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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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겐이 잘해주고 있어.”
인터넷 기사를 읽던 유지웅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모든 기사가 하나같이 쿤겐의 활약을 대서특필하고 있었다. 1면은 무조건 쿤겐을 위한 지면이었다.
“나도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낼 순 없지.”
유지웅은 기사를 다 읽은 후 흘끗 옆을 살폈다. 아무렇게나 방치한 구슬이 있었다. 절반을 뚝 잘라 한쪽은 보라색으로, 다른 한쪽은 붉은색으로 빛나는 구슬이었다.
바로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죽은 블랙 몹이 남긴, 숙성이 되다 만 레드 결정체였다.
“아깝네. 8년 후의 최 소장님이라면 쉽게 이 녀석의 원리를 밝혀낼 텐데.”
지금 시대의 최윤은 아직 미숙하다. 그 점이 한없이 안타까운 유지웅은 혀만 끌끌 찼다.
“그래도 이거 하나는 좋네.”
결정체가 완전한 구의 형체를 갖추자 유지웅은 보라색 부위를 떼어냈다. 그에게는 손쉬운 일이었다.
반구만 남은 결정체는 절단면에서 다시금 보라색 빛이 맺히며 형체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느렸지만, 분명히 퍼플 부분이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이걸로 4개네. 너무 느리다.”
반쪽 부위를 총 4개 갖췄으니, 퍼플 결정체만 총 2개가 있는 거나 다름없는 셈이다. 하지만 유지웅은 만족하지 못했다.
“일단 반쪽이긴 해도 퍼플 성질이 남아 있는 건 확실하고. 대기 중의 결정 에너지를 끌어 당겨서 퍼플을 만드는 건가? 이것도 항상성 성질의 일종?”
지금까지 모은 것만 내다 팔아도 엄청난 돈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숙성이 되다가 만 것은 확실하고……. 으으, 모르겠다. 나머지는 최 소장님이 알아서 연구해주시겠지. 가렌 박사님이랑 니트로 박사님도 있으니.”
유지웅은 벌떡 일어났다. 퍼플 부분은 가방을 열고 한쪽에 아무렇게나 집어넣었다. 레드 부분도 다른 수납칸을 열어 넣고는 가방을 어깨에 멨다.
“후후, 깜짝 놀라시겠군.”
죽은 줄만 알았던 자신이 나타나면 깜짝 놀라겠지? 유지웅은 과학자 양반들을 놀려줄 생각에 미소가 가득했다.
‘다른 거 신경 안 쓰고 연구에 몰두할 수만 있게끔 해드려야지.’
이것이야말로 참 바람직한 스폰서의 태도가 아닌가. 유지웅은 그리 생각했다.
지금 휴스턴 대폭발 때문에(아직 대참사라는 데까지는 알지 못한다) 미국은 나라 안팎이 시끌시끌할 것이다. 비록 ‘대의를 위해서!’ 죽음을 가장했지만, 그로 인해 어렵게 끌어들인 과학자들이 흔들리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연구 성과야말로 로버를 무찌를 비장의 한 수가 되어줄 테니까.
유지웅은 힘차게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삐익! 삐익!
“아차! 보안 장치!”
그래도 죽은 사람으로 가장한지라 남들의 이목을 피해 들어선 것까지는 좋았다. 헌데 임시 연구소 복도를 들어서자마자 요란하게 경보음이 울렸다.
“이런 망할.”
어떡하지? 일단 몸을 숨겨야 하나?
사실 혼자서 정밀 침투전을 해낼 자신은 없다. 앞뒤 가리지 않고 때려 부수는 것은 잘하지만, 들키지 않고 첨단 방어 장치를 뚫고 침투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갈팡질팡하던 유지웅은 할 수 없이 일단 몸을 빼기로 했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 들켜선 안 된다.
그때였다. 삐익거리던 요란한 경보음이 갑자기 뚝 멎었다.
“어? 이거 왜 이래?”
기계 고장? 아니면 다른 원인? 내빼야 하나 하고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오셨군요.”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가 그를 일깨웠다. 유지웅은 조금 놀라서 그쪽을 돌아봤다. 가벼운 탄성이 나왔다.
“칠드그린 부의장님?”
“부의장이 아닙니다.”
“아, 맞다. 죄송. 의장님.”
“그러니까 부국장이라니까요.”
칠드그린의 이마에 힘줄이 삐죽 돋아난 듯이 보인 것은, 아마도 착각이 아니겠지?
“경보 장치는 제가 껐습니다.”
“헐. 마치 제가 여기 올 줄 알았던 것 같네요.”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살아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죠? 귀신이셔라.”
“그 정도 폭발에 회장님이 사망했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정효주 딜러와 회장님 비서진의 움직임도 도저히 상중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습니다. 언젠가 회장님이 찾아오실 것 같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조금 예상 밖이었지만요.”
칠드그린은 유지웅의 죽음이 알려지자마자 곧바로 김기영 등 그의 측근들 움직임을 파악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유지웅이라는 미래를 잃어버린 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른 정보기관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빠른 대처라고 보았지만, 칠드그린은 유지웅이 살아있다는 쪽으로 해석했다.
“무엇보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저를 잡아끄신 분이 그렇게 시시한 폭발에 돌아가실 것 같진 않았거든요.”
“여전히 날카로우시군요. 그 통찰력.”
“여전히? 무슨 의미입니까?”
예리한 눈빛이 질문을 던진다. 유지웅은 괜히 말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물어보셔도…….”
“말씀하지 않으시겠군요.”
“네, 그렇죠. 역시 의장님은 대화가 빨라서 편해요. 같이 이야기하면 너무 즐거워요.”
그 말을 듣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이렇게 외칠 것이다. 너만 즐거운 거라고, 상대는 즐겁지 않을 거라고.
“하여튼 제가 여기 온 이유는 말이죠.”
“브레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겠죠.”
“아, 네. 그래요. 어떻게 아셨나요?”
“회장님은 브레인들을 중요시 여기시니까요. 죽음을 가장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게 브레인들을 잃을 만큼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혹시…….”
“박사들에게는 제가 넌지시 일러두었습니다. 회장님이 살아계시니 다른 생각하지 말고, 티내지 말고 하던 거나 하라고요.”
“오, 역시! 혹시를 역시로 만들어버리는 그 클래스! 여전히 대단하세요! 어쩜 이리 제 맘을 꼭꼭 집어서 절 편하게 만들어주실까.”
헛걸음을 하게 된 셈이지만 기분 좋은 헛걸음이다.
칠드그린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말했다.
“일단 여기는 이야기하기에 좋지 않으니 따라오시지요.”
“네. 그러죠.”
칠드그린은 유지웅을 자신의 집무실로 안내했다. 검소한 집무실은 의외로 깔끔하지 못했다. 온통 무언가를 휘갈겨 쓴 서류로 도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유지웅은 종이 뭉치를 피해 조심조심 앉으며 말을 꺼냈다.
“장 팀장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잘 갈리고 있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안심이라니요, 그러니 제가 무슨 악덕고용주가 된 것 같잖아요.”
“저런, 아니었나요?”
의외로 능글맞은 사람이었나? 유지웅은 전생에서는 겪지 못한 칠드그린의 태도에 신선함을 느꼈다.
‘깍듯하고 사무적이지만, 내 고용주에게만큼은 다정한 분이셨는데. 은근 까칠하시네.’
그 은근 까칠한 것도 매력이지만. 역시 이 시대에서는 약점을 잡히지 않아서 그런가? 어쩌면 저게 본래 성격인지도 모른다.
“세 브레인들도 잘 갈리고 있습니다. 회장님의 죽음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살짝 풀어지는 듯했지만, 제가 사실대로 말하고 잘 잡아놓았습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흠. 근데 나름 잘 가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의장님이 바로 꿰뚫어본 것을 보면 안심할 것은 못 되겠군요. 다른 사람들도 알아차린 것은 아니겠지요?”
“백악관과 의회는 회장님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대폭발에서 살아남을 거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으니까요. 정보계에서는 일부 의심하는 자들이 있긴 하지만 생존설은 소수설입니다.”
칠드그린이 차를 내왔다. 유지웅은 감사를 표하며 천천히 차를 마셨다.
“이제 제가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하세요.”
“일부러 죽음을 가장해서까지 노리시는 바가 뭡니까?”
“음, 의장님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너무 변수가 많아 예측이 어렵군요. 일차원적으로는 휴스턴 대참사의 책임 회피를 들 수 있겠고, 이차원적으로는 백악관을 궁지에 몰아넣어 길들이려는 수를 생각할 수 있고, 삼차원적으로는 워싱턴을 혼란에 빠뜨려 미국의 컨트롤 타워를 마비시키는 노림을 고려할 수 있고, 사차원적으로는…….”
잠시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칠드그린은 무겁게 말을 이었다.
“궁극적으로 미국을 발아래 두려는 야심을 위해서가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봤습니다만.”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은 걸 생각하셨군요.”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생각하는 것밖에 없으니까요. 왜 회장님이 죽음을 가장했을까, 하고 화두를 던지니 참으로 많은 답이 쏟아져 나오더군요. 제가 말한 것 중에 정답이 있습니까?”
“이미 의장님은 알고 계신 것 같은데요.”
칠드그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속눈썹이 희미하게 바르르 떨렸다. 한참 후 그는 쥐어짜내듯이 질문을 던졌다.
“굳이 미국을 차지해야만 하겠습니까?”
“제게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그게 편한 길인 것은 사실입니다.”
“미합중국 정벌이 편한 길이다?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십니까?”
“압니다.”
칠드그린이 매섭게 쳐다보았다. 이해했다. 전생에서, 처음 그를 회유할 때에도 그는 저런 표정이었다. 그가 기꺼이 자신의 아래로 들어온 것도 궁극적으로는 미합중국을 보전하기 위해서였으니까.
유지웅은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칠드그린에게 로버와 균열의 진실을 알릴 때가 되었다. 인류 멸망, 그 무시무시한 미래 아래서 칠드그린은 큰 힘이 되어줄 큰 인재다.
보다 큰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미합중국이 잠시 양보해야 하는 상황을 그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설득해야 한다.
어떻게 말을 꺼낸다? 정효주가 그랬었지. 서두는 짧게, 강렬하게, 그리고 핵심을 담아서.
“앞으로 몇 년 안에 시계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인류가 멸망한다고요?”
“네! 바로 그겁니다!”
사실 말을 해놓고도 유지웅은 아차 싶었다. 짧게, 강렬하게, 핵심을 담아서, 멋있게 말을 하려다 보니 이상하게 비유가 꼬이는 바람에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말을 해놓고도 분위기 깬 거 아닌가 싶어서 당황했는데, 칠드그린은 놀랍게도 바로 알아들은 것이다.
‘역시 나의 의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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