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582)
00582 왕의 귀환 =========================================================================
“이제 그만 됐다. 먼저 돌아가 있거라.”
“교수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인석아. 너보단 내가 더 오래 살았다. 신변정리 이제 안 도와줘도 된다. 내가 무슨 치매 걸린 노인도 아니고.”
“아뇨,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며칠 전 가렌은 기적을 목격했다. 정말로 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대단한 것을 보았다.
블루 결정체를 삼킨 니트로 교수는 정말로 젊어졌다. 굽어진 허리가 펴지고, 주름이 사라지고, 새하얀 백발은 치렁치렁하고 윤기 나는 금발로 변화했다. 희고 고른 치아가 새로 났으며, 눈빛에는 정기가 넘쳐흘렀다.
니트로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이미 60이 넘은 노인이었다. 가렌은 한 번도 니트로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사진 같은 거야 어디 찾아보면 있었겠지만, 은사의 젊은 시절 모습 따위가 그리 궁금하진 않았던 것이다.
아무튼 가렌은 크게 감동했다. 기력이 쇠해 더 이상 연구를 할 수 없던 니트로 교수가 드디어 연구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한 번 교수님과 시작할 수 있다. 연구를 시작할 수 있다. 그 사실이 너무나 기쁘고 가슴이 벅찼다.
……약의 부작용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대리인 없이 교수님 재산을 무슨 재주로 처분해요? 지금 겉으로 보이는 교수님 나이를 생각하라고요!”
젊음의 비약은 일반 대중에는 아직 극비였다. 물론 연방정부와 몇 몇 주요 고위 인물들은 정효주가 니트로 교수에게 약을 제공한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곧 다른 나라 부호들에게도 이 사실이 퍼져나갈 것이다. 약의 효능이 입증되었으니.
니트로 교수는 제2의 인생을 한국에서 보내기로 하고, 모든 재산을 처분하는 등 이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본인이 직접 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본인의 대리인 행세를 해도 되는데 그것조차 안 된다.
왜냐면…….
“너무 젊어지셨어.”
그는 16살로 돌아왔다.
* * *
“그게 정말이야?”
“응. 완전 젊어지셨던데?”
“헐. 그럼 파는 건 문제가 없겠네.”
약의 효능을 입증하고, 정상 시판을 위해서는 한 번의 입증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그러나 유지웅은 젊음의 비약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을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거대 부호들에게만 팔 수 있는 약이니, 그들의 신뢰만 얻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신뢰는 한 번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뭐 하는 분이래? 네가 미국까지 직접 다 찾아가고?”
“가렌 교수님 은사셔. 지금의 가렌 교수님을 있게 해주신 분이라고 하더라고.”
“왜 나는 몰랐지?”
“핵물리학이 워낙 비인기 학문이니까. 그래도 남들이 뭐라 하든 꿋꿋하게 핵물리학에 정진해 오신 분이래.”
“그럼 실력은 확실하겠구나.”
“응. 가렌 교수님도 그 점은 자신하시더라.”
정효주가 약의 효능을 입증하기 위해 한 여러 일을 듣고 유지웅은 별 말 안 했다. 오늘내일 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정당한 거래를 했고 충분한 보상도 했으니까.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나, 그에게는 자신의 양심이 품은 기준을 벗어나지만 않으면 그만이었다.
아마 지금쯤은 서울에 머물러 있는 부호들에게도 소식이 들어갔을 것이다. 미국 정부가 이미 알고 있으니 그들도 조만간 알게 된다고 봐야 했다.
“이제 시끌시끌해지려나?”
비약이 인간에게도 정상 효과를 발휘하며, 부작용이 없다는 것도 확인을 했다. 더 이상 망설일 여지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유지웅이 비약 판매에 크게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부호들도 그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유지웅의 행동 성향을 지긋지긋하리만치 분석하고 파헤치는 이들이니까.
처음으로 테이프를 끊은 이는 역시 사우디 국왕이었다. 그는 직접 비서실에 연락을 해서 유지웅과 통화하기를 원했다. 그래도 국왕씩이나 되는 사람이라, 유지웅은 통화에 응했다. 통역을 사이에 끼고 둘은 이야기를 해나갔다.
“젊음의 비약을 사고 싶소.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좋습니다.”
굳이 피할 일도 아닌지라 유지웅은 흔쾌히 응했다. 시작을 제대로 끊어야 두고두고 편해진다. 사우디 국왕은 그에 매우 적합한 인물이다. 사우디 국왕씩이나 되는 인물도 얌전히 따른다면,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삼십 분도 되지 않아 수행원을 거느리고 사우디 국왕이 찾아왔다. 왕의 행차에 준비가 꽤나 걸릴 텐데, 어지간히도 초조했던 모양이다. 한 달도 안 됐는데 그는 벌써 몇 년은 더 늙어 보였다. 혹시라도 비약을 얻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다.
“약의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들었소. 축하합니다.”
과연 정보가 빨랐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을 사우디 국왕까지 알고 있을 정도면, 부호들은 죄다 알고 있다고 봐야 좋으리라.
유지웅은 덤덤하게 말했다.
“정식 허가를 얻기에는 케이스가 한참 부족하지요.”
“혹, 정식 허가를 얻으려 하시오?”
“아닙니다. 지금으로서는 일반 대중에 발표할 생각이 별로 없으니까요.”
“과연, 아무나 살 수 있는 약이 아니지.”
제조원가만 무려 오천억이 넘는 약이다. 일반인은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 게다가 완벽한 독점 상품에, 누구나 꿈에 그리는 젊은 시절로 되돌려주는 기적의 물질이다.
“국왕 폐하께 젊음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나요?”
유지웅이 물었다. 국왕의 눈빛이 조금 가라앉았다. 느낀 것이다. 공기가 완벽하게 바뀌었음을.
‘딜인가.’
국왕은 신중하게 생각을 거듭했다. 얼마를 불러야 할까? 얼마를 불러야 적당한 것일까?
그는 말년에 이르러 미치도록 젊음과 건강을 갈구했다. 여성 편력이 심한 그는 발기가 잘 되지 않음에도 어리고 예쁜 후궁을 계속 들였다. 매일 후궁들의 몸을 탐하며,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쫓았다. 늙고 병든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을 때마다 얼마나 세월에 분노했는지 모른다.
젊어질 수만 있다면, 그래서 다시 한 번 인생을 시작할 수만 있다면, 그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라고 해도 팔 수 있었다.
“전부나 마찬가지요.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겠지.”
“무엇이든지요?”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살 수 있는 것 아니오? 그것은 어떤 물질적인 가치에 비할 바가 아니지. 나처럼 살 날이 얼마 되지 않는 노인한테는 특히 더 그렇소. 아마 이 절박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어린 아이거나 혹은 진지하게 젊음의 가치를 생각해본 적 없는 어리석은 이들일 거요.”
사우디 국왕은 솔직하게 본심을 털어놓았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자신이 가진 갈증 그대로를 보여주었다.
유지웅은 협상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전혀 아쉬울 게 없다. 마음에 안 들면 아예 협상 자체를 거부하고도 남는다. 그런 사람의 심기를 거스르게 해서는 안 된다. 기분이 나빠지면 거래 자체를 중지해버릴 수도 있으니까.
유지웅은 케이스 뚜껑을 꺼내 내밀었다. 푸르게 빛나는 블루 결정체가 안에 담겨 있었다. 사우디 국왕은 마른침을 삼켰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대가는 공개된 전 재산입니다.”
“전 재산? 공개된?”
의외로 전 재산이란 말에 사우디 국왕은 살짝 흠칫했을 뿐 그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공개된’이라는 단어에 주목하는 냉철함까지 보였다. 과연 국왕은 국왕이라는 건가.
“저도 나름대로 정보망이 있습니다. 이들이 파악한, 국왕 폐하 소유의 공개 재산 전부를 원합니다. 아마 1조 5,000억 달러쯤 될 겁니다. 아시죠? 재산 목록에 쓸데없는 장난을 치시면 안 됩니다.”
“그 많은 재산을 현금화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현물 그대로 넘겨주시면 됩니다. 아, 국왕 폐하께서 거주하시는 궁전은 제외합니다. 그래도 오래 거주하신 집까지 빼앗을 수는 없지요.”
국왕은 천천히 손뼉을 치며 웃었다. 전 재산을 털리게 생겼는데 오히려 그는 웃었다.
“그거면 되는 거요?”
“예.”
“좋소. 계약서를 작성합시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잘 이행하실 테니까요.”
유지웅의 눈빛을 들여다보던 국왕은 과연, 하고 작게 감탄을 터트렸다. 힘이 충만하니 저런 자신감이 있는 것이다. 오히려 한 번쯤은 불이행자가 나오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약속을 어길시 어떻게 된다는 본보기를 위해서라도.
“만약 이행을 않거나, 재산 내역을 속이면 어찌 되오?”
“그때는 공개된 재산뿐만 아니라 진짜 전 재산을 몰수해야겠지요.”
“하하, 배포가 참 무섭군.”
“감춰두신 재산만 해도 지금까지 누려온 생활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백억 달러는 되는 걸로 아는데요.”
거대 부호들은 누구나 감춰둔 재산이 있다. 물론 공개된 재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것만 해도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다. 그중에는 감춰둔 재산이 공개된 재산보다 더 많은 경우도 있으리라. 하지만 유지웅은 그들과는 거래를 할 마음이 없었다. 그만큼 심하게 부패한 인물이라는 뜻이고, 그런 이들까지 접촉할 이유는 없으니.
“아들놈들이 난리 좀 부리겠군.”
“그거야 국왕 폐하의 개인적인 문제고요. 비싸다 싶으면 구매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국왕은 주저 없이 블루 결정체로 손을 뻗었다. 손에 쥐고는 그대로 꿀꺽 삼켜 버렸다.
순간 국왕의 온몸이 빛에 휩싸였다. 밝은 광채 속에서 그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경이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유지웅은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똑똑히 보았다.
머리카락과 이빨이 빠지고, 뱀이 허물을 벗든 온몸의 피부가 벗겨지고 있었다. 골격이 변하며 자연스럽게 체격도 변한다. 주름이 사라지고 눈빛에는 정기가 돌아온다.
마침내 변화를 마치고 빛이 멎었을 때, 눈앞에는 스무 살 남짓한 젊고 건강한 청년이 앉아 있었다. 젊은이가 된 국왕은 잠시 멍한 듯이 자신의 손발을 내려다보다가 급히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드디어, 드디어, 내가!”
주먹을 단단히 쥐고 온몸을 부르르 떤다. 절제된 몸짓이지만 그가 지금 얼마나 기뻐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90대의 노인이 20세 청년이 되었을 때, 그 감동은 과연 얼마나 농도가 진할 것인가.
국왕은 유지웅을 돌아봤다. 그의 눈은 조금 젖어 있었다.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약속은 지키시기 바랍니다.”
“물론이오. 어느 미친놈이 감히 제니스와 한 약속을 어길 수가 있을까?”
* * *
사우디 국왕은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서둘러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 사실은 서울에 몰려든 부호들에게도 전해졌다. 그들은 사우디 국왕이 젊어진 것을 확인했다. 자신들이 간절히 원하던 것을 얻은 사람이 실제로 나오자 그들은 더욱 다급해졌다.
“얼마라고 하던가?”
“그게, 사우디 국왕이 외부로 발설하지 않으니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사우디 국왕은 서울에 몰려든 부호 중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진 인물이었다. 왕가 명의로 된 총 재산이 1조 5,000억 달러에 달하는 수준이었으니. 은닉 재산은 100억 달러로 비상금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재산을 감춰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거래 조건이 밝혀졌다. 사우디 국왕이 궁전을 제외한, 왕가의 전 재산을 유지웅에게 넘긴 것이다. 해외 부동산, 고미술품, 현금, 유가증권 등 보유한 모든 공개 재산을 현물 그대로 넘겼다.
“공개된 재산 전부를?”
부호들은 경악했다. 그러나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우디 국왕의 뒤를 이어 흑석동 저택을 찾아간 유럽의 어느 언론 재벌은 거래 자체를 거절당했다. 그는 과거 독재자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막대한 재산을 형성하고, 재산의 절반 이상을 은닉한 부패 재벌이었다.
============================ 작품 후기 ============================
“마음에 드는 놈한테만 판다.”
“그런 게 어딨어!”
“니가 만들어서 먹던가, 내 마음에 들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