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8)
00008 그래도 천민이다 =========================================================================
초능력자는 각성을 하면 나라에 ‘나 초능력자임.’하고 신고를 할 의무가 있다. 초능력자라고 해서 특별한 작위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넓고 초능력자는 많았다.
초능력은 위험하긴 하지만, 일종의 총기 소지 허용 사회로 보면 이해가 편리하다. 초능력자가 한둘도 아니고, 한국에만 30만 명이 넘는데 그걸 다 비밀리에 통제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초능력자가 초능력을 범죄에 사용하면 가중처벌 된다. 초능력자를 검거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국가 소속 초능력 부대도 존재한다. 그들은 특별히 강력한 엘리트로 구성된다. 일종의 군인으로 볼 수 있다.
괴수는 어디에나 널려 있다. 대부분의 괴수는 기본적으로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다. 자기가 먼저 공격 받아야 화가 나서 반격한다. 물론 민간 지역을 습격하는 괴수도 가끔씩 출몰한다. 초능력 부대는 그런 일에도 투입된다.
민간 공격대는 영리 목적을 위해 비선공 괴수를 사냥한다. 레이드 전에는 반드시 국가에 신고를 해야 한다. 전투 도중에 괴수가 민간 지역을 습격하면 즉시 국가에서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공격대가 전멸할 경우도 국가에서는 대비해야 한다. 그래서 신고가 접수되면 레이드 예정지 초능력 부대에 경계령이 떨어진다.
말은 그렇다고 하는데 레이드 개시 신고를 하라고 강제한 이유는 사실 탈세 방지에 주목적이 있었다. 괴수 사체는 비싸고, 공격대가 내는 세금은 엄청나다. 25인 경우 1회 전투 당 보통 8~10억의 세금이 나온다.
국가에서 초능력 부대로 레이드를 하는 것도 좋지 않느냐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 초능력 부대는 선공 몹을 제압하고, 초능력 범죄자 체포에만 응용하기에도 인력이 빠듯하다. 레이드는 민간 공격대에 맡기고 세금만 잘 관리하면 국가 입장에서 오히려 이득이었다.
“유지웅 씨. 모레에도 레이드 갈까 하는데 혹시 참가 가능하세요?”
“네? 아, 물론이죠.”
“아이고, 감사합니다.”
공격대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사실 힐러들은 한 번 레이드를 참가하면 좀 오래 쉰다. 많이 가봐야 한 달에 네 번이다.
절정을 달리는 딜러는 오히려 힐러보다 돈을 많이 번다. 레이드를 힐러보다 자주 다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 많이 세금을 내고, 장비에 많이 쓰기 때문에 실제로 모은 돈은 힐러보다 딸린다. 초일류 딜러들은 사흘에 한 번 꼴로 레이드를 참가한다고 하니, 얼마나 많이 벌겠는가?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레이드를 많이 가는 것은 이유가 있다. 초일류급 딜러도 많은 편이다. 한 번 빠지면 다른 딜러가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 초일류 딜러들은 더더욱 쉬지도 못하고 레이드를 간다.
힐러들이야 자리 뺏길 일이 없으니까 내킬 때만 레이드를 가고 그렇지 않으면 돈을 쓰며 즐긴다. 반 년 정도 왕창 레이드를 다니고 몇 년을 놀고먹는 힐러도 있다.
“유지웅 씨는 레이드를 부지런하게 다니시네요. 다른 힐러들은 그 정도 돈 모으면 그때부터는 쉬엄쉬엄 다닌다는데.”
“모을 수 있을 때 많이 모아둬야죠.”
유지웅은 한 번 딜 능력을 잃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모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모아두자, 라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아무튼 힐러 셋은 확보해서 한시름 놓았습니다. 나머지 셋을 어디서 채울지 참…….”
“저 분들 안 간대요?”
“생리래요.”
고정 힐러 둘 셋만 확보해도 막공장으로서는 대단한 인맥이다. 여기저기 부평초처럼 자유롭게 떠도는 힐러들은 막공에 참가할 때 고정 힐러가 있는지 여부를 꼼꼼하게 따진다. 예전에 어느 막공장이 이런 불평을 하기도 했다.
“그냥 자기가 고정 힐러 한다는 발상은 못해? 자기도 고정 힐러 안 하면서, 막공에 고정 힐러가 있는지는 왜 따져? 너무 이기적인 거 아냐?”
물론 그 발언이 공론화된 후 그는 그 뒤로 다시는 레이드를 꾸리지 못했다. 힐러들이 그의 팀을 기피했기 때문이다.
“수고했어. 다음에 봐.”
“응. 지웅이 너도 잘 자.”
정효주 집은 그의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다. 정효주와 헤어진 유지웅은 그의 조그만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낡은 오피스텔과도 이제 안녕을 고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이왕 사는 거 좋은 집을 사야지.’
한 30억쯤 모아서 근사한 단독 주택을 살 작정이었다. 정원이 있고 수영장도 조그맣게 갖출 수 있는 곳. 괴수 출현 이후 땅값이 많이 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응?”
5층에 내린 유지웅은 의아했다. 그의 집 앞에 누군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여자애?’
한 17세쯤 되었을까? 자그마한 몸집에 탐스러운 갈색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있었다. 어깨끈이 드러나는 면티에 골반 라인이 드러나는 검은 핫팬츠를 입었다. 피부는 하얗고 깨끗했으며, 얼굴을 숙이고 있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언뜻 예쁠 것 같았다.
꿀꺽.
마른 침이 넘어갔다.
“누구세요?”
그가 부르자 여자애가 흠칫 고개를 들었다. 쪼그려 앉은 채 졸고 있었던 모양이다. 상상했던 대로 여자애는 예뻤다. 앳된 외모가 다소 흠이었지만. 그는 아직은 성숙한 여자가 좋을 20살이었으니까.
“안녕하세요? 저는 최현주라고 해요.”
“물건 안 사요.”
“물건 팔러 온 거 아니구요.”
“보험도 안 해요.”
“아이참. 그런 게 아니고요. 유지웅 씨 맞으시죠? 요새 막공 부지런히 전전하시는 힐러시잖아요.”
유지웅은 멈칫했다.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힐러가 좋다니까!’
천민 딜러 시절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렇게 예쁜 여자애가 집까지 찾아올 일이 어디 있겠는가? 상대의 목적을 확인하자 자연히 그의 태도가 거만해졌다.
“탱커예요?”
“아니오, 저는 딜러예요.”
딜러가 찾아왔다면 목적이야 뻔했다. 자기도 좀 레이드에 데려가 달라고 징징거리려고 왔겠지. 힐러 하나가 딜러 하나를 꽂아주면 통상 그 딜러가 받은 몫의 50% 이상을 대가로 받는다. 물론 공공연하게 하는 것은 아니고 은밀하게 이뤄진다. 힐러가 워낙 적은 관계로 현실에서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죄송한데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
“그렇게 하죠.”
유지웅은 최현주를 안으로 안내했다. 남자 집에는 처음 와보는지 최현주는 신기하다는 듯이 둘러보았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릎을 꿇고 다소곳하게 앉는 폼이 제대로 된 집안에서 자란 아이 같았다.
“레이드 때문이에요?”
“네.”
“어쩌죠? 저는 누구 하나를 꽂아줄 만큼 인지도가 있는 편이 아니라서요. 아실지 모르겠는데 지금도 같이 다니는 친구가 있어서 하나 더 꽂아주기는 저도 부담스러워요.”
“알아요. 힐량이 절반 밖에 안 되신다는 거.”
유지웅의 안색이 조금 찌푸려졌다. 힐량은 그에게 상당한 컴플렉스였다.
“그래도 힐러시잖아요? 레이드 투입 가능한 힐러 찾기가 얼마나 하늘에 별 따긴데요. 저는 유지웅 씨가 꼭 필요해요.”
“제가 필요하다고요?”
뭔가 말이 이상해졌다. 유지웅은 당연히 그녀가 레이드에 한 번 꽂아달라고 말을 하러 온 줄 알았다. 그런데 대화 흐름이 미묘하게 어긋나고 있었다.
“제가 이번에 10인 정규 공격대를 창설하려고 해요. 부디 제 공격대에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뭐라고요? 정규 공격대?”
“네.”
최현주가 힘차게 대답했다. 그러나 유지웅은 어이가 없었다.
10인 정규 공격대라니.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다. 10인 괴수를 막공으로 잡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정규 공격대에서 10인 괴수를 잡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시간 낭비이기 때문이다.
10인급 괴수는 약하지만 그만큼 값이 싸다. 통상 25인 괴수가 20~30억을 받지만 10인 괴수는 비싸게 쳐봐야 10억이다. 그런 주제에 힐러는 전체 구성원의 30%는 되어야 한다.(25인의 경우 힐러 비율이 25% 정도) 당연히 힐러들이 꺼려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 보니 10인 괴수는 선호도가 무척이나 낮았다.
“실례지만 무리한 거 아닌가요? 10인 정규 공격대를 누가 오려고 하겠어요?”
“딜러는 올 사람 많아요. 힐러가 문제죠. 유지웅 씨만 허락하시면 다 끝나요.”
“최소 셋은 되어야 할 텐데, 다른 두 명이 이미 확보가 된 건가요?”
“네. 제 언니들이거든요.”
혈육 관계라면 납득이 간다. 그나저나 언니들이 둘 다 힐러라고? 이 얼마나 축복받은 딜러인가?
“언니가 둘 다 힐러라면 차라리 다른 정규 공격대를 가거나, 아니면 25인 공격대를 만드는 게 낫지 않아요? 어느 쪽을 하든 더 쉬울 텐데.”
“제가 탱커가 아니라 딜러라서 25인 공격대 만들기는 정말 어려워요. 메인 탱커급은 자기 공격대를 만들 생각만 있지, 다른 공격대장 밑에서 탱커 할 마음이 없거든요.”
“하지만 10인 정규 공격대는 너무 손해잖아요?”
“상대적으로 벌이는 적겠지만 사람이 적다는 건 그만큼 장점이 있어요. 혹시 25인 공격대가 운영에 얼마나 불협화음이 많은지 아세요? 정규 공격대는 더해요. 보통 인원이 40명이 넘다 되다 보니 로테이션 돌리는 것 때문에 공격대장이 매일 머리를 싸맨다고 하네요.”
“음…….”
“저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명으로만 운영할 거예요. 손발 철저하게 맞추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10인 괴수를 정기적으로 사냥할 생각이에요. 장기적으로 보면 이쪽이 더 벌이가 괜찮을 수도 있어요.”
보통 레이드는 25명이 가지만 정해진 수치는 아니다. 때로 30명이 가기도 한다. 정규 공격대 경우는 전체 구성원 수가 최소 40명이 넘는다. 그래야 예비 인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현주는 전혀 역발상을 한 것이다. 남들이 비효율적이라며 잘 안 잡는 10인 괴수 전문 사냥의 정규 공격대를, 그것도 딱 10명 맞춰서 창설하겠다니.
“죄송하지만 거절할게요.”
“네? 왜요?”
“저는 모험은 안 해요. 지금도 레이드 잘 다닐 수 있는데 뭐 하러 10인 정규 공격대를 들어요? 사양할게요.”
“아, 안 되는데. 힐러 하나 꼭 확보해야 하는데.”
최현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 전의 의젓함은 어디 가고 참 어려 보였다. 그래도 공격대를 만든다는 걸 보면 스무 살은 넘었을 것이다. 상당한 동안 외모였다.
“저, 어떻게든 안 될까요? 진짜 진짜 힐러 필요하거든요.”
“어차피 전 힐량도 반 밖에 안 돼서 그런 10인 레이드에는 도움이 안 될 거예요.”
“아니에요! 2.5배 정도 힐량이면 10인 팀에는 충분해요!”
“아무튼 저는 정규 공격대는 사양할래요.”
유지웅이 레이드를 다니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정효주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다. 그와 함께 다니면 정효주는 사흘에 한 번씩 안정적으로 레이드를 다닐 수 있다. 잘 키운 힐러 친구 하나가 딜러 친구 천 명 안 부럽다는 말도 있으니.
10인 정규 공격대면 아마 정효주는 들지 못할 것이다. 10인 막공은 부탱을 잘 쓰지 않는다. 딜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1탱 3힐 6딜 체제로 가는 게 보통이었다.
“제발 부탁드려요!”
울며불며 매달리는 최현주를 억지로 내쫓았다. 최현주는 다음 날 또 찾아왔다. 그 다음 날에도 찾아왔다. 레이드를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집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그를 기다렸다. 안 되어 보이기도 했지만 유지웅에게는 정효주가 우선이었다.
“힐러가 정말 없어서 그래요. 참가해주시면 안 될까요?”
“힐러 언니가 둘이나 있으면 인맥도 있을 거 아니야? 힐러 하나 구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힐러라서 모르시는군요. 힐러 하나 구하기도 정말 하늘의 별따기예요. 힐러라고 다 힐러 친구만 있는 건 아니에요.”
밀고 당기기가 몇 날 며칠을 계속 되다 보니 유지웅은 최현주에게 말을 놓았다. 최현주는 여전히 깍듯하게 존대했다. 아쉬울 게 없는 자와 아쉬운 게 많은 자의 입장 차이였다.
“저기, 그럼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참가해주시면 안 될까요? 꼭 정규 공격대에 들어오지 않으셔도 돼요. 그냥 고정 막공 다닌다 생각하시고 한 달에 한 번만 와주세요.”
“한 달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레이드를 갈 수 있다면 공격대는 최소한 유지가 가능하다.
“다른 힐러를 구할 때까지만이라도요. 네? 부탁드릴게요.”
한 달에 한 번만 참가해준다면 빈 시간에는 다른 레이드를 가면 된다. 정효주에게도 지장은 없다. 그렇지만…….
“나한테 별 이득이 없잖아? 10인 괴수 잡아봤자 떨어지는 몫은 적을 게 뻔한데.”
“제 몫에서 20% 더 떼 드릴게요.”
“됐어. 그런 거 잘못 받아먹었다가 다른 힐러들 눈 밖에 나면 레이드 가기 고달프다고.”
유지웅은 한 번도 그런 리베이트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가 먼저 꺼려했다. 그의 힐량이 낮기에, 다른 힐러들한테 밉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힐러에게 밉보였다가는 레이드 못 간다.
“에, 그럼 대체 뭘 드려야…….”
최현주는 우물쭈물하며 얼굴을 들었다. 둘의 눈빛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가 최현주의 다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