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67)
00667 천둥군주 =========================================================================
북극곰 괴수는 섬멸했으나 미국에 남은 상처는 컸다. 사백여 만이 넘는 LA 시민이 희생되었고, 극서부 주 지역은 방사능으로 오염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이번만큼은 미국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을 거라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괴수를 상대로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괴수는 섬멸했고, 우리 자랑스러운 미합중국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괴수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우리 모두의 자긍심을 지켜나가는 것이야말로, 우리 미합중국이 위대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칠드그린! 칠드그린!”
“페이커! 페이커!”
칠드그린은 발 빠르게 움직여 침울해진 미국 시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여론의 혼란을 잠재웠다. 양당 고위 인사들조차도 놀라워할 정도로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그래도 책임은 피할 수 없는 법이지.”
한편 민주당은 비시 대통령에게 대국적인 책임을 물을 것을 천명, 정치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괴수 습격은 천재지변이라 하나 서부 몇 몇 대형 주가 방사능으로 죽음의 땅이 되었고, 사백만 명이 넘는 인명을 잃었다. 국가 최고통치권자로서 결코 그 책임을 피할 수는 없는 법이다.
「괴수 습격은 인재가 아닌 천재입니다. 그렇다 해서 제대로 방비하지 못한 저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충분히 노력을 기울여 대비했었다면, 이처럼 끔찍한 피해가 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분명히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의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 희생자와 그 유족, 그리고 모든 미합중국 시민 여러분께 대통령으로서 깊은 사죄를 드립니다.」
―비시 대통령! 사임 임박!
―물러설 곳이 없는 백악관!
―칠드그린 부통령, 궐위좌를 계승하나?
대통령 사임은 그야말로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단지 괴수가 너무 강력했고, 미국은 운이 없었을 뿐이다. 어느 누가 대통령에 있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감정, 그리고 정치적 흐름이라는 것은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고, 최고 수장이라는 자리는 본래 책임을 지기 위해 존재하는 법이다.
마침내 사임 연설 발표문이 마련되었을 때였다.
「글쎄요. 저는 미 대통령이 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은 대통령에게 책임이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책임이야 있죠. 원래 머리라는 게 그러라고 있는 걸요. 하지만 북극곰 괴수가 너무 강했어요. 우리도 천운이 닿아서 겨우 물리칠 수 있었을 뿐이죠.」
대학 후배들이 꾸려나가는 신문사 인터뷰에서 유지웅은 비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나타냈다.
「비시 대통령은 북극곰 괴수가 미국 땅에 들어서기 전에 이미 저에게 지원 요청을 했으며, 캐나다와 협의하여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백악관의 빠른 결정력과 국가를 위한 의지에 감동해서 레이드 대가도 최소한의 비용만 받겠다고 했고요. 그 어떤 인물이 대통령직에 있었다 해도, 이보다 더 좋은 결과는 절대로 낼 수 없었을 겁니다.」
유지웅이 아낌없는 지지를 나타내자 민주당은 백악관에 대한 공세를 멈추었고, 사임 발표문은 화로에 들어갔으며, 비시는 눈물 젖은 얼굴로 미국의 위대함을 지킬 것이라고 대국민 발표를 했고, 미국 시민들은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신문사 사장이자 대학 후배이며, 지금은 유지웅의 비서로 일하는 장권재의 동기인 김원준은 인터뷰를 마치고 후배의 입장으로 따로 물어봤다.
“형, 근데 왜 비시 대통령을 지지해요?”
“임기가 1년 밖에 안 남았는데 지금 사임하면 부통령이 승계하잖아. 그럼 재선에 성공한다 해도 5년 밖에 못하고.”
“……아, 맞다. 부통령이 형 가입한 동호회 회장이라고 했었죠, 참.”
“야, 그런 거 때문이 아니라고.”
“예, 예. 알겠습니다.”
“아니라니까!”
이러다가는 개인적인 인맥 때문에 편들어줬다는 오해를 받게 생겼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인데 말이다. 유지웅이 칠드그린을 지원하는 것은 그가 EIS 부국장 시절부터 투자해온 ‘대 미국 관리 프로젝트’ 때문이다. 결코 세상에는 발설할 수 없는.
“알겠어요. 어차피 그건 기사로 안 나가요.”
“……아무튼 고생했다. 인터뷰 하나 따자고 이 먼 미국까지 날아오고.”
“근데 형, 귀국은 안 하세요?”
“지금은 못 가지. 결정체를 찾아야 할 거 아냐. 그게 얼마짜리인데.”
제니스 대원들은 전원 철수했지만 지원팀, 최윤, 니트로 등은 아직도 미국에 남아서 결정체 수색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미국 측도 전격적인 인력 투입을 약속했지만, 일단 탐지 레이더에 뭔가 반응이 나와야 수색을 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무턱대고 인력 수색을 시작하면 그야말로 시간 낭비다.
“이상하군요. 도통 반응이 잡히질 않습니다.”
“레드 결정체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레드 결정체 추적용 장비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그런데 최 소장님은 계속 안 보이시는군요.”
“연구소 중앙 컴퓨터에 원격 접속하셔서 뭔가를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창 바쁘시더군요.”
니트로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뭔가 있는 거 같은데.’
북극곰 괴수가 폭발적으로 강해지기 직전, 해당 지역에서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우주선 비슷한 패턴을 가진 전자기파가 감지되었다. 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의 결정 에너지 밀도가 열 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금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이상 현상이지만, 당시 최윤은 경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니트로는 그 점이 못내 수상했다.
“오리나, 넌 뭐 아는 거 없냐?”
“창조주는 저에게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현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가장 뛰어난 컴퓨터를 놔두고, 일부러 멀리 한국에 있는 중앙 컴퓨터를 원격으로 사용한다 이거지?”
정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니트로는 수상쩍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그때 전화가 그의 상념을 방해했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는 안색이 살짝 창백해졌다.
「대체 언제 들어오시는 거예요?」
“바빠.”
「바쁘긴 뭐가 바빠요. 일은 아랫사람들 다 시키고 휴가나 즐기고 있는 거 다 아는데.」
“무슨 소리야. 정말 바쁘다고.”
「형부한테 들은 건데.」
“…….”
「내일까지 들어오실 거죠? 여기 일이 산더미처럼 밀렸어요.」
“……알았어.”
긁히니까 청춘, 아니 바가지다.
* * *
“응. 엄마 잘 있어. 금방 갈게. 울지 말고, 테레사 언니랑 오빠 말 잘 들어야 돼. 알았지?”
영상 통화를 끊은 정효주가 일어서서 슬립 잠옷을 벗었다. 물기 젖은 머리를 털던 유지웅이 물었다.
“쌍둥이?”
“응. 우리 보고 싶은가 봐.”
“너라도 그럼 먼저 돌아갈래?”
“나 없이 잘 버틸 자신은 있니?”
픽 웃던 정효주는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유지웅은 손을 멈추고 얼굴을 가볍게 찡그렸다. 생각을 골똘히 하던 그는 주저하면서 말했다.
“버, 버틸 수 있지 않으려나? 그래도 사흘까지 안 하고 참은 적도 있는데?”
예전에 급히 해외 출장 레이드를 가는 바람에 사흘 가량 독수공방을 한 적이 있었다. 결혼 이후, 아니 첫 관계를 가진 이후 깨지지 않은 대기록이다. 체내 결정체 효과 덕분에 그는 언제나 혈기왕성했고, 하루에도 여러 번 관계를 가져야 직성이 풀린다.
“정말? 참을 수 있어?”
“며칠은…….”
“우리 신랑, 자신만만하네. 근데 어쩌니?”
정효주가 묘한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자기 없으면, 내가 못 참을 것 같은데?”
“……야. 효주, 너.”
“응?”
“그렇게 눈웃음치면 내가 못 참잖아. 방금 씻었는데.”
말은 그리 하면서 유지웅은 머리를 닦던 수건을 던졌다. 마침 정효주는 외출을 하려고 잠옷을 벗던 중, 즉 알몸이다. 자신을 덮쳐오는 남자의 그림자에 눌린 채 그녀는 꺅 하고 장난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결국 둘은 예정보다 두 시간 늦게 호텔을 나섰다.
“진짜 브라우니 타고 돌아다니게? 차라리 박사님들한테 맡기는 게 낫지 않을까?”
“아냐. 브라우니 녀석, 먹성이 얼마나 좋은데. 기계로 못 찾아내는 것도 분명히 잡아낼 거라고.”
그리고 유지웅은 못마땅한 듯이 덧붙였다.
“전투에 도움 안 되는 나약한 녀석이니 이런 거라도 시켜먹어야지.”
다른 레이더, 그리고 다른 국가수반들이 들었으면 아마 피를 토했으리라. 블랙 몹을 놓고 나약해서 못 써먹겠다고 비하하고 있으니. 미국은 ‘그럴 거면 차라리 우리한테 팔아요!’라고 매달리지 않을까?
“이 녀석, 곰한테 얻어맞은 데는 좀 괜찮냐?”
유지웅은 브라우니의 목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브라우니는 살짝 긴장한 듯이 고개를 낮추고 낑낑거렸다. 지도 한 방에 나가떨어진 건 어지간히 창피했던 모양이다.
“넌 너무 게을러서 글러먹었어. 그러게 평소에도 수행을 소홀히 하지 말았어야지. 정작 중요한 땐 도움이 하나도 안 되고 말이야.”
―끄으응…….
“아무튼 가자. 결정체나 찾아야겠어.”
결정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은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있지만, 그 정도는 유지웅 커플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아마 체내에 있는 레드 결정체의 효과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고 있었다.
유지웅 커플은 브라우니를 타고 워싱턴을 떠났다. 동부에서 서부까지는 무척 멀지만, 브라우니에게는 한 번 날갯짓을 하면 닿을 짧은 거리였다.
“브라우니. 대충 이 근처 어딘가에 결정체가 있을 테니까 잘 찾아 봐. 알겠니?”
신랑한테 개무시당하는 브라우니가 안 되어 보였는지 정효주가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런데 브라우니의 깃털이 파르르 떨리는 이유는 뭘까?
―카아악!
그때였다. 브라우니가 날카롭게 울부짖고는 빠르게 고도를 낮췄다. 뭔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날렵하게 착지한 브라우니는 부리로 뭔가를 집어 올렸다. 정효주가 보고 반색했다.
“찾았다!”
“이, 이렇게 빨리?”
역시 처음부터 브라우니를 수색견으로 써야 했어! 유지웅은 며칠 시간을 낭비한 것을 후회하며, 얼른 등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브라우니가 물고 있는 레드 결정체를 낚아챘다.
“호오, 이건가?”
그러고 보니 레드 결정체를 직접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다. 최윤이 만든 폐쇄 모듈은 레드 결정체와 동일하긴 하나, 블루 결정체 다수를 병렬 연결해 만든 가상의 레드 결정체다. 비유하자면 퍼스널 컴퓨터 수천 대를 연결해 수퍼 컴퓨터의 성능을 낼 수 있게 한 것이지, 수퍼 컴퓨터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예쁘다.”
정효주도 진심으로 감탄한 듯이 손뼉을 쳤다. 지름 5cm 정도 되어 보이는 결정체는 투명하면서도 진한 붉은 빛을 강렬히 내뿜고 있었다. 루비를 닮은 듯한 광채는 보석보다 선명하고, 또한 황홀했다.
“이걸로 목걸이나 만들어줄까? 차고 다닐래?”
“에이, 어떻게 그러니. 됐어.”
“왜? 어울릴 것 같은데? 한 번 대보기나 하자.”
유지웅은 장난스럽게 한 팔로 정효주의 허리를 감아서 옆에 안았다. 그리고 다른 손에 쥔 레드 결정체를 그녀의 쇄골 부근에 살짝 대보았다. 그녀도 싫지 않은지 그의 손에 자기 손을 얹고 결정체를 목걸이처럼 만지작거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번쩍 하고, 레드 결정체가 강렬한 빛을 내뿜었다. 유지웅은 소스라치게 놀라 그만 레드 결정체를 떨어뜨렸다. 레드 결정체는 여전히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뭐, 뭐야! 이거!”
놀란 브라우니는 어느새 두 주인의 뒤에 딱 숨어서 머리를 땅에 박았다.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레드 결정체에 공명하듯,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이 일그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시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광경에 유지웅은 넋을 빼앗겼다. 서서히 벌어지는 공간 저편의 일렁거림이 마침내 보였다. 그 안에는 순수한 암흑이 가득 차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놀란 유지웅이 저도 모르게 손을 뻗는 순간, 찢어진 공간이 그대로 아물었다. 레드 결정체 역시 강렬히 내뿜던 빛을 거둬들였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고요한 정적만이 차지했다.
바로 그때였다.
―키에에에엑!
브라우니가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운지 눈을 잔뜩 찡그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방금 그 시공간 너머의 암흑이 브라우니에게 무언가 영향을 끼친 모양이었다.
“브, 브라우니!”
“물러나!”
정효주가 유지웅을 데리고 급히 물러났다. 브라우니는 제법 긴 시간 동안 고통에 시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 고통이 멎었을 때였다.
“……깃털이 변했네?”
고고한 순백의 깃털이, 지쳐 기절한 녀석의 온몸을 가득히 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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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핵 에너지를 아주 잠깐 쬐었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