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24)
00624 승리를 위하여? =========================================================================
하얀 무엇인가가 번뜩였다. 사각에서 날아오는 촉수였다. 최정원은 급히 몸을 돌리며, 두 손으로 쥔 칼을 수직으로 힘차게 내리그었다.
“하앗!”
아름드리나무만 한 촉수가 칼질 한 번에 싹둑 잘려나갔다. 절단된 채 팔딱거리던 촉수는 이내 녹아내리듯이 바닥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에잇!”
어느 원거리 딜러가 두 손으로 힘차게 불꽃을 뿜었다. 투사 궤적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몇 배는 굵어진 섬광이 단숨에 십여 개의 촉수를 휩쓸었다. 불길에 휩싸인 촉수들은 고통을 느끼는지 세차게 버둥거리다가 녹아버렸다.
딜러는 자신이 딜을 해놓고 얼떨떨했다.
“뭐, 뭐야? 내가 이렇게 셌나?”
“방금 궁극기라도 날린 거예요?”
“아니에요. 그냥 통상 공격이었을 뿐인데…….”
“허억, 그게요? 나는 무슨 궁극기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옆에서 지켜봤던 근접 딜러가 놀라서 입만 뻐끔거렸다. 방금 원거리 딜러가 날린 공격은 지금까지 봤던 어느 누구보다도 강력한 수준이었다. 아무리 S급 강화장비가 있다 해도 이론상 불가능한 출력이었던 것이다. 아니, 어떻게 통상 공격이 궁극기와 비슷한 위력을 낼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돼.’
무엇보다 대원들을 놀라게 한 건 온몸에서 끓어 넘치고 있는 힘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분명 대부분이 조금 전에 비거를 소모하고 리타이어 상태로 몰렸다.
‘이건, 마치…….’
비거는 일종의 체력, 지구력과 흡사하다. 휴식을 하거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히 회복된다. 최정원은 용트림하듯이 끊임없이 솟구치는 힘에서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자신의 방어력이 증가했듯이, 저 딜러의 공격력이 증가했듯이, 비거의 회복 속도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 아닐까 하고.
“안 돼! 피해!”
퍼억!
위에서 내리꽂히는 촉수를 미처 피하지 못한 힐러를 보고, 어느 근접 딜러가 재빠르게 달려들었다. 그는 힐러를 밀쳐내고 대신 자신이 얻어맞았다.
“으아악!”
허리가 부러진 그는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이 역시 놀라운 일이었다. 아무리 S급 방어장비를 착용했다지만, 보호막이 없이는 한 방에 즉사해야 정상인데 죽지 않은 것이다.
“히, 힐 줄게요!”
도움을 받은 힐러가 떨리는 손으로 급한 대로 일단 힐을 넣었다. 다음 순간 근접 딜러는 벌떡 일어났다. 힐러는 멍청해서 자신의 손과 근접 딜러를 번갈아 봤다.
“어, 이렇게 빨리?”
힐러의 힐은 거의 즉시성이지만, 회복까지 즉각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완전한 회복을 위해서 요구되는 필요 힐량을 채워야 한다. 방금 전처럼 허리가 부러져 숨이 꼴깍거리는 사람을 완전히 회복시키려면, 적어도 몇 방의 힐은 넣어줘야 한다.
헌데 단 한 방에 벌떡 일어났다. 다른 힐러들은 지금 탱커들에게 힐을 쏟아 붓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조심스러운 추측이지만 결론은 하나뿐이다.
‘힐량이 증가했어?’
촉수를 막아내는 틈틈이 이 모든 것을 지켜봤던 최정원의 눈빛이 한층 더 예리해졌다. 확실해졌다.
유지웅을 중심으로 뻗어 나온, 이 피처럼 붉은 오오라가 모든 대원들의 능력치를 경이적인 수준으로 증폭시킨 것이다. 공격력, 방어능력, 치유량, 심지어 비거 회복 속도 능력까지.
본래라면 탱커인 자신이 칼질 한 방에 촉수를 박살내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공격력이 딸린다. 근접 딜러가 보호막도 없이 직격타를 맞았는데 즉사하지 않은 것도 있을 수 없다. 방어력이 딸리기 때문이다. 빈사 상태의 대원을 힐 한 방으로 완쾌시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치유량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확실해졌다. 이 새빨간 오오라가 원인이었다. 아군의 모든 능력치를 경이적인 수준으로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럴 수가!’
최정원은 숨이 가빴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유지웅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슨 얼굴을 하고 있을까?
흥분으로 가슴이 벅찼다. 역시 제니스에 남길 잘했어! 대체 공대장은 어디까지 올라갈 셈인가! 이제 더 이상 올라갈 곳도 없는 천상계에 혼자 있으면서, 거기서 또 올라가려고 한다! 승천해서 신이라도 될 셈인가!
제니스는 블랙 몹 전문 공격대다. 화이트 몹을 상대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다. 나미가 지원을 해주고, 유리한 육지로 전장을 잡고, 또 브라우니와 레드 몹 괴수 군단까지 가세했는데도 이렇게 밀리지 않았나.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 붉은 오오라, 범위 내 아군의 모든 힘을 상승시키는 이 힘만 있으면, 화이트 몹 헌터가 되는 것도 결코 꿈은 아니리라. 세계는 다시 한 번 제니스의 그림자 앞에 무릎 꿇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전에 살아 돌아가는 것이 시급하다.
* * *
고요한 적막 속에서, 유지웅은 조용히 눈을 떴다.
혼란스러운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200명 이 넘는 대원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힐러들이 에워싸고, 그 밖을 다시 원거리 딜러가, 그리고 다시 근접 딜러가 에워싸는 철옹성 진형이었다. 탱커들은 성 밖에서 무차별적으로 날뛰며 촉수들의 어그로를 붙들고 있었다.
원거리 딜러들이 쏟아내는 파괴력은 무시무시했다. 마치 궁극기를 난사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래서 순간 유지웅은 이게 꿈인가 했다. 딜레이도 없이, 통상 공격처럼 궁극기를 저리 난사하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때였다. 무음 모드를 한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던 광경에서 점차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땀에 물든 함성, 사기를 부르짖는 외침, 이를 악물고 힐을 시전하는 이들의 버둥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꿈인 줄 알았던 광경은 차갑게 피부에 다가오며 점차 현실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비로소 유지웅은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
“공대장님!”
“정신이 드세요?”
그가 고개를 든 것을 알아차린 힐러들이 반색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모두 리타이어하지 않았나요?”
“저희는 모르죠! 이거, 공대장님이 하신 거 아니에요?”
“제가 뭘요?”
“이 빨간 오오라요! 이것 덕분에 지금 다들 힘이 넘치고 있어요! 공격력, 방어력, 치유량, 비거 회복 속도까지 모든 능력치가 폭증했다구요!”
“빨간 오오라?”
그제야 유지웅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방어장비가 산산조각 난 가슴에서 붉은 빛이 강하게 맴돌고 있었다. 빛은 사방을 잠식하듯이 땅을 물들이며, 대원들 한 명 한 명을 휘감아 자신의 색을 퍼뜨리고 있었다. 붉은 오오라의 근원이 자신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사실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공대장님도 모르세요?”
“몰라요. 모르겠어요.”
유지웅은 숨이 가빴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너무 엄청난 이야기를 들어서 얼떨떨했다.
모든 능력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사기 능력이란 말인가. 아니, 무슨 비거 회복 속도가 무한 리젠이 된 것도 아니고, 아까만 해도 다 죽어가던 대원들이 저리 팔팔하게 뛰어다니느냔 말이다. 그것도 궁극기를 아낌없이 펑펑 날려가면서!
“아, 저거 궁극기 아니에요. 통상 공격이래요.”
“……저게 어디가요?”
궁극기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통상 공격이란다. 그럼 대체 능력치가 얼마나 증가했다는 거야?
정확한 수치 차이는 모르겠지만, 통상 공격과 궁극기의 위력을 수십 배로 잡는다 치면, 한 수십 배로 증가했다는 이야기인가? 공격력도 수십 배, 방어력도 수십 배, 힐량도 수십 배, 뭐 그런 식으로?
‘혹시?’
퍼뜩 생각이 났다. 얼마 전부터 자신과 정효주는 더 이상 결정도 감지가 되지 않았다. 레지나는 그것을 가리켜 퍼플 결정체가 레드 결정체로 숙성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혹시 결정체가 숙성을 마친 것은 아닐까? 자기도 숙주가 죽는 건 싫으니까 딱 그 순간에 급하게 성장을 마무리 지었나?
‘어쨌든!’
유지웅은 벌떡 일어났다. 무선 교신이 불가능해 본대 상황을 알 수 없던 탱커들도 비로소 유지웅을 보았다. 그들은 더욱 힘이 나서 날뛰기 시작했다.
“공대장님이 정신이 드셨다!”
“이길 수 있어! 이길 수 있어!”
“포기하면 편해! 포기하면 그 순간 레이드 종료야!”
근데 가만히 보고 있으니 좀 무섭다. 탱커 한 명 한 명이 무슨 S급 장비 들고 설치는 근접 딜러보다 더 폭딜을 퍼붓고 있으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탱커가 아니라 근접 딜러들 아니냐는 소리를 할 판이다.
그렇다면 근접 딜러들은? 유지웅은 그런 의문을 품고 근접 딜러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이 난전 상황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원거리 딜러진 밖에서 고기방패, 아니 몸빵용으로 진을 치고만 있었다. 눈이 마주친 근접 딜러가 변명처럼 말했다.
“저, 무서워서 딜을 못하고 있어요.”
“보호막 없이 딜하다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원거리 딜러는 아무리 딜이 강력해도 충격파 범위 밖에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근접 딜러는 코앞에서 충격파가 터진다. 강력한 공격력이 자신의 목줄을 끊는 양날의 검이 되는 것이다.
유지웅은 끄덕이고 말했다.
“알았어요. 보호막을 칠게요.”
“예!”
“탱커들도 보호막을…….”
“저희는 필요 없습니다! 비거를 최대한 아끼세요!”
“……알았어요.”
유지웅은 집중해서 힘을 끌어올렸다. 눈을 감고 내면의 파동에 정신을 모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각이 느껴졌다. 모든 것을 불태울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충만함이 맴돌았다. 이 거대한 기운을 과연 세상에 꺼내 놓아도 되는가 하는 미약한 죄책감마저 들 정도다.
근접 딜러들의 몸이 빛에 휩싸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한층 더 짙고 붉은 빛이었다. 온몸이 불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선명하게 빛나는 적빛의 보호막이었다. 유지웅은 이어 조그마한 광역 보호막을 쳤다.
“자! 가자!”
“파티 타임이다!”
근접 딜러들은 신이 나서 달려 나갔다. 탱커도, 원거리 딜러도, 힐러도 레이드에 바쁜데 지금까지 고기 방패라고 변명하며 손가락만 빨고 있느라 면목이 없었다. 그 수치스러움을 이 주먹 한 방에 풀어버리겠다!
가장 먼저 달려 나간 근접 딜러가 높이 점프해, 손에 쥔 단검을 단단한 공터 벽에 그대로 힘껏 찔러 넣었다.
콰과과광!
무시무시한 대폭발이 일어났다. 용맹스럽게 달려가던 근접 딜러들이 놀라서 끽, 제자리에 멈췄다.
“뭐, 뭐야? 설마 첫타부터 궁극기를 날린 거야?”
“아닌데? 내가 보기엔 통상 공격이었어.”
“무슨 통상 공격이 이래…….”
근접 딜러들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이 정도 파괴력이면 3단계 보호막조차 한 방에 벗겨지고도 남을 거 같은데? 공격력이 세져도 너무 세졌다. 이래서야 과연 딜을 할 수 있을…….
“어?”
“머, 멀쩡하잖아!”
연기가 걷히고 근접 딜러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의 온몸은 여전히 피처럼 붉은 빛에 휩싸여 있었다. 3단계 보호막도 벗겨버릴 듯한 기세의 충격파에 휩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걸린 보호막은 건재했다.
“그렇구나! 공대장님 능력치도 같이 증가한 거야!”
“바보 같아! 그걸 생각 못하다니!”
“안심하고 싸우자! 하하하하!”
“그래도 궁극기는 안 돼! 본대까지 휩쓸릴 수 있어!”
수십 인의 도적, 아니 근접 딜러들이 일제히 단검을 뽑았다. 그들의 얼굴 가득히 투지가 이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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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틸 : 인류에게 미안함이 든다.
(어째서?)
노틸 : 내가 유트롤 각성시켰잖아.
(나도 쫌 걱정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