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546)
00546 Pre-season – 커플편 =========================================================================
감전된 듯이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표정에 변함이 없다. 경직된 어깨가 일으키는 가는 경련이 손끝으로 전달된다.
떨리는 음성이 촉촉한 입술 사이로 겨우 흘러 나왔다.
“뭐, 뭐라고?”
못 들은 척 하고 싶은 거야? 유지웅은 그래도 즐거웠다. 그렇다면 얼마든지 더 놀려줄 수 있잖아?
“자고 갈래?”
“모, 못 들었…….”
“자고 갈래?”
“…….”
“자고 가라.”
더 이상 회피할 수 없게 돼버렸다. 정효주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얀 얼굴에는 핏기마저 가셔서 더욱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대조적으로 목덜미는 빨개져 있는 게 귀엽다.
“우리 이건 너무 이르잖아.”
한참이 흘러서 내뱉는 말이 겨우 그거다. 이 정도쯤이야 노련한 유부남께서는 이미 예상을 하셨지.
“무슨 소리야? 우리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한 침대에서 자고 그랬잖아?”
“그, 그거야…….”
중학교를 갓 졸업했을 무렵, 고교에 입학한다는 설렘에 밤새워서 이야기를 하다가 정효주의 침대에서 깜박 잠이 들었던 일이 있었다. 워낙에 남매처럼 자란 사이라서 다음 날 효주 어머니도 그 꼴을 보고 아무 말도 안 했다. 어린 시절부터 둘이 엉겨서 놀고 자고 먹고 했는데 뭐.
정효주도 ‘지웅이네 집에서 잔다’라는 것 자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5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약혼이라는 명분으로 선물받기 전이었다면 말이다.
소꿉친구가 자고 가라고 하는 것과 약혼자가(둘만 아는 비밀이긴 해도) 자고 가라고 하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 어디 그 둘을 비교할 수가 있겠어?
“왜, 나 못 믿어? 내가 막 너 어떻게 할 거 같아?”
“…….”
“어차피 내일 애들이랑 다시 모일 건데, 자고 가는 게 너도 편하지 않니?”
“……부모님께는 뭐라고 말씀드려?”
“별 말 안 하실 걸? 과제 때문이라 하면 되지.”
정효주가 못내 망설이는 듯하자 유지웅은 얼른 핸드폰을 꺼내 효주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간단한 사정을 설명하면서 효주 여기서 자고 가도 되냐고 하니까 그러라고 했다.
“봐, 아무 말씀 안 하시지?”
“…….”
마지막 보루가 형편없이 무너진 정효주는 그렇게 손을 잡힌 채 질질 끌려갔다.
“안 들어가?”
문을 여는데 정효주가 머뭇거렸다. 유지웅은 뒤로 돌아가서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밀었다. 그런데 움직이질 않는다? 이거 힘을 주고 있어?
“들어가자.”
유지웅은 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꽉 안고는 영차영차 하면서 현관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뭐가 그리 두려운지 미묘하게 발버둥을 치는 게 남자 마음 더 감칠맛 나게 한다.
“이층 올라가서 씻어. 난 일층에서 씻을게.”
“……왜 내가 이층이야?”
“도망 못 가게 감시하려고.”
유지웅은 간이 탁자와 의자를 들어다가 현관문 앞에 쌓기 시작했다. 치우려면 시간이 좀 걸리고 소리도 난다. 정효주가 그걸 보고 더 흠칫 했다. 이거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니야?
“무, 무슨 짓 하는 거야?”
“도망 못 가게 감시하려고.”
“내, 내가 왜 도망가!”
“너 지금 도망가고 싶다고 얼굴에 다 쓰여 있어. 하지만 안 돼.”
정효주는 유지웅의 재촉을 이기지 못하고 사형장으로 가는 사형수처럼 밍기적거리며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욕실로 들어가자 유지웅은 목욕 가운과 새 속옷을 가져와서 욕실 앞에 놨다. 그리고 안에 대고 말했다.
“가운이랑 새 속옷 여기 앞에 뒀어.”
“으, 응!”
“안 들어가. 왜 겁을 먹고 그래?”
“누, 누가 뭐래!”
샤워 커튼 사이로 비치는 몸짓이 흡사 놀란 병아리처럼 바르르 떨고 있었다. 환한 불빛 때문에 실루엣이 다 비치고 있는데, 정작 정효주는 모르는 눈치였다. 유지웅은 팔짱을 끼고 잠시 그녀의 몸매를 살폈다.
“음, 이때부터 괜찮았구나?”
아무튼 유지웅도 일층으로 내려가서 후다닥 샤워를 했다. 샤워 시간이 오래 걸려서, 혹시라도 먼저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녀가 도망치면 안 되니까.
혹시라도 교복을 입을까 봐 미리 교복도 치워뒀다. 교복 달라고 칭얼거리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이미 드럼 세탁기에 넣고 잘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덤으로 그녀가 벗어둔 속옷까지 한꺼번에 다 넣었다. 음, 완벽해.
“남자는 영원한 나무꾼이지.”
휘파람을 불며 기다리고 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그녀가 내려오질 않았다. 물소리는 더 이상 안 들리는데? 기다리다 못해 유지웅은 이층으로 올라갔다.
“뭐, 뭐야!”
쪼그리고 앉아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정효주는 그가 올라오자 아주 기겁을 했다. 이거 여린 남자의 마음 다치겠는데? 누가 보면 범죄자인 줄 알겠다.
“왜 그러고 있어? 다 입었으면 내려 와.”
“……내 옷, 내 옷 다 어쨌어?”
“세탁기 돌렸지. 그럼 샤워하고 옷 안 갈아입으려고 했어?”
“이, 이건 속옷이 너무 야하잖아…….”
“어디? 한 번 보여줘 봐.”
정말 볼 것처럼 옷깃을 들추려고 하자 그녀가 또 기겁을 했다. 샤워 가운을 입고 옷깃을 꽁꽁 여민 채 주저하는 모습이 참 귀엽고 예뻤다. 짧은 가운 아래로 뻗은, 가늘고 하얀 다리는 매끄럽게 윤기가 났다. 혀를 대면 아주 맛있는 감촉이 전달될 것 같은 느낌이다.
“……왜 네가 이런 걸 갖고 있니?”
“너 입히려고 샀지. 많이 있어. 아, 속옷 말고 외출복이랑 실내복도 많이 있어. 파티복도 있다?”
“…….”
“와인이나 한 잔 할래?”
두 팔로 몸을 단단히 싸매고 흘겨보는 게 여간 가드가 단단한 것이 아니다. 완벽하게 무장한 모습도 흐뭇하지만 언제까지 저 상태로 긴장감을 유지하게 놔둘 순 없지. 사람이 항상 긴장만 하고 있으면 쉽게 지친다. 미래의 남편으로서 그런 정신적 부담을 덜어주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아깐 난 술 안 된다며.”
“아깐 애들 있으니까 그랬지. 지금은 우리 둘 뿐이잖아.”
“……나 술 못하는데. 그리고 미성년자잖아.”
“내가 허락했으니 괜찮아.”
유지웅은 팔로 허리를 감쌌다. 얇은 목욕 가운으로 가려진, 부드럽고 군살 없는 허리가 잡혔다. 그녀는 주춤거리면서도 그를 따라 일층으로 내려왔다.
“잠시만 앉아 있어.”
미리 조명 조절을 해둬서, 일층 거실은 살짝 어두운 은은한 불빛으로 한껏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유지웅은 음악을 틀었다. 나긋나긋한 클래식이 무드 있게 흘러 나왔다. 정효주가 신기한 듯이 둘러봤다.
유지웅은 냉장고에서 과일을 꺼내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와인을 준비해서 거실로 갔다. 테이블 위에 과일과 와인을 내려놓고 코르크 마개를 땄다.
“예쁘다.”
은은한 녹색 조명이 담긴 새빨간 와인을 보고 정효주가 작게 감탄했다. 유지웅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안아 옆으로 슬쩍 당겼다. 조금 저항이 있지만, 그래도 끌려온다. 다른 손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필사적으로 목욕 가운을 끌어내려 허벅지를 가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게 또 귀엽다.
“색 예쁘지?”
“응.”
“난 빨간색이 참 좋아. 와인도, 속옷도.”
정효주는 얼굴을 확 붉혔다. 그가 준비해놓은 속옷 세트 색이 바로 빨간색이었기 때문이었다. 뭐라고 쏘아붙이고 싶은데 그가 먼저 말을 가로챘다.
“짠.”
가볍게 건배를 권하자 정효주는 마지못해 잔을 들었다. 잔을 부딪치고, 유지웅은 천천히 와인을 음미하며 마셨다. 그녀는 조금은 두려운 듯이 와인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눈을 질끈 감고 한 번에 마셨다. 이야, 과감한데?
딸꾹. 딸꾹.
한 잔을 그대로 삼켜버린 정효주는 얼굴이 살짝 빨개져서 딸꾹질을 해댔다. 유지웅은 조금 미안했다. 일부러 도수가 좀 있는 놈으로 골랐는데, 저리 단숨에 마셔 버릴 줄은 몰랐다.
“우리 효주, 술 잘하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허벅지를 만져 보았다.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감촉에 순간 짜릿해졌다. 그녀는 놀라서 다리를 오므리며 몸을 움츠렸다. 원샷을 해서 살짝 알딸딸한 거지, 아직 취한 건 아니었다.
“너, 너 믿어도 된다며?”
“내가 그랬나?”
“그, 그랬잖아. 니가 막 나 어떻게 할 거 같냐고 오히려 화내고 그랬잖아.”
“그럼 한 번 믿어 봐.”
이거 아까랑 이야기가 다르잖아? 정효주의 안색이 살짝 창백해졌다. 유지웅이 나무라듯이 말했다.
“기집애가 왜 사람을 못 믿고 그래. 니가 날 못 믿으면 나도 날 못 믿을 수밖에 없잖아? 그러길 바래?”
“뭐, 뭐야. 그럼 안 돼…….”
“그럼 나 믿어. 알았지?”
정신없이 끄덕끄덕.
은은한 클래식 음악과 어두운 조명 속에서, 둘은 계속해서 잔을 부딪쳤다. 어느덧 와인 한 병을 다 비워 버렸다. 술 때문에 저항감이 많이 떨어진 정효주는 스스럼없이 그의 품에 안겨서 와인을 마셨다. 더 이상 허벅지를 가리려고 목욕 가운을 연신 잡아 내리지도 않는다.
그녀는 적당히 취했다. 유지웅은 지금이 딱 좋다고 생각했다. 살짝 취해서 기분이 좋은 상태. 여기서 더 먹이면 언제 필름이 끊어질지 모른다. 그런 건 바라지 않는다.
빈 와인병을 놓고 일어섰다. 그녀가 의아해서 쳐다봤다. 그는 허리와 어깨 아래로 손을 넣어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 깃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가볍다. 허리도 얇고 다리도 참 가늘다. 얘는 먹은 게 전부 가슴으로만 가나?
갑자기 안아 올리자 당황한 듯 버둥거리며 목을 끌어안는다. 하지만 내려달라고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층에는 침실이 있다. 계단을 오르며, 눈빛이 서로 마주쳤다. 무언의 교감이 짜릿하게 가슴을 강타한다.
그녀를 다소곳하게 침대에 내려놓고, 몸을 낮춘 채로 손을 깍지 끼듯이 잡았다. 그녀가 누운 채로 새치름하게 쳐다봤다.
“믿어도 되지?”
“그럼 나 못 믿어?”
“근데 너 지금 뭐 하는 거…… 웁!”
자연스럽게 침대에 올라온 그는 슬쩍 끌어안으며 입술을 얽었다. 마음의 저항이 풀어진 상태에서 느닷없이 덮쳐온 터라 그녀는 순간 당황했다. 버둥거리며 그를 밀어내려고 하지만 손에 힘이 하나도 없다.
지금까지 했던, 입술만 살짝 부딪치는 프렌치 키스가 아니라 진한 연인 간의 키스였다. 저돌적으로, 한편으로는 부드럽게 침강해 들어오는 혀의 몸짓에 그녀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수줍은 처녀처럼 움츠러든 혀를 달래듯이 애무하는 남자의 혀는, 탐욕스럽고 또한 뜨거웠다.
길고 뜨거운 키스 끝에 입술을 뗀 유지웅은 저항할 생각도 잃어버린 그녀의 뺨을 살며시 감싸 쥐었다. 목욕 가운은 어느덧 흐트러져 붉은 브래지어와 팬티가 살짝 드러났다.
“나 못 믿는 거야?”
“미, 믿어. 근데 너 지금 말이랑 행동이 다르잖…… 읍!”
또 다시 키스가 그녀를 덮쳤다. 조금 전보다 더 진하고, 더 농염하게 설육이 엉켰다. 어느덧 손이 브래지어 컵을 위로 밀어올리고, 말랑말랑하면서도 탄성 넘치는 가슴을 자기 것인 양 움켜쥐고 있었다.
키스가 끝나고 그가 다시 말했다.
“날 못 믿는 거야?”
착 깔린 목소리는 서운한 듯이 들린다. 듣고 있으면 마치 여자 쪽이 뭔가 큰 잘못을 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정효주는 패닉에 빠져 뭘 어떡해야 할지 몰랐다.
“미, 믿지. 근데 너 아까부터 계속 말이랑 행동이…… 웁웁!”
다시 키스가 그녀를 덮쳤다. 이성을 순간적으로 정지시키는 기분 좋은 엉김이다. 키스에 열중하면서도 손은 쉬지 않고 그녀의 가운을 끌어내리기 바쁘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언더웨어 한 장만 남아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나 믿지?”
“못 믿어! 못 믿어! 나 집에 갈래! 으앙, 엄마아! 혜주야! 아빠!”
차마 반항을 못하고 울먹거린다. 하지만 괜찮다. 노련한 유부남으로서 이 정도 반응쯤은 예상했다.
“나 참 못된 놈이지?”
“모, 못 됐어. 나 집에 갈래. 집에 가고 싶어…….”
“나 못된 놈이니까, 니가 착한 놈으로 만들어주면 안 돼?”
“뭐, 뭐야. 그게…….”
“니가 좋아서, 너무 좋아서 너 갖고 싶은데, 니가 자꾸 못 가지게 하니까 내가 못된 놈이 되는 거 같아. 그니까 나 착한 놈 만들어주면 안 돼?”
울먹거림이 잦아들었다. 투명한 눈동자가 두려움과 설렘을 담고 빤히 쳐다본다. 뺨을 슬쩍 쓸어내리면서,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너, 나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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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분들의 폭력성을 실험하기 위해 여기서 한 번 끊어보겠습니다.
사, 살려주세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