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449)
00449 Unlimited Crystal Works =========================================================================
촤아악!
수면 위로 뛰어오른 피즈가 하얀 물거품을 허공에 뿌렸다. 검푸른 등이 햇살을 반사하며 빛난다. 기운차게 입수를 마친 피즈는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낑낑거렸다. 마치 자신을 봐달라는 듯이.
수면 위로 솟은 바위에 반쯤 눕듯이 앉아 있던 나미는 힐끔 피즈를 바라보았다. 손을 내밀자 피즈가 다가와서 입으로 핥는다. 남들의 눈에는 맹수가 조련사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으로 비칠지 모르나, 사실은 어미와 자식 간의 감정을 나누는 것이다.
피즈가 손을 핥는 것을 느끼며, 나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당신을 위한 선물입니다.’
볼수록 신기한 사람이다. 그런 자신감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이 약하면서.
인간 사이에서는 상당한, 아니 대단히 강한 서열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재산만으로 치면 10번째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재산은 나미 기준에서 강함의 척도가 아니다. 언제든지 잃어버릴 수도, 사라질 수도 있는 무의미한 것. 진정한 강함이란 결국 육체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지웅과 정효주는 대단한 강자였다. 의심할 것 없이 인간 세상의 최강자다. 지금은 희미해졌지만, 상어 괴수의 모습을 하던 시절 그들에게 패퇴한 과거를 기억했다.
반면 그는 어떤가? 옐로 타입 괴수 한 마리 잡을 수도 없는 약한 몸을 가졌다. 말 그대로 평범한 인간의 육신. 그런 약한 몸에 그런 당당함을 품을 수 있는 것이, 나미는 그저 신기했다. 자신의 눈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끼이잉…….
어미가 딴 생각을 하는 듯하자 피즈가 투정을 부리듯이 낑낑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제야 눈을 뜬 나미는 부드럽게 새끼를 바라보며 입가를 만져 주었다. 반쯤 감은 눈빛에는 묘한 쓸쓸함이 묻어나왔다.
“곧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바다로…….”
예전만큼 강한 확신은 서지 않는 음성이다.
* * *
제니스 공격대 제6예비대는 최후의 레드 몹을 사냥하기 위해 집결했다. 제6예비대뿐만이 아니다. 제1예비대부터 제5예비대까지 함께 모였다.
모두의 눈동자에 묘한 긴장감이 불탄다. 저마다 설렘, 흥분을 품고 장비를 단단히 쥐고 있었다. 몸을 웅크리듯이 말고 졸고 있는 거대 도마뱀을 결연한 눈빛으로 노려본다.
“드디어 저 녀석이 마지막이다.”
“……정말 길었다.”
“오늘로서 끝이다.”
제6예비대 대원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예비대 대원들도 축하한다며 소소하게 격려를 건네고 있었다.
잠깐 짚고 가자면, 최후의 레드 몹이라는 게 한반도에 남은 마지막 레드 몹이라는 소리가 아니다. 저 녀석 말고도 남아 있는 레드 몹은 많으며, 비온 뒤의 죽순처럼 또다시 생겨날 것이다.
그럼 왜 최후의 레드 몹이라고 하느냐? 바로 이런 의미다. 저 녀석이 제니스 공격대가 채무 청산을 위해서 사냥하는 마지막 레드 몹이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이 장비들은 전부 다 내 거다.”
어느 딜러가 감격한 듯이 그리 말했다. 다들 그 말에 뼈저리게 공감했다.
대원 전체가 S급 장비를 풀세팅하고 있는 공격대는 세계에서 제니스 공격대가 유일하다. 충격 수치를 줄여주는 S급 방어장비, 딜을 폭발적으로 강화시켜주는 S급 강화장비, 비거를 담아 리타이어를 방지하고 오랫동안 전투할 수 있게 해주는 S급 충전장비. 각각의 장비는 평균 5,000억을 상회한다.
힐러는 강화장비가 필요 없기에 방어장비, 충전장비 두 종류만 가지고 있다. 반면 딜러와 탱커는 세 장비 모두를 갖춘 표준 무장 상태다.
즉 탱커와 딜러는 한 명 한 명이 유지웅에게 1조 5,000억 원의 빚을 지고 있다는 소리다. 제니스 공격대 전체를 따지면 무려 330조 원에 달하는 액수다.
가장 오랫동안 레이드를 해온 제1예비대는 예비대 중에서도 제일 먼저 장비 채무를 변제했다. 다른 예비대도 비슷한 속도로 빚을 갚아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최후의 빚 5,000억만이 남은 상태. 다른 5개 예비대는 채무를 전부 상환했고, 이제 제6예비대가 마지막 남은 빚 5,000억만 상환하면 모든 채권이 소멸된다.
그런 역사적인 날이다 보니 제1예비대부터 제5예비대까지 전원이 참가한 것이다. 물론 유지웅도 공격대 대장으로서 참가했다. 정효주는 출산이 육박한 터라 그가 나오지 못하게 말렸다.
가볍게 헛기침을 한 유지웅이 앞으로 나섰다. 대원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개인당 평균 1조 5,000억, 종합 330조 원. 적지 않은 빚이었는데 갚느라고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오늘을 기해 여러분들이 보유한 장비는 모두 각자 개인이 것이 됩니다.”
빚을 이미 다 갚은 대원들은 변제 즉시 완전한 소유권을 취득했지만, 유지웅은 상징적인 의미에서 그렇게 말을 했다.
“세계 어느 공격대를 봐도 전원이 S급 장비로 무장한 공격대는 없습니다. 우리 제니스 공격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리고 계약 조건에 따라 지금 이 순간부터 일정한 기간 동안은 제니스 공격대에 묶이신 몸들입니다. 2년이었던가요?”
“3년입니다!”
누군가가 씩씩하게 대답을 했다. 목청이 큰 것을 보니 아무래도 딜러 같다. 그것도 신참인 후순위 예비대가 아니라 선순위 예비대인 것으로 보인다.
“아, 그렇군요. 네, 3년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3년은 임의탈퇴를 하실 수 없습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요?”
3년 안에 탈퇴를 하면 보유한 S급 장비는 모두 폐기해야 한다. 대신 탈퇴사유에 따라 일정한 비율의 돈을 돌려준다.
예를 들어 그냥 자기 변덕, 혹은 타공격대의 스카웃 때문에 탈퇴한다면 장비 대금을 한 푼도 안 돌려준다. 그러나 불가항력적인 사유, 즉 사망이나 더 이상 레이드를 할 수 없는 몸이 되어 탈퇴하는 것은 100% 돌려준다.
‘어떤 멍청이가 탈퇴를 해? 난 뼈를 묻을 거다.’
딜러들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아마 임의로 탈퇴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딜러의 경우, 유지웅이 없으면 S급 강화장비를 100% 사용하지 못한다. 근접 딜러가 S급 장비를 통해 궁극기를 쓸 경우, 보호막을 받지 못한 상태라면 자기 궁극기에 자기가 죽는다. 원거리 딜러가 궁극기를 쓸 경우, 아군에 보호막이 걸려 있지 않다면 동료까지 같이 죽이게 된다.
딜러는 결국 S급 장비를 활용하기 위해서 평생 유지웅 밑에서 레이드를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탱커와 힐러는 어떤가?
S급 장비를 취득한 것은 결국 옐로 몹을 잡지 않고 레드 몹 이상만 잡아서 고수익을 올리겠다는 취지다. 그러려면 S급 장비로 무장한 딜러진이 갖춰져야 수월하다. 그런데 S급 장비로 무장한 딜러는 유지웅에게 사실상 얽매인 셈이다.
결국 제니스 공격대를 놔두고 탈퇴해서 다른 데 가봐야 S급 장비를 온전히 활용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탈퇴할 이유가 없는 것이고, 사실상 종신이나 마찬가지였다.
“저는 여러분들의 전력 강화를 위해 이자 한 푼 안 받고 블루 결정체를 빌려드렸습니다. 그 점을 부디 잊지 않으시고, 앞으로도 끈끈한 전우애로 다져진 공격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유지웅이 연설을 마쳤다. 오늘은 레이드를 마치고 오랜만에 공격대 전원이 모여서 뒤풀이를 하기로 했다. 가끔은 조직에 대한 소속감을 확인하고, 우애를 다지기 위해서라도 그런 자리가 필요한 법이니.
“그러고 보니 예비대 대원끼리 레드 몹 잡는 걸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군요. 많이 나아졌나요?”
장태준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직접 보시면 만족하실 겁니다.”
두두두두!
땅을 울리는 소음과 함께 커다란 장갑차가 나타났다. 길이만 자그마치 15미터는 되어 보이는 엄청난 크기다. 바퀴 대신 전차 무한궤도가 달려 있고, 각종 전자장비가 상단에 노출되어 있어 보기만 해도 ‘비쌀 것 같은’ 위압감을 자랑한다.
“타시죠.”
차량 뒤편으로 입구가 열리자 장태준이 권유했다. 처음 보는 모델에 유지웅은 살짝 얼떨떨했다.
“어, 이런 것도 있었나요?”
“전천후 장갑차 XN-1을 주문자 제작을 통해 만든 종합지휘차량입니다. 산악, 들판, 물 등 어느 곳이든 갈 수 있으며 호크 아이, 위성과 연계해 전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독해서 가장 효과적인 전술 지휘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차입니다. 총 3대를 갖고 있습니다.”
아무리 큰 장갑차라 해도 안은 비좁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 밖이었다. 내부는 쾌적한 편이었고 공간도 상당히 넓었다. 무엇보다 사방을 가득 덮고 있는 대형 스크린이, 마치 SF 영화에나 나오는 종합지휘소에 온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아, 종합지휘차량이라고 했지.
“자체 무장은 없군요?”
“어디까지나 지휘 목적으로 만들어진 차니까요. 서열로 치면 호크아이보다 더 높습니다. 저를 비롯해 최고 전술지휘자가 탑승하는, 움직이는 지휘본부입니다.”
그간 장태준은 매번 임시 지휘소를 차리고 원거리에서 전술 통제를 해온데 한계를 느낀 모양이다. 충분한 거리를 두었는데 위험에 휩쓸릴 뻔한 적도 많았고, 반면 위험을 감수하고 거리를 가깝게 했는데 괴수가 반대 방향으로 도주하는 바람에 불필요하게 거리가 벌어진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럴 걱정이 없습니다. 차량을 통제하기 위한 최소 인원만 함께 하고, 나머지 요원은 호크 아이에 탑승해서 통제를 보조합니다.”
“가성비가 대단히 뛰어나군요. 저렴한 장갑차 하나 도입한 게 큰 도움이 됐네요.”
신이 나서 설명하던 장태준의 태도가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유지웅은 흠칫 했다.
낯선 군인에게서 익숙한 과학자의 향기가 난다?
“차량 자체는 저렴한 편입니다만, 장착한 전자장비가 꽤나 비쌉니다. 아무래도 미제라서요…….”
“얼마나요?”
“본래 이지스함에 장착하던 전자장비이기도 하고, 또 소형화를 하는 과정에서 턱없이 가격이 올라서요. 대당 건조 비용이 1조 원쯤 들었습니다.”
이게 장갑차야, 군함이야?
유지웅은 가벼운 회의감이 들었다. 왜 내 주변에는 돈 잡아먹는 이들밖에 없지?
“저번에 매입 계획을 올렸을 때 승인해주셨는데요…….”
“뭐, 필요하다면 이런 것도 있어야지요. 푼돈이라 제가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네요.”
그래봐야 결국 S급 장비 2개 값밖에 안 된다. 이 놈 하나가 제니스 대원 한 명의 표준 장비만큼도 못하다는 소리.
간략한 브리핑을 마치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메인 탱커, 접근. 어그로 확보하세요.”
종합전술화면에는 공격대와 괴수의 위치, 그리고 본차량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밖에도 호크아이 및 각종 주요 지원장비의 위치도 나타내고 있었다.
화면의 공격대 본진에서 점 하나가 떨어져 나가 빠르게 괴수를 향해 돌진했다. 메인 탱커인 모양이다. 동시에 다른 화면에는 돌격 중인 메인 탱커의 실제 모습이 나타났다.
“화질이 좋아졌군요?”
“기존 드론 헬기에 장착했던 카메라를 이번에 전부 신형으로 바꾸었습니다. 위성용 렌즈인데 성능이 좋더라고요.”
유지웅은 생각했다. 장태준을 최윤에게 소개해주면, 왠지 둘이 궁합이 잘 맞을 거 같은데?
전투는 대단히 유기적으로 이뤄졌다. 메인 탱커는 노련하게 괴수의 이목을 자신에게 이끌었다. 이어 근접 딜러가 투입되었고, 원거리 딜러도 자리를 잡았다.
근접 딜러는 재빠른 몸놀림을 이용해 도마뱀 괴수의 꼬리 쪽을 물고 늘어지며 타격을 가했다. 원거리 딜러진도 지령에 따라 공격을 개시했다.
원거리 딜러의 포격은 주로 탱커와 딜러 사이에 떨어졌다. 간혹 탱커에게 튀기도 했으나, 본래 튼튼한 몸을 가진데다가 S급 방어장비까지 무장한 탱커는 거의 손실을 입지 않았다.
어쩌다가 한 번씩 원거리 딜러의 포격이 근접 딜러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그러나 방어장비 덕분에 근접 딜러는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경미한 부상은 대기 중인 힐러진에서 즉시 치유해버리기도 했다.
“대원들 움직임이 상당히 좋네요.”
자신의 구단인 에버튼과 팀 제니스가 경기를 할 때 보여주었던 유기적인 움직임이 생각났으나, 공격대장 체면상 그런 비유는 삼가야 했다. 입이 근질거린다.
“블랙 몹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기적인 연동성, 협조관계가 중요하지요. 레드 몹 레이드는 움직임을 훈련하는데 최고의 상대입니다.
마침내 괴수가 쓰러졌다.
유지웅은 무엇보다 옐로 몹 농락하듯이 조금의 어려움도 없이 20여 분만에 레이드를 마쳤다는 게 놀라웠다. 아직도 국내 다른 공격대는 레드 몹 한 마리 잡는데 6시간 이상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예비대 중에서 제일 숙련도가 떨어지는 제6예비대가 겨우 20분밖에 안 걸렸다.
“흠. 이 정도면 차라리…….”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신가요?”
“별 거 아니에요. 괴수 방위 능력이 약해서 쩔쩔매는 나라에 예비대를 교대로 파견하는 것도 좋은 장사가 될 거 같아서 잠깐 생각해봤습니다.”
“아, 그것도 괜찮군요.”
괴수가 쓰러지고 남은 시체가 하얀 빛에 휩싸였다. 육체를 구성한 물질이 결정체에 흡수되는 과정이다.
그 순간 통제실에서 고함이 터졌다.
“어엇? 팀장님! 비상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결정 에너지가 고속으로 이동 중! 2대의 호크 아이도 동일한 정보를 포착! 기기 오류가 아닌 것 같습니다! 결정체가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약 시속 1200km!”
“뭐라고요?”
비상을 알리는 붉은 빛이 깜박였다. 결정 에너지를 나타내는 점이 화면에서 남쪽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수치가 5,050인 것으로 보아 방금 사냥한 괴수의 결정체가 분명했다.
괴수가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죽은 뒤 남은 결정체가 도망을 치고 있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유지웅은 물론이고 장태준도 거의 패닉 직전이었다.
“사라졌습니다! 결정 에너지 반응 소실!”
“사라진 좌표는? 지도에 표시하세요!”
수퍼 컴퓨터가 곧바로 계산을 마치고 화면에 추적 중이던 결정 에너지가 사라진 좌표를 나타냈다. 위성이 연동해서 해당 지점의 실시간 항공 촬영 사진까지 함께 표시했다. 낯익은 하얀 돔형 건물의 모습에 유지웅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어? 저기는……?”
다른 곳이 아니라 세종시, 결정체 연구단지였다.
============================ 작품 후기 ============================
“나는 도망친 게 아니라 땅겨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