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843)
00843 %3C프리시즌 딜러편%3E 이건 미친 짓이야 =========================================================================
“회장님, 부르셨습니까?”
머리 벗겨지고 배 나온 중년남이 씩씩하게 물었다. 잘 먹어서 그런지 때깔 하나는 곱다. 옷도 비싼 명품 양복을 입었다.
“어, 범석이 왔어?”
“예. 회장님의 부르심을 받고 득달같이 달려왔습니다.”
“새 집은 잘 돼가? 다음 달 안에는 집들이 할 수 있을 것 같아?”
“염려 마십시오. 이제 내부 인테리어만 남았습니다.”
“아, 인테리어 하니 말인데…….”
“이미 사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모님 취향을 백분 반영해서 흡족하실 만한 인테리어를 꾸며 보겠습니다.”
“역시 범석이가 센스 하나는 기가 차다니까. 잘했어.”
“아닙니다. 제가 뭐 한 게 있겠습니까.”
김범석은 고개를 거듭 숙이며 당차게 말했다. 김기영은 옆에서 살짝 거북한 눈으로 바라봤다. 맹목적인 충성이 이상해서가 아니다. 같은 주인을 모시는 입장에서 당연한 것이다.
다만, 왠지 김범석의 엉덩이 뒤에 살랑거리는 꼬리가 보이는 듯해서……. 그런 착시 때문에 조금 거북한 것이다. 차라리 김범석이 늘씬하고 어여쁜 여비서면 괜찮겠는데, 머리 벗겨지고 배 나온 중년남이다 보니까 영…….
“참, 자네 부른 건 시킬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예, 맡겨만 주십시오.”
“미국 몇몇 재벌들이 록펠러 가문 주도로 국가적 프로젝트를 하는 것 같아. 그에 관해서 자세히 알아봐. 녹서스 프로젝트인가 대충 이름이 그럴 거야.”
“어느 선까지 허용되는 겁니까?”
김범석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보고 있던 김기영이 그 변화에 순간 가슴이 철렁할 정도였다. 조금 전까지 애교를 피우듯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던 애완견은 순식간에 훈련된 맹견의 위압감을 뿜어냈다.
“협박도 상관없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알아내.”
“예!”
“누구 죽이거나 고문하지는 말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남기철이나 대통령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 뒷목을 잡고 넘어가지 않았을까. 이 대화를 못 들었다는 게 그들에게는 오늘의 행운일지도.
“수고 좀 하고, 가급적 서둘러. 조만간 미국 갈 거니까.”
“예!”
김범석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이번에는 김기영 차례였다.
“김 실장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역시 김범석을 대할 때와 김기영을 대할 때의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 그런 점이 오히려 김기영에게 굳은 신뢰와 존경을 주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랫사람을 적절하게 다룰 줄 아는 카리스마가 있으니.
“사모님 친정 일입니다.”
“무슨 말씀이시죠?”
“사모님 아버님께서 운영하시는 공장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원청기업에서 대량 발주를 했는데, 경영진 교체 후 해당 사업 분야를 축소했습니다. 때문에 아버님께서 악성재고를 떠맡으실 상황에 처했습니다.”
“뭐라고요? 아니, 누가 우리 장인어른한테 감히 그런 짓을?”
“미래자동차입니다. 사모님의 신분은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내가 이것들을 그냥!”
유지웅은 이를 갈았다. 아니, 감히 이 몸의 예비 장인에게 모욕감을 안겨주다니!
그런데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근데 미래자동차 정도면 실장님 손에서 처리할 수 있을 텐데?”
“준비를 갖춰 놓았습니다. 다만 사모님 아버님 되시는 분이 관련되어 있다 보니, 사전에 회장님께 지시 받고 움직이는 게 이치에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시 실장님 일하는 센스가 있어요. 준비 해놓은 거 어느 정도인지 알려주세요.”
“예. 바로 브리핑하겠습니다.”
김기영은 프로젝터를 작동했다. 벽면 스크린에 화면이 떠올랐다. 흰 바탕에 검은 글씨, 간결하게 주요 내용만 적혀 있는 파워포인트가 지나가기 시작했다. 화려한 폰트나 복잡한 숫자, 그래프 등을 사용하지 않고 중요한 점만 정리한 브리핑은 유지웅 비서실의 독특한 스타일이다.
“……이와 같이 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건 좀 번거로운데요?”
유지웅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요? 그냥 미래자동차만 없애면 되지 않나요?”
미래 재벌 직계들이 들었다면 식은땀을 흘리지 않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단순히 응징만을 위한다면 회사를 없애고 경영진을 처벌하면 그만이지만, 이는 회장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초석입니다.”
“제 뜻?”
“저번에 밝히신 원대한 국가 개조 계획 말입니다. 이 나라를 슬기로운 사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바꾸시겠다는…….”
“아!”
그제야 유지웅은 납득이 갔다. 김기영이 해놨다는 준비가 다소 복잡해서 의아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을 줄이야.
한편으로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모두 기억하고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했다. 충신이란 이래서 좋은 것이다.
갑자기 김기영을 이를 바드득 갈았다.
“그렇지 않아도 미래자동차는 회장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모르는 버러지 중 하나입니다. 회장님께서 막힌 수출로를 뚫어주시고, 관리해주시고, 무역 대리를 하시면서 대금까지 즉시 현금 결제를 해주는데, 저들은 하청업체에 길게는 반 년씩 어음 발행이나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회장님의 위명에 결국 누가 됩니다.”
“그건 확실히 문제가 있어요. 안 그래도 체질 개선한다고 했으니까 본격적으로 바꿔 보죠.”
유지웅은 마음이 뭉클해졌다. 오너의 야심을 자신의 야심인 양 죽어라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했다.
“대기업 중심 경제도 문제지만, 그거 말고도 우리나라 문제가 너무 많죠. 경직된 관료문화, 수직 구조에서 오는 문제, 교육 문제라든가, 예산 비리라든가, 정치 비리라든가, 아휴, 말하다 보면 끝이 없어요. 개괄적인 계획이라도 좋으니까 그것들 전부 보고서 작성해서 가져오세요. 우리나라가 슬기로운 사회처럼 되기 위해서 개선해야 할 점 전부.”
“전부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일단은 방금 보고하신 미래자동차 응징이랑 그에 얽힌 등등부터 하시면서 보고서 작성하세요. 할 수 있죠?”
“물론입니다! 맡겨 주십시오!”
남기철이나 대통령이 들었으면 기절하지 않았을까. 그야말로 살인적인 업무량이다.
청렴도 0에 수렴하는 깨끗한 국가로 개조하기 위한 보고서를 작성해오라니. 그 분야가 한둘이 아닐 것이고 손대야 할 게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걸 하느니 배를 째겠다고, 남기철과 대통령이라면 그러지 않았을까.
‘내 능력을 보여드리자!’
그러나 김기영은 달랐다. 전형적인 일 중독자인 그는 온몸 가득 열의를 불태웠다. ‘나의 회장님’은 소탈하시고, 그러면서도 젠틀하시고, 일에 대한 대가는 확실하신 분이다. 그런 분을 충심으로 보필하는 것도 직장인의 보람 아니겠는가.
‘나라고 10조 원 받지 말란 법은 없어!’
10조 원의 보너스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 안 그래도 김범석이 저번 달 이자로 제주도에 귤 농장 샀다고 해서 부러워 죽을 것 같다.
* * *
“네? 어음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앞으로는 반년짜리 어음을 발행하기로 했습니다.”
“아니, 갑자기 왜……?”
“현금 사정이 그렇게 됐습니다. 유감입니다.”
“그,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게 어디 있습니까? 적어도 우리 회사가 대비할 시간은 주셔야지요.”
“우리도 일이 갑작스럽게 이리 돼서요. 아무튼 유감입니다.”
미래자동차 재무부장은 당황해서 흙빛이 되었다. 한두 푼짜리 거래도 아니고, 연 수출액이 60조에 달하는데. 설마 그걸 전부 어음으로 하겠다는 건 아니지?
“회사 사정이 너무 어렵습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귀사의 재정 상황은 우리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설명하셔도 소용이 없어요.”
“하, 하지만…….”
“우리도 요즘 사정이 어려워서요. 아무튼 유감입니다.”
재무부장은 간절히 애원했지만 김기영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그는 축 늘어진 어깨를 한 채 돌아가야 했다.
덕분에 미래자동차 경영진은 난리가 났다.
“이게 무슨 소리야? 앞으로 어음 결제라니!”
“국제무역본부에서 그리 하겠다고 합니다. 김기영 실장이 통보해왔습니다.”
“그럼 바짓가랑이를 붙들어서라도 사정을 했어야지!”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쪽 입장을 전혀 들어줄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회사에 비상이 걸렸다.
국제무역본부는 유지웅이 자기 이름으로 운영하는 해외 공동 구매 조직이다. 이 조직이 지금 국내 결정체 암시장, 무역 시장 등을 통합 관리하고 있다.
즉 아직까지 경제 봉쇄 상황인 한국에서는 수출입을 하려면 국제무역본부를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물건을 내다파는 것도, 들여오는 것도 불가능하다.
“할 수 없지. 단기 회사채 발행하고, 가능한 현금 확보해. 돈을 안 준다는 것도 아니고 어음 결제니까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니야.”
미래자동차 석원주 회장은 일사분란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리고 협력업체들한테 지급하는 어음, 앞으로는 3개월에서 8개월로 늘려. 그럼 급한 대로 숨통은 트일 거야.”
“알겠습니다.”
* * *
장길산은 미래자동차에 동력 나사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의 사장이다. 대금 결제일이 돼서 원청기업 영업팀을 만난 그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8, 8개월이라고요?”
“회사 사정이 그렇게 됐습니다. 유감입니다.”
“아, 아니 8개월은 그래도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그렇게까지 돈이 묶여 있으면 우리 회사가 입는 손해가 너무 막심합니다!”
“현금이 급하면 어음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시던가, 아니면 어음을 매각하면 될 겁니다. 다행히 우리 회사의 어음은 신용도가 매우 높습니다.”
참 말 쉽게 한다고 장길산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채권시장에 1억짜리 어음을 매각하면 잘 쳐줘야 8천이다. 앉은 자리에서 20% 이상 손해를 보란 소리가 아니고 뭔가.
통사정을 했지만 결국 소용없었다. 힘의 차이는 넘을 수 없었다. 정 이러면 납품계약을 파기하겠다는 말에 장길산은 결국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거래가 끊어지면 그 자리에서 회사 문을 닫아야 하니까.
울화를 참을 수 없어 소주를 잔뜩 사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장길산은 누군가의 방문을 받았다.
“……누구십니까?”
“누군 건 중요하지 않고, 오늘 미래자동차에서 대금으로 1억 어음을 지급받으셨다고요?”
“……그렇습니다만?”
그걸 어떻게 알고? 아니, 그보다 무슨 목적으로? 장길산은 바짝 긴장해서 상대를 바라봤다. 양복을 반듯하게 차려입은 청년이었다. 나이는 삼십 초반쯤 되어 보인다. 어디 대기업에 근무하는 듯한 인상이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 어음 우리 회사에서 현금 1억에 사겠습니다. 지금 바로 결제해드리죠.”
“저, 정말입니까?”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계산하지요.”
청년 직원은 컴퓨터를 이용해 그 자리에서 금세 계산을 끝냈다. 회사 계좌로 분명하게 1억이 입금되자 장길산은 한시름 놓으면서도 상대가 왜 이러는지 궁금했다. 저거는 사봤자 손해 아닌가? 7개월이나 돈이 묶여 있고, 이자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다음에도 어음을 매각하실 때 이 번호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할인 없이 표시가로 매입해드리죠.”
“저, 그런데 왜 이런 일을 하시는 겁니까?”
“그건 모르셔도 됩니다. 저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찾아가봐야 하는 회사들이 많아서 워낙 바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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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엔 반드시 성실 타이틀을 따고 말겠어요.
일일 연재를 끊지 않을 계획입니다.
실탄의 ㅅ은 성실의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