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9)
00009 그래도 천민이다 =========================================================================
솔직히 이렇게까지 쉽게 풀릴 줄은 몰랐다. 그저 넌지시 쳐다보기만 했을 뿐인데 최현주는 먼저 옷을 벗었다. 스무 살인 유지웅은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여자친구도 없는 솔로인데다가 한창 굶주릴 나이 아닌가.
옷을 입을 땐 날씬해 보였는데 그녀는 은근히 글래머였다. 너무 쉬워서 처음에는 꺼림칙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막 노는 그런 여자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처녀였다. 길목은 비좁았고 조금이지만 혈흔도 보였다.
너무 쉽게 풀렸을 때의 꺼림칙함은 잠시였고, 그는 곧 불타올랐다. 고작 반쪽짜리 힐러인 자신을 포섭하기 위해 딜러가 몸을 바쳐야 할 만큼 힐러의 입지가 막강한 건가? 그만큼 최현주가 야망이 큰 것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불길은 막바지를 향해 타올랐고 그는 힘차게 폭발했다. 땀에 젖은 그를 껴안은 채 숨을 고르던 그녀가 살짝 불만스럽게 말했다.
“안에다 하면 어떡해요?”
“……미안. 나도 모르게.”
“약 먹어야 되는데. 부작용 심하다구요.”
“미안해.”
샐쭉해진 표정으로 흘겨본다. 그다지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유지웅은 살짝 혼란스러워졌다.
“모레 바로 출발이니까 꼭 오셔야 돼요.”
“알았어.”
“한 달에 한 번이에요. 안 오시면 안 돼요.”
“너는 한 달에 한 번으로 될지 몰라도 나는 한 달에 한 번으로는 안 되겠는데?”
“필요할 때 부르세요.”
한참을 망설이는 듯하더니 그렇게 대답했다. 그게 귀엽게 느껴졌다. 그녀의 뺨을 쥐고 그는 속삭였다.
“그런 뜻 아닌데?”
“네? 그럼 무슨…….”
“나 너 마음에 든다. 사귀자.”
“……네?”
“사귀자고.”
이익을 위해서라면 몸뚱이 굴리는 것쯤 아무렇지 않게 하는 여자라면 이런 마음이 안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서툴렀고, 또 자신이 처음인 것으로 보였다. 뭐든지 처음은 특별하고 소중한 법이다. 유지웅은 그녀가 처음이라는 것에 로맨틱한 의미를 부여했다.
최현주의 얼굴이 빨개졌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이거 봐, 순진한 애 맞잖아. 유지웅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얼굴도 예뻤고 몸매도 근사했다.
“좋……아요.”
마침내 수줍어하며 그녀가 끄덕였다. 유지웅은 뛸 듯이 기뻤다. 그녀를 단단히 껴안고 입을 맞췄다. 몸이 또 한 번 달아오르며 그녀를 원했다.
힐러는 역시 좋은 것 같다. 알아서 애인이 되어주겠다고 하는 여자도 찾아오니.
* * *
“좋겠네.”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에 정효주는 차분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역시 힐러는 좋은 것 같아. 왜 사람들이 귀족, 귀족거리는지 알겠어. 반쪽짜린데도 이렇게 여기저기서 찾는 거 보면.”
“그럼 이제 10인 공격대만 계속 가는 거야? 정규로?”
“한 달에 한 번이라고 못을 박았으니 효주 너랑 가는 건 지장 없어.”
유지웅은 최현주와 사귀게 되었다는 것과 10인 정규 공격대를 가기로 했다는 것을 남김없이 말했다. 정효주는 그에게 가족 같은 존재였다. 아무 것도 숨김없이 의논할 수 있는 그런 존재.
“잘 되길 빌어줄게.”
“고마워. 역시 효주 너밖에 없어.”
최현주와 사귀게 되었지만 달라지는 건 별로 없었다. 유지웅은 여전히 사흘이 멀다 하고 정효주와 함께 막공을 갔다. 통장에는 돈이 쌓여가고 있었고, 최현주와 매일 데이트했다. 데이트의 마지막은 항상 집에서 보내는 뜨거운 애욕의 시간.
최현주는 그보다 한 살 어린 19살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어린 여자애가 힐러를 확보하기 위해 몸을 던진 것이 거북했다. 만약 그녀가 처녀가 아니었으면, 몸을 쉽게 굴리는 여자인 줄 알고 사귀자는 말도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현주가 공격대에 쏟는 열정을 보니 이해가 되었다. 그녀는 그야말로 자기 공격대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순결보다는 공격대가 더 중요하다고 해야 할까.
“오빠, 인사해요. 이쪽은 제 언니들.”
“반가워요.”
최현주 공격대가 처음으로 출발하는 날, 유지웅은 그녀의 언니들이라는 힐러들과 대면했다. 최현주를 닮아 아주 예쁜 여자들이었다.
“최진주예요. 스물 넷입니다.”
“최성주예요. 스물 둘입니다.”
둘 다 유지웅보다 연상이었다. 유지웅은 탐색하듯이 자신을 살피는 눈초리에 진땀을 흘렸다. ‘이런 녀석이 과연 우리 동생에게 어울릴까?’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고 보니 순혈 힐러인 그들 눈에 자신 같은 반쪽짜리는 눈에 차지 않을지도 몰랐다.
“우리 현주 애인이라면서요? 현주 어디가 마음에 들었어요? 기집애가 자기 공격대 만든다고 설쳐대는 선머슴 같은 앤데. 꾸미고 다니는 건 제법 하고 다녀도, 속은 완전히 남자라고요. 야망이 아주 그냥 가득해요.”
“반쪽짜리 힐러라면서요? 레이드에는 지장이 없나요?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게 아니라 목숨이 달린 문제니 전력 파악은 확실하게 해두고 싶어서 그래요. 오해하지 말아요.”
두 언니는 성격면에서 차이가 보였다. 맏이인 최진주는 호들갑스럽고 소녀 같은 성격이었고, 둘째인 최성주는 차분하고 냉정한 면이 있었다.
“내 남자친구 너무 괴롭히지 마. 그래도 귀하디귀한 힐러 몸이라고.”
“딜러였으면 반대했겠지만 힐러니 봐준다.”
“어머, 성주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딜러가 뭐가 어때서? 우리 현주도 딜러잖아?”
“현주가 보통 딜러는 아니잖아.”
“자자, 그만하고 이제 다른 대원들도 소개할게요.”
최현주는 신이 나서 공격대원들끼리 서로 인사시켰다.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힐러진을 대하는 딜러진은 태도가 사뭇 정중했다. 어렵사리 낀 공격대에서 잘 보이고 싶었으리라.
“당분간 우리 공격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사냥을 할 거예요. 사냥이 비는 날에는 다른 막공을 가셔도 좋아요. 일단은 여유를 가지고 오래 유지하는 쪽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탱커는 젊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였다. 딱 봐도 ‘나는 탱커’라는 느낌이었다. 어깨도 벌어져 있고 온몸이 단단한 근육으로 덮여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악스러운 느낌은 아니고, 운동으로 다져진 바디쯤으로 보였다.
“공격대장님. 첫 사냥감은 정하셨나요?”
“네. 붉은 날개 늑대로 하려고요.”
“잡으면 벌이는 좋겠지만…… 10인으로는 힘들지 않을까요?”
붉은 날개 늑대는 잘 사냥하지 않는 괴수였다. 10인으로 잡기에는 너무 벅차고, 25인으로 잡기에는 시시하기 때문이었다. 25인으로 잡으면 손해지만, 10인으로 잡는다면 중박 이상 가는 금액이 분배된다.
“아무래도 딜이 모자랄 것 같은데요. 우리 6 딜러잖아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최현주는 함박 웃었다.
“자, 그럼 가보죠.”
13명은 붉은 날개 늑대를 사냥하기 위해 출발했다. 왜 13명이냐면, 회사에서 나온 두 명과 정부에서 나온 공무원 한 명이 따라붙었기 때문이었다. 회사는 전투가 끝나면 시체를 즉석에서 매입하고, 공무원은 만약 공격대가 전멸하거나 기타의 이유로 괴수가 민가를 습격할 가능성이 높아지면 초능력자 부대에 지원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저놈이군요.”
저 멀리 붉은 날개 늑대를 앞에 두고 탱커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탱커 옆에 나란히 몸을 낮춘 최현주가 대답했다.
“우리의 소중한 돈이지요.”
10인 괴수는 비싸봐야 10억이다. 25인 괴수가 30억까지 가는 것에 비하면 타산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힐러들은 10인을 거의 가지 않는다.
하지만 저 놈은 12억 이상 한다. 10인으로 저 놈을 잡을 수만 있다면 오히려 이득이다.
“…….”
유지웅은 다소 기분 나쁜 눈으로 둘의 뒷모습을 보았다. 사이좋게 몸을 숨기고 정찰하는 모습에서 왠지 질투가 났다. 그걸 알아차린 최진주가 쿡쿡 웃었다.
“질투 나?”
“그런 거 아니에요.”
“원래 탱커와 공격대장은 그들만의 유대감이 있어. 공격대장과 사귀려면 그런 건 이해해야 돼. 그래도 너는 힐러잖아?”
탱커는 힐러에 비해 대체하기가 쉽다. 희소성 면에서 따지면 힐러가 월등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유지웅은 저 탱커보다는 우월했다.
“자, 준비하죠.”
최현주가 박수를 치자 딜러들은 바짝 긴장하며 다시 한 번 자기들 장비를 점검했다. 유지웅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딜러들이 전부 개인 장비가 있었다. 대여 장비가 아닌 개인 장비가 말이다.
“갑니다!”
그렇게 외치고 탱커가 번개처럼 뛰어나갔다. 과연 탱커, 달리는 스피드가 무지하게 빨랐다. 저 정도라면 아마 100미터를 6초 안에 끊을 것이다.
“탱커 어그로 확보! 딜 시작이요!”
“이야아아아아아!”
딜러들이 작게 외치며 딜을 시작했다. 크게 외치면 당연히 괴수가 돌아보기 때문에 그들끼리만 들을 수 있도록 작게 외친다.
“난 딜러들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
“외칠 거면 크게 외치던가, 작게 외칠 거면 아예 말던가.”
힐러들은 딜러들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투덜거렸다. 한때 딜러였던 유지웅이 대답했다.
“저렇게 해야 강하게 보이잖아요? 공격대장과 힐러진에게 어필하기 위한 수단이죠.”
“아, 그런 거야?”
“오묘하네. 딜러들 세상은.”
“그 동네가 좀 특이하긴 해요.”
힐러들 사회만큼은 아니지만. 편안하게 레이드를 골라가는 힐러들이 어떻게 딜러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든 힐러 눈에 잘 보여서 친분을 쌓고자 하는 딜러들의 본능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절대 불가능하리라.
전투가 시작되고 나서야 유지웅은 왜 최현주가 그렇게 자신만만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딜은 무지막지했다. 그녀는 화염 공격을 사용하는 원거리형 딜러였는데, 보기만 해도 엄청난 화염구가 그녀의 손에서 쏟아져 나갔다. 그것도 딜레이 없이 연신 쏟아져 나갔다.
화염 공격이 괴수에게 적중될 때마다 폭발이 펑펑 일어났고, 그때마다 광역 데미지가 탱커에게까지 쏟아졌다.
“현주야! 딜 좀 살살! 이러다 네 딜에 탱이 죽겠어!”
“걱정하지 마! 정말 튼튼한 탱커야! 힐이나 잘 챙겨!”
“으이구! 저 선머슴 같은 기집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