다. 그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남기철은 잘 알았다. 가족을 제외하고, 유지웅이 어떤 인물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남기철은 10억 가까운 돈을 얻었다. 국장씩이나 되는 공무원이 민간인에게 10억을 받았다면 당연히 문제가 된다. 원래 간이 작은 그는 강의료 명목으로 세금 신고를 하고 자진 납세를 했다.
그런데 일이 그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유지웅 회장님께서 요새 남 국장님한테 정책 자문을 구하신다면서?”
“어머, 그게 정말이야?”
“그렇대. 벌써 열 번 넘게 자택에 초청해서 몇 시간씩 자문을 구하신다고 하더라고. 한 번 초청하실 때마다 1억씩 자문료를 지급하신다는데?”
“와, 그게 정말이야? 그럼 남 국장님 대체 얼마를 번 거야? 10억? 근데 그거 문제 되지 않을까? 공무원이잖아?”
“문제 될 게 뭐 있어. 다 소득 신고하고 세금까지 납부했다고 하던데?”
어디서 새어나갔는지, 그가 한 번 갈 때마다 얼마씩 받는다는 것까지 부하 직원들이 알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은 편이었다.
“남 국장이 유지웅 회장과 그리 친하다면서?”
“그래? 우린 왜 몰랐지?”
“아니, 친할 수밖에 없잖나. 몇 년 동안 교섭 창구로 활동해왔는데. 소속만 공무원이지 거의 개인 비서쯤 되지 않을까?”
같은 직급 동료들이 그렇게 수군거리는 게 남기철의 귀에도 심심찮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 여기까지는 괜찮은 수준이었다.
“유지웅 회장이 남기철이를 장관으로 민다면서?”
“뭐? 아니, 남 국장 그 친구 아직 젊잖아. 연륜도 안 되는데 무슨 장관이야?”
“어차피 시간문제 아니야? 국내 레이드계나 정계나 재계나 전부 유지웅 회장이 꽉 잡고 있는데, 남기철이 하나 장관 만드는 게 뭐가 대수라고.”
“이거 남 국장 그 친구한테 잘 보여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 말이야. 그 친구, 아주 튼실한 줄을 잡았어.”
권력 구도를 놓고 상관들이 그렇게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남기철은 상관들이 자기를 놓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꽤 늦게 알았다. 아무래도 부하나 동료가 아닌, 상관들이다 보니 자신에게까지 전해지는 게 느렸던 것이다.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 하면 그것도 웃기다.
“남 국장, 내가 솔직히 말할게. 지금까지 내가 자네 잘 이끌어줬잖아. 나중에 잘 되면 그 정 잊지 말아 줘.”
평소 오래 친하게 지냈던 상관이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 남기철도 행정부에서 국장까지 빠르게 올라간 인물이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으나 곧바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달았다.
일단 황당했다. 사람들이 왜 그런 오해를 가졌는지 이해를 못해서가 아니다. 충분히 개연성 있는 오해 아닌가.
다만 그는 막상 자신이 이런 논란의 중심거리에 서게 된 것이 당혹스러웠다.
업무에 지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툭하면 장관급 인물들이 찾아와서 괜히 몇 시간씩 이야기를 하다 가기 시작했다. 정치인들, 기업 임원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왔다.
평생 중추권력과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는 어느새 한국 정치판의 뜨거운 감자가 되어 있었다. 대권을 노리거나 혹은 그에 근접한 고위 공직자들은 전부 그의 이름을 알았다. 살면서 이렇게 주목을 받을 줄 몰랐던 남기철은 뻔질나게 찾아오는 고위 공직자들에게 매일같이 시달렸다.
“저러다가 한 몇 년 뒤에 남 국장이 대권까지 노리는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유지웅 회장님이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 대통령으로 밀어 넣으려고 지금부터 준비하는 걸 수도 있어.”
“진짜 잘 보여야겠다.”
우연히 그 이야기를 듣게 된 남기철은 기절초풍할 뻔했다. 대통령이라니! 유지웅이 절대로 그런 생각은 품고 있지 않다고 그는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었다.
유지웅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은 타인이 바라보는 자신이 어떠한지를 듣고 싶어 하는 것, 오로지 그것뿐이다. 그 외의 다른 의도는 일체 없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디 그렇게 돌아가던가.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은 자신이 보는 대로 판단하고, 또 믿고 싶은 대로 믿고는 한다.
‘유지웅 회장이 남기철 국장을 매우 신뢰한다.’
‘유지웅 회장이 남기철 국장을 훗날 대권 주자로 만들려고 한다. 그 전에 먼저 결정체자원 관리부 장관으로 내세울 것이다.’
‘남기철 국장한테 잘 보여야 한다. 그래야 정치판에서 무슨 자리라도 하나 건질 수 있다.’
그렇게 진실과는 전혀 거리가 먼 엉뚱한 소문들이 나돌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유지웅은 한국에서는 이미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런 인물의 주변에 있으면 아무래도 그 광채가 옮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유지웅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서, 혹은 부담스러워서 한 번 찾아가보지도 못했던 이들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남기철을 찾아갔다. 아직 정해지지도 않은 자리를 놓고 온갖 청탁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남기철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청탁을 들어주는 것은 고사하고 청탁을 받을 번지수부터 이미 틀렸는데, 대체 이게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자신은 장차 대권에 나설 계획도 없으며, 차기 장관에 내정되었다는 것도 다 루머라고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나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모두가 그가 예의상 겸양을 떠는 거라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수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몰리고 말았다. 남기철은 출근을 할 때마다 돌덩이를 안은 심정으로 업무를 보았다.
차라리 왕따를 당하는 게 낫지, 사람들이 단단히 오해해서 어떻게 자기한테 뭐라도 안 해주나 하고 갸웃거리는 것은 당하는 입장에서는 미치고 펄쩍 뛸 일이었다.
자문료든 강의료든 아무튼 10억을 받은 것은 좋다. 문제는 10억 받고 평생직장이라 생각한 공무원을 그만두게 생겼다. 아무 것도 모르는 마누라는 남편이 다음 장관으로 내정되었다며 좋아서 친정이며 시댁이며 다 말해버린 뒤였다.
“어? 왜 이렇게 살이 빠지셨어요? 건강에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유지웅은 눈 밑에 기미가 생긴 남기철을 보고 놀랐다. 남기철은 창백한 얼굴로 조용히 응시하기만 했다. 그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게 다 당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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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말이 씨가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