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0)
00010 그래도 천민이다 =========================================================================
힐러진은 정신없이 힐을 퍼부었다. 이러다가 잘못하면 탱커는 괴수 공격보다는 최현주의 딜에 죽을 것 같았다.
원거리 딜러가 딜을 할 때, 폭발력이 탱커에게 휩쓸리는 것은 당연히 일반적인 현상이다. 물론 그 정도에 탱커들이 죽겠다고 난리 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현주의 딜은 장난이 아니었다.
―캬오오오오오!
마침내 붉은 날개 늑대가 쓰러졌다. 공격대원들은 환호성을 올리며 기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대단한 딜이네요.”
탱커가 기진맥진한 얼굴로 말했다. 최현주야말로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몸이 장난 아니게 튼튼하시네요. 솔직히 이렇게 잘 버티실 줄은 몰랐어요.”
“하하, 그런가요? 생각보다 별로 아프진 않더라고요. 견딜 만 하던데요?”
“진짜 정말 대단하신 맷집이에요. 왜 안수철 씨 같은 분을 정규 공격대에서 가만히 내버려두었죠? 이해가 안 가요.”
“그렇게 추켜세우시지 않으셔도 다른 공격대 안 갑니다.”
둘이 서로 사이좋게 칭찬하는 모습에 유지웅은 다시금 기분이 나빠졌다.
‘나도 열심히 힐 했는데!’
당연히 남자친구에게 먼저 수고했다고 칭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쳇.’
따지고 보면 둘은 순수한 애정으로 사귀게 된 관계는 아니다. 그가 먼저 힐러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몸을 먼저 취하고, 그리고 사귀게 된 관계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녀가 교제를 허락하고 유지하는 이유가 그가 힐러이기 때문이다.
“현주 딜, 대단하지?”
최진주가 뿌듯한 얼굴로 말하자 그는 마지못해 끄덕였다.
“네, 그러네요. 왜 저렇게 딜이 센 거죠? 장비도 없는데.”
“장비라면 있어. 저 애 몸속에.”
“네?”
“굉장히 비싼 장비야. 그래서 딜이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좋은 거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으니 분실할 필요도 없지.”
“그거 참 대단하네요.”
소지의 편리함을 위해 장비를 체내에 이식하는 딜러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다.
“14억입니다.”
회사에서 그렇게 감정하자 공격대원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우와!”
“이게 14억이라니!”
공격대장과 힐러는 보통 딜러 몫의 1.5배를 받는다. 한 마리에 14억이라면, 25인 사냥보다 더 벌이가 좋은 셈이다.
회사는 수거장비를 불러 시체를 매입해갔고, 즉석에서 대금을 지불했다. 납세는 각자 알아서 해야 할 몫이다. 물론 회사가 지급한 대금액수를, 그리고 공격대장이 개인당 얼마씩 분배했다는 것을 국세청에 신고하기 때문에, 탈세는 거의 불가능하다.
“수고하셨어요, 오빠.”
공격대가 해산하고 최현주가 함빡 웃으면서 다가왔다. 유지웅은 심통이 나서 그녀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왜 내가 제일 마지막이야?”
“예? 왜 그러세요?”
“탱커 녀석한테는 제일 먼저 칭찬해줬으면서 왜 나는 제일 마지막이냐고? 너 내가 반쪽짜리 힐러라서 그러는 거야?”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오빠는 내 남친이니까 가장 마지막에 챙기는 거죠.”
“나 화났어. 오늘 안 재울 거야.”
“꺅. 무서운데.”
유지웅은 자기가 한 말을 그대로 실천했다. 최현주를 집으로 데려가서 밤새도록 쪽쪽 빨고 박으며 괴롭혔다. 그녀는 다음날 정오가 넘어서야 절뚝거리면서 귀가할 수 있었다.
“벌이가 꽤 좋다며?”
장비를 손질하던 정효주가 지나가듯이 이야기를 꺼냈다. 유지웅도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응. 10명이서 잡는데 두 당 돌아가는 몫은 25인보다 더 높은 편이야.”
“좋겠다.”
“효주 너도 끼워주고 싶은데 딜러는 6딜을 유지해야 돼서.”
“아니야. 난 괜찮은 걸. 너랑 같이 막공은 자유롭게 다닐 수 있잖아.”
최현주와 사귀게 된 지도 어언 석 달이 지났다. 그동안 10인 레이드를 총 3번을 갔다. 갈 때마다 벌이가 좋았다. 딜러들은 좀 더 자주 레이드를 갔으면 하는 눈치였지만, 최현주는 한 달에 1회라는 것을 고수했다. 힐러들도 별다른 불만이 없는 눈치였다. 하기야 친언니들이니 그런 걸로 다투지는 않겠지.
“오히려 난 너 막공 다니는 거 때문에 네 여자친구가 눈치 줄까 봐 신경 쓰이는데?”
“눈치를 줘? 왜?”
“좀 그렇잖아. 자기 남자가, 아무리 친구라지만 여자랑 같이 꾸준히 막공 다니는 거 좋게 생각할 사람이 어딨겠어? 게다가 넌 힐러잖아?”
“현주는 그런 거 신경 안 써.”
오히려 신경 쓰이는 건 자기 자신 쪽이었다. 유지웅은 입맛이 썼다.
물론 최현주와 불협화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데이트도 꾸준히 하고 속궁합도 잘 맞았다. 최현주는 애교도 있었고 예뻤으며, 그를 꽤 좋아하는 눈치였다. 문제는 그녀가 좋아하는 게 힐러인 자신인지 그냥 자신인지 선뜻 확정할 수 없다는 사실.
아무래도 첫 만남이 그런 식이었기 때문에 그는 최현주를 대할 때마다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정효주 씨. 브리핑에 집중하세요.”
“아, 네. 죄송합니다.”
둘이 소곤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공격대장이 바로 지적을 했다. 유지웅은 멋쩍어서 머리를 긁었다. 공격대장은 자신에게는 지적을 하지 않았다. 비록 반쪽짜리라고는 해도, 이것이 바로 힐러가 가진 권력이었다.
“흉포한 큰 독수리는 아주 강력한 몹이기 때문에 부디 공격대원분들 중 실수를 하는 분이 없어야 합니다. 딜러가 어그로 먹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절대 눈깔은 치지 마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바보도 아니고 딜러 중에 눈깔 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몰랐어요? 몇 달 전에 김혁수 막공장 팀에서 초보 딜러가 눈깔 치는 바람에 팀 전멸할 뻔했잖아요.”
“와,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
“제어가 잘 안 됐나 보죠. 그 딜러는 이제 어디 레이드 끼워달라고 하지도 못하겠다.”
유지웅의 얼굴이 굳어졌다. 딜러들은 유지웅이 바로 그 인물이라는 것도 모른 채 깔깔거렸다. 딜러들뿐만 아니라 이 팀의 대부분이 그 사실을 몰랐다. 유지웅은 힐러로 합류했기 때문이다.
“모른 체 해.”
정효주가 넌지시 손을 잡으며 말렸다. 그녀가 말을 걸어주자 유지웅은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눈을 치면 어떡해요!”
“어그로! 어그로! 어그로!”
순조롭게 풀리던 레이드는 사고가 났다. 딜러 중 한 명이 눈깔을 친 것이다. 그는 ‘몰랐어요? 몇 달 전에 김혁수…….’라면서 유지웅을 들어 깔깔거렸던 딜러였다.
눈깔을 치면 어그로가 튄다. 어그로가 튄다는 것은 괴수가 누구를 공격할지 알 수가 없게 되는, 즉 일종의 폭주 상황을 뜻한다. 이렇게 되면 힐러도 함부로 힐을 할 수 없게 된다. 힐을 하는 걸 보고 힐러를 치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괴수는 눈깔을 친 딜러를 쫓고 있었다. 힐러들은 힐을 멈춘 채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괴수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포효를 터트렸다. 괴수가 두리번거리다가 힐러 하나를 보았다. 금색으로 물들인 긴 머리카락을 가진 하얀 피부의 여자였다. 힐러인 데다가 매력적인 미모를 지니고 있어 대단히 인기가 좋은 여자였다. 그녀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안 돼!”
공격대장, 메인탱커가 힘차게 달려들어 괴수를 쳤다. 괴수는 다시 메인탱커를 때리기 시작했다.
“힐 주지 마요! 힐 대기!”
아직 어그로가 안정권이 아니어서, 지금 힐을 줬다가는 괴수가 힐러를 볼 수도 있었다.
유지웅은 속으로 오만 욕을 하며 혀를 찼다. 그래도 이 팀은 꽤 마음에 들어 벌써 한 달째 고정적으로 레이드를 다니고 있는 팀이었다. 눈깔을 친 딜러는 그 전부터 줄곧 레이드를 다니던 인물이었다. 그런 경력자가 지금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한 것이다.
‘아오, 이 팀도 관둬야 하나?’
유지웅은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리며 언제든 힐을 할 수 있게 준비했다.
“이제 힐 줘요!”
거의 죽어가던 메인탱커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 말에 힐러들이 재빨리 힐을 시전했다. 힐이 들어가고 메인탱커가 회복되었다. 바로 그 순간 괴수가 고개를 돌렸다. 목표는 힐러였다.
―크아아아아!
“아뿔싸!”
괴수는 포효를 내지르며 힐러진을 향해 뛰어갔다. 힐러들이 놀라서 도망쳤다. 정효주가 급히 따라붙었지만, 괴수는 정효주를 보지 않았다. 독수리 형태를 한 괴수의 날카로운 날개 끝이 금발의 여자를 힘껏 후려쳤다.
“아, 안 돼!”
메인탱커가 부르짖었다. 이런 말이 있다. 힐러 하나를 잃으면 전투가 어려워지고, 둘을 잃으면 도망가라는. 그만큼 힐러 한 명을 잃으면 막중한 부담이 온다. 그리고 탱커가 아닌 이상 한 대 맞으면 거의 즉사다.
“사, 살아 있어!”
“빠, 빨리 힐을!”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금발의 여자는 근육이 파헤쳐지고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갈라진 등에서 피를 쏟고 있지만, 아직 손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괴수의 공격이 살짝 스친 덕분이었다. 당황했던 힐러들은 급히 힐을 캐스팅했다.
‘이게 바로 예측힐이란 거다!’
유지웅은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가장 먼저 힐을 넣었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바로 힐을 넣을 준비를 해두었다.
파아아아앗!
힐이 들어가며 금발의 여자의 몸에서 빛이 났다. 즉사할 것 같았던 여자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었다. 완전한 치유는 아니지만 죽음은 막은 것이다. 다른 힐러였으면 단 한 방에 치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의 힐량이 부족한 탓이었다.
그 뒤를 이어 쏟아진 힐 샤워가 금발 여자를 완전히 회복시켰다. 여자는 정신을 차리고 도주하려 했지만, 그것을 본 괴수가 더욱 화가 나서 달려들었다.
“안 돼!”
정효주가 나서서 어그로를 끌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도저히 괴수의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괴수는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 것에 더 큰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죽음을 예감한 금발 여자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퍼억!
날개에 얻어맞은 금발 여자가 저만치 날아갔다. 아마도 분명히 죽었으리라. 조금 전처럼 스친 것도 아니고 제대로 얻어맞은 공격이었다. 힐을 줄 틈도 없었다. 일단 살아 있어야 힐을 넣든지 말든지를 할 것이 아닌가?
“젠장! 젠장!”
메인탱커가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달려들었다. 간신히 어그로가 그에게 집중되었다. 모든 공격대원은 맹렬하게 싸웠다.
지옥과도 같았던 순간이 겨우 끝났다.
괴수는 죽어 쓰러졌고, 모두들 지쳐 널브러진 채 숨을 골랐다. 여느 때 같았으면 회사 직원이 감정하느라 정신이 없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무려 5명이 죽었다. 금발 힐러 외에도 딜러 4명의 희생이 있었던 것이다. 눈깔을 친 딜러는 아이러니하게도 멀쩡했다.
한참 동안 숨을 고르던 메인탱커가 버럭 화를 냈다.
“정효주 씨! 그거 하나 어그로를 못 잡아서 어떡하자는 겁니까!”
지친 몸을 회복하고 있던 정효주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보았다.
“네?”
“네는 뭐가 네예요? 정효주 씨 같은 반쪽짜리 부탱을 왜 받았겠어요? 어그로 돌아갔을 때 잘 잡으라고 받은 거 아닙니까? 그거 하나 어그로를 못 잡을 거면서 왜 딜도 아니고 탱도 아닌데 부탱으로 다녀요? 차라리 딜러로 다니지!”
“…….”
정효주는 아무 말도 못했다. 유지웅은 기가 막혔다. 지금 잘못을 한 건 정효주가 아니라 눈깔을 친 딜러가 아닌가? 그가 나서려고 하자 다른 힐러가 그의 손을 탁 잡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말이 없던, 검은 머리의 25세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부탱커랑 아는 사이인 건 아는데 나서지 마요.”
“네?”
“눈깔 친 딜러, 공격대장 친구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